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7 : 누군가의 초대. (2) >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뜬금없이 초대라니? 대체 누가? 어디로?
아니 애초에 이 모델 자체가 메시지 통신 기능이 되는 거였나?
뜬금없는 초대 메시지에 나는 게임 & 워치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미래에서 처음 가져왔을 때랑 별반 다를게 없는 형태. 하지만 이렇게 서랍에서 꺼내어 본건 나 역시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CEO 게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업데이트는 없었는데?
아직 뭔가 더 남아 있는건가?
‘하지만 쌩뚱맞게 초대에 응하겠냐니. 뭐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려줘야지?’
설마 여기서 YES 버튼을 누르면 원래 내가 살던 2015년으로 돌아가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아직 약속 기한이 10년이나 남았는 걸...
나는 게임 & 워치를 손에 든채 그대로 주방으로 가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유리잔에 따랐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아마도 이 초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분명 게임 가게의 할아버지일 것이다. 나에게 전할 말이 있으신거겠지?’
하지만 그런 거라면 유키와의 결혼식 때처럼 홀연히 나타나시면 되실 것을 사람 불안하게 왜 이런 메시지를 보내신걸까?
“아... 모르겠다.”
차가운 물을 벌컥 벌컥 삼킨 나는 좌우로 세차게 고개를 내저은 뒤 게임 & 워치를 집어 들었다.
일단 뭐가 됐든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 예전부터 묻고 싶은 것도 있었으니.
하지만 게임 & 워치의 스크린을 본 나는 깜짝 놀라 삼켰던 물을 도로 뱉어 낼 뻔했다.
[컴플리트 라온 3와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근처로 이동해주세요.]
“무슨 블루투스도 아니고, 주변 기기까지 인식을 하는거냐?”
아무래도 초대 메시지는 컴플리트 라온이 있는 서재에서만 응할 수 있는 모양이었기에 하는수 없이 나는 게임 & 워치를 들고 서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스크린에 떠오른 초대 메시지에 나는 잠시 컴플리트 라온과 게임 & 워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 후. 바보 같은 생각을 떠올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타임 슬립이야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건 너무 판타지스럽잖아...
그때 어느새 나의 등뒤로 다가온 하루가 펄쩍 뛰어 오르며 내 허리를 툭쳤다.
“이 자식 아침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서 밥타령을... 응...?”
“어억!! 누... 눌러버렸다!!!!!”
[초대에 응하셨습니다. 접속을 시도합니다.]
접속!? 대체 어디로? 하지만 때는 늦었다.
쿠웅. 마치 중력이 늘어난 것처럼 온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에 TV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이 자동으로 실행되며 서버에 접속을 시도 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부옇게 흐려진 시야는 마치 1983년도로 회귀 했을 때와 같았고, 잠시 후 서재안에 있던 모든 사물들이 조각조각 폴리곤화 되어 먼지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냐아앙~~~~~”
나와 함께 서재에 있던 고양이 하루는 깜짝 놀라 방을 빠져 나가려 했지만, 포동포동 살이 오른 꼬리부터 한줌의 흙처럼 내 주위를 맴돌았다.
순식간에 폴리곤 소용돌이에 갖혀 버린 나는 서둘러 빠져나갈 곳을 찾았지만, 그 순간 내 발 밑이 푹 꺼지며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으아아아~!!!!”
&
“주군이시여...”
“으음...?”
“주군이시여...”
“뭐지...?”
“이미 해가 중천입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아니. 잠깐만 이 목소리는? 왠지 감고 있는 눈을 뜨기가 무서워진다.
“설마. 아누비스... 너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불안한 마음에 한쪽 눈을 살짝 떠보자, 그럭저럭 봐줄만한 텍스쳐가 입혀진 미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으아~!! 진짜 와버렸어!!”
“주, 주군이시여.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망할... 이건 가도 너무 가버렸잖아~!! 완전 판타지라고!!”
“냐앙...”
음? 익숙한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는 한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 하루와 눈이 마주쳤다.
현실에서 유키의 정성어린 냥빨(냥이빨래)과 털말림으로 항상 뽀송함을 유지하던 녀석의 털은 각진 폴리곤 덩어리로 바뀌어 있었다.
“너도 끌려 와 버린거냐...?”
“미천한 축생이 감히 마신을 바라보는 그 한심한 눈은 무엇이냐!!”
촤앙!!
“워어어!!! 안 돼!! 비록 게임이라도 그건 안 돼!! 이 녀석은 우리 가족이나 다름 없다고!!”
“가족...?”
난데없이 검부터 뽑아드는 아누비스를 뜯어말린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이곳은 내가 어젯 밤 세이브를 해두었던 이벤트 던전 앞이었다.
밤새 타오른 모닥불은 이미 새하얀 재로 가득했고, 나의 충신 아누비스는 던전 탐험을 대비해 장비를 손보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나는 지끈 거리는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내 옆에서 하품과 동시에 식빵자세를 취하는 하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야, 인마. 넌 이 상황에 잠이 오냐?”
“니양...”
올해로 11살인 이 녀석도 인간으로 따지면 중년에 접어든 나이였다.
어릴땐 유키와 나 사이를 오가며 재롱을 피우던 아깽이였는데, 어느새 하루종일 먹고 잠만 자는 훌륭한 돼냥이가 되어 있었다.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던전으로 출발하시겠습니까?”
“그... 그래. 가자.”
나의 충실한 종이자, 가이드 캐릭터인 ‘아누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 검을 꽂아 넣었다.
이집트 신화에서 죽은자의 영혼을 배웅한다는 사신. 아누비스..
서열 높은 마족이라면 그 정도 이름은 붙여주는게 좋을 듯 싶어 얼마 전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본인은 제법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오늘 던전은 전보다 조금 힘들 듯 합니다. 이곳은 베히모스라는 거미형 보스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인데, 거미줄에 한번 휘감기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하니, 부디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어? 아, 그래.”
“그런데 아까부터 왜 주변을 자꾸 둘러보시는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응? 내가 그랬었나?”
“아니시라면 제 성격이 너무 예민한 탓이겠지요. 죄송합니다. 주군이시여.”
나는 먼저 걸음을 옮기는 아누비스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러자 바위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식빵자세를 취하고 있던 하루는 마치 잘 다녀오라는 것 마냥 길게 울음 소리를 내었다.
“인마. 너도 따라 와.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데, 너 찾으러 내가 여기까지 와야겠냐.”
대충 하루를 집어 들어 한쪽 어깨에 걸쳐두자, 발톱을 세운 녀석이 등을 긁어 대었다.
팍팍팍팍!!!
요란한 소리에 귀가 거슬렸지만, 하루의 발톱 공격은 나에게 아무런 해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에휴... 어제 마을을 떠날 때, 거금들여 가죽 갑옷을 입어두길 잘했군.”
아누비스는 아까부터 건방진 하루 녀석이 신경이 쓰이는지 가는 눈으로 흘겨보았다.
“너무 그러지마. 이 녀석 나름의 애정 표현이니까.”
“알겠습니다.”
...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말이야. 초대에 응했으면 당연히 마중을 나와줘야하는거 아닌가?
부르기만 해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곧 있으면 아누비스랑 던전에 들어가야 할 판인데. 날 부른 할아버지는 대체 어디 계신거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계속 해서 주위를 둘러보던 중, 결국 내 눈 앞에 한 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기분 나빠보이는 해골 모양의 동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결국 도착해 버렸어...”
“주군이시여. 무슨 문제라도?”
“아니다. 그냥 혼잣말이다.”
잠시 후. 던전에 발을 들이자, 축축한 습기와 함께 고기 썩은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가상현실이라고 말만 들었지. 이런식으로 체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비록 군데 군데 그래픽이 깨져 있거나 저질 텍스쳐가 보이긴 했지만, 던전 구성 만큼은 굉장히 깔끔하게 배치 되어 있었다.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던 아누비스는 갑작스런 전투에 대비할 수 있도록 검을 뽑아 들었고, 다른 한 손에는 횃불을 움켜 쥐었다.
사실 사기 캐릭터나 마찬가지인 마신은 검술보다 흑마법의 위력이 제법 괜찮았기에 나는 하루를 품에 안은채 천천히 아누비스의 뒤를 따랐다.
스스스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분 나쁜 소리. 하지만 난 이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몇 번인가 들어본 소리였으니까...
그것은 한 무리의 거미들이 바닥을 기어다니는 소리였다.
“곧 녀석들과 맞붙을 듯 합니다. 마신이시여 뒤로 물러나 계시면 소인이 처리하겠습니다.”
스스스스!!!
파앗!! 아누비스의 말이 끝나자 마자 사방에서 몰려오는 거대한 거미의 모습에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래선 뒤로 물러 나고 말 것도 없잖아!!
“태워라!!”
다황한 기색이 묻어난 나의 목소리가 좁은 통로에 울리자, 순간 내 몸안에서 무언가가 훅하고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화아아악!!!
“끼이!!! 끼기기긱.....”
뜨거운 불길에 몸을 발랑 뒤집으며 8개의 다리를 오므리는 거미들의 모습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끝없이 밀려 오는 거미들 때문에라도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태워라!!! 태워!!!”
후와아아악!!!
“끼이이익!!!”
숯처럼 검게 그을린 거미들은 전신을 바들 거리며 차례차례 무너져 내렸다.
“피래미를 상대로 너무나 큰힘을 쏟으시는 건 아니신지. 베히모스를 상대할 때까지 힘을 아껴두셔야 합니다.”
첫 번째 전투가 끝나고 MP(Magic Point)를 채우기 위해 쓰디쓴 풀떼기를 씹어 삼키던 나는 또 다시 잠드려는 고양이 하루를 집어들어 내 어깨에 걸쳤다.
‘이왕 게임 속까지 들어온거 한번 즐겨보라 이건가?’
나는 더 이상 할아버지를 찾는 걸 포기하고 일단 던전을 클리어 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행히 게임 속에 들어왔어도 전투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었기에 평점심을 되찾은 나는 아누비스를 서포트 하며 빠른 속도로 던전을 클리어 해나가기 시작했다.
아누비스는 검에 묻어난 끈적한 채액을 닦아내며 얼마나 더 진행했을까? 보스전을 앞두고 세이브 포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여기 들어온지 얼마나 됐지?”
“글쎄요. 마신께서 너무 늦게 일어난 탓에 오후 쯤 들어왔으니, 지금쯤 초저녁이 되었겠군요.”
초저녁이라... 그럼 현실에선 플레이하고 두시간 정도가 지났다는 이야긴가.
할아버지를 만나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면 어떻게든 빨리 클리어 해야겠는 걸...
대충 정리를 끝내고 하루를 안아든채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누비스가 내 앞에 섰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후딱 끝내버리자고.”
“맡겨 두십시오.”
&
“젠장!! 아누비스. 야, 인마!! 너한테 맡겨 두라며!!!”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를 가진 거미. 베히모스의 일격에 처참하게 나가 떨어진 아누비스는 움직이질 않았다.
“우와악!!”
한번 휘두를 때마다 풍압에 온몸이 뜯겨져 나가는 듯한 착각 마저든 나는 재빨리 고양이 하루를 내던지고 거미를 노려보며 외쳤다.
“태워라!!!”
화르륵!! 콰아아앙!!
제법 묵직한 불기둥이 치솟으며 베히모스에게 데미지를 입혔지만, 뭐악 덩치가 커서일까? 잠시 공격의 흐름을 멈추게 했을 뿐 치명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으아아아~!!!”
퍼엉~!!
마치 전쟁 영화에서 폭격이라도 얻어 맞은 것처럼 깊게 패인 땅을 해집으며 달리던 나는 순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뒤를 돌아 보며 외쳤다.
“모조리 태워버려라!!”
쿠와아아앙!!
4개의 불기둥이 나와 베히모스 사이를 가로 막자 나는 재빨리 아누비스에게 달려갔다.
“주... 주군이시여.”
자신을 향해 서둘러 달려오는 내 모습에 감동 받았는지. 훈훈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를 향해 나는... 거센 발길질을 날렸다.
퍼억!!
“커헉!!!”
“이 자식 정신 차리고 있었네. 빨리 일어나서 안 싸워? 이게 어디서 농땡이를..”
슈슉!! 콰아아앙!!
“우와아악!!”
녀석은 우리와 함게 죽기로 작정했는지 8개의 다리를 정신 없이 휘두르며 천장을 무너 뜨리기 시작했다.
“쟤 좀 어떻게 해 봐!!”
“잠시만 시간을 벌어 주신 다면 소인의 필살검을 보여 드리겠....”
퍼어억!!
“으아아아아~~”
... 쟤가 원래 저런 허접한 캐릭터였나...? 이름을 다시 지어줘야겠는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나를 향해 날아오는 베히모스의 날카로운 공격에 이제는 아누비스의 뒤를 따라 날아오를 차례란 것을 직감했다.
“젠장!! 설마 겁나 아프고 그런건 아니겠지!?”
슈우우우욱!!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공포심에 잔뜩 몸에 힘을 주었으나 금방이라도 나를 후려 갈길 것만 같았던 베히모스의 공격은 아무리 기다려도 충격이 오지 않았다.
“허허허. 이제 그만 눈 좀 뜨지 그러나?”
“어...?”
갑자기 들려온 노인의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뜨자, 나는 고양이 하루와 함께 별빛이 반짝이는 마을 언덕에 앉아 있었다.
“어라? 여긴...”
“그래? 자네가 만든 세계에 이렇게 들어와 있으니 기분이 어떤가?”
“네? 아니.. 그게 저는 대체..”
갑자기 게임 속에 들어온 것도 황당한데, 어쩌 좀 익숙해 질려는 찰나에 이렇게 노인을 보게 되니 황당한 기분 마저 들었다.
“색다른 경험이었지?”
그제서야 얼추 사태를 파악한 나는 식은 땀을 닦아내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아~ 십년 감수했습니다. 하하...”
“그래도 제법 잘 적응 하던 걸?”
“어르신. 장난이 너무 심하셨습니다. 진짜 죽는 줄알았다구요.”
“에끼. 자네가 죽으면 자네 와이프랑 딸은 어쩌라구. 내가 그렇게 까지 하겠나?”
“하하... 아이고..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네요. 그냥 이상태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어르신.”
“녀석. 아직도 예의는 바르구나... 하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
눈 주위와 입가에 잔뜩 주름을 패이며 웃어보이는 어르신은 2015년에 만났던 그때와 별반 다를게 없어보였다.
“아니, 그런데 대체 무슨 일로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이신 겁니까?”
“음.. 자네라면 좋아해 줄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군.”
“그런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아직 2015년이 된 것도 아닌데...”
그러자 노인은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 이제 게임 만드는 것은 그만 두었나?”
< EP. 47 : 누군가의 초대. (2) > 끝
ⓒ 손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