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45화 (245/252)

< EP. 46 : 많은 시간이 흘러. (3) >

&

“몸은 좀 어때?”

“그게, 이상할 정도로 가벼워요.”

밝은 미소와 함께 두 주먹을 쥐어 보이는 츠바키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앞으로 한 시간 뒤, 제 1회 도쿄 게임쇼는 이틀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폐회식만을 앞두고 있었다.

비록 민텐도는 참여 하지 않았지만, 도쿄 게임쇼는 ‘게임 쇼’ 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컨텐츠가 게임에 집중 되어 있었던 만큼, 유저들에게도 그리고 업계인들에게도 뜻깊었던 행사로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총 88개의 게임 관련 부스가 마련되었지만, 사실 절반 가량은 고등학생들이나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동아리였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지도를 봐준 ‘일본 전자 전문학원’에서 출품한 작품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별 기대하지 않고 소량으로 준비해온 500개의 타이틀이 정말로 순식간에 팔려나가는 바람에 따로 예약자 명단까지 수기로 받아야 했을 정도니까...

그들이 만든 게임의 이름은 ‘퀸 오브 하트’

마치 SMK에서 만든 탑 오브 파이터 시리즈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작품은 사실 미소녀 캐릭터를 이용한 패러디 격투 게임이었다.

“억!! 귀여워!!”

“저거 설마... 내가 없는 거리의 하세가와 미유키 아냐?”

전용 무기인 분홍색 핸드백을 마치 쌍절곤처럼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에 지나가던 관람객들은 플레이영상을 보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어라? 거기다 상대방은 신의 선물에 나왔던 카오리잖아?”

바이올린의 활을 검처럼 휘루르던 그녀는 상대방이 거리를 두자, 바이올린을 켜서 음표를 쏘아대었다.

“억!! 뭐지? 이 정신나간 캐릭터 컨셉은? 개발자가 뽕이라도 맞은 거냐...”

더구나 펜타곤에 등장했던 히로인 뿐만 아니라, 폭스 소프트의 ‘두근두근 메모리얼’에 등장했던 히로인들까지 몽땅 출동하여 난투를 벌이는 대전 게임은 플레이 화면은 도저히 지갑을 열지 않고서는 버티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거 혹시 파는건가요?”

게임쇼 첫 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던 한 유저의 질문에 스즈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하지만 퀸 오브 하트는 윈도우 95용으로 제작된 게임인데, 혹시 가지고 계시나요?”

“네. 있어요!! 얼마죠?”

“저희 졸업 작품 타이틀을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이틀 금액은 2000엔입니다.”

“헉.. 겁나 싸다. 2장 주세요.”

“죄송하지만, 저희 졸업작품은 인당 1장씩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 하나는 밀봉으로 소장하려고 했는데, 아쉽다.”

잠시 후. 첫날 판매분으로 목표했던 250장의 타이틀이 약 20분만에 팔려나가자, 생각지도 못한 흥행에 흥분한 학생들이 펜타곤 부스로 몰려와 나를 찾았다.

“서.. 선생님. 퀴... 퀸 오브 하트가!! 저희가 만든 퀸 오브 하트가!!!”

방금 드래곤 엠블렘의 컴퍼런스를 마치고 내려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나는 제자들을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 팔렸지?”

“네? 아, 네!! 판매를 시작한지 30분도 채 안되서 다 팔렸어요.”

이번 도쿄 게임쇼에서 아마추어 팀에서 출품한 게임들 중에는 유난히도 슈팅 게임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장르보다 만들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등장하는 적에 따라 일정한 탄막의 궤도만 설정해 준다면 나머지는 주인공 기체의 움직임만 셋팅해주면 끝이니까. 아무래도 단 기간 안에 출품작을 만들기 가장 쉬운 장르가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일본 전자 전문 학원에서 출품한 ‘퀸 오브 하트’는 여태까지 아마추어 작품의 틀을 깨고 대전 액션 게임을 선보였다.

물론 학생들을 데리고 대전 격투 게임을 만드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저 해상도의 도트 그래픽이더라도, 플레이어가 납득할만한 모션 그래픽이 필요했고, 그것은 기술 하나당 3~4장의 프레임 레이트를 소요하는 고난이도 작업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더 학생들을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으니...

“선생님. 그런데 적 캐릭터의 A.I는 어떻게 설정해야하죠?”

흔히 격투 게임을 하다보면 컴퓨터가 다루는 적 캐릭터가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간단한 예로 스트리트 파이어 시리즈에 비교해 보자면, 플레이어가 쏘아낸 장풍을 막을 것이냐 피할 것이냐, 그 후에 플레이어에게 반격을 가할 것이냐, 아니면 뒤로 물러 설 것이냐...

이 가능성 중에 하나를 선택에 시시각각 쳐들어오는 플레이어의 변칙적인 행동에 대응 하는 A.I는 학생들 수준에 맞추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렇다고 이 시대에 개발 중 테스트 플레이를 이용해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기에 나는 학생들에게 초기 대전 격투 게임에서 자주 이용했던 간단한 A.I 셋팅법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타이머와 체력 게이지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타이머요?”

처음 나의 설명을 듣고 난 학생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사실 초기 격투 게임의 행동 패턴은 바로 이 타이머에 의해 조정되었는데, 이 타이머에 따라 캐릭터는 어느 타이밍에서 공격적으로 치고 나갈지, 아니면 방어일변도를 취할지 패턴이 정해지게 된다.

모든 격투 게임을 돌이켜 보면 배틀이 시작되자마자, 플레이어에게 미친 듯이 달려드는 캐릭터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보통 대전이 시작하고 10초 동안은 플레이어 캐릭터와 거리를 벌리며 가급적 방어자세를 취하도록 개발자가 미리 셋팅을 해두기 때문이다.

개발중에 플레이 패턴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축적하기 이전에는 이렇게 개발자들이 일일이 타이머와 남아있는 HP 게이지를 고려해 상황별로 패턴을 변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덕분에 전문 학원 학생들이 만든 퀸 오브 하트는 잠깐 보기에도 제법 그럴 듯한 격투 게임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거기다 내가 없는 거리와 신의 선물. 마지막으로 두근두근 메모리얼에 등장하는 후지사키 시오리까지 보너스 캐릭터로 참전한 탓에 플레이 캐릭터만 해도 8명에 달하니, 퀸 오브 하트의 인기는 어쩌면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펜타곤 캐릭터 말고도 폭스 소프트의 후지사키 시오리라는 캐릭터가 참전하는 바람에 저작권에 대해 걸고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나왔지만...

우선 퀸 오브 하트는 전문 학원의 게임 개발과 학생들이 만든 아마추어 작품이었고 딱히 폭스 소프트의 이미지를 훼손시킨 것은 아니기에 일일이 토를 달거나 하진 않았다.

어느쪽 콘솔을 특별히 지향하는 것도 아닌 윈도우 전용 게임이라 그런지, 폭스 소프트의 관계자 역시 웃고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제자들을 칭찬해주었다.

&

게임쇼가 개최된 둘째 날. 오후

제자들이 만든 퀸 오브 하트는 제 1회 도쿄 게임교에서 최고의 아마추어 게임 상을 받았다.

트로피를 손에 든채 방방 뛰어 다니던 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잠시 후, 전문 학원 부스에서 제자들과 단체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서야 펜타곤 부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우... 정신이 없네..”

단아한 보랏빛 무대의상을 차려 입은 츠바키는 학생들에 의해 여기저기 구겨진 나의 슈트를 바라보며 킥킥 웃어대었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으시네요.”

“내가 사실 좀 괜찮은 선생이었거든?”

그때 회장 곳곳에서 도쿄 게임쇼의 폐막을 알리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대기실 밖에서 아쉬움에 가득찬 유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벌써 끝인가...?”

“이런 행사는 일주일 내내 해도 좋은데...”

“그러게 말야. 내년 여름까지 언제 기다리지?”

“어제 드래곤 엠블렘 사러 행사 도중에 나가버린 탓에 이틀이 너무 짧게만 느껴지는 구나...”

“드래곤 엠블렘도 굉장했지만, 너 캡코에서 신작 발표 영상 봤냐?”

“아~ 그 좀비 나오는 거? 오프닝 진짜 대박이더라...”

“그치? 난 그 웅크리고 있던 장면에서부터 설마 설마 했는데, 와~ 그 얼굴 반쯤 파먹은 영상 나왔을 때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

“이제 더 이상 게임 그래픽이 이 이상 좋아질 것 같지가 않더라.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장면을 구현시킬 수가 있지?”

제법 게임에 일가견이 있는 유저의 대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다들 즐거웠나 봐요. 대기실에 있는 동안 사람들의 탄성 소리만 몇 번을 들었는지...”

나를 향해 살포시 웃어보이는 츠바키를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곧 그 목소리가 환호로 바뀌게 되겠지?”

“힘내 볼게요. 하지만 그전에 준혁씨에게 먼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음? 나한테?”

“오늘 라이브 무대에서 제 병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뭐라고? 갑자기 왜? 의사 선생님도 점점 경과가 좋아지고 있다고 했잖아.”

“비록 경과가 좋아진다 하더라도, 길어야 내년이겠죠. 어쩌면 오늘이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팬들 앞에 서는 날일 수도 있으니까. 제 노래를 좋아해 주셨던 분들에게 아무런 인사없이 떠나기는 싫어요.”

나를 바라보는 츠바키의 눈빛에는 단호함이 서려있었다.

지금은 나의 그 어떤 말도 그녀에게는 그저 허울 좋은 설득일 뿐이라는 것을 츠바키는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렇기에 결국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허심탄회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알았어...”

-이어서 도쿄 게임쇼의 폐막식을 축하하는 버추어 아이돌의 공연이 오다이바 해변 공원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관람객 여러분은 팜플렛을 확인하신뒤 공연 예정 시간에 맞춰 이동을 부탁드립니다.-

“아, 이제 곧 시작이에요.”

“그러게, 첫 번째 무대는 에리카 부터였나?”

“맞아요. 지금쯤 준비가 다 끝날을 거에요.”

“그럼 가볼까?”

&

릿지레이서의 오프닝으로 보여준 차세대 콘솔의 화려한 영상미..

그리고 깜짝 발매 소식으로 일대 소란을 일으켰던 드래곤 엠블렘과 함께 이번 행사에 깜짝 등장해 초미의 관심사를 일으킨 캡코의 ‘레지던트 몬스터’ 시리즈로 인해 ‘발렌타인 데이’ 이후 게임계에 호러물의 열풍이 다시 불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이벤트의 끝을 알리는 지금 일전에 도쿄 게임쇼 관계자인 키시모토씨와 합의하에 준비한 버추어 아이돌의 콘서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역시 이벤트의 끝은 음악이지!!”

행사 종료와 함께 도쿄 빅사이트에서 빠져나온 유저들은 버추어 아이돌의 콘서트 소식에 해변 공원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12월 초순경이라 그런지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게이머들에게 추위 따위는 상관 없었다.

“에리카, 아즈사아아~!!!”

“츠바키씨이이~~!!!”

“셰릴님~~!!!”

... 츠바키와 함께 이벤트 장소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기 전.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름을 외치며 바삐 달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나는 마치 회귀 전에 보았던 ‘28일 후’ 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선생님!!”

뒤에서 들여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제자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 얘들아~ 부스 정리 안하고 여긴 어떻게...”

따듯한 미소와 함께 두팔을 벌리며 그들에게 다가가던 중...

“우왓!! 츠바키씨!!!”

패더급 복서 현란한 풋워크처럼 내 팔을 빠져 나간 학생들은 곧이어 츠바키의 주위에 몰려 들었다.

“버추어 아이돌의 츠바키씨 맞죠!?”

“오오!! 실물이야!! 실물!!”

... 쥐새끼처럼 내품을 빠져나간 학생들을 대신해 스즈코가 나에게 다가와 방긋 웃어보였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그래, 너도 수고 많았다.”

“선생님 말씀대로 방금전까지 여러 게임회사에서 졸업 후에 찾아오라며 명함을 잔뜩 줬어요.”

“그래? 잘됐네. 다들 취직 걱정은 한시름 덜었구나?”

“하지만, 모두와 상의 한 끝에 저희는 결국 선생님 말에 따르기로 했어요.”

“내가 지원하는 새로운 서드 파티 회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거지?”

“네~ 벌써 이름도 지었는 걸요?”

“벌써? 뭐라고 지었는데?”

“LEVEL.3 이요.”

“······.”

“게임 회사 제목치고 엄청 귀엽죠?”

“보통 알피지 게임에서 그나마 사람 구실 하는 레벨이 아마 30정도로 알고 있는데? 언제 클려고 그러냐?”

“선생님께서 계속 도와주시면 되죠~”

은근슬쩍 내 팔을 잡아당기며 보채는 스즈코를 향해 나는 피식 웃음을 던졌다.

“선생님 저희도 이 버스타고 콘서트 보러가도 되요!?”

“싫다면 너희가 안탈거냐? 너희 마음대로 해라.”

“와아~!!”

잠시 후. 학생들과 함께 콘서트 회장에 내린 나는 츠바키를 대기실 쪽으로 올려보낸 뒤, 무대를 바라보았다.

밤하늘 아래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 속에는 버추어 아이돌의 메인 타이틀이 띄워져 있었다.

어디서들 구해온 건지, 무대 앞에 모여든 유저들의 손에는 알록달록 빛나는 형광색 막대기가 들려있었는데, 잠시 후 콘서트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이번 콘서트는 에리카의 무대를 시작으로 처음 버추어 아이돌의 싱글 음반이 공개 되었던 순서대로 진행이 되었는데, 다들 일전에 콘서트 배틀을 경험해봐서 그런지 콘서트는 굉장히 매끄럽게 진행 되었다.

셰릴의 압도적이었던 무대와 아즈사의 귀여움이 넘치는 무대를 지나 이윽고 마지막으로 츠바키의 차례에 오르자, 그녀는 차분한 표정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

“아아... 드디어 실물을 보는구나...”

지난 라이브 배틀 때 부득이 하게 스크린으로 인사했던 때와 달리 이번에야 말로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유저들은 기대에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용히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간 츠바키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희 네 사람 중 한 명이 탈락하게 됩니다.”

한껏 끌어오르던 콘서트 분위기가 단 번에 가라앉았다.

이미 도쿄 게임쇼의 행사전 미리 예고했던 그 날이 오고만 것이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아무래도 다른 성우들에 비해 실수가 잦았고, 화제가 되지 못했던 콘노 아즈사의 탈락이 유력했지만, 방금 전까지 보여준 그녀의 무대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아즈사를 응원하며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은 츠바키의 말에 섭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어서 나온 그녀의 말에 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표정에 경악이 스쳤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 EP. 46 : 많은 시간이 흘러. (3)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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