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3화 (3/175)

[3]

“확신은 못하겠지만 아마 세 명일 거야. 어새신 같은데, 최하류 어새신인지 기척을 숨기는 게 서툴러. 그래서 나 같은 놈에게도 걸린 거겠지. 적어도 난 어새신에게 쫓길 일이 없어. 그렇다면 밖의 손님들은 아마도 너에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로즈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최근 여행을 하면서 느낀 불쾌한 기분.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자신에게 그럴만한 일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신을 노리고 숨어 있는 자들이 있었다니…….

이니안은 로즈의 표정 변화에서 밖의 불청객들이 로즈를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훗, 잠시 기다려. 동굴 밖으로 나오지 말고.”

그런 로즈를 향해 피식 웃은 이니안은 로즈가 걸어놓은 로브를 들추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잠시 빛이 새어 들어온 동굴은 이니안이 나가자 다시 내려온 로브 자락에 스크롤 카드의 불꽃이 만들어낸 빛만이 자리했다.

“휴우, 눈부시군.”

이제 눈보라는 거의 그쳐 있었다. 눈보라 대신 하늘에 자리한 태양 빛이 눈에 반사되어 이니안의 얼굴로 쏟아져 들어왔다. 어둑어둑하던 동굴에서 갑자기 밖으로 나왔기에 이니안은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밝은 빛에 눈을 적응시키는 것이다.

눈이 빛에 적응됐다 싶은 순간 이니안의 몸이 튀어나갔다. 어느새 뽑아 든 검을 눈밭 한가운데 깊숙이 박아 넣었다.

이니안의 검이 들어가는 순간, 하얀 눈이 붉게 물들었다.

“우선 한 놈.”

이니안의 중얼거림에 그의 뒤에서 눈이 튀어 올랐다. 눈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두 어새신은 재빨리 손에 든 검을 이니안을 향해 찔러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한 듯 자신의 검을 움직여 가볍게 어새신의 검을 쳐냈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그때, 이니안이 흐르는 물과 같이 부드럽게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어 갔다. 두 사람 사이에 정확히 위치하는 순간 이니안의 오른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컥!”

“크윽!”

그 일격에 두 어새신은 각자의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역시. 어새신은 일단 기척만 감지하면 상대하기 어렵지 않지.”

이니안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검을 어새신의 옷에 닦았다.

이니안이 나가 홀로 남겨진 로즈. 그녀는 귀를 곤두세우고 동굴 밖의 기척에 정신을 집중했다.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누가 이긴 것일까? 상대는 세 명이라 했는데.

그다지 소란하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정적에 로즈는 긴장했다.

“젠장!”

그때 들려온 이니안의 커다란 목소리. 무언가 다른 일이 벌어진 듯했다. 욕설과도 같은 그 말속에 자리한 낭패한 기색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챙챙!

그때 로즈의 귀를 울리는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

그 소리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금세 멎었다.

“어떻게 됐을까?”

바깥이 조용해지자 로즈는 몸을 살짝 떨었다. 밖의 결과에 따라 자신의 처지도 변할 것이기에. 로즈의 두 눈은 동굴의 입구를 막아놓은 자신의 로브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로브가 들춰졌다. 그와 동시에 강렬하게 동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태양 빛.

로즈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너무나 강렬한 빛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강렬한 빛을 등진 검은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그 빛에 시각을 잠시 잃은 그녀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

그것은 피 냄새였다. 그녀로서는 이렇게 진한 혈향을 맡아본 적이 없었기에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역겨웠다. 속에서 구역질이 나오려 했다.

“뭐야, 그 얼굴은? 기껏 열심히 싸워줬더니.”

자신의 귀를 울리는 목소리에 로즈는 구역질이 치미는 가운데 내심 안도했다. 이 목소리는 분명 이니안의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동굴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빛에 적응한 눈에 이니안의 모습이 들어왔다.

강렬한 빛을 등지고 선 그 모습.

‘멋지다.’

로즈 자신도 모르게 떠올린 생각.

분명 눈에 반사된 태양 빛을 후광으로 서 있는 이니안의 모습은 멋있었다.

“하아!”

이니안을 보고 멋지다고 느낀 것은 느낀 것이고, 로즈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혹시라도 저 로브를 들추고 들어오는 자가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어새신이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그런 생각에 저 얄미운 녀석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뭐야, 이번의 그 얼굴은?”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이니안은 퉁명스레 말하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로브를 뒤적이더니 곧 작은 병과 하얀 붕대를 꺼냈다.

“다쳤어?”

그 모습에 로즈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 때문에 싸우다 다친 것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 몇 살이야?”

로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이니안은 엉뚱하게 나이를 물어왔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로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열여덟.”

어쨌든 물어왔으니 대답을 했다.

“난 스물하나다.”

다시 들려오는 이니안의 목소리. 로즈는 그 말에 여전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그래서 뭘 어쩌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눈빛을 읽었음인가? 이니안의 말이 이어졌다.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에는 좀 짧은 듯해서. 난 반말을 듣는 데는 익숙하지 않거든.”

그 말에 로즈는 어이가 없었다. 이니안의 상처를 보며 가졌던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일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어쩜 이리 아니꼽게 행동하는 걸까?

“그래서 뭐?”

그에 대한 반발 심리일까? 로즈는 고개를 당당히 쳐들고 이니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반말을 했다.

그 순간, 자신의 몸을 향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니안의 살기. 온몸에 오한이 돌았다. 자신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요.”

결국 로즈는 뒤에 조그맣게 한마디를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이니안에게서 풍겨 나오는 살기는 그녀가 견뎌내기에는 너무나 무서웠다.

‘치잇, 치사하게 나같이 연약한 여자에게……. 무식한 인간 같으니.’

속으로는 잔뜩 욕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아니, 됐어. 아는 듯하니까.”

그제야 이니안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살기가 사라졌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살짝 머금은 이니안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붕대와 함께 꺼내 든 수건으로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온몸에 잔뜩 피를 묻히고 들어와 잘 몰랐는데 이니안의 오른쪽 허벅지가 쩍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신 붉은 피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아!”

로즈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큰 상처였다. 로즈는 급히 가방을 뒤적였다. 그리곤 곧 그녀가 찾으려는 것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로즈는 황급히 이니안의 곁으로 다가갔다.

“됐어. 그렇게 큰 상처는 아냐. 이런 상처에 그런 걸 쓰는 건 아까워.”

이니안은 로즈가 무얼 하려는지 다 안다는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니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무척이나 큰 상처였다. 허벅지가 쩍 벌어져서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맥도 정맥도 멀쩡해. 뼈가 상한 것도 아니고. 근육이 좀 상하기는 했지만 결을 따라 잘려서 움직이는 데 큰 지장도 없어. 게다가 깨끗하게 잘려서 며칠이면 대강 붙어. 네가 손에 들고 있는 게 필요하면 내가 먼저 말해.”

그러고는 이니안은 좀 전에 품에서 꺼낸 병에서 녹색 가루를 상처에 뿌렸다. 뒤이어 익숙한 솜씨로 허벅지의 상처에 붕대를 감았다. 제법 벌어진 상처였기에 힘을 주어 단단히 감아야 했다. 상처 부위가 압박을 받자 붉은 피가 붕대로 스며들었다.

그 모습에 로즈는 고개를 돌렸지만 이니안의 눈은 무심했다. 이런 일에 익숙한 눈이었다.

“목적지가 어디야?”

상처의 치료를 끝낸 이니안이 로즈를 바라보며 물었다.

“미오나인이… 요.”

조금 전의 살기를 생각하며 로즈는 억지로 말을 높였다.

“수도라……. 멀리도 가는군. 그곳까지는 왜 가는데?”

로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어두운 얼굴로 눈을 낮게 깔았다.

“뭐, 그것까지는 내가 알 필요 없겠지.”

사연이 있는 모습에 이니안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해 보니 상당히 실력이 있는 녀석이 있었는데… 혼자서 수도까지 가는 건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가야 하는 걸요.”

“그렇다면 지켜줄 용병 하나 고용하는 게 어때?”

이니안의 말에 로즈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돈이 없어요. 그럴 돈이 있으면 진작에 고용했겠지요. 수도까지 가는 여비로도 빠듯해요.”

로즈의 대답에 이니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이미 무언가를 결심한 듯했다.

“내가 아까 먹은 빵 두 조각과 차가운 우유 한 병.”

“네?”

“그게 네 마지막 식량이었지?”

로즈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난 3일을 굶었다.”

이니안의 말에 로즈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그 눈 속에서 하루를 있었지. 네가 날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난 분명 죽었다.”

이니안의 말에 로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사실이었으니까.

“누구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할 거예요.”

로즈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상대가 말도 못할 무뢰한이라도 쓰러져 있다면 그런 것을 알 게 무언가. 일단 살리고 봐야지.

“후우, 난 기사였다.”

이니안이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스스로 기사의 신분을 버리고 용병이 되었지만 그 자긍심은 남아 있어. 나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면……?”

로즈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살짝 말을 늘였다.

“나의 허기를 달래준 빵 두 조각과 우유 한 병을 의뢰비로 하지.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특별히 그렇게 싸게 해주는 거야. 수도까지 데려다주지.”

로즈는 멍하니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무리 생명을 구해줬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생길 줄은 몰랐다.

“정말요?”

로즈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정말이다.”

이니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히 대답했다.

로즈는 순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흘러나온 눈물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고, 고마워요.”

진심이 담긴 감사의 말. 그 말과 함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뭘. 나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게다가 난 대단할 것도 없는 이류, B급 용병일 뿐이고.”

이니안은 바닥에 꺼내놓았던 붕대와 약병, 그리고 수건을 주섬주섬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출발하도록 하지. 눈은 이미 그쳤고, 저 불꽃도 곧 꺼질 것 같군.”

“네.”

로즈는 이니안을 따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동굴 입구를 막아놓았던 로브를 다시 몸에 걸쳤다. 눈에 비친 밝은 햇살이 동굴 밖으로 나온 그녀의 전신을 비추었다.

수북이 쌓인 흰 눈 위로 두 사람의 발자국이 아로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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