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5 : Tokyo Game Show. (6) >
“그럼 곧바로 게임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먼저 나와 눈이 마주친 우치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게임을 진행시켰다.
그러자 지난 에피소드 1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함께 드래곤 엠블렘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테마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드래곤 엠블렘의 전작은 인간들이 거대한 대륙에 끝자락까지 몰렸던 절망의 시대.
마족에게 대항해 사투를 벌인 용사들의 활약으로 두 개의 탑은 무너졌지만, 부활한 마신의 유혹에 넘어간 용사 ‘오시리스’가 새로운 마왕으로 등극하며 대륙은 새로운 전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칫 오시리(엉덩이)가 될 뻔했던 마왕의 이름 덕분에 플레이어에게 이름 바꿔달라고 사정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부글거리긴 하지만...
잠시 후. 전작의 배경이 되었던 지역을 비춰주던 앵글이 점점 하늘로 향하자, 드래곤 엠블렘의 거대한 대륙이 모습을 드러내며 DRAGON EMBLEM이라는 타이틀이 떠올랐다.
“허억... 설마 에피소드 1에 나왔던 드넓었던 무대가 고작 저것 밖에 안되었던 거야?”
“대체 에피소드 2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 되는 건지 감도 안잡히네...”
그후로 대략 4초 가량의 로딩이 흐른 뒤, 우치무라의 스크린 속에 허름한 막사의 풍경이 펼쳐졌다.
허름한 옷차림의 그가 장비 확인을 위해 인벤토리를 열자, 과연 ‘알려지지 않은 용병’ 이란 클래스 답게 낡은 망토와 찢어진 가죽 갑옷등 보기에도 안타까운 초라한 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지고 있는 한자루의 검 마저도 ‘이가 빠진 장검’ 이라 쓰여 있어 스크린을 바라보는 유저들의 마음을 더욱 안쓰럽게 만들었다.
“거지다. 완전 거지...”
“제길.. 하드코어 모드 클리어 데이터가 없는 사람은 그냥 맨땅에 헤딩하라는건가?”
생각보다 참혹한 우치무라의 장비에 여기 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외로도 현재 세계관을 제법 이해해주는 유저들도 있었다.
“어차피 초반에 무기는 버리는게 당연하게 다들 뭘 그리 겁을 먹는지. 시작부터 아이템 다가지고 시작하는 RPG 게임이 어딨냐.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의 용자도 레벨 1때는 방망이 들고 싸우는 판에...”
“하긴 그러고 보니 그렇네..”
우리무라는 유저들의 목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인벤토리를 닫은 뒤, 막사 화면으로 돌아왔다. 드래곤 엠블렘에서 보여주는 기본 인터 페이스는 굉장히 심플한 편이었다.
현재 우치무라가 있는 지역은 이미 인간들의 영토였고, 따라서 전장보다는 확실히 안전하다.
따라서 플레이 방식은 수주가 가능한 퀘스트 목록을 살피고 그에 따른 보상을 확인한 뒤 뛰어 들면 그만이었다.
“드래곤 엠블렘에서 용병은 자신이 속한 세력 안에서 캐릭터를 키울 수 있습니다. 되찾은 영토 주변에 던전을 탐험 할 수도 있고, 일정 레벨 이상이 되어 지휘관이 된다면 스스로 전장에 참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과거 영웅들이 남긴 전설의 무기를 찾기 위한 장대한 여정도 준비 되어 있습니다만, 그러기 위해선 현재 인간들의 영역을 더욱 넓혀야 하겠지요? 먼저 기본 적인 던전 탐험에 대해 우치무라씨의 플레이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멘트가 끝나자 우치무라는 기본적인 탐험 준비를 마치고, 막사에서 퀘스트 하나를 수락했다.
서쪽의 동굴을 탐색해 달라는 부탁에 우치무라가 YES 버튼을 누르자, 필드 위에 말을 타고 있는 우치무라의 캐릭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동시에 필드 여기저기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PLAYER TURN. 이동을 위해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으잉...?”
예상 밖의 문구에 단순한 필드 이동식 RPG인줄로 알았던 유저들의 입에서 묘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우치무라는 아랑곳 하지 않고 버튼을 누르자 육면체의 주사위가 화면안세어 튕겨지듯 구르기 시작했다.
-5. 캐릭터를 어디로든 5마스 움직일 수 있습니다.-
“커헉... 뭐야 이거? 완전 보드 게임이잖아?”
그렇다. 막사를 나와 퀘스트 장소로 향하는 동안 플레이어는 직접 주사위를 굴려 자신의 말을 이동시킬 수 있었다.
한번의 턴이 끝나면 주변의 적들도 주인공을 쫓아 움직였는데, 그들을 피해 퀘스트 장소로 향할 수도 있고, 필드 위에서 그들과 SRPG처럼 전투를 행할 수 있었다. 필드 곳곳에는 오색 찬란한 보물이나, 특정 아티팩트를 지키고 있는 몬스터도 존재하고 있기에 어디로 향하든 그것은 플레이어의 마음이었다.
이 시대의 게이머들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나에게 있어서 지금 우치무라가 서 있는 필드 화면은 마치 마이트앤 매직 시리즈의 필드 화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물론 상당히 시간을 잡아 먹는 턴제 배틀 시스템은 없애 버렸지만.’
필드에서의 전투 만큼은 단순하고 호쾌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필드 위의 전투에 한해 일반 SRPG의 배틀 방식을 사용했다.
이동중 적과 붙은 상태에서 공격 커맨드 입력.
이 단순한 방식으로 유저들에게 필드 이동 중 적절한 긴장 요소를 전해줄 수 있었다.
우치무라는 빠르게 주사위를 굴려 퀘스트 장소로 향하려 했지만, 운이 따라 주지 않아 던전 입구를 눈앞에 두고 뒤 따라온 몬스터에게 일격을 수락했다.
시간을 더 끌다간 주변의 몬스터들이 자신을 포위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우치무라는 다음 주사위에서 곧장 던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와... 필드 위에 돌아다니는 적들이랑 시뮬레이션 RPG처럼 싸울수도 있구나.”
약간의 로딩 화면이 지나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우리무라의 캐릭터는 상처를 회복 시킨 후. 검을 빼들었다.
어두컴컴한 미지의 던전 속에서 우치무라는 층별로 탐색을 시작했다.
위에서 사선으로 비스듬히 내려다 보는 쿼터 뷰 시점 한가운데에는 초라한 장비의 우치무라가 달랑 검 한자루를 손에 들고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다.
“월드맵에선 SRPG의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액션 RPG 느낌이 나네...”
우치무라는 관객 앞에서 몸풀기로 검을 휘둘러 보이거나 구르기로 회피 동작을 선보인 뒤 미로처럼 엉켜있는 맵을 구석 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파앗!!
순간 어둠속에서 녹색 고블린과 코볼트가 튀어나오자, 우치무라는 재빨리 구르기로 적과의 거리를 벌린 뒤 검을 휘둘렀다.
방패를 들고 있던 고블린이 우치무라의 일격을 튕겨내자, 이번엔 코볼트가 사이드에서 우치무라에게 달려 들어들었다.
“엇!!”
생각보다 치밀한 적들의 연계 공격에 유저들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온 순간.
우치무라는 멋지게 앞구르기로 코볼트의 공격을 피해낸뒤 방패를 들고 있는 고블린의 뒤를 잡아 회심의 일격을 꽂아 넣었다.
퍼억!!
복부를 뚫고 나온 검을 뽑아내자 고블린 바닥에 방패를 남겨두고 사라졌고, 홀로 남은 코볼트는 숙련된 조교인 우치무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투를 끝낸 우치무라는 바닥에 떨어진 고블린의 방패를 착용한 뒤 다시 어둠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빨리 방패를 얻었기에 적들의 순간적인 공격에 잘 대처 할 수가 있었다.
“방금 고블린 죽일 때 꽤 멋지던데?”
“그러게 빈틈을 노리고 찌르면 저런 모션이 나오는 건가?”
그때 우치무라의 플레이 화면에 찬란하게 빛나는 보물상자가 나타나자, 유저들이 소리쳤다.
“오!! 아이템인가보다.”
“뭔가 희귀한 아이템이라도 들어 있는 건가?”
RPG에서 보물상자는 참 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던 지간에 아이템이란 반가운 것이니까. 혹시나 쓸만한 검이나 장비가 들어 있을 경우엔 더욱 더...
조심스러운 성격의 우치무라가 방패를 앞세워 보물상자에 다가가자, 순간 보물상자가 흐릿해지더니 다시 저만치 멀리 떨어졌다.
“뭐지?”
“미믹(보물상자 형태를 한 몬스터.)인가?”
우치무라는 잠시 고개를 갸웃 거리며 다시 보물 상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번에도 거의 다다른 순간. 보물 상자는 또다시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위에서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기에 우치무라는 방패를 거두고 빠른 걸음으로 보물 상자를 향해 달렸다.
슈슉!!
마치 누군가가 미끼를 던지듯 우치무라를 더욱 더 깊숙히 던전 안쪽으로 끌어 들이려는 것만 같았다. 우치무라 역시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다시 방패를 앞세우고 천천히 보물 상자로 향하자, 이번엔 눈앞에서 보물 상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라? 이젠 안 없어지네?”
의심 많은 우치무라는 한번에 보물 상자를 열기보다 보물 상자를 크게 한바퀴 돌아 주변을 살펴 보았다. 그러자 화면 끝자락에 제법 거대한 무언가가 스쳐 지났다.
미지의 영역에 대해선 검은 안개가 끼어 있었기에 우치무라는 좀 더 자세히 그것을 살펴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 순간...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거대한 뱀의 비늘이었다.
“히익...”
불길한 느낌에 방패를 앞세운채 들어온 길로 빠져 나가려던 찰나..
쉬익!!
태앵~!!
긴장감에 잔뜩 움츠려 있던 우치무라의 방패를 튕겨 내며 거대한 아나콘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물상자를 이용해 플레이어를 유인한 몬스터는 이미 도망칠 통로를 차단하고 우치무라를 애워싸고 있었다.
“망했다.”
아나콘다의 크기에서 전해져오는 위압감에 유저들의 입에서 자동으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왜 게임을 하다보면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단지 몬스터 모습에서 풍겨 오는 위압감에 ‘에이 저건 못 이기겠다.’ 라고 스스로 단정 지어 버릴 때.
나 역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게임이 몇몇 있었다.
특히 회귀 하기 전에 재밌게 즐겼던 다X소울 시리즈에서 많이 느꼈지...
광활한 공간에서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한 거대한 기사의 모습을 볼때면 ‘이번엔 몇 번 죽어야 저 녀석을 깰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곤 했으니까.
하지만, 우리의 숙련된 조교인 우치무라는 달랐다.
방패가 튕겨져 밸런스를 잃었지만, 그는 재빨리 구르기 동작으로 거대한 아나콘다의 공격을 피해내었다.
“우와아!!”
그는 회피 동작 이후 이상과 동시에 검을 휘둘러 몬스터에게 상처를 입혔고, 그 모습은 이곳에 보인 유저들에게 탄성을 자아내었다.
“컨트롤로 피할 수도 있구나!!”
다행히 아나콘다의 몸집이 워낙에 커서 그런지, 우치무라가 휘두르는 공격은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비록 HP가 간당간당했지만, 그는 전투중 물약까지 삼켜가며 겨우겨우 아나콘다를 후퇴시키는데 성공했다.
“오오!!”
“멋지다.”
이윽고 턴빈 공간에 혼자남은 우치무라가 번쩍이는 보물 상자를 열어 젖히자, 안에서 수많은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드래곤 엠블렘의 던전에서는 보물 상자의 크기와 광채에 따라 나오는 아이템의 랭크과 갯수가 달랐는데, 이번 보상으로 우치무라는 제법 괜찮은 장비를 손에 넣었다.
잠시 후.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갑주과 검을 장착 시키자, 화면속의 캐릭터는 그런대로 봐줄만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정비를 마치고 다시 던전 속으로 걸음을 옮기는 우치무라의 모습에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유저들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나는 우치무라의 플레이를 그대로 진행시키며 이번에는 하야시와 눈을 마주치자,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하야시가 게임을 플레이 시켰다.
“지휘관 캐릭터가 플레이를 시작한다.”
순백의 갑옷을 차려입은 화려한 기사가 검을 치켜들며 게임을 진행 시키자, 스크린 속에 주의 문구가 떠올랐다.
-전장 지역에서 사망할 경우엔 장비를 잃거나, 능력치에 상당한 패널치가 가해집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그래, 저 문구를 보니 내가 아는 드래곤 엠블렘 맞네...”
“어째 용병 모드는 튜토리얼이고, 이게 본방 같은 느낌이 든다..”
콰아아앙!!
호쾌한 폭격음과 등장한 전장 지역의 막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하야시는 신속히 패드를 움직여 자신의 캐릭터와 부하들의 장비를 동시에 정비하기 시작했다.
-30초 안으로 준비를 맞춰 주십시오. 곧 전투가 시작됩니다.-
“헉.. 뭐야? 시간 제한이 있어?”
두 번째 숙련된 조교인 하야시는 시스템이 제시한 30초 보다 더 빨리 정비를 마친 뒤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10초 안으로 포메이션을 정해주세요.-
하야시는 자신이 거느린 부하들을 뒤로 배치한 뒤, 스스로 최전방에 서서 탱커 포지션에 섰다. 후열에 사제 그리고 양옆에 딜러인 궁수와 마법사를 거느린 그가 포메이션 세팅을 마치자, 긴박한 사운드와 함께 곧바로 문구가 떠올랐다.
-전투를 시작합니다.-
잠시 후.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눈 8명의 캐릭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FIGHT-
< EP. 45 : Tokyo Game Show. (6) > 끝
ⓒ 손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