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48화 (248/252)

< EP. 47 : 누군가의 초대.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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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최초’의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최고’의 온라인 게임이다.]

내부 회의에서 정식으로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의 개발을 시작하며 내민 슬로건.

각 개발 팀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실력자들이 모여 시작한 온라인 프로젝트는 하야시의 말대로 장장 8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덕분에 초기 기획에서 큰 틀을 제외하곤 많은 부분에 변경이 이루어져 있었다.

NPC와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온라인 세계 안에서 나는 마치 여행자의 기분으로 세상을 누릴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의 캐릭터 설정은 성왕 크로엘의 목숨을 앗아간 마신.

하지만 겉보기에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NPC에게 말을 걸어도 딱히 의심하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여행자인가? 허허~ 그것 참 좋군. 확실히 마족들을 몰아내고 나선 세상이 참 살기 좋아졌다는 걸 느낀다네. 이렇게 외지인들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면 우리 마을도 금방 번성 할 수 있겠지.”

마신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다시 이 세상을 어둠에 물들이라는 명령을 받은 나는 마을 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마을을 다녀간 한 점쟁이가 이런 말을 했지. 앞으로 당신과 같은 외지인들이 점점 늘어날 거라고 말야. 그들은 세상의 끝에서 마왕을 멸하고 돌아오는 존재들이니 잘 대해주라고 하더군.”

온라인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NPC 들에게 ‘외지인’ 또는 ‘순례자’라 불리고 있었다.

드래곤 엠블렘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마지막 통일을 이루는 지역은 마족의 본거지인 차원의 틈 안에 있었다.

이곳에서 플레이어들은 차원의 틈에서 마왕을 멸하고 이 세계로 돌아온 영웅들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친절한 촌장의 배려심 덕에 나는 당분간 이 마을에서 지내기로 했다.

마을 근처에 마련된 개척 지역에 작은 집은 세우는데에는 현실의 시간으로 약 8시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집을 올리는 동안 달리 할 일이 없던 나는 마을로 돌아와 인벤토리 안에 들어있는 가이드 북을 살폈다.

두 시간의 낮과 두시간의 밤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는 둘러보면 돌수록 아주 작은 곳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였다.

해질녘 공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설정이라던가...

저녁 준비로 인해 마을 곳곳의 굴뚝해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효과까지...

보면 볼수록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연출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느낌이었다.

마을 전경을 보기 위해 근처 언덕에 캐릭터를 앉혀 놓은 나는 TV 화면 속에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설마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몰랐는데. 다들 고생이 많았겠네...”

하늘을 붉게 태우던 태양이 지평선으로 가라앉고 별빛이 반짝이는 어둠이 찾아오자, 평화로운 배경음악과 함께 창문마다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서재 밖에서 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혁씨? 아직 안 씻었어요?”

“아, 응. 이제 씻을 거야.”

“운전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응. 그럴게.”

이대로 끝내기 아쉬웠지만, 집을 올리는데에 제법 시간이 걸릴테니 오늘은 이만 할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나는 컴플리트 라온을 종료 시키고 서재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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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유키와 설현이가 집을 비우자, 나는 곧장 하야시에게 전화를 들었다.

마치 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웃음섞인 목소리의 하야시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에게 물었다.

“어떠셨나요?”

“어떠긴 뭐가 어때. 진짜 잘 만들었던데? 솔직히 어제 플레이하는 내내 감탄했다.”

“이사님께 그런 칭찬을 듣다니, 8년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그놈의 이사님 소리는...”

“어쩌겠습니까. 호칭이 입에 붙어 버린 것을...”

“아무튼 그래서 이제부터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뭘 어떻게 합니까. 신나게 부숴주시면 되요. 엉망진창으로. 당분간은 일반 RPG 게임처럼 스토리 모드를 즐긴다는 마음으로 임해주시면 됩니다. 하시는 김에 버그가 발견 되면 곧바로 연락 주세요. 아 참. 이사님께서 플레이해주신 데이터는 저희 개발팀에서도 중요한 참고가 되니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스토리 모드라...”

“기획 단계부터 이사님은 유저들 스스로 온라인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원하셨지 않습니까.”

“물론 그랬지.”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당분간 이사님께서 그 중간자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날 끌어 들이는 거냐?”

“조금 치사한 방법이지만, 저희들과의 옛 정을 생각해 넘어가 주세요. 플레이 하시다 보면 분명 이사님께서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런 부분 역시 가이드 캐릭터를 통해 기탄 없이 전달해 주세요.”

“가이드 캐릭터?”

“어느 정도 레벨이 오르면 수하로 등장 할 것입니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어이, 하야시. 잠깐...”

... 끊어졌다.

이 녀석이 말로는 이사님 어쩌고 하면서 자기 할 말만 싹 해버리고 내뺐다 이거지?

지금쯤 수화기를 내려 놓은 채로 피식 거리고 있을 펜타곤 직원들을 떠올리니,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툭하고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거 시스템 하나 하나까지 철저하게 분석해서 피곤하게 만들어 주마.’

가만... 그런데 이렇게 되면 완전 쟤네들의 노림수에 빠져드는 건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그래.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나는 아침을 먹으려던 것도 잊은 채 곧장 서재로 달려가 컴플리트 라온을 켜고 온라인 세계에 접속을 시도했다.

[당신의 집이 완성 되었습니다.]

마을에 접속 하자마자, 떠오른 메시지 창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집이 세워진 개척 지대로 향했다.

하지만 막 마을 입구를 벗어나려던 찰나.

긴박한 BGM과 함께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며 거대한 몬스터 하나가 튀어 나왔다.

“크윽!! 인간놈들... 차원의 틈까지 쫓아오다니.”

아무래도 스토리상 차원의 틈에서 도망쳐 나온 마족인 듯 싶은데...

“꺅!! 괴물이다!!”

“어째서 마족이 여기에!?”

갑작스런 마족의 등장에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 집 좀 보러가고 싶은데...

“크크크. 이 곳이라면 귀찮게 덤벼오는 녀석들도 없겠다. 잘됐군. 전부 없애주마~!!”

... 너무 대사가 진부해. 전형적인 악당 대사잖아...

좀 더 임팩트 있는 대사 좀 하지.

인간보다 덩치가 3배는 되어 보이는 녀석은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인간을 향해 괴성을 지르던 중 나의 캐릭터와 눈이 마주쳤다.

“넌 뭐냐? 왜 도망치지 않지. 가장 먼저 내 손에 죽고 싶은 것이냐?”

“······.”

확실히 이벤트 대사는 손을 좀 보는게 좋겠군..

그런데 이 녀석. 마족인 주제에 마신인 나를 못 알아 보는 건가?

“피하세요. 여행자님~!! 위험합니다!!”

도리어 나를 걱정하며 소리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가이드 북에서 본대로 커맨드 창 하나를 선택했다.

“죽어라!! 인간!!”

“꺼져라.”

콰아아앙!!

이미 타고난 능력치가 어마어마한 마신에게 이깟 마족 하나 쯤은 커맨드 기술 하나로 끝장 낼 수 있었다.

[하급 데몬을 물리쳤습니다. 380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으음... 쉽네?”

“오오!! 마족을 단방에 제압하다니. 역시 여행자님은 이 땅에서 마족을 몰아내신 용사님이셨군요.”

으아~!! 손발이 퇴화하는 듯한 기분이다.

대체 이 이벤트를 만든 시나리오 담당자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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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는 집에 혼자 남는 시간엔 어김없이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에 접속을 시도했다.

처음 방문한 마을에서 갖가지 이벤트를 겪으며 때론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출에 조금 짜증이 일기도 했지만, 시스템 적으론 굉장히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점이 있다면 하야시가 말했던 가이드 캐릭터였는데, 레벨 3까지 올린 순간 갑작스레 등장한 녀석은 마왕 오시리스가 인간들의 손에 패했다는 소식을 전한 뒤 나의 곁에서 하수인처럼 따라 다녔다.

아무도 없는 온라인 세계에서 녀석은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는데, 처음엔 나의 질문에 동문 서답만 해대더니,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해졌다.

마치 대화형 프로그램인 ‘심심이’처럼 나와 주고 받는 대화 내용을 이용해 데이터 베이스를 축적하고 그에 따라 어휘력이 점점 늘어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재밌는 것은 이 녀석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만큼 일반 NPC도 데이터 베이스의 축적량에 따라 굉장히 자연스러운 화법으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늘은 어디로 사냥을 가볼까?”

“마신이시여. 대체 언제까지 이 평화로 가득한 세계를 두고만 보실 작정입니까?”

“왜? 느긋하고 좋잖아.”

“저희는 마족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저희들의 신이십니다. 차원의 틈새에서 쓰러진 마왕 오시리스의 절규가 들이지 않으십니까?”

“오시.. 리.. 아무튼 그 녀석 이름은 입에도 올리지마.”

“마신이시여.”

“그 얘기도 그만해!! 마을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들기던 나는 가이드 캐릭터의 쩔쩔매는 대사에 피식 웃음을 던졌다.

플레이어의 대사와 행동에 따라 굉장히 유연하게 대처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실제로 움직이는 플레이어 캐릭터인 것만 같았다.

덕분에 나는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도 녀석 덕분에 심심하지가 않았다.

때로는 전투의 보조를 맞춰 주기도 하고, 인적이 없는 외딴 섬에서는 모닥 불을 피운 채 게임안에서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와 설현이를 각각 방송국과 학교에 보내고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서재로 발을 옮기던 중 하야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식사는 제때 하시는 겁니까? 지난 10일 동안 플레이 시간이 어마어마 하신데요?”

“내가 할 땐 또 확실하게 하는 성격이니까. 두고 봐. 조만간 가이드 녀석을 통해 보고서 잔뜩 올려줄테니까. 그나저나 그 녀석 진짜 물건이던데? 대체 어떻게 프로그래밍 한 거야? 가끔은 대화하다가 나도 깜짝 놀란다니까?”

“아하하.. 그러네요. 이제 레벨 10이니 슬슬 저희가 준비한 가이드 캐릭터를 만나셨겠군요.”

“음? 뭔 소리야. 레벨 10이라니. 레벨 3에 등장시켜 놓고선 요즘 바빠서 깜박 잊은거냐?”

“네? 그럴리가요. 이사님도 제 성격 깐깐한거 아시지 않습니까? 가이드 캐릭터는 첫 번째 마을 이벤트가 모두 끝내고 레벨 10에서 등장하게 되어 있는데요?”

“뭐라고? 하야시 잠깐 끊어 봐. 내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아, 네. 알겠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레벨 10에 튀어 나올 녀석이 레벨 3에 등장해서 나를 도와 주다니?

단순한 버그 일수도 있지만, 설마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를 하야시가 아닌데?

묘한 기분과 함께 서재로 들어온 나는 컴플리트 라온에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잠시 후. 타이틀 화면이 떠오르고 아이디와 비번을 이용해 개발자용 프로토콜로 접속을 시도한 순간.

삐삐삐삐삐삐삐삐.

어라...? 이게 뭔 소리지? TV에서 나는 소리는 아닌데?

서재안에서 들려오는 정체 불명의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 나는 소리의 원인을 찾아 책상 서랍을 차례차례 열어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소음의 원인인 물건 하나를 서랍안에서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그것은 나와함께 미래에서 함께 날아온 게임 & 워치였다.

“뭐지? 이런 소리가 들린 적은 처음인데...”

고개를 갸웃 거리며 게임 & 워치의 경첩을 열자, 상단 디스플레이 쪽에 배터리가 떨어졌는지 희미한 문자가 떠올랐다.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 EP. 47 : 누군가의 초대. (1)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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