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5 : Tokyo Game Show. (4) >
‘캬.. 저 오프닝을 이렇게 다시 보다니. 추억이로구나..’
사이버틱 펑크 뮤직과 함께 시작된 레이지 레이서 4의 오프닝은 나가세 레이코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부터 시작했다.
창가로부터 들어오는 광원효과는 전반적으로 90년대의 CG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후. 정장을 차려 입은 그녀가 도심 속 터널로 향하는 순간, 5~6대의 스포츠 카가 거리를 누비며 호쾌한 드리프팅을 선보였는데, 가드레일에 닿을 듯 말 듯 미끄러져 들어가는 리어가 영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마조마 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 쩐다.”
최근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사이버 포뮬러 덕분인지 몰라도,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드리프트는 막혀 있던 속을 뻥 뚫어 주는 듯한 쾌감이 있었다.
그 순간 씬이 바뀌며 터널 안을 걷고 있던 그녀는 부러진 하이힐 굽을 들어올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결국 맨발로 터널을 빠져나온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스포츠 카를 히치 하이킹으로 멈춰 세우며 오프닝 영상이 끝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운전석을 향해 싱긋 웃어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사람들은 환호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사실 조목 조목 따져들고 본다면 왜 출근길에 여성이 혼자 터널 안을 걷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 영상이 역대급 오프닝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표정 연기에 있었다.
부러진 하이힐 굽을 바라보며 한숨 지을 때의 표정.
터널을 빠져나온 뒤 그녀의 긴 한숨으로 앞머리가 팔랑 거리는 모습.
마지막으로 주인공을 향해 아랫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웃어보이는 그녀의 표정 연기는 지금까지의 게임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장면이었다.
“나가세 레이코라...”
“와아.. CG 기술이 엄청 발전했구나...”
“젠장. 저건 언제 출시 하지? 빨리 해보고 싶다.”
하지만 오늘 공개 된 것은 단지 오프닝 영상 하나 뿐..
NANCO는 내년 출시를 기약하며 아이언 피스트 2를 비롯한 센소니와 함께한 신작 컨퍼런스를 종료했다.
“그냥... 내년인가? 제길.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쉬운대로 3라도 사갈까...?”
멋진 오프닝 영상으로 유저들의 기대감을 한껏 불타오르게 만든 센소니의 신작 컨퍼런스는 이후에도 다양한 게임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의인화 된 늑대 한 마리가 거대한 바위를 피해 달리는 ‘크래쉬 밴터’라는 3D 게임은 예상외의 긴박감을 전해주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게임 회사에 대한 센소니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 덕분에 단기간에 수많은 서드 파티를 거느린 그들의 신작 소개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 유저들과 함께 그들의 컨퍼런스 지켜보던 중 나를 찾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펜타곤 부스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정신 놓고 보고 있었더니, 슬슬 우리 컨퍼런스도 준비해야겠구나.’
파도처럼 일렁이는 관람객들 사이를 지나 펜타곤 부스로 돌아오니, 컨퍼런스를 30분 앞두고 수많은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펜타곤 부스를 앞에 둔 나는 좁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가며 양해를 구했다.
“저기, 잠시만 지나갈게요.”
“아저씨. 얼렁뚱땅 새치기하지 말아요.”
“으잉? 아니, 그게...”
“여긴 우리 자리니까. 저기로 돌아서 가란 말예요.”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학생이 말한 뒤 쪽으로 향하자, 이번에는 버추어 아이돌의 특전 의상을 받기 위해 단말기에 대기중인 관람객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어이, 거기 앞에!!”
“아니, 전 그냥 지나만 갈건데요.”
“아까도 그 소리하다가 은근슬쩍 새치기 한 사람 때문에 싸움날 뻔했거든?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뒤로 가쇼.”
헐... 젠장. 부스로 돌아가는 길이 관람객들로 인해 막혀버리다니..
결국 나는 펜타곤 부스를 크게 한바퀴 돌고 나서야 겨우 행사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부스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카오리가 앙칼지게 소리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이사님. 대체 어딜 다녀 오신 거예요?”
“아, 그게...”
“행사 시작 5분도 안 남았거든요?”
“그래? 다행이다. 시간 딱 맞췄네.”
“······. 이사님은 정말 위기감이란 것이 없으시네요?”
“위기감이라. 컨퍼런스 준비 하루 이틀 해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래?”
“그래도 오늘은...”
나는 코트를 벗어 던지고 컨퍼런스를 위한 슈트로 갈아입던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카오리에게 물었다.
“드래곤 엠블렘은 어떻게 됐어?”
“한 시간 전에 출발했데요.”
“좋아, 그럼~”
스탭이 건네주는 마이크를 받아든 나는 무대를 둘러싼 휘장막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시작하지.”
촤아아아아악!!!
빠르게 걷어 올라가는 장막과 동시에 무대 양쪽 끝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드래곤 엠블렘2의 테마곡이 흘러 나오자, 펜타곤 컨퍼런스를 기다려온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시작이다!!”
“드래곤 엠블렘!! 두 번째 에피소드에 대한 정보가 드디어!!”
단지 행사의 시작을 알렸을 뿐인데도, 부스 안쪽 온도가 2~3도는 올라간 것처럼 후덥지근해졌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어서 드래곤 엠블렘 2에 대한 정보를 뱉어내길 원하는 게이머들의 눈빛이 성난 맹수처럼 느껴져 나는 꿀꺽 마른침을 집어 삼켰다.
“인사부터 할까요? 아니면 드래곤 엠블렘에 대한 정보부터 밝힐까요?”
권투선수가 가볍게 쨉을 던지듯 나는 긴장도 풀겸 부스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멘트를 날렸다.
“작년 CES부터 1년을 기다렸습니다. 컴플리트 라온도 출시되었으니, 이젠 제발 발매일 만이라도...”
드래곤 엠블렘 시리즈의 광팬으로 보이는 한 유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뻔했다. 수많은 떡밥만 남긴채 첫 번째 에피소드를 마치고,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그럴만도 하지...
나는 그런 유저의 외침에 빙긋 웃으며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럼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곧바로 드래곤 엠블렘2 두 번째 에피소드. 전란의 시대에 대한 프리젠 테이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오오!!”
마이크를 내리며 부스앞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살짝 허리를 숙이자, 조명 장치가 어두워지며 무대위에 설치된 스크린 속에 한 여성이 등장했다.
어두운 신전 안에서 사제복을 걸쳐 입은 채 두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여성은 드래곤 엠블렘의 팬이라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히로인. 대사제 카트리나 였다.
“아~!! 맞아. 작년 CES 홍보 영상 마지막에 성왕 크로엘이 부활했었지.”
“크흐.. 나는 전편 주인공들의 부활 때문에 더 기대 되더라. 첫 번째 에피소드에선 아무도 등장하지 않았었으니까...”
그의 말대로 CES에서 드래곤 엠블렘의 영상을 공개했을 때, 마지막 부분에서 카트리나와 크로엘의 등장은 당시 관람객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일으켰다.
그만큼 드래곤 엠블렘 1을 재밌게 즐겼던 유저들에겐 그들의 부재가 굉장히 아쉬웠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할까?
덕분에 CES에서 홍보 영상을 공개한 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정보 공개를 더 풀어달라 원하는 게이머들의 요청에 잡지사들도 엄청 피곤했었다고 준페이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어둠 속에서 신께 기도를 올리던 카트리나의 손 안에서 이내 밝은 빛이 퍼져 나가고, 그녀의 기도에 응한 신의 권능으로 빛은 이윽고 한 사람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1년 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퀄리티가 올라간 홍보 영상에 관람객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탄성을 질렀다.
“잠깐만, 저기 나오는 영상이 2D야 3D야...?”
분명히 눈으로 보기엔 손으로 그려진 2D인 것만 같은데, 캐릭터의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이질감에 스크린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고개가 갸웃 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여러분께서 보시는 영상은 카툰 렌더링 방식으로 제작된 셀 애니메이션입니다. 이번에 발매되는 드래곤 엠블렘의 이벤트 컷신과 엔딩 영상은 모두 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커헉...”
“대박. 끝내준다.”
화면속에 등장한 성왕 크로엘은 드래곤 엠블렘 1편에 등장했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플한 멋이 살아있는 푸른 갑주를 걸쳐 입은 크로엘이 카트리나와 함께 신전을 나서자, 그들의 눈앞에 오래 전 함께 싸웠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아!! 폭염의 미레아!!”
“저격술의 카리스!!”
영웅들이 하나씩 나타날 때마다 유저들 마저 감격에 겨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성왕 크로엘은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보며 빙긋 웃음 지었다.
“그럼. 반격을 시작하지.”
그 말을 끝으로 신전 앞에 모여 있던 모두가 푸른 빛에 휩싸이며 전장으로 날아 올랐다.
아스라히 사라지는 영웅들의 빛이 사그러 들 때 즈음.
화면 정중앙에서 드래곤 엠블렘2의 타이틀이 떠오르자, 관람객들은 비명과도 같은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플레이 화면에서 드래곤 엠블렘2는 거대한 판타지 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장대한 맵(MAP)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무대 중앙으로 발을 옮기며 준비된 멘트를 읊조렸다.
“이번 드래곤 엠블렘2에서 여러분은 두 개의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스크린 속의 전장이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물들여지며 현재의 전시 상황을 보여기 시작했다.
“이것이 현재 드래곤 엠블렘 대륙의 전시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게임의 시작과 동시에 이 전쟁터 속에서 용병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전작을 즐긴 유저분들께서는 라온의 데이터를 승계해 캐릭터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캐릭터 승계에 대한 건은 이번 에피소드 1에서 예고했던 부분이기에 그렇게까지 놀라는 이는 없었다. 그 만큼 다들 힘들게 키운 캐릭터였기에 에피소드 1의 주인공을 내팽겨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드래곤 엠블렘 두 번째 에피소드의 실제 구동을 해보기 전에... 여러분들게 먼저 드래곤 엠블렘의 발매일에 대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드디어..”
“벌써 12월이니, 올해 안에는 무리더라도 내년 초까진 나오겠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손목시계를 흘깃 살피며 입을 열었다.
“현재 시간 오후 1시 15분.”
발매일을 알려준다더니 대뜸 시간을 체크하는 나를 바라보며 관람객들은 기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런 게이머들의 반응을 즐기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흐음.. 그러니까... 약 15분 전에 도쿄 아키하바라의 펜타곤 샵에 인계가 되었겠네요.”
“······.”
“뭐...라고요...?”
“다시 말해 오늘이 드래곤 엠블렘 두 번째 에피소드의 발매일이라는 겁니다.”
“커헉!!”
< EP. 45 : Tokyo Game Show.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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