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5 : Tokyo Game Show.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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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길에 꼭 정도(正道)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말인 즉슨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와 반드시 대학교에 들어가야만 좋은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 또한 당연히 그 생각에 찬성한다.
하지만 극도의 경제 불황이 지속되자,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학생이 줄어 들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에선 조금만 기다리면 반드시 경기가 회복 될 거라고 했지만, 그러기를 반복한 것이 벌써 6년째...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만 가고 있었다.
90년대 초반 일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은행 채권 회수로 줄줄이 도산하며 수많은 실직자가 생겨났지만, 그들을 받아들여 줄 회사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실직자들은 대게 일용직과 아르바이트 쪽으로 몰리게 되었고, 수입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소비가 줄어들게 되었다.
한편 인원을 감축 시킨 회사는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이전과 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학력과 스킬을 가진 사람을 원하였는데, 그러다보니 취직의 문턱은 높아지고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취직활동을 위해 대학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기관이 학문을 쌓기 위한 교육 기관보다 취직 활동의 일환으로 작용된 것은 어쩌면 지금 시기 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의 모든 학생들이 들어갈 만큼 대학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단 기간내에 취직을 위한 스펙을 쌓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전문 학원’ 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일반 대학과는 달리 2년제 졸업 과정으로 실무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타이트하게 전수시키는 ‘전문 학원’은 교과 과정부터 대학의 널널한 스케쥴과 비교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9시간을 풀로 활용하여 오로지 취업을 위한 전문 기관이라는 점을 강하게 어필 하였다.
현재 내가 있는 이곳 ‘일본 전자 전문 학원’ 역시 그러한 전문 교육 기관 중 하나였다.
학교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공학과’ 와도 같은 이곳은 PC를 이용한 거의 모든 스킬을 학과 별로 배치해 게임이나 실무 프로그래밍, 디자인 산업등 여러 가지 교과 과정을 나뉘어 가르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곳은 수많은 교과 과정 중 ‘게임 제작’에 대한 기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해 졸업생 중에는 펜타곤을 비롯해 각종 게임 회사에 재직 중인 직장인들도 상당한 편이다.
나는 창가에 기대어 허겁지겁 빵을 삼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다.
“너희 혹시 점심 굶었니...?”
“아뇨. 다 챙겨 먹었는데요.”
입술위에 슈크림을 묻힌 채 안경을 쓸어 올리는 남학생은 나를 향해 베실베실 웃어보였다.
하긴 18살이면 뭐 먹어도 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긴 하지...
하지만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참 전투적으로 식사 하는구나..
그때 동아리 학생들 중에 몇 안되는 여학생인 스즈코가 나에게 다가와 빵 하나를 내밀었다.
“선생님은 안 드세요?”
“난 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먼저 먹었으니까 걱정마.”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래도 여자라고,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맙긴 하네.
양 볼을 부풀리며 슈크림 빵을 한 입 베어문 그녀는 나를 향해 살포시 웃어 보였다.
사실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전문 학원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게임 제작 학과들 중에서도 상위 그룹에 속하는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 전자 전문 학원은 ‘게임 제작’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도 세부 항목으로 학과를 배치 하였는데, 게임 기획, 게임 프로그래밍. 그리고 캐릭터 디자인과 더불어 작년에 신설 되었다는 3D 그래픽 학과까지 총 4개의 학과 학생들이 모인 동아리였다.
지난 5월. 이 학원의 대 강당에서 게임 업계에 대한 세미나까지 열은 이 후.
학생들의 요청과 지도 교수의 간청으로 나는 가장 재능 있는 학생들을 선출해 ‘비밀리에’ 특별 수업을 맡고 있었다.
내가 맡은 클래스의 총 인원은 20명. 그 중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버는 학생도 있어, 정규 수업 외에는 오늘처럼 10명 만 작업하는 변동 사항도 있긴 하지만...
각 학과에서 상위 5등 안에 들어가는 학생들 만으로 꾸려진 이 동아리는 학원에서 도쿄 게임 쇼를 대비한 프로젝트 팀이었다.
도쿄 게임쇼에서는 게임 회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재 육성을 위해 교육 기관의 부스 신청도 따로 받았는데,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제작하면 얼마든지 게임쇼에 출품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실무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이라 그런지, 현업에 종사하는 선생들 위주로 학과가 운영 되는 탓에 학생 치고는 다들 어느 정도 기본기가 되어 있는 편이었다.
“프로젝트 진행률은 어때?”
나의 질문에 스즈코는 입안에 있던 빵을 꿀떡 삼키며 말했다.
“아직 군데군데 버그가 있긴 하지만, 나름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잠깐 내가 봐줄까?”
그러자 뒷편에서 다먹은 빵봉지를 정리하던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가 마지막까지 해결하고 싶어요.”
쳇... 아무튼 다들 고집하고는.. 누가 가르쳤는지 제자들 잘 키웠네~
사실 내가 이 동아리를 맡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최근 업계에서는 모두가 게임의 판매량에만 신경을 쓰는 탓에 메이저급 게임 회사에서도 새로운 IP 대신 기존의 시리즈 물에만 집중하고 있는 추세였기에 신선함이 떨어졌다.
거기다 아직까지 센소니와 NEGA. 그리고 펜타곤 중 어느 곳 하나가 업계를 평정했다고 하기엔 부족했던 시기라, 다들 메이저급 회사들 챙기기에만 급급해서 인디 게임이 눈에 들어 올리도 만무하고...
‘하지만, 두고 봐라. 쇼가 시작 되고 나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테니.’
나는 어느새 자리로 돌아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들 작업 하기 전에 한가지 말해줄 것이 있는데.”
나의 목소리에 학생들의 고개가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너희들 이번 프로젝트가 졸업 작품전을 대신 하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럼요.”
“그래서 말인데, 아마 내 예상으로는 이번 게임이 도쿄 게임쇼에 출품하고 나면 이곳 저곳에서 너희들에게 입사 제의가 들어올거야.”
“오오... 설마 그중에 펜타곤도 있나요?”
한 학생의 질문에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너희에겐 미안하지만, 펜타곤에서는 너희들 중 단 한 명도 데려 가지 않을거다.”
“네에!?”
나의 확언에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 이들을 만나 자기 소개를 했을 당시 거의 모두가 펜타곤을 들어가고 싶은 회사 1지망으로 선택했기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일 수 있었다.
거의 울상이 되어 가는 학생들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뒤에 말을 이어 붙였다.
“나는 너희를 데리고, 조그만 게임 소프트 회사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네에...!?”
“물론 회사 규모로 따지면 펜타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급여와 복지 수준은 동일하게 적용 될 거야.”
“선생님. 하나 질문 드려도 될까요?”
“물론.”
“선생님은 펜타곤의 이사직에 있지 않으신가요? 따라서 저희가 만드는 게임은 대부분 펜타곤에 속하게 될텐데, 어째서 그런 피곤한 일을 하시는 건가요?”
학생의 질문에 나는 잠시 입주변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재밌으니까.”
“네?”
“네 말대로 어느 한 플랫폼에 안주하게 된다면 굉장히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정 수준의 게임을 뽑아 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언 피스트의 난코라던가 스트리트 파이어의 캡코 같은 경우엔 한가지 플랫폼에 만족하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기종으로 자신들의 게임을 출시 하지. 그러는 중에 센소니라던가 NEGA의 러브콜을 받기도 하고, 그건 우리 펜타곤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나는 너희가 좀 더 다양한 환경에서 주목 받으며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너희 스스로의 값어치를 올려주는 훌륭한 게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번 게임 쇼가 너희들 인생에 굉장한 전환기를 가져다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들 그만한 자격이 있고, 노력해 왔으니까.”
“아아...”
“그럼 이상으로 막바지 작업을 시작해 볼까?”
“네!!”
내 조언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학생들이 작업에 임하는 분위기가 확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에 대해선 나 역시도 오래 전부터 고민해 왔던 부분이었으니까.
내가 만드는 게임은 당연히 펜타곤의 기기로 유통이 되어 판매 된다. 그리고 카와구치씨가 만들어낸 파이널 프론티어 시리즈 역시 차기작은 컴플리트 라온으로 발매 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펜타곤은 기존의 역사와 달리 콘솔을 만들어 내는 퍼스트 파티 업체가 되었으니까...
최근 카와구치씨와 수많은 파이널 프론티어 시리즈를 만들어 내었던 서브 디렉터 노무라씨가 새로운 파이널 프론티어 시리즈의 진두지휘를 맡으며 시리즈 7번째 작품은 게임 업계에 전례없는 ‘대격변’을 예고하고 있었다.
3D 폴리곤을 활용한 최초의 RPG게임 ‘파이널 프론티어7’은 본래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기어 스테이션과 NEGA 새턴의 승부에 종지부를 찍어버린 작품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컴플리트 라온이 발매된 지금. 파이널 프론티어7은 제작이 완료되면 당연히 자사의 콘솔로 출시될 것이 불보듯 뻔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토록 짜릿했던 콘솔간의 전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의 게이머들에게 큰 죄를 짓는 듣한 기분이든 나는 한가지 재밌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나의 불씨가 사그라 들었다면, 또 다른 불씨를 태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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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첫째주 주말.
“우와아아아!!!!!!”
일본 오다이바에 위치한 빅사이트 건물 앞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 들었다.
4개의 역 피라미드형 구조물로 이루어진 이곳은 총 10개의 전시홀과 무료 전망대가 있어 국제 종합 전시장으로 자주 쓰이는 곳이었다.
곧 행사 개장을 앞두고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나는 잠시 펜타곤 부스를 벗어나 ‘일본 전자 전문 학원’ 부스로 향했다.
“아, 선생님~!!”
펜타곤이나, 다른 회사들 비하면 전문 학교에 배정된 부스의 규모는 너무나 협소 했지만, 아이들은 그것조차 상관 없는 모양이었다. 공교롭게도 NEGA의 부스와 인접한 위치였기에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NEGA 쪽에서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왔지만, 그런건 아무 상관 없었다.
“준비는 어때?”
나의 물음에 PC 앞에 앉아 있던 스즈코가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빙긋 웃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그래 그럼 이따가 컨퍼런스 발표할 때 잠깐 들리마.”
그때였다.
“핫! 하아앗!! 핫!! 우랴라~!!”
... 아니 여기가 무슨 격투기장도 아니고 난대 없이 기합 소리라니...?
걸걸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NEGA 새턴 부스위에 가라데 복을 입고 있는 한 남자가 무대 위에서 지르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헐... 저 사람은...”
“와아~!! 대박이다!!”
“네가타 산시로다!!”
일명 NEGA saturn 시로(해라!!)
라는 말장난으로 탄생한 CF의 모델인 그는 순전히 이름 덕분에 NEGA 새턴의 홍보 대사가 되었다.
하지만 단지 이름만으로 유명한게 아니라...
저 사람이 바로 일본의 초대 특촬물인 가면라이더 1호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지.
‘아무리 경영에 서툰 NEGA 라도 이번 도쿄 게임쇼가 그들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라는 걸 인지한 거겠지.’
앞으로의 콘솔 싸움은 게임도 게임이지만, 마케팅이 상당히 중요할 테니까...
< EP. 45 : Tokyo Game Show. (2) > 끝
ⓒ 손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