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4 : 츠바키의 부탁. (6) >
스크린 속에서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천사와도 같아서, 모두가 숨죽인 채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첫 번째 타이틀 곡인 ‘안아주세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이 곡은 마치 츠바키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는 듯한 느낌 마저 들정도였다.
이윽고 그녀의 노래가 끝나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관객들과 마주한 그녀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버추어 아이돌의 사와노 츠바키 역을 맡고 있는 동명(同名)의 ‘사와노 츠바키’입니다. 먼저 저의 라이브를 보러와 주신 여러분께 이렇게 스크린을 통해 인사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스크린 속은 그녀는 숨이 가쁜지, 잠시 호흡을 고르며 명치를 움켜 쥐었다.
“여러분께서 저희들의 공연을 보러와 주신 그 날이 후 줄 곧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얼른 나아서 동료들과 함께 당당히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그때도 꼭 와주실 거죠?”
그녀의 물음에 나는 무대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지금 스크린 속의 영상은 녹음이 아닌 교차 생중계이기에 여러분 들의 함성을 그대로 그녀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부디 그녀의 쾌유를 원하시는 분께서는 그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입니다!!”
“꼭 갈게요~!!”
“빨리 나아서 무대에서 보길 바랍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처음 싱글곡이 발표 되었을 때부터 팬입니다. 어서 퇴원하길 바라겠습니다!!!”
유저들의 외침이 그녀에게 닿았던 걸까?
그녀는 커다란 눈망울에 어느새 방울 방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녀는 객석에 앉아 있는 유저들을 향해 몇 번이고 허리 숙여 인사 한 뒤, 흘러내린 머릿결을 쓸어 올리며 웃어보였다.
하지만 단 한 곡만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볼은 이미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목덜미와 이마에 식은 땀을 흘러 내린 걸로 보아 결코 츠바키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로 괜찮으려나?’
내심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츠바키의 얼굴을 떠올리니 여기서 내 마음대로 라이브를 중지 할 순 없었다.
‘만일을 대비해 의사 선생님을 대기 시켜두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곧바로 대처할 수 있겠지.’
그때 스크린 속의 그녀가 관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어서 여러분들에게 들려 드릴 곡은...”
설마 츠바키.. 지금 상황에서 셰릴의 노래를 부르려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녀의 몸 상태가 온전했다면 분명 특별한 무대가 되겠지만, 현재 그녀의 컨디션으로 파워풀 한 셰릴의 곡을 소화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지명한 콜라보 상대는 모두의 예상을 깬 의외의 상대였다.
아니, 조금만 더 머리를 굴렸다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겠구나...
“제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그 날. 저를 대신해 노래해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 그럼 설마?”
“오오!? 이건 또 새로운 느낌인데?”
그 날 현장에 있었던 유저들은 그녀의 의도를 단번에 깨달았는지, 스크린을 향해 소리치며 환호했다. 그 순간. 츠바키의 등 뒤로 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단발 머리의 그녀는 무대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 자신의 통기타를 살포시 무릎 위에 걸쳐 들었다.
‘칸나...?’
예상치 못한 그녀의 등장에 미처 관객들이 탄성을 내지르기도 전에 츠바키와 눈을 맞추친 그녀는 자신의 첫 타이틀 곡인 ‘응원가’의 기타 반주를 튕겼다.
“그대여~ 너무나 힘든 하루 였죠...”
노래 도중 서로를 마주보며 웃어 보이는 두 사람의 미소에 객석에 앉아 있던 유저들 마저 따스한 눈길로 그녀들의 라이브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 것 참. 히로인들의 듀엣 라이브는 나중에 시도하려고 했었는데...’
하지만 화면 속의 두 사람을 바라보니, 연출을 위해 억지로 설정을 맞춘 것보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칸나의 깜짝 등장으로 잠시 객석이 술렁였지만, 츠바키의 목소리로 듣는 당신을 위한 응원가는 에리카 버전과는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 주었기에 유저들은 어느새 두 사람의 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내가 그대를... 항상 응원 할게요.”
노래의 끝마디와 함께 서로를 마주보며 노래 한 두 사람에게 객석에 앉아 있던 모두가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스크린 속에 그녀들에게도 들렸는지, 칸나는 수줍게 웃으며 츠바키에게 다가와 그녀와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를 마쳤다.
“와아~!! 최고다!!”
“휘이이익~!!!”
“지금까지 라이브 중에 최고의 명장면이었어...”
“츠바키와 에리카의 조합이라니...”
칸나의 등장으로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츠바키의 무대는 내가 보아도 여태 진행해온 라이브 중 최고의 무대를 보여 주었다.
단지 츠바키의 목소리로 들려준 에리카의 타이틀곡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걱정해 무대까지 찾아온 칸나의 마음씨에 감동 받을 것일 수도 있었다.
객석으로 부터의 박수는 멈출줄 몰랐고, 스크린 속에 손을 맞잡고 있는 츠바키와 칸나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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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어 아이돌의 두 번째 라이브 대결을 끝나고, 츠바키와 셰릴의 공연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게이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칸나와 콜라보를 이룬 츠바키의 무대는 훌륭했지만, 혼자서 무대를 장학하는 강렬한 카리스마의 셰릴 역시 화려한 퍼포먼스와 가창력으로 팬심을 휘어잡는데 성공했다.
“이 정도라면 버추어 아이돌은 새로운 장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회의실에서 버추어 아이돌의 판매 그래프를 살피던 카와구치 대표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간의 판매 추이로 예상 컨데, 현재 펜타곤 소프트에서 발매한 소프트들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반드시 들어갈 만큼 기록적인 판매 속도를 보이는 버추어 아이돌은 소프트 뿐만 아니라 컴플리트 라온과 더불어 휴대용 라온까지 충분히 견인하고도 남는 최고의 인기 타이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버추어 아이돌이 더욱 무서운 것은 아직도 발매할 예비 캐릭터가 7명이나 남았다는 것이지...
만약에 이대로 인기가 유지 된다면, 언젠가 아이돌 가수의 꿈의 무대라는 도쿄돔 라이브를 펼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럼 이상으로 버추어 아이돌의 판매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제 2 개발 팀장님 하야시는 회의실에 모인 직원들에게 정중히 허리숙여 인사를 마친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내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카와구치 대표가 하야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카오리양과 신혼 여행은 잘 다녀왔나요?”
두 번째 라이브를 마치고 카오리와 함께 일주일 동안 신혼 여행을 다녀온 하야시는 햇빛에 그을려 가무잡잡한 피부가 되어 돌아왔다.
하야시는 쑥스러웠는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회의실은 잠시 동안 하야시의 결혼을 축하하는 덕담이 오고 갔다.
언제나 그렇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회의를 종료하고 나오는데, 카와구치 대표가 나를 따로 불러 세웠다.
“준혁씨. 잠시 대표실로 와주시겠습니다.”
“아, 네. 같이 가시죠.”
잠시 후. 카와구치 대표와 함께 쾌적한 전망의 대표실로 들어온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댄채 딱딱하게 굳은 목을 풀었다.
“피곤이 쌓인 모양이군요.”
“그러게요. 직급이 높아도 어째 일은 줄지가 않네요.”
“높은 직급에 위치한 사람이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것은 그 만큼 회사가 공정하게 잘 돌아간다는 뜻이겠죠.”
카와구치 대표 역시 피곤했는지,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며 나의 맞은 편에 앉았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서류가 들려 있었는데, 그는 테이블 위로 서류를 나에게 내밀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일전에 준혁씨께서 원하시던 사안이 센소니 측과 협의 하에 통과 되었습니다.”
“이런, 이제 좀 한 숨 돌렸다 했더니...”
“쉴 틈이 없지요?”
“그래도 미국으로 장거리 출장 가는 것 보다는 낫네요.”
“저 역시 그 부분에선 동감입니다.”
“그런데, 민텐도 쪽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러자 카와구치 대표는 나의 질문에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든 설득해보려 애썼지만, 민텐도 측과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가요.”
“역시 저보다는 준혁씨가 가는게 더 나았을지도...”
“아뇨. 오히려 그 자리에 제가 가는 것은 역효과 였을 겁니다.”
“그래도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즐기는 쇼에서 민텐도가 빠진 다는 것은 조금 아쉽군요.”
“할 수 없지요. 그렇다고 앞으로 해마다 진행 될 행사인데, 첫 단추를 잘 끼워놔야 앞으로도 휘둘릴 일이 없지요.”
“그 말엔 저 역시 100% 동감합니다.”
“참여 의사를 밝힌 업체는 어느 정도 되나요?”
“일단은 저희와 센소니, 그리고 NEGA를 비롯해 대형 서드 파티 제작사도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중소 기업들까지 합치면 약 83개의 업체가 참여할 예정입니다.”
“예상보다 참여율이 나쁘지 않은데요?”
“이번 행사만 잘 마무리 한다면 내년부터 참가하는 업체들도 더욱 늘어나겠죠.”
카와구치 대표를 보고 내용을 들으며 서류를 살피던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테이블에 서류를 내려 놓았다.
“그럼 슬슬 준비를 시작해 볼까요? 제 1회. 도쿄 게임쇼.”
“게임쇼라... 제목만 들어도 굉장히 설레이는 이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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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초에 예정된 도쿄 게임쇼는 민텐도의 불참 소식으로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새로운 슈퍼 마리지 시리즈의 그래픽과 민텐도 64의 실물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가차 없이 배신한 민텐도는 제 1회 도쿄 게임쇼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민텐도가 없는 게임쇼는 진정한 게임쇼가 아니다.-
물론 민텐도가 패밀리와 슈퍼 패밀리를 앞세워 세계적으로 게임 업계에 부흥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그들을 왕으로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권좌를 너무 오래 비워두었지.
1995년 한해 동안 센소니와 NEGA 그리고 펜타곤이 자사의 최신 기종으로 차세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무렵 민텐도는 아직까지 민텐도 64에 대한 정보를 극히 아끼고 있었다.
알려진 것이라곤 단지 CD가 아닌 롬 카트리지를 사용한다.
현재 출시된 콘솔 중에서 가장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기계가 될 것이다.
민텐도 64로 제작중인 슈퍼 마리지 64는 현재까지 게임에 대한 틀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
잡지에 공개된 민텐도의 선전 문구로 인해 유저들의 기대는 이미 폭발을 넘어서 불발탄이 아닌가 의심을 하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시기 적절 할 때, 터뜨릴 건 터뜨려 줘야지. 바로 이렇게 말야.
민텐도의 불참 소식이 전해진 패미통신 특집호 기사의 다음 장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드래곤 엠블렘 2 두 번째 에피소드. 제 1회 도쿄 게임쇼에서 정식 버전 최초 공개.-
< EP. 44 : 츠바키의 부탁. (6) > 끝
ⓒ 손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