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50화 (250/252)

< EP. 47 : 누군가의 초대. (3) >

“자네. 이제 게임 만드는 것은 그만 두었나?”

노인의 질문에 나는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불러오는 고요한 정적 속에서 어디선가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냥?”

벌레 우는 소리에 쫑긋 귀를 세우는 하루의 등을 쓰다듬던 나는 어둠이 내린 마을을 내려다보며 노인의 질문에 답했다.

“게임 개발이 싫어지거나, 아이디어 자체에 한계를 느낀 것은 아닙니다.”

“음...? 그렇다면 어째서?”

“제가 만든 게임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0여년 전 자네가 만들었던 버추어 아이돌이라는 게임 말인가?”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그건 자네 탓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노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쿄돔 공연 이후 츠바키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일주일 동안 일본 전역에서 7건의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그중 2건은 미수에 그쳤지만, 나머지 5건의 사고는 막을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사고였고, 그것이 펜타곤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나는 츠바키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어느정도 예측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에 관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나름 팬들과의 작별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 꼴이 되었다.

도쿄돔 공연에 참석한 팬들에게 선공개한 그녀의 뮤직 비디오는 곧이어 PC 통신과 인터넷을 타고 추모 물결이 일었다.

비록 그녀가 떠나고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팬들을 위해 도쿄의 우에노 공원에서 그녀를 위한 작은 추모식이 열렸다.

공식적으론 한 달간 추모식을 거행할 예정이었지만, 워낙에 방문자가 많아 추모식이 일주일 연장 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겐 도쿄돔에서 공개 되었던 뮤직비디오가 담긴 CD를 무상으로 배포해 주었는데, 아무리 CD를 찍어내어도 당일 수량이 모자라 추모기간 내내 상당히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추모식이 종료된 후에 그녀는 위패는 고향이었던 홋카이도의 어느 절에 모셔졌는데, 지금도 간간히 추모객들이 방문할 만큼 아직도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때 그녀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았던 선택이었는지.”

“그렇게 후회 되는가?”

“후회라기보단 조금 더 나은 방향은 없었을까 고민한 적은 있었죠. 만약에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랄까?? 하지만 게임 & 워치를 아무리 살펴봐도 두 번의 기회는 없더군요.”

“그렇게 몇 번이나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미 기적이 아니지. 기적이란 아무리 간절한 사람에게도 단 한번의 기회가 올까 말까 한 것이거든?”

잔잔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에는 세월을 알 수 없는 깊이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눈을 통해 그동안 어렴풋이 느껴왔던 노인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역시 이 분은...

“자네.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랑 비교해 게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글쎄요. 아무래도 유저가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를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움직여 디렉터가 만들어둔 스토리 라인을 쭈욱 따라가는 RPG가 일반적인 게임의 형태이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일세. 하나의 세계를 통 째로 창조한다는 점이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바위 라던가. 저 앞에 보이는 어두운 숲 속. 그안에 풀 한포기까지 아예 가상의 공간을 사실 적으로 구현해 낸다는 것이야. 그것은 단지 상상력을 토대로 하는 소설과는 조금 다른 형태라네.”

“아...”

“한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절대적인 세계관.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직원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그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야. 마치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노인께서도 게임을 만들어 보셨단 말씀입니까?”

“물론.”

“그것은 현재 자네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그 무언가 였지.”

“대체 그 게임이 어떤 게임입니까”

나의 질문에 노인은 잠시 말을 아끼며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프로그램 한 작품은... ‘인생(人生)’ 이라네.”

“······.”

역시 내 생각대로 이 분은 단지 게임이란 영역만을 관장하는 신(神)이 아니었어.

그보다 훨씬 더 멀고먼 최상위의 존재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대체 어째서 날?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혼자서 수십억에 달하는 인간의 일생을 창조해내는 건 불가능 했지.”

“그럼 어떤 방식으로...?”

“자네들 같은 경우에 게임을 보다 쉽게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무얼 만드는가?”

“설마 지금 게임 엔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게임 엔진이란 소위 그래픽 엔진과 동일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 게임 엔진은 그래픽을 포함해 물리 효과, 사운드, 인공지능, 시나리오, 애니메이션과 같은 효과적인 게임 개발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한대 모아둔 일종의 ‘도구 상자’ 와도 같은 것이다.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요리사가 요리를 하기위해 재료와 조리 도구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맞아. 보다 효율적이고, 수십 억의 인구가 제 각기 다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선 그 장치가 꼭 필요했다네. 가끔 우수한 두뇌를 타고 태어나는 자들에게 어느 정도 정체가 발각되긴 했지만, 자네도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야...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 라고... 동양 쪽에선 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 하던가?”

히이익!!!

그게 실제로 존재하는 거였냐!?

너무나 충격적인 폭탄 발언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은 몰랐다.

노인은 그런 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던지며 품안에서 연초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머진 쉬웠지. 아카식 레코드는 다양한 캐릭터의 운명을 끝도 없이 쏟아내는 거대한 연산장치나 다름 없으니까. 물론 그 안에서도 기적적인 확률로 끗발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어. 구세주.. 혹은 성자라 불리우는 이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지.”

“그러니까 그 말씀은... 인생이란 아카식 레코드에서 뽑기로 터져나오는 확률 게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비약이 심하지만, 뭐 반박은 못하겠군. 원래 불규칙 속에서 질서가 확립되는 것이니까. 모든 이가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 보다 소름끼치는 삶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도 그건...”

“왜?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나? 그럼 자네가 만드는 게임 속 캐릭터들은 어떤가? 게임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며 그 속에서 살아갈 주인공과 악역들의 운명. 그들 역시 자네의 머릿속에서 이미 확정 되어 나온 형태가 아니던가?”

“······.”

“그것에 비하면 아카식은 훌륭한 시스템이지... 적어도 탄생과 함께 그 결말을 확정 지어 버리진 않거든. 왜냐하면 운명을 만들어 내는 아카식 시스템조차도 예측이 불가능한 영역이 있으니까.”

“예측 불가능한 영역? 그게 뭡니까?”

“의지(意志)라는 영역이라네. 의지란 단순히 ‘희망’이나 ‘꿈’ 같은 불확정 요소가 아냐. 자신이 타고난 운명의 형태 마저 바꿔 버릴 정도로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지.”

“어르신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어렴풋이나마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1983년으로 회귀한 것에 대해선 어떤 연관이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니. 그것이야 말로 자네 의지가 빚어낸 기적 같은 순간이라 할 수 있지.”

“네? 아니 전 게임 & 워치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하하하~ 바로 그거라네. 자네가 게임 & 워치에서 선택한 회귀 방식은 아카식 시스템 조차 예상치 못했던 ‘버그’였으니까.”

“네? 버그라구요?”

버그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두눈이 저절로 찌푸려지느 걸 보니, 이것도 어지간한 직업병인 모양이다.

하지만 노인은 너털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보통은 말야. 한 사람의 인생을 되돌려 준다면. 자신이 과거에 실수를 저질렀던 기점이라던가, 아니면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설계하기 위해 애를 쓰지. 헌데 자네는 어땠나?”

“아...!?”

“자네는 1983년이란 시대에 아예 새로운 인간 하나를 만들어 버렸지. 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말이야. 그로인해 자네는 어린 시절의 자네와 조우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지.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 그 안에서 설현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 시킬 수도 있었고 말이야. 자네로부터 시작되는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아카식 시스템 역시 조금 애를 먹긴했지만...”

회귀 후 현재까지 살아오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의문들이 어르신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풀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1983년부터 살아온 저의 인생은 어르신께서 만든 아카식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린 것이군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나름 즐거웠다네. 자신의 성공 만을 목표로 두지 않고, 여러 사람과 함께 결과를 창출해 게이머들을 열광하게 하는 자네의 리더쉽을 지켜보며 희열을 느끼곤했지. 나에게 있어 유희란 자네 같은 사람을 지켜보는 것 정도니까.”

“그렇다면 최근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저를 보며 많이 실망하셨겠군요.”

“딱히 그렇지도 않아. 자네가 느끼는 10년과 내가 느끼는 10년은 아주 큰 차이가 있거든? 굳이 자네가 아니더라도 내가 보살피고 지켜봐야할 자들이 수두룩하니까. 마치 외장 하드에 드라마와 영화 수백편을 넣어두고 간간히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는 격이랄까?”

“어째 비유를 하면 하실수록 저라는 존재가 한도 끝도없이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허허허~ 미안하군.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아두게. 내가 이렇게까지 따로 불러내어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는 것을 말이야.”

“사실은 저도 그 점이 궁금했습니다. 어째서 지금 저를 불러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아차차...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못했군.”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면?”

“그건 바로 자네가 만들어낸 이 세계에 대해서라네.”

“드래곤 엠블렘에 대해서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지난 며칠동안 자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 세계를 돌아 다니며 어떤 기분을 느꼈나?”

“저에게 있어선 모든 것들이 감동이기만 한 세상이긴 하지만...”

“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디테일을 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도 있고...”

“자네의 결혼식 때도 이야기 했지만, 자네가 만든 드래곤 엠블렘이란 게임에 대해 나 역시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있다네. 그러고보니 언제였더라...? 드래곤 엠블렘을 구하고 싶다는 초월적인 의지로 나를 만났던 한 소년이 있었지. 그 의지에 감탄해 나는 그 녀석을 자네와는 정 반대인 미래로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 그런데 말야. 그 녀석이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알나?”

“그... 글쎄요?”

“드래곤 엠블렘 해야한다고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달려가더군.”

“아..하하.. 설마요..”

“아마 그때부터 였을거야. 자네가 만들어낸 드래곤 엠블렘이라는 세계에 제법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 이곳은 가상공간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인간들의 탐욕과 고뇌가 집약된 곳이기도 하니까. 아마 정식으로 오픈하게 되면 더 많은 감정들이 모여들 것이야. 그렇게 하나의 세계관을 둘러싸고 의지를 담은 수많은 감정들이 폭발하는 순간. 그 세상은 먼 우주의 별이 되지...”

“제가 생각했던 세계가 실제로 우주에 존재하게 된다구요?”

“자네의 상상력은 아직은 하나의 별이 되기엔 부족하지만, 어느 절대 영역을 뛰어넘은 훌륭한 상상력은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 판타지 세계의 기틀을 만들어낸 J.R.R 톨킨과도 같이 말야..”

내가 만들어낸 세상이 실체가 되는 세상이라...

“어때 구미가 당기나? 하지만 그러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기반을 단단히 다져야 할 것이야.”

“몇번이 되어서라도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도전하겠습니다. 누구나 플레이 해보면 깜짝 놀랄만한 온라인 게임을 꼭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기대하지. 그럼 이제 원래 세계로 돌아가 보게나.”

노인과의 인사를 마친 나는 그의 옆에 당당히 서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

“······.”

“자네 지금 뭐하나?”

“돌려 보내 주신다면서요.”

“Log OUT 모르나? 이건 게임이잖아. 연결은 자네가 끊어야지.”

“아... 그렇구나.”

“이런 이런... 쯧쯧.”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설현이 학교에 마중 나갈 시간이라.”

“그래 조심히 가게나.”

“아, 저기 어르신...”

“음?”

“지금처럼 이 공간에 또 들어와도 괜찮을까요? 여행하듯 이 세상을 살피며 하나씩 고쳐나가고 싶습니다.”

“허허~ 자네가 만든 세상이니, 마음대로 들락거리게.”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럼 이만...”

어르신에게서 발길을 돌린 내가 설정창에서 로그 아웃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등 뒤에서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런데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말이야.”

“네?”

“어째서 내가 준 게임 & 워치를 별로 쓰지 않았지? 그것만 있다면 좀 더 손쉽게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노인의 물음에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 EP. 47 : 누군가의 초대. (3)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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