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51화 (251/252)

< 에필로그. (마지막 부분 조금 추가했습니다.) >

“어째서 내가 준 게임 & 워치를 별로 쓰지 않았지? 그것만 있다면 좀 더 손쉽게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노인의 물음에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반칙이잖아요.”

“반칙?”

“저 역시 혼자서 모든 걸 독점하는 삶에 대해 생각을 안해 본 것은 아닙니다. 당시 제가 가진 돈과 미래에 대한 예측만 있으면 땅 짚고 헤엄치는 것 만큼이나 쉬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그러지 않았지?”

“모든 걸 독점한 다음엔 무얼 할까요? 그리고 그 왕좌에서 저는 결코 자만하지 않았을까요? 저의 회귀는... 처음부터 제 자신의 성공만을 목적에 두지 않았거든요.”

“그럼 대체 무얼 위한 회귀였는가?”

“그저 그리웠던 레트로 게임의 향수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유명한 디렉터들을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제가 만든 게임과 경쟁하며 그저 순수한 게임 디렉터로서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그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는가?”

“그렇습니다.”

“그렇군. 자네의 마음은 잘 알겠네... 이만 가보게나.”

“네. 어르신 또 뵙게 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

“이사님. 이번에 진행되는 11차 마신 토벌단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직원 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간단히 끼니를 떼우던 중 하야시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음? 왜?”

“이번엔 유저들도 아주 작정하고 나선 모양입니다. 지난 10차 전쟁에서 아쉽게 패배한 뒤로 전장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배로 늘어났더군요. 이번에야 말로 승리할 수 있다면서...”

“어차피 전장에 참여할 수 있는 유저들이야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테니, 우리가 수세에 몰리는 건 어쩔수 없지.”

“이사님의 마신 행세도 이제 거의 끝이 보이네요.”

“그러게... 뭐 이번에 쓰러지면 적당한 랭커의 플레이어에게 인계하고 나도 이젠 느긋하게 전장이나 지켜볼란다.”

그러자 하야시의 옆자리에 있던 카오리가 피식 웃음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이사님. 지난 8차 토벌전에서도 9차에서도 그런 말씀하시곤 절대 안 쓰러지셨잖아요.”

“하하... 내가 그랬었나?”

카오리의 핀잔에 나는 젓가락을 놀리던 손을 멈추고 빙긋 웃어보였다.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의 최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마신 토벌전. 드래곤 엠블렘의 명성에 걸맞게 설계된 환장하는 난이도 덕분에 달마다 한번 열리는 토벌전도 벌써 11번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의 오픈 1주년을 맞아 업데이트 된 마신의 성.

그곳을 정복하기 위해 수많은 상위 랭커들이 치명적인 패널티를 무릅쓰고 도전 하였으나 근 1년간 번번히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신 토벌대는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에서 가장 랭크가 높은 플레이어 10명 만이 참여 할 수 있었는데, 단순히 자신의 캐릭터 만을 가지고 레이드를 뛰는 것이 아닌 전략 시뮬레이션처럼 하나의 군단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군단의 병사들은 마신 토벌대에 지원한 하위 랭크의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명 커맨더 베팅 시스템이라 불리우는 이것은 자신의 캐릭터를 부려줄 지휘관에게 토벌기간중 입대시키는 시스템이었다.

예를들어 프로스트사의 스타 크래프트와 비교하자면 프로게이머인 임요한씨나 홍진호씨같은 유명한 커맨더 플레이어의 소속으로 입대시켜 그들이 부리는 ‘마린’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플레이어 캐릭터는 콩알 만한 그래픽으로 너프되긴 하지만, 웅장한 전장의 흐름을 잘 보여줄 수 있어 10차 토벌전까지의 게임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1억뷰를 우습게 넘기고 있었다.

마신 토벌대는 개개인의 전투력이 모여 군단 전체의 전투력을 상향 시킬 수 있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유저들에게 유리한 전투이다.

하지만 마신인 내 곁을 지키는 아누비스를 비롯해 거대한 성을 지키는 블랙 드래곤까지 수비를 위한 방편은 충분히 구현해 두었다.

‘뭐 1차 토벌대는 성 앞을 지키는 블랙 드래곤의 꼬리만 슬쩍 보고 전멸 했을정도니까.’

그때 입안에서 밥알을 굴리던 하야시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비결이 뭡니까?”

“뭐가?”

“이사님께서 프로그래밍 하신 아누비스 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대처를 잘하죠? 완전 실시간으로 전황을 꿰고 있던데요? 솔직히 지난 10차 토벌전에서 전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아, 그 녀석이야...”

... 토벌대의 플레이어 데이터를 토대로 스스로 전략을 만들어 가는 녀석이니까.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최초의 NPC 캐릭터.

가끔 허당 짓도 하지만, 절대로 같은 실수는 번복하지 않는 나의 든든한 참모다. 아마 드래곤 엠블렘의 세계에서 아카식 시스템에 가장 근접한 녀석이랄까?

“가장 공을 들인 캐릭터지. 덕분에 나도 이때까지 전장에 나설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는 아누비스에 관해 대충 말을 얼버무리며 마저 식사를 마쳤다.

&

그로부터 보름 후. 펜타곤 샵 이벤트 홀에서 열린 제 11차 마신 토벌대를 맞이한 나는 상당히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번엔 정말 장난 아닌데?”

무대 뒤편에 마련된 나를 위한 개인 플레이룸에서 나는 성안을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4명의 군단과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좋아!! 이번엔 할 수 있다!!”

“오오오!!! 제발!!”

“조금만 더~!!”

밖에서 울리는 유저들의 함성이 이곳까지 들려올 정도로 스크린 속의 전장은 현재 나에게 굉장히 불리한 상태였다.

“주군이시여!! 내 등 뒤로!!”

다듭한 아누비스의 메시지에 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무대위를 비추는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아~!! 한국인 플레이어 윤수현 선수와 홍만호 선수!! 굉장히 움직임이 좋습니다!! 아누비스의 친위대가 두 사람의 공격에 옴짝 달싹을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드래곤 엠블렘 최초로 마신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제 11차 토벌전의 해설과 진행을 맡은 준페이 녀석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굉장히 얄밉게만 들려왔다. 흥분한 녀석의 목소리를 들으니 패밀리 때 패미통신에서 진행했던 드래곤 엠블렘 이벤트가 떠오르네... 그 때도 이름이 드래곤 엠블렘 토벌대 였었지?

... 아니 저 사람들은 여기까지 원정와서 꼭 내 목을 따야 속이 시원할까?

빌어먹을 이번엔 진짜로 위험하다.

[주군. 아무래도 전 틀린 것 같습니다. 자리를 피하십시오.]

[시끄럽고, 딱 2분만 버텨!!]

아누비스에게 메시지를 전송한 나는 패드를 던져두고 서둘러 개인 플레이 룸의 문을 안에서 잠갔다.

그리곤 가방안에서 꺼내든 게임 & 워치를 꺼내 들었다.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의 세계에 접속을 시도 합니다.]

[YES.]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모든 집기가 폴리곤 화되며 잠시 머리가 핑 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을 뜨자마자 나를 향해 날아오는 마법사의 파이어볼을 한손으로 쳐내며 재빨리 반대편 손을 적들에게 뻗었다.

“태워라!!!”

쿠오오오오오!!!!!

내 손에서 뻗어나간 불기둥이 적들을 태우자, 아누비스는 재빨리 내 곁으로 달려와 등을 맞대었다.

[주군을 이곳으로 불러드리다니, 면목 없습니다.]

[괜찮다. 신경쓰지 말고 전투에 집중하라.]

[네. 알겠습니다.]

장장 두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속에 마신의 성은 거의 절반이 반파되고, 수많은 병사를 잃었다. 나를 쓰러뜨리겠다는 플레이어들의 의지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아누비스와의 협력으로 수세몰렸던 전황을 간신히 뒤집은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옥좌에 몸을 맡겼다. 뭐 이정도까지 했으면 나머진 아누비스를 비롯한 수하들과 블랙 드래곤이 알아서 해주겠지.

그때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마신의 방에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게임 가게 어르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용케 버텼군. 그래.”

“그러게요. 하지만 다음 토벌전은 정말 자신이 없네요.”

“그런가? 하지만 고작 2년새에 플레이어가 어마어마하게 늘었군.”

“저도 두려울 지경입니다. 적어도 1년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아쉬우면 게임 & 워치를 조작해 플레이어 데이터를 너프 시키면 되지 않나~”

깊게 패인 주름과 함께 하얀이를 드러낸 노인의 미소에 나는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원 녀석. 고집하고는...”

“예전에 같은 질문에서도 한 번 말씀 드렸지만, 그건 반칙이잖아요.”

“반칙이라. 하긴 자네 말대로 반칙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물건이긴 하다만, 그대로 썩혀두긴 아깝진 않은가?”

“전혀요~ 덕분에 이렇게 멋진 세상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녀석은 도저히 욕심이 없군.”

“에고~ 전 이만 현실로 돌아가 대회를 마무리 지어야겠네요. 수고한 직원들과 함께 뒷풀이도 해야하고...”

“또 보세나.”

“네. 어르신. 그럼 가보겠습니다.”

옥좌에서 일어난 나는 옷깃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시스템 창을 불러 내었다.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의 세상에서 로그 아웃 하시겠습니까?]

[YES.]

욕심이 없다는 어르신의 말..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그의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다.

사람에겐 누구나 욕심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지..

게임이란 컨텐츠가 생겨난 이래 모든 개발자들을 비롯해 유저들에겐 단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상현실의 실현이겠지.

1983년으로 회기 하기 전 2015년에도 VR 기술에 대해 실험적인 장치가 많이 등장했었으니까.

가능하다면 게임 & 워치를 이용해 드래곤 엠블렘의 세상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이 짜릿한 느낌을 일반 유저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은게 나의 욕심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게임 & 워치와 어르신이 말씀하신 아카식 레코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지...

그런데 이거 죽기 전에 깨달을 수 있긴 하려나?

자신은 없지만 해보는데까진 해볼 수 밖에...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인류가 달의 표면에 발자국을 남겼듯이.

언젠가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게임이라는 미지의 세상에 발을 들이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며...

< 에필로그. (마지막 부분 조금 추가했습니다.)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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