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42화 (242/252)

< EP. 45 : Tokyo Game Show. (7) >

-FIGHT-

카아앙!!!

전투를 알리는 메세지와 함께 네 명의 캐릭터 머리 위해 각각 컴플리트 라온의 버튼 배열인 A, B, Y, X 버튼이 떠올랐다.

마름모 형태의 포메이션과 4개의 버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게임에 대해 조금이라도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챌만한 아주 직관적인 전투 형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선공과 후공을 정하는 동전이 튕겨져 오르고, 하야시의 선공을 알리자 그는 능숙하게 패드의 버튼을 이용해 자신의 용병들을 돌격 시켰다.

한번에 화살을 3개씩 장전해 날리는 궁수와 쉴새 없이 화염 마법을 쏟아 부어대는 데미지 딜러의 활약에 현란한 이팩트가 스크린 속에 펼쳐지자, 유저들은 벌려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한채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야시 부대의 현란한 공격을 버텨낸 상대 진영은 턴이 개시 되자마자,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때 선봉에 서있던 탱커의 방패에서 강한 빛을 뿜어져 나오며 전장 한복판에 거대한 빛의 방어막이 세워졌다.

콰아아앙!!

상대편 마법사의 얼음 공격이 두터운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산산히 부서지고, 도적의 마저 공격에 실패하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거대한 검을 휘둘러 하야시의 방어막을 깨부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또 다른 마법사가 하야시의 진영에 불꽃의 비를 내려 전원에게 피해를 입혔다.

“와, 조작이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이팩트가 화려한데?”

4인 파티를 꾸려 계속 등장하는 적과 싸워나가는 전장에서는 치고 빠질 때를 잘 알아야한다.

전투를 거듭 할수록 명성과 진귀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지만, 섣부른 판단으로 패배할 경우그에 대한 패널티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야시는 다음 턴에서 사제를 이용해 피해 입은 아군의 체력을 회복 시킨 뒤, 몇 번의 공방을 거듭한 결과. 첫 번째 전투에서 어렵사리 승리를 따내었다.

-연이어 전투를 진행하시겠습니까? 다음 전투에서 승리 할 경우 더욱 진귀한 아이템과 함께 1.2배의 경험치가 적용 됩니다.-

스크린에 떠오른 문구는 게이머에게 있어선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도박과도 같은 유혹이었다. 진기한 아이템과 강해질 수 있는 경험치 보너스라니...

하지만 드래곤 엠블렘의 전장에선 위에 열거한 두가지 보다 더욱 중요한 아이템이 존재 했는데...

-연승을 달성해 일정치 이상의 명성이 모이면 최전방으로 향할 수 있는 지원서를 제출 할 수 있습니다.-

“으음? 최전방?”

“지원서라니...?”

잘 모르는 시스템의 등장에 유저들이 고개를 갸웃 거리자, 나는 하야시를 향해 다음 배틀을 진행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카아앙!!

긴장감과 스릴이 넘쳤던 던전 탐사모드와는 달리, 지휘관 모드에서는 정신없이 울려 퍼지는 전장의 폭음과 몬스터의 굉음으로 패드를 쥐고 있는 것만으로 굉장한 긴박감을 전해주고 있었다.

다음 전투에서도 주어진 시간내에 정비를 마친 하야시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지휘관 마다 가지고 있는 부러진 성검 조각을 자신의 검 안에 박아 넣었다.

“아, 전작에서 얻었던 성검 조각을 여기서 사용할 수 있구나.”

전작에서 최종 무기로의 진화 재료였던 성검 조각은 이번 작에서 조금은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성검 조각의 능력으로 이번 전투에서 승리할 시 적 지휘관의 장비 중 하나를 랜덤으로 습득 할 수 있습니다.-

“장비를 빼앗아 오는 건가?”

그렇다. 부러진 성검조각을 장착할 시 드래곤 엠블렘은 마치 카드배틀처럼 상대편의 뒷통수를 칠 수 있는 특별한 능력들 행할 수 있었다. 간단한 예로 지금처럼 전투에서 승리할 경우 상대방의 무기하나를 빼앗을 수 있다던가, 아니면 적군 중 하나를 3턴 동안 기절 시킬 수 있다던가.

단지 AI를 상대로 이토록 전략적인 움직임을 취해야 하는 이유는 좀 더 손쉽게 전투를 운용시키기 위해서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바로 ‘최전방’ 시스템에서 상대편의 뒤통수를 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또 다시 화려한 이팩트와 함께 하야시가 연승을 거두자, 유저들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보내 주었다.

한편 던전에서 몬스터들의 주의를 너무 끌은 탓에 그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우치무라의 플레이에 웃음을 터뜨리는 게이머들도 더러 있었다.

-연승에 선공했습니다. 부러진 성검의 보상으로 적 지휘관의 장비 중 하나를 당신의 수집품함에 넣어두었습니다.-

-명성 100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의 동료와 함께 최전방 지역으로 참전할 수 있는 지원서 1장을 손에 넣었습니다.-

“어라? 또 나왔다. 최전방 지원서.”

또 다시 등장한 의문의 메시지에 유저들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쯤에서 나는 무대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며 우치무라에게 청했다.

“우치무라씨. 잠시 플레이를 종료시켜 주시겠습니까?”

“아, 네.”

나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인 우치무라가 게임을 종료 시키자, 드래곤 엠블렘의 타이틀 화면이 떠올랐다.

“그럼 잠시동안 적대 세력의 지휘관으로 플레이를 부탁드립니다.”

우치무라의 행동에 그를 지켜보던 하야시 역시 전장을 이탈해 초기 캐릭터 선택화면으로 전환시켰다.

이윽고 화려한 갑주를 차려입은 우치무라의 지휘관 캐릭터가 모습을 드러내자 두명은 지휘관의 데이터를 미리 연결해 두었던 라온으로 이동 시킨 뒤,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난 에피소드 1에서 여러분들은 자신의 친구 또는 커뮤니티에서 알게된 동료들과 함께 보스 레이드를 공략했습니다. 여기 두 사람이 들고 있는 휴대용 라온을 이용해 말이죠. 드래곤 엠블렘은 버추어 아이돌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휴대용 라온을 이용한 독특한 시스템을 제공합니다. 바로 PVP라는 이름의 시스템을 말이죠.”

“PVP?”

생소한 단어에 유저들이 고개를 갸웃 거리자, 휴대용 라온을 들고 있던 하야시가 어느새 마이크를 손에 들고 입을 열었다.

“PLAYER vs PLAYER. 즉 여러분들은 자신이 선택한 세력의 패권을 위해 최전방에서 서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부러진 성검의 능력을 이용해...”

“헉.. 그렇다면.. 아까 같은 경우엔 전투에서 지면 내 장비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거잖아?”

“에이... 말도 안 돼. 차라리 안하고 말지.”

“맞아. 그냥 안 싸우고 스토리만 즐겨도 되잖아. RPG니까.”

물론 그들의 이야기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들의 의견에 반하는 말들도 쏟아져 나왔다.

“난 오히려 재밌을 거 같은데?”

“뭐 어때 그냥 게임일 뿐인데, 캐릭터를 키워 겨루는 격투 게임 같은 건가?”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의견에 나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추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방금 드래곤 엠블렘의 코딩을 맡은 하야시씨의 플레이를 보셨다시피 드래곤 엠블렘의 전장은 굉장히 심플한 커맨트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투가 시작하기 전 자신의 아이템을 정비하고, 전투에 돌입한 순간부터 단지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누구나 화려한 전투를 벌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초보자도 간단히 플레이가 가능하죠. 하지만 나중에 스킬과 공격 모션을 취득하면 이러한 공격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 중앙의 스크린에서 드래곤 엠블렘의 전투 장면이 떠올랐다.

“핫!!”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적에게 파고든 무투가의 발차기가 상대편을 높이 띄워 올리자, 타이밍에 맞춰 스킬을 준비하던 궁수가 공중에 떠오른 적을 향해 연속으로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오오!! 동료끼리 연계기도 존재하는 건가?”

공중에 떠오른 캐릭터는 무방비 상태로 적이 쏜 화살에 클린 히트를 당한 상태에서 대마법사의 궁극기인 메테오까지 피니쉬 어택으로 허용하곤 장렬히 산화했다.

“이 모든 공격은 적당한 타이밍으로 스킬을 사용해 주기만 하면 누구나 손쉬게 사용할 수 있는 연계기입니다. 사실 이것 말고도 수많은 패턴이 존재하죠. 하지만, 이런 다양한 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선 지휘관의 경험치가 중요합니다.

지휘관은 자신이 얻은 경험치를 부하들에게 배분 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죠. 지휘관의 레벨이 오를수록 전장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만으론 부족할 때가 많이 느껴질 겁니다. 보다 높은 명예와 장비. 그리고 경험치를 위해서 ‘최전방 지원서’를 필요로 하는 유저분들이 점점 늘어날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체 그 최전방 지원서가 뭡니까?”

결국 참다 못한 유저 하나가 손을 들고 나에게 질문했다.

“최전방 지원서는 일종의 도전권입니다. 자신이 키운 지휘관을 다른 플레이어와 겨룰수 있게 도와주는 티켓과도 같은 것이죠. 한번의 지원서로 도전할 수 있는 배틀은 총 5번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유저와 싸우고 싶어도 지원서가 없다면 PVP를 즐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배틀을 즐기를 것에 대해 약간의 규제가 필요하다 느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PVP 시스템은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컴플리트 라온으로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내가 설명을 마치자 우치무라와 하야시는 각각 자신의 라온을 들고 무대 한쪽편에 마련된 아케이드 센터에서나 볼법한 전자기기에 라온의 데이터 케이블을 연결 시켰다.

그러자 대형 스크린에 대륙의 지도가 떠오르며 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치열한 전투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 합니다. 현재 인간과 마족의 전투가 가장 격렬해지는 지역은 6번째 국경 지역입니다. 현재 전황은 50:50으로 아직 전세가 어느쪽으로도 기울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참전 하시겠습니까?-

-YES.-

-최전방 지원서가 확인 되었습니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그 순간 화면의 양 끝에 우치무라와 하야시의 캐릭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표회가 시작한 직 후. 마치 거대한 땅따먹기를 보는 것 같다고 하셨던 유저분이 계셨죠? 네. 정확히 보셨습니다. 드래곤 엠블렘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여러분들께서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승리를 거둔 만큼 각 섹터마다 전황이 달라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헉.. 그럼 진짜 땅 따먹기였어?”

“한 달에 한 번. 최전방 지역에서 벌어진 승률에 따라 드래곤 엠블렘의 지도는 계속해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점령된 지역에서 여러분은 새로운 던전을 통해 그 지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진귀한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점령지를 도로 빼앗기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에 한해서지만요.”

먼 훗날 드래곤 엠블렘2의 두 번째 이야기는 쌍방의 데이터 교환을 이용한 최초의 온라인 게임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었다.

1995년 말.

텍스트 형식의 온라인 게임인 머드 게임이 PC통신 커뮤니티에서 활성화 되던 시기.

하지만 일각에선 이미 캐릭터 디자인을 이용한 온라인 게임이 슬슬 발을 들여 놓은 시기가 다가 오고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게임을 즐겨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름을 들어 보았을 ‘울티마 온라인’ 이라던가, 세계 최초의 온라인 게임으로 인정 받은 ‘바람의 나라’ 라던가..

앞으로 1년 남짓한 시간 안에 등장할 이 두 개의 게임은 이후의 게임 업계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기게 되는데...

그런 위대한 업적의 한가운데에 나는 현재 ‘드래곤 엠블렘 온라인’이란 세계를 구축 중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사실 에피소드 2의 PVP시스템이 최초의 온라인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별 상관이 없었다. 단지 나는 차후 유저들에게 온라인의 세계를 더욱 절실히 받아들일 수 있는 무대장치가 필요했던 것 뿐이니까...

< EP. 45 : Tokyo Game Show. (7)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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