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33화 (233/252)

< EP. 44 : 츠바키의 부탁.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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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르기 전, 객석에서 들려오는 관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슬쩍 옆에 걸린 무대의 커튼을 들춰본 나는 이벤트홀을 가득 찬 사람들의 모습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인데?’

물론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아무로 나미에’ 라던가 X-JAPAN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지만, 단지 게임 캐릭터를 이용한 라이브 치고는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든 셈이다.

더구나 정식으로 컨텐츠가 시작된 것이 한달 보름 정도 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버추어 아이돌이 가진 잠재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 내에 많은 팬을 보유하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게임을 대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 덕분이라고 답해야 할까?

하지만 잠시 생각을 해보니, 그들이 이만큼 모인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정답은 ‘컨텐츠’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정식 데뷔를 놓고 치루는 이른바 서바이벌 매치의 긴장감.

하지만 그보다 더 게이머들을 이끌게 하는 것은 이곳 콘서트 홀에서 얻을 수 있는 다운로드 컨텐츠였다.

이곳에 방문한 관람객들에겐 에리카와 아즈사의 최신곡을 가장 먼저 들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기기에서 새로운 캐릭터 복장과 신곡을 해금(解禁)시킬 수 있는 강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해금이라는 단어를 쓰냐고 묻는다면, 사실 두 번째 라이브에서 사용되는 곡들과 일러스트는 이미 CD 안에 데이터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데이터를 언락(unlock) 컨텐츠라고도 하는데, 아주 작은 용량을 가진 키(Key) 데이터를 이용해 CD 안에 들어 있는 대용량 데이터를 해금 시킬 수 있어, 버추어 아이돌의 컨텐츠를 강제적으로 나마 오래도록 즐기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 기능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다른 게임 회사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는데, 대표적으로 난코의 ‘아이언 피스트2’에서 기간제 언락 방식을 주로 사용했었다.

아케이드 버전에서 100판을 플레이 하게 되면 열리는 숨겨진 캐릭터 라던가, 최종 보스를 클리어한 횟수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캐릭터가 툭하고 등장하는 퍼포먼스에 유저들이 열광하던 기억이 떠올랐던 나는 그 비슷한 방식을 버추어 아이돌에 차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모든 컨텐츠를 언락 데이터에 의존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칸나가 츠바키를 위해 곡을 만든 것처럼 커스텀 데이터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컴플리트 라온에는 약 128메가의 하드 장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이 여유 공간 덕분에 컴플리트 라온은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처럼 메모리 카드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 따로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았다.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은 기계만 생각하면 딱히 비싼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메모리 카드를 이용해야만 게임 플레이를 저장할 수 있었기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었다.

더구나 데이터 저장 자체를 블록화 시켜 게임마다 차지하는 데이터 수치에 따라 2~3개 가까이 데이터를 차지 하였는데, 나중에 메모리 카드를 전부 사용하면 과거의 데이터를 꼭 지워야 했기에 조금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용 콘솔 내부에 하드를 때려 박은 것은 지금 시기에선 굉장히 황당하고 파격적인 서비스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황당한 건 센소니와 NEGA 같은 경쟁 업체의 입장이었고, 파격적인 것은 두 팔 들고 환영한 유저의 입장이었지만...

하지만 신형 콘솔에 하드를 주입 시킨 것은 단지 다운로드 컨텐츠와 데이터 저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컴플리트 라온 안에는 OS가 들어 있거든.’

CD의 시대가 열리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복사 CD였으니까.

컴플리트 라온은 새로운 게임이 나올 때마다 내부 OS를 업데이트 시켜주는 버전 업 데이터가 들어있었다.

그로 인해 콘솔안에서 정품 CD를 인식하는 센서를 망가뜨리는 모드(MOD)칩을 사용 할 경우 CPU 클럭을 강제로 오버시켜 콘솔 내부에서 물리적으로 CPU를 망가뜨리는 기능을 포함 시켜두었다.

이런 효과에 대해서는 설명서를 비롯해 본체 뒷 부분의 봉인 씰에도 고지해 두었기에 아직까지는 복제 CD를 사용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기존 세대에 사용 되었던 카트리지는 생산 자체 만으로도 단가가 너무 비싸기에 모조품을 만들어 제 값을 받고 소비자들을 속여 파는 형태였다면, 이번 CD 같은 경우는 단가가 워낙에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장당 500엔에서 1000엔씩만 받아도 상당히 남는 장사였다.

최근 대만에서 기어 스테이션과 NEGA 새턴용 모드칩을 개발해 강제로 콘솔 개조하는 사례가 잦아지며 현 게임 업계는 상당히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128메가의 하드는 비록 제조 단가의 상승을 불러왔지만, 복제 CD를 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메리트가 작용했기에 회사 내부에서도 만장 일치로 통과 되었다.

잠시 후. 이벤트 홀의 스피커에서 라이브의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웅성이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차츰 잦아 들었다.

무대 옆에서 대기하던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무대 중앙에 서서 옷매무새를 정리 하였다.

“시... 시작하려나 보다.”

무대 위를 걷는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나?

수많은 관객 중에서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얼핏 들려온 순간.

내 앞을 가로 막던 커튼이 위로 치켜 올라가며 관객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우와아아아~!!!”

나는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한번 주욱 훓으며 빙긋 미소 지어보였다.

“카타기리 에리카양의 신곡 발표회에 잘 오셨습니다.”

두 팔을 벌리며 관객들과 인사를 마친 나는 쏟아지는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세워진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올해는 여러분들과 유난히도 많이 마주치는 한 해로군요.”

그러자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객석 쪽에서 작은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1년에 한 번 정도 컨퍼런스를 진행해 왔었는데, 올해는 어쩌다보니 컴플리트 라온을 발대 하고 한 달 반 만에 또 다시 유저들의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에리카양의 라이브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동안 현재 각 히로인들의 성적을 발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버추어 아이돌은 지난 한 달 반 동안 20만 장을 출하하였고, 각 히로인 별로 5만장씩을 발매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현재 완판을 기록하고 있는 히로인이 두 명 있는데요.”

나의 말에 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카타기리 에리카의 팬이다 보니 그녀의 이름이 호명 되길 바랬지만, 아쉽게도 내가 들고 있는 대본에는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셰릴과 츠바사양입니다.”

“아아...”

마치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긴 한숨을 내쉬는 유저들을 바라보니 나 역시 덩달아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버추어 아이돌의 진정한 무대는 지금부터 시작이기에 최후의 결과는 얼마든지 뒤집어 질 수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컴플리트 라온이 출시 되고, 판매 대수가 10만 대를 살짝 넘은 지금. 버추어 아이돌의 판매량은 이미 콘솔을 훨씬 뛰어 넘었다는 점이죠. 이 부분에서 컴플리트 라온을 즐기는 유저 당 반드시 버추어 아이돌을 한 개 이상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콘솔 시장 중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결과입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버추어 아이돌의 히로인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지요.”

“와아... 대박이네..”

“게임기가 10만대 팔렸는데, 소프트가 그걸 초과하다니.”

“하긴 나만 해도 4장 다샀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하네...”

나의 발표에 대해 일부 유저는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꽤나 존재 했다.

그때 무대 안쪽에서 달려온 여 직원 하나가 나에게 쪽지 하나를 전달해주고는 황급히 무대를 빠져 나갔다.

그녀가 전해준 쪽지 내용을 잠시 살핀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마이크를 손에 들었다.

“방금 오사카의 라이브 무대에서도 관람객에 대한 집계를 마쳤나 보군요.”

“오오... 어떻게 됐지?”

“어떻게 되긴 당연히 에리카가 이겼을 거야.”

“글쎄.. 친구한테 듣기론 오사카 쪽도 어마어마하게 모였다던데..”

나는 불안감으로 웅성이는 무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현재 콘노 아즈사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참석한 인원은...”

“으으... 제발..”

“신이시여..”

불안한 표정으로 어서 빨리 결과를 알려주길 바라는 눈동자들...

그 안에서 몇몇 사람은 두 손을 모은채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조그만 쪽지를 손에 든 채로 뜸을 들이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아.. 설마..”

“에리카 양이 진 거야?”

“말도 안 돼!!”

나의 작은 제스처 하나에도 온몸으로 불안감을 표현하는 그들을 위해 나는 쪽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입을 열었다.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파앗~!!

동시에 나의 등 뒤에 있던 거대한 스크린에 오사카 라이브 홀이 비쳐졌다.

“우와아아...!!!”

“허어억!! 뭐가 저리 많아~!!”

“젠장.. 아즈사 팬이 저렇게 많았나!?”

자신들과 거의 비슷한 숫자로 라이브 홀을 메우고 있는 오사카 라이브 홀의 모습에 객석에 있는 유저들의 표정에 묘한 긴장감이 서렸다.

-버추어 아이돌 라이브의 이원 생중계-

나는 화면 속에서 무대 중앙에 서있는 카와구치씨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잠시 후 그 역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보시다시피 현재 라이브는 동시에 진행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전국의 게임 샵에 설치된 단말기를 이용해 오늘의 라이브를 멀리서 응원해 주시는 유저들도 있기에 결과는 라이브가 종료된 후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 적인 라이브를 진행해볼까요?”

“우오오!!!”

상대 진영에 가득차 있는 객석을 바라보니, 파이팅이 넘치는지 유저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쥔채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합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여러분들에게 라이브를 즐기는 간단한 룰을 알려 드리고록하겠습니다.”

“룰?”

“앞으로 매회 진행 되는 라이브에서는 관객 여러분의 호응도를 체크하게 됩니다. 라이브가 종료 된 후에 여러분의 함성 소리를 데시벨로 측정 하여 그 수치 역시 히로인의 데뷔 포인트에 합산 될 예정입니다. 그러니 라이브를 즐겨 주신 만큼 에리카양을 위해 많은 응원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혹시나 곡의 분위기 덕분에 함성이 낮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준비 된 곡 중에는 서로의 곡을 바꿔 부르는 순서도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오오!!! 대박이다..”

단지 새로 발표하는 노래 한 곡 위해 유저들에게 고베까지 찾아오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유저들의 열화과 같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위에서 마이크를 물리자, 거대한 스크린 속에 에리카의 모습이 나타났다.

처음에 당신을 위한 응원가를 부르던 청순한 모습의 그녀를 상상하던 유저들은 초록색 체크 무늬 치마를 입은 귀여운 에리카의 모습에 다양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커헉!!”

“귀.. 귀엽다.”

“내 취향이다!! 내 취향이야~!!”

그때 어느 눈치 빠른 게이머가 자신의 머리를 감싸쥔 채 소리쳤다.

“설마!! 오늘 노래하는 담당 성우도 같은 복장이려나!?”

“오오오!!!!”

그 순간 라이브 홀은 조금 다은 의미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군대 위문 공연을 연상 시키는 라이브 홀의 모습에 무대 한켠에 서 있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이래서 눈치 빠른 게이머는 싫다니깐...”

< EP. 44 : 츠바키의 부탁. (4)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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