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6 : 많은 시간이 흘러. (2) >
잠시 후. 유키와 함께 양손 가득 한보따리 짐을 들고 오신 장모님은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뭘 그리 많이 싸오셨어요? 저희가 준비한 것만으로도 충분할텐데.”
“이따 저녁에 회사 직원들도 놀러온다며 먹다가 부족한 것 보다야 훨씬 낫지. 그리고 자네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담서?”
“하하... 벌써 들으셨어요?”
그때 등 뒤에서 낚싯대를 꺼내들던 장인 어른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요 몇 년간 준혁군이랑 낚시를 다니면서 느낀 건데, 정말 끔찍할 정도로 소질이 없더군. 킥킥...”
“그래도 아빠가 낚시 가고 싶어 할 때마다 같이 어울려 주는 사람 준혁씨 밖에 없지 않아요?”
“뭐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자~ 그럼 준비는 끝났고 가볼까 사위~!!”
“아, 네. 그러시죠.”
“할아버지. 물고기 많이 잡아주세요~”
“오냐~ 우리 설현이 저녁에 물고기 배터지게 먹여주마~!!”
잠시 후. 장인 어른은 캠핑장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포인트를 잡고는 호숫가를 향해 찌를 던졌다.
“경치 좋구만, 한적하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 장인 어른은 나를 향해 담배갑을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사양했다.
“끊었습니다.”
“에잉~ 자네. 어째 작년보다 더 재미 없어졌군.”
“하하.. 그런가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장인 어른의 곁에 앉자, 그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 그 동안 잘 지냈나?”
“뭐 매일 똑같죠. 아침엔 설현 깨워서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서 집안일 좀 하다가 오후엔 한적한 공원에 나가서 책도 좀 읽고...”
“... 왜? 아예 구청에서 하는 주부 동아리 모임도 나가지 그러나?”
장인 어른은 나의 대답이 영 못 마땅스러웠는지, 혀를 차며 담배를 깊게 빨아 들였다.
투명한 호수 위로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과 함께 새하얀 담배 연기가 공중에 흩어지고,
잠시 후.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장인 어른은 목이 칼칼한지 생수로 목을 축이자, 멀리서 설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물고기 많이 잡았어요?”
“에끼~ 녀석아, 아무리 나라도 낚시 바늘 던지자마자 건져 올리겠느냐?”
요리를 준비하는 유키 곁에 있는게 심심했는지 설현이는 총총 걸음으로 달려와 내 옆에 풀썩 주저 앉았다.
“너 옷 더러워지면 엄마한테 또 혼난다.”
호숫가에 낚싯대를 거치해둔 나는 조그만 의자에 설현이를 앉혀 두고 대신 풀밭에 걸터 앉았다.
“아빠랑 무슨 얘기 했어요. 할아버지?”
“으음? 뭐 그냥 어른들 얘기지.”
“흐음~ 아까 여기로 오는 길에 아빠가 1995년에 열린 도쿄 게임쇼에 대한 얘기 해줬는데, 엄청 재밌었어요~”
“그러냐? 하긴 네 아비가 그쪽에선 참 유명하긴 했지. 하지만 말이다. 사실은 도쿄 게임쇼가 끝나고 일어난 일들이 훨씬 더 재밌단다.”
“네? 왜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어느새 두 눈을 반짝이며 할아버지 쪽에 붙어 앉은 설현이의 모습에 나는 그저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만 보았다.
&
드래곤 엠블렘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출시 후 한 달 만에 일본 내수에서만 100만장을 팔아치웠다. 경기 침체 이후 게임 판매량이 줄어만가던 터에 오랜만에 등장한 밀리언 셀러. 드래곤 엠블렘은 게임 시장에 큰 활력을 불어 넣었다.
유저들은 최전방 시스템이 열릴 때까지 각자의 지휘관 캐릭터와 용병들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일본 전역의 아케이드 센터에는 지금까지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키운 캐릭터를 이용해 상대방과 대전을 벌이는 PVP 전용 기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게이머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타지역 보다 하루 일찍 기기를 들여놓은 펜타곤 샵은 당일 날이 밝자마자 비장한 표정으로 휴대용 라온을 손에 들고 달려오는 유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빌어먹을~!! 안 돼!!!”
전투야 단지 버튼만 누르면 공격을 시도하는 간단한 시스템이었지만, 지휘관 자신의 직업과 함께 어떤 스타일의 용병들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꽤나 심오한 전략이 필요했기에 매턴 마다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 성검 조각의 특수 능력까지 더해지면 경우의 수는 한도 끝도 없이 늘어 난다.
운명의 여신을 조작해 무조건 선공 턴을 가져올 수 있는 능력.
후공을 내주는 대신 아군의 방어력을 극대화 시키는 능력.
전투 시작과 동시에 적 캐릭터 하나를 봉인 시키는 능력.
상대방의 장비를 무력화 시키는 능력등 가끔은 사기에 가까운 성검 조각의 능력으로 분통하는 유저들도 있었다.
그중에 유저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성검 조각의 능력은 ‘전투에서 승리 할 시 상대방이 착용한 장비를 빼앗아 오는 능력’ 이었다.
“안 돼!! +6짜리 클레이모어가!!!”
헐... 한달 새에 +6강 대검까지 만들정도라니, 역시 유저들의 컨텐츠 소비율을 무시할 수 없구나.
PVP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유저는 이 날 하루만 2000명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기 회전은 굉장히 빨랐다.
드래곤 엠블렘의 PVP 배틀은 단지 동전만 있다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게 아니라, 최전방 전투 지원서라는 특별 아이템이 있어야만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섹터에 패권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PVP 시스템에는 ‘전장 기여도’ 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지휘관 캐릭터가 얼마 만큼 전투에 참여 했고, 또 얼마 만큼 승리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기록해 차후 섹터에서 승리를 거두었을시 보상으로 전설급 아이템을 획득할 수가 있었다.
이에 대해 펜타곤은 총 16개의 전투 지역을 준비했고, 두 개의 세력은 서로 더 많은 영역과 아이템을 차지 하기 위해 끝없이 전투를 벌여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드래곤 엠블렘 두 번째 에피소드에 대한 전문 커뮤니티가 생겨 나기 시작했고, 따로 펜타곤에서 공지하지 않아도, 발빠른 유저들이 스스로 커뮤니티에 최전방 지역의 전황을 공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는 드래곤 엠블렘 유저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거대한 가상의 국가화 되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선 플레이어의 전장 기여도를 인증하는 것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게시판이 세분화되어 있었고, 상위 게시판 같은 경우엔 전쟁의 판도를 예측하는 수뇌부들이 모여 다음으로 공략할 섹터에 대해 토의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진정으로 재미있는 온라인 게임이란 운영자가 그 권위를 이용해 마음대로 세계를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스스로 그 안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즐거움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온전히 그 세계를 유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초창기의 온라인 게임은 그랬다.
경치가 좋은 바닷가에 말을 끌고가 그곳에서 친한 유저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만 나누어도 재미있는 게임도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드래곤 엠블렘의 커뮤니티는 전투에 지친 유저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대화의 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대화방은 24시간 내내 사라질 줄은 몰랐고, 정보 게시판에는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조합시켜 얻을 수 있는 장비라던가, 성검 조각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했고, 각 세력의 자유 게시판에는 일상에 대한 잡담을 나누는 플레이어들로 가득했다.
나 역시 한 동안은 플레이어를 빙자해 그 공간 안에서 유저들과 부대끼며 살았을 정도니까...
모르긴 몰라도, 나처럼 정체를 숨기고 커뮤니티를 즐기는 펜타곤 직원들도 꽤나 많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커뮤니티 내에서 다른 유저를 부를 때 누구누구 ‘씨’ 누구누구 ‘님’이 아닌 판타지 세계에서나 등장할 법한 ‘경’이라는 호칭을 붙였는데, 현재 전장에서 기여도 1위를 찍고 있는 유저에겐 ‘용병왕’이라는 칭호를 붙여 커뮤니티 내에서 실제 역할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드래곤 엠블렘의 두 번째 에피소드가 정말로 놀라운 부분은...
&
“아직까지 대륙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지.”
“정말요!?”
“내가 알기론 말이다. 안그런가? 준혁군?”
“맞습니다. 최근에 세력이 인간쪽으로 많이 기울었다는데, 아직 마족 세력이 두섹터 정도로 버티고 있다고 하네요.”
나의 대답에 설현이는 질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10년이나 같은 게임을 계속 하고 있다는 건가요?”
“음~ 엄밀히 따지면 아주 똑같지는 않아. 10년 동안 벌써 5번이나 버전 업을 했으니까...”
솔직히 처음엔 길어야 한 5년정도 갈줄 알았던 컨텐츠였는데, 버전 3에서 하야시가 온라인 시스템을 엄청 개선 하는 바람에 게임 수명이 배로 늘어났지 뭐야...
하지만 그 10년 동안 벌어들인 코인 수익은 정말로 무시할게 아니었다.
PVP 시스템이 처음 열린 초반만 하더라도 일본에 있는 모든 동전이 펜타곤으로 유입되는 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으니까...
“읏차~!! 또 한 마리 잡았다.”
... 그러나 저러나 설현이한테 이야기를 해주면서도 귀신 같이 낚아 올리시는구나...
나는 당최 아무리 봐도 찌가 수면에 흔들리는 건지, 물고기가 낚아 챈건지 감도 안잡히는구만...
“우와~ 크다~!!”
어른 팔뚝 만한 굵기로 퍼덕거리는 힘좋은 물고기를 양동이에 담아 내자, 이젠 더 이상 낚아도 담을수가 없어 보였다.
“준혁씨~!!!! 펜타곤 직원 분들 거의 도착했다고 연락 왔어요~!!”
“응~!! 곧 갈게.”
어느새 산 넘어로 지는 타는 듯한 노을이 호숫가를 붉게 물들이고, 불빛 하나 없는 초저녁 하늘에 어스름 별들이 반짝이자, 장인 어른은 그제서야 양동이속에 물고기를 하나 둘 호숫가에 던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애써 잡은 물고기를 왜 다시 던져요?”
“너무 어린 새끼들은 다시 호수로 돌려보내야지. 안그래도 네 할머니가 먹을거 엄청 싸와서 사실 물고기도 별로 필요 없을지도 몰라.”
설현이는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양동이에 손을 넣었다.
“그럼, 너두 안녕~!!”
“설현아!! 그건 방금 잡은 대어야!!”
풍덩...
어른 팔뚝만한 크기 답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진 물고기에 장인 어른은 입을 떡벌린채 허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게임으로 치면 +9짜리 대검을 적에게 빼앗긴 유저의 기분과 엇 비슷하려나?
“아하하~ 잘가아~~!!”
순식간에 사라진 물고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설현이의 목소리만이 조용한 호숫가에 공허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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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니이이임~~!!!”
잠시 후. 캠핑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가장 먼저 내린 카오리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오랜만이에요~ 이사님!!”
“뭐가 오랜만이야.. 지난 주에 유키랑 같이 시부야에서 봤었잖아.”
“으이구. 예나 지금이나 정 없는 사람.”
“흥~ 네 남편만 할까?”
“네? 제가 뭐라구요?”
어깨에 짐을 올린채 테이블로 다가온 하야시는 먹을 거리를 바닥에 내리며 피식 웃음을 삼켰다.
“그냥 빈손으로 오라니까, 뭘 또 이렇게 사왔어...”
뒤이어 카와구치 대표와 함께 모리타와 우치무라, 미야자키등을 비롯해 평소 친하게 지내왔던 직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경치 좋은데요? 낮에 왔으면 더 좋았을 걸...”
“다들 어서오세요. 배고프시죠? 방금 밥도 다 지었으니, 슬슬 파티를 시작해볼까요?”
분홍색 앞치마를 두른 유키가 펜타곤 직원을 반기자, 여직원인 카오리와 미야자키는 자기들도 돕겠다며 여분의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했다.
초저녁의 캠핑장은 펜타곤 직원들로 인해 금세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좀 놀러 온 것 같네...”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직원들을 지켜보던 중 하야시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에게 다가 왔다.
“후우... 잘 지내셨나요?”
“뭐 그냥 그렇지. 요새는 어때?”
“이사님 덕분에 아주 환장하죠.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 예정대로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대륙 통일이 이루어지면 공개할 예정입니다.”
“한창 바쁘겠구나...”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오셔서 저희 좀 도와 주시겠습니까?”
“또 그 소리냐?”
“이사님께서 최초로 내신 기획이니, 그에 대한 마무리는 지으셔야죠.”
“흐음. 마무리라... 어라? 그런데, 칸나 일행은 안왔어?”
“... 이거 봐. 내가 또 이렇게 말돌릴 줄 알았지. 칸나씨는 조금 늦는다고 하네요. 방송 스케쥴 때문에...”
“그래?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그 노래’ 들었어요.”
“아... 그거 나도 들었지.”
“역시 오랜만에 들어도 좋던데요? 츠바키씨의 목소리는...”
“그러게 말이다.”
“이사님. 혹시 츠바키씨 마지막 라이브 공연 때. 유저들에게 했던 첫 인삿말 기억하세요?”
“응.. 물론이지.”
하야시의 말에 문득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근처 나무 울타리에 몸을 기댄채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런 이야기 전개로 급 완결이 아니냐는 독자님들의 말씀이 있으신데..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와는 달리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내일 제사가 있어 연재가 조금 늦을 수 있습니다..;;
허리가 아직 깔끔히 나은게 아니라 물리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상태이네요..;;
아무래도 신경 쪽이다보니 회복이 좀 더딘 듯합니다.
늦더라도 일일 연재는 반드시 지킬 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EP. 46 : 많은 시간이 흘러. (2) > 끝
ⓒ 손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