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6 : 많은 시간이 흘러.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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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아아아...
호숫가의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에 감았던 눈을 뜬 나는 잠시 후. 물속으로 퐁당 잠기는 낚시 찌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다!! 왔어!!!’
손 끝에 전해지는 감각으로 보아 제법 커다란 녀석이 틀림 없다.
“크윽!!!”
낚시용 의자가 뒤로 나뒹굴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지만, 나는 두 다리에 바싹 힘을 주며 팽팽하게 당겨진 낚싯줄을 서둘러 감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바닷가에서 참치라도 잡는 줄 알겠네, 호수에 사는 물고기 주제에 왜 이렇게 힘이 센거야!?’
툭팍투팍팍~!!
어지간히도 나에게 잡히기 싫은 모양이다. 이렇게 까지 발악 하는 걸 보면...
하.지.만 나 역시 이곳에 와서 2시간째. 너라도 잡아야 내 체면이 선단 말이다!!
툭~!!
불길하게 느껴지는 손맛과 함께 위로 끌어 올려진 녀석이 허공에서 몸을 틀어 다시 호숫가에 잠겼다.
“하아... 환장하겠네..”
“아빠~ 물고기 놓친 거야?”
뒤에서 들려오는 설현이의 목소리에 나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다간 할아버지 올 때까지 한 마리도 못 잡을거 같은데?”
“으음... 그러게나 말이다. 이거 또 장인 어른한테 한 소리 듣겠는데?”
한숨과 함께 낚시 줄을 거둬들이는 내 옆으로 설현이가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물고기 언제 잡아 줄거냐고, 엄마가 물어보래. 할아버지 거의 도착했다고 전화왔나 봐.”
“그.. 그래?”
이런... 큰일이다. 한국식 매운탕 끓여 드린다고 큰소리 쳤는데, 아직까지 한 마리도 못잡았으니. 그때 양손을 턱에 괸 채 나를 바라보던 설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음? 뭐가?”
“아빠의 도쿄 게임쇼. 아까 캠핑 오는 도중에 하야시 아저씨한테 전화와서 이야기하다 말았잖아.”
“아~ 맞다. 그렇지.”
나는 텅빈 낚시 바늘에 떡밥을 꽂아 넣고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호숫가를 향해 낚싯대를 휘둘렀다.
잠시 후. 퐁당소리와 함께 수면 위로 찌가 솟아 오르자, 나는 빙긋 미소 지으며 바닥에 쓰러진 의자를 세워 설현이를 앉혔다.
“어디보자, 어디까지 얘기 했었지?”
“PVP 시스템까지~!!”
“아, 맞다. 그랬지. 우리 설현이 기억력 좋은데?”
나의 칭찬에 설현이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혀를 빼꼼 내밀며 나를 보챘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니깐?”
“그때야 뭐.. 난리도 아니었지. 펜타곤 컨퍼런스가 끝나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아키하바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으니까.”
“와아... 재밌었겠다.”
“그때 펜타곤 컨퍼런스가 끝나고 NEGA의 컨퍼런스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새턴의 홍보 모델이었던 네가타씨는 행사장을 나가는 유저들을 하나라도 붙잡으려고 난리도 아니었어.”
아직도 그 때 일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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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네가새턴 해라~!!”
“당신이나 많이 하쇼~!!”
“뭣이!?”
터프한 컨셉으로 유저들에게 명령하듯이 소리치고 다니던 네가타 산시로씨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어린 유저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펜타곤의 컨퍼런스가 끝나자마자 약 4분의 1 가량의 관람객이 쑥 빠져 나간 탓에 행사장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뭐야!? 저 사람들 대체 왜 저래?”
“펜타곤에서 드래곤 엠블렘을 출시 발표를 했대!!”
“뭐라고? 언제 출시한다는데?”
“오늘!! 나 먼저 사러 간다~!!”
“기, 기다려. 나도 같이 가!!”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무대 위에서 행사장 전체를 바라보니 관객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기에 나는 할말을 잃은 채 무대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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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아빠 못됐다. 그렇게 해버리면 그 날까지 도쿄게임쇼를 기다려온 다른 제작자들에게 민폐를 끼친거 잖아.”
“그렇지. 하지만 도쿄 게임쇼는 단 하루만 열리는게 아니니까. 어느 정도 이탈자가 생겨났지만, 다음날 다시 찾아오는 관람객들도 많았어.”
“그렇구나...”
그때 호숫가 근처에 세워진 야영장에서 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현아. 엄마 좀 도와줄래~”
“응. 지금 갈게~ 저기 엄마. 아빠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어쩌지?”
“괜찮아. 이따가 할아버지 오시면 여기 호숫가에 물고기 전부 건져 올리실테니까.”
“······.”
“당신도 이쪽에 와서 좀 쉬었다 해요.”
“흐음.. 그럴까...”
유키의 말에 나는 낚싯대를 고정 시키곤 캠핑장으로 향했다.
“아빠. 다음 주에 시험 끝나면 핸드폰 사줄꺼죠?”
“핸드폰? 넌 초등학생이 무슨 핸드폰이 필요하니?”
“우리반 친구들 거의 다 가지고 있단 말야~ 저번에 시험 잘 보면 사준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 벌써 10살인 걸~”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팔을 잡아끌며 보채던 설현이는 결국 유키에게 한소리를 듣고 서야 나를 놔주었다.
“설현이 너 또 아빠한테 핸드폰 사달라고 졸랐지?”
“피~ 지난 번에 아빠가 약속한거 엄마도 들었잖아.”
... 그래서 침실로 들어가 호되게 등짝 스매싱을 맞았지. 애한테 무슨 핸드폰 이냐고...
도마 위에 야채를 썰고 있던 유키의 앙칼진 눈빛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라, 라디오가 어딨거라. 차 안에 두고 나왔나?”
역시 이래서 자식 교육은 배우자와 충분한 상의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물론 핸드폰이야 요즘에도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생활 필수품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유키가 반대하던터라 그녀를 설득하긴 쉽지 않았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얼마전에 구입한 캠핑카를 뒤적이던 나는 음악이나 들을 겸 휴대용 라디오를 꺼내 캠핑카의 처마에 달았다.
치익~!! 칙!!
안테나를 세우고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자, 잠시 후 익숙한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저기, 만약에
모든 것을 내버릴 수 있다면
웃으며 살아가는게 조금은 편해질까?
또 다시 가슴이 아파 오니까.
이제 아무 것도 말하지 말아줘.
“아...”
야채를 썰고 있던 유키 역시 그녀의 노래에 손을 멈추고 라디오를 바라 보았다.
그때 유키 옆에서 재료를 접시로 옮기던 설현이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라? 이거 칸나 언니 노래 아니었나? 그런데 언니 목소리랑 완전 다르네...?”
“츠바키씨 목소리... 참 오랜만이다. 준혁씨.”
“그러게...”
나는 라디오를 처마에 걸어둔 채로 근처에 있던 테이블 의자에 걸터앉으며 작게 읊조렸다.
“참 오랜만이다.. 츠바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가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햇살에 눈이 부실 정도로 잘 닦인 깨끗한 병원 복도. 그곳에 창가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미소가...
우리는 잠시동안 그대로 츠바키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잠시만 화장실 좀...”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한 유키가 황급히 자리를 피하자, 설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엄마... 방금 운거 같은데? 어라? 아빠도 울어?”
“아냐. 안 울어.”
설현이의 목소리에 황급히 손끝으로 눈물을 훔친 나는 애써 빙긋 웃어보였다.
-올해로 세상을 떠난지 10주기를 맞이하고 있는 사와노 츠바키씨의 ‘만약에’ 라는 곡을 들으셨습니다. 이 곡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버추어 아이돌이라는 게임에서 첫 선을 보인 곡인데요. 현재 라디오를 듣고 있는 분들 중 당시 버추어 아이돌을 즐기셨던 분이 계시다면 지금쯤 혼자서 몰래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참 이렇게 보면 시간이 빨라요... 10년이라.. 저도 참 좋아했던 게임이었는데...-
-어머. 사카이씨도 버추어 아이돌 해보신 적 있으세요?-
-물론이죠. 제가 누굽니까. 방송 펑크내고 드래곤 워리어3 사러 아키바까지 갔던 최초의 연예인 아니겠습니까.-
-아~ 맞다. 그때 소속사 사장님한테 엄청 혼났다고 들었어요.-
-뭐, 그땐 정말 맞아 죽을 뻔 했죠. 방송 스케쥴 때문에 그들의 라이브까지 찾아가진 못했지만, 아무튼 10년 전 버추어 아이돌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데뷔 후 이듬해 가을에 도쿄돔에서 공연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제 기억에 그 공연을 한 달 앞두고, 츠바키씨가 결국 세상을 떠나셨죠?-
-저도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그 날의 공연은 진짜 눈물 바다였다고 하더군요. 특히나 츠바키씨를 대신해 그녀의 곡을 이어 받은 칸나씨는 마지막 곡으로 ‘만약에’를 부르고 난 뒤 탈진으로 쓰러졌을 정도니까요.-
-저도 기억나요. 그녀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팬들이 어마어마했다고...-
그녀를 추억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나는 억지로 쓴 웃음을 삼켜냈다.
“실로 어마어마했었지...”
사와노 츠바키.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지는 기분이다.
그녀가 세상에 남긴 곡은 ‘안아주세요’와 ‘만약에’를 포함해 다섯 곡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로 평가 받는 곡은 칸나와 함께 만든 ‘만약에’ 라는 곡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당시 게이머들에게 무척이나 받아 들이기 힘든 사건 중에 하나였다.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일본 각지에서 몰려든 방문자들로 인해 장례식이 일주일이나 지연되기도 했으며 그녀를 따라가겠다며 자살 기도를 한 사건도 몇 차례나 있었다.
그중에 실제로 사망한 사람은 5명.
덕분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펜타곤에서도 유저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자제 해달라는 메시지로 공식 기자 회견까지 열 정도였으니까...
내가 펜타곤을 퇴사한 시기도 버추어 아이돌의 도쿄돔 행사를 마친 딱 그때 즈음이었다.
츠바키의 장례를 마치고, 한 동안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나는 공식적으로 펜타곤 소프트의 이사직을 내려 놓았다.
나의 결정에 카와구치씨와 더불어 모리타와 하야시등 많은 직원들이 뜯어 말렸지만, 나의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 후로 몇 년간 민텐도의 카마우치 사장이 다시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지만, 나는 그 때마다 고개를 내저었다.
민텐도는 2005년인 지금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카마우치 사장은 최후엔 자신의 사장 자리까지 내주겠다며 나를 유혹 했지만, 군페이씨가 없는 민텐도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1997년 여름.
‘버추어 보이’라는 가상현실 게임기의 실패로 민텐도를 퇴사한 군페이씨는 얼마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알고 있던 미래를 이용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교통 사고는 피할 수 있었지만, 원래부터 지병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때 나와 함께 라디오를 듣고 있던 설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할아버지~!!!”
“아이쿠~ 우리 손녀 그동안 잘 지냈니?”
장인어른의 목소리에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자, 양손 가득 먹거리를 들고온 장인 어른이 피식 웃음을 던지며 나에게 말했다.
“자네.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다면서~”
“낚시. 보기보다 어렵네요.”
“그동안 게이머들은 잘도 낚아 올리더니, 쯧쯧...”
작가의 말
이번 편을 올리며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은 며칠 전부터 고민하던 부분이기도 하구요.
일전에 게임 마켓의 이야기를 10권 정도로 마무리 짓겠다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한 권 더 쓰는 것은 오히려 비슷한 에피소드의 반복이 될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었습니다.
저 역시 최근 에피소드를 진행하며 느끼는 부분이기도 했구요..
정확히 몇편에 끝이 날지는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조금씩 그 동안의 이야기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게임 마켓 1983의 이야기를 끝내려 합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난건 아니니 작별인사는 나중으로 미뤄 두겠습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P. 46 : 많은 시간이 흘러. (1) > 끝
ⓒ 손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