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34화 (234/252)

< EP. 44 : 츠바키의 부탁.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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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의 첫곡인 당신을 위한 ‘응원가’가 지친 일상을 마친 사람들을 위한 노래였다면, 그녀의 두 번째 곡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설레이는 마음을 담은 가사가 굉장히 인상적인 노래였다.

비교적 잔잔했던 분위기의 첫 번째 곡과는 달리 우쿠렐레의 통통 튀어오르는 리듬과 함께 노래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짓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스크린 속에 클로즈업 된 그녀의 얼굴이 객석을 향해 윙크를 날리자, 순간적으로 데시벨이 100dB을 가리킬 정도로 라이브 홀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와아... 정말 어마어마한데요?”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칸나가 객석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게이머들의 함성으로 인해 그녀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 조차 듣지 못했던 나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긴장은 조금 풀렸어?”

“오히려 대기실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직접 객석이 가득 찬 모습을 보니 엄청 떨리는데요? 지금쯤 오사카에서 라이브를 준비하고 있는 아오이도 저랑 비슷한 기분이겠죠?”

“아마도 그렇겠지.”

콘노 아즈사를 연기하는 하마자키 아오이는 버추어 아이돌 그룹으로 선발된 연습생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였다. 이제 갓 중학교 1학년에 올라온 그녀의 나이는 올해로 12살.

덕분에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존재였다.

다만 전에 런칭 행사의 라이브 때도 그랬지만, 살짝 무대 공포증이 있어 다른 히로인들 보다 조금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 쉬며 심호흡을 하는 칸나를 잠시 바라보다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겠어?”

그러자 칸나는 두 눈을 부릅 떠보이며 대답했다.

“제 노래로 무대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보이겠어요.”

“어라...? 그 말.. 어디선가 들은 거 같은데?”

“나기사 언니가 런칭 행사 때 했던 말이에요.”

“아~ 맞다.”

나기사는 버추어 아이돌에서 셰릴을 연기하는 성우의 이름이었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말투와 행동력으로 버추어 아이돌의 맏 언니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이는 츠바키와 같지만, 게임속 캐릭터처럼 실제로도 성숙한 이미지의 나기사는 다른 연습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사실 여기서 누구 하나를 제한다는 것도 참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

무대 의상을 점검하며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칸나를 바라보니, 씁쓸한 마음이 더욱 거세지는 것을 느낀 나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애써 스크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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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어 아이돌의 첫 번째 라이브.

에리카 VS 아즈사 공연은 다행히 별 탈 없이 진행 되고 있었다.

신곡 발표 이 후. 예정대로 서로의 타이틀 곡을 바꿔 부르는 파트에서는 그 동안 거리 공연으로 대담해진 칸나의 경험이 진정으로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미소를 잃지 않고 노래한 그녀의 모습에 많은 관객은 갈채의 박수를 보내주었고, 마지막 무대인 당신을 위한 응원가를 끝으로 칸나가 관객들에게 인사를 마치자 객석 어딘가에서 조그맣게 앵콜을 원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한 곡 더~!!”

“후쿠오카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이대로 돌아가긴 너무 아쉽습니다!!”

“전 홋카이도에서 왔다니까요~!!”

“이번에도 츠바키의 노래를 대신 불러 주세요!!”

“아, 맞아. 그때 에리카 버전의 ‘안아주세요.’ 좋았었지..”

“앵콜~ 앵콜~ 앵콜~ 앵콜~”

객석에서 끈임 없이 흘러나오는 요청에 무대 위에 있던 칸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나 훌륭했던 그녀의 라이브에 나조차도 멍하니 그녀의 노래만 듣고 있던 터라 객석의 반응은 나로서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츠바키의 노래를 또 한 번 부르는 것은 다음 주에 있을 그녀의 라이브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대비해 나는 결국 그녀가 예전에 불렀던 또 다른 곡으로 앵콜에 응할 것을 허락했다.

그러자 칸나 역시 무대 중앙에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눈을 감은 채로 노래의 첫 소절을 떼었다.

“처음 그대를 본 순간. 슬픈 내 사랑을 난 알았죠...”

그 순간 객석에서 앵콜을 외치던 유저들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 버렸다.

“어? 이 노래는... 설마?”

“설마.. 설마아~!!”

“헐.. 대박.”

“신의 선물의 엔딩곡을 부른게 설마 저 분이었던 거야?”

올해 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신의 선물’ 엔딩곡은 칸나가 직접 가사를 붙여 화제가 된 곡이었다.

하라주쿠의 거리 공연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제보에 많은 이들이 역 앞의 레코드 점을 찾았지만, 나와 계약을 마친 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서 노래하지 않았다.

대신 펜타곤 샵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따로 그녀의 음악을 다운로드 받을 수있게 해두었는데, 현재까지 신의 노래의 엔딩곡은 다운로드 수만으로 거의 10만건에 육박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곡이었다.

“설마 여기에서 이 노래를 들을 줄이야...”

유저들은 기대 이상의 선물을 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그녀의 노래에 빠져들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이런 내 맘이 들킬까 두려워~ 하루종일 그대의 곁을 서성이며 걷고 있어요.”

열기로 가득했던 라이브 홀을 따듯하게 감싸주는 듯한 신의 선물의 엔딩곡은 그 이름에 걸맞게 객석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이윽고 그녀의 마지막 노래가 끝이 나고 객석을 향해 허리숙여 인사하는 칸나의 머리 위로 라이브의 끝을 알리는 커튼이 내려오자 객석에 있던 사람들이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큰 박수를 보내 주었다.

직접 노래를 부른 건 아니었지만, 이 광경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나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직접 무대 위에서 노래한 칸나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 역시 두려움을 이기고 성공적으로 라이브를 마친 그녀의 용기에 힘찬 박수를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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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입니다. 대박!! 진짜 마지막 앵콜에선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니까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갈 걸. 설마 에리카의 성우가 신의 선물의 엔딩곡을 부른 사람이었을 줄이야.]

[그러게 제가 전부터 두 곡의 음색이 비슷하다고 했었잖아요. 그 때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엄청 까였었는데...]

[제피로스님. 제가 그때 말도 안된다고 게시글 올렸던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이제와서 너무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죄 드려요. 으헝헝...]

에리카의 라이브 행사가 끝나고 이틀 뒤.

버추어 아이돌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온통 에리카의 성우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결과적으로 에리카의 라이브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신의 선물의 엔딩곡은 유저들에게 제대로 먹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틀동안 에리카의 데뷔 포인트가 약 1.5배로 껑충 뛰어 오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이사님. 또 버추어 아이돌 커뮤니티 대화방에 계십니까?”

“엄연히 이것도 시장 조사거든?”

“암요~ 그렇고 말구요.”

옆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던 하야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옮기던 나는 얄미운 하야시를 향해 한마디 내뱉었다.

“내일 카오리랑 웨딩 드레스 보러 간댔지? 이번이 3번째였나?”

“······.”

“과연 내일은 그녀가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고를 수 있을까?”

아무리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라도 버틸 수 없는게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카오리와의 쇼핑이었다.

물건 하나 사기 위해서 최소 다섯 군데 이상의 매장을 살피는 그녀 덕분에 신혼집에 들어갈 가구를 고르는데만 일주일 이상을 허비한 하야시는 이제 쇼핑의 ‘쇼’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모양이었다.

워낙에 심플하게 사는 주의이기에 집에 가재도구가 별로 없던 하야시는 요새 신혼집을 차리는데에 모든 체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식장에서 입을 웨딩 드레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카오리의 변덕으로 인해 지난 주말 내내 웨딩샵을 돌아다닌 하야시는 그것도 부족해 내일 연차까지 써서 그녀의 드레스를 함께 골라주러 가야만 했다.

“이사님. 결혼이란게 이렇게 힘든 것이었습니까?”

하야시의 질문에 모니터를 응시하던 나는 턱을 쓸어 내리며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하야시. 지금 네가 하는 카오리와의 쇼핑은 말이지...”

“불안하게 왜 갑자기 목소리를 깔고 그러세요..”

“아주 아주 긴 이야기의 프롤로그와도 같은거야.”

“허억...”

“작년 내내 퇴근길에 유키한테 아이스크림 배달 했던 내 모습 아직 기억하지?”

“어억...”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키는 카오리 만큼 극성은 아니었기에 어찌보면 하야시가 조금 측은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힘내라. 하야시.. 그래도 결혼하고 나면 나름 좋을 면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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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와 아즈사의 대결은 결과적으로 에리카의 승리로 끝이 났다.

라이브 행사에 방문한 인원수는 비슷했지만, 결과적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데 있어선 칸나가 훨씬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의 큰 행사를 마쳤지만, 숨돌릴 틈은 없었다.

곧바로 이번 주말에는 츠바키와 셰릴의 라이브 공연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 공연은 나 역시도 굉장히 기대하는 바가 컸는데, 그 이유는 바로 츠바키의 신곡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 녹음 해두었던 두 번째 곡을 대신해 칸나와 작업한 곡을 선공개 하게 되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우선 첫 번째 준비해 두었던 애니메이션 라이브 영상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병원측에서 그녀의 외출을 허락해 주지 않았기에 그녀의 라이브는 병원에 설치된 강당에서 이원 생중계로 송출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공연을 준비하는 스탭들은 츠바키가 입원한 병원측과 협의를 위해 상당히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셰릴과 츠바키의 공연 당일이 다가왔다.

먼저 츠바키의 라이브 행사는 펜타곤 샵 2호점의 이벤트홀에서 열리게 되었다.

본래라면 컴플리트 라온의 런칭 당일 예정되어 있었던 그녀의 라이브가 한달하고도 보름이 걸려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츠바키에 맞서는 셰릴의 무대는 우에노 공원에 있는 이벤트 홀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둘다 게임 소프트 완판을 기록한 주인공들 답게 행사 전부터 라이브 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캠코더를 이용해 공연 전에 모인 수 많은 관객들의 모습을 담아내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이 광경을 츠바키가 봤었다면 굉장히 좋아했을텐데...’

행사장에 마련된 츠바키에 대한 굿즈 아이템을 구입하는 모습.

그리고 라온을 이용해 라이브 티켓을 인증한 팬들이 객석을 메우는 모습까지 촬영을 마치고 나자 병원 쪽에 있는 스탭에게서 공연 준비를 마쳤다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내가 스탭들에게 지시를 내리자 라이브 홀의 스피커에서 공연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와아.. 드디어 라이브를 듣는구나.”

“런칭때 공연 못봐서 아쉬웠는데, 설마 오늘도 취소 되는 건 아니겠지?”

그녀와 마주 한다는 기대감으로 가득찬 관객들의 목소리에 나는 착찹한 마음으로 공연 시작을 알리는 콜사인을 보내었다.

틱...

천장의 조명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어두워 지자,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무대 의상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카메라를 향해 미소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째 전보다 더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카메라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건너편에 있는 우리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인 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곧장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가 직접 가사를 쓴 두 번째 노래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화면을 바라보던 내 두 눈에 나도 모르게 눈물 방울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저기, 만약에

모든 것을 내버릴 수 있다면

웃으며 살아가는게 조금은 편해질까?

또 다시 가슴이 아파 오니까.

이제 아무 것도 말하지 말아줘.

저기, 만약에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울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이제 아무 것도 보여 주지 마.

아무리 너에게 다가가도

나의 심장은 하나 뿐...

너무해.. 너무해..

내 마음은 이렇게

부숴지고, 찢어 지는데...

아직 너는 나를 안고서

놓지 않고 있어...

이제... 됐어...

< EP. 44 : 츠바키의 부탁. (5)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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