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4 : 츠바키의 부탁.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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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의 병문안을 다녀오고 10일 뒤.
버추어 아이돌의 첫번째 라이브 배틀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일본 열도의 게이머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러한 게임 방식을 처음 접한 탓일까?
게임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 일반인들 조차 그녀들의 행보에 제법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일까?
최근 PC통신 커뮤니티에는 컴플리트 라온을 구입해 자신이 좋아하는 히로인을 응원 중이라는 소감이 자주 올라오곤 했다.
“솔직히 처음 이사님께서 버추어 아이돌을 만든다고 하셨을 때는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았었는데, 막상 발매하고 나니 인기가 어마어마 하네요.”
버추어 아이돌의 시스템을 담당했던 하야시는 옥상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피식 웃어보였다.
최근 펜타곤 소프트는 사무실내에서 흡연을 금하였기에 하야시를 비롯한 흡연자들은 이렇게 건물 옥상에 올라와야만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부에 흡연실을 따로 두긴 했지만, 아무래도 너구리 소굴처럼 우글 우글 모여 있는 모습이 영 보기 안 좋았으니까...
금연에 대한 복지 정책으로 석 달이상 금연시에는 상당한 금액의 포상금을 내려주긴 하지만, 하야시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금연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마치 풀 메탈 기어의 주인공인 스네이크처럼 날카로운 인상의 그는 펜타곤 내에서도 손꼽히는 골초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가 오늘 아침 금연 신청서를 내었다.
사유는 ‘본인의 건강을 위해’라고 적어두긴 했지만, 이건 누가 봐도 카오리의 압박이라는 점이 너무나 확연히 느껴졌다.
“그게 마지막 한 대냐?”
“공교롭게 한 대 더 남긴 했는데, 어떻게 마지막으로 같이 어울려 주시겠습니까?”
텅빈 답배갑 한 구석에 놓인 돗대를 나에게 넘겨준 하야시는 손수 불까지 붙여 주었다.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 들인 나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신주쿠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민텐도를 퇴사하고 벌써 6년이라니, 시간 참 빠르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 6년 사이에 게임의 트렌드도 확실히 바뀌었죠. 일본은 아직 콘솔이 강세지만, 최근 미국에선 PC 게임 매출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야시의 말이 옳았다.
앞으로 게임 업계는 꽤나 장시간 동안 PC 게임과 콘솔 게임이 양분화 되어 진행 될테니까.
특히나 최근 ‘프로스트’사에서 디아블로 시리즈를 발표하고 난 뒤 쿼터뷰 방식의 핵&슬래시 게임들이 슬슬 발톱을 드러낼 시기가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하야시 역시 그들이 최초로 공개한 디아블로 시리즈의 게임 화면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어두침침한 던전 속에서 쉴새없이 몰려오는 적들과 상대하는 RPG 방식은 여태 것 그가 즐겨왔던 RPG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때까지 ‘게임’이라는 컨텐츠 안에서 일본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역시 세계는 넓군요.”
“그래서 이 바닥이 질리지 않는 거지. 무시 무시한 포팅 능력을 가진 괴수들이 해마다 새로운 신작을 내고 있으니까.”
“그런 이사님 역시 무시무시 한 괴수들 중에 하나이지 않습니까~ 발매하는 게임들마다 유저들을 벙찌게 만드는 독특한 게임성의 대가.”
“그만해라~ 낯 간지럽게 왜 그래? 너 답지 않게.”
“어색하신가요?”
새하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히죽 웃어 보이는 하야시의 모습에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왠지 이런 칭찬엔 아직까지도 익숙치가 않다.
분명 세간에 대한 나의 평가는 이미 일본을 넘어 북미 지역과 유럽에도 꽤나 이름을 떨친 상태이긴 했지만, 뭐랄까... 예전에 비해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라고 해야하나?
가끔 그런 묘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다.
모든 걸 나 혼자 짊어진 채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 다녔던 10년 전의 내가 얼핏 그리워 진다고 해야하나?
“이 봐. 하야시.”
“네. 이사님.”
“우리 모든 걸 내려 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자 하야시의 미간이 쩌억 하고 갈라지며 순간적으로 나에게서 몇 걸음 물어났다.
“설마 이사님. 그거 드래곤 엠블렘 2에 대한 이야기 입니까?”
이런 내가 너무 앞뒤 생각없이 말을 내뱉었나?
그래도 그렇지. 그냥 내뱉은 말 한 마디에 저 포커 페이스가 새하얗게 얼굴이 질리다니, 사이킥 포스를 비롯해 밥 먹듯이 프로젝트를 뒤집어 엎었던 것에 대한 불신감이로군...
“아냐, 아냐. 하야시. 그게 아니고...”
“그럼 무슨 프로젝트 말씀이십니까?”
“끄응... 아냐, 됐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일전에 츠바키의 병문안을 다녀온 뒤로 마음이 조금 뒤숭숭해진 건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지 그녀가 나를 좋아했었다는 고백 때문이 아니라, 처음 1983년도로 회귀했던 10년 전에 비해 지금의 나는 확실히 그때의 열정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직도 게임을 좋아하고, 매번 독특한 시스템으로 유저들과 함께 내가 만들어낸 컨텐츠를 즐기는 것이 즐겁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하필 나였을까?’
2015년 당시엔 분명 나보다 더 뛰어난 기획자가 널리고 널렸을 때이다.
센소니는 기어 스테이션 4는 당시의 콘솔 업계를 거의 장악하다시피한 상태였고, 그들의 퍼스트 파티로는 게임 역사상 그래픽 퀄리티와 스토리 텔링에서 한 획을 그은 라스트 오브 월드를 만든 너티캣이라는 개발사가 있었고, PC 게임 쪽으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한 월드 오브 워와 디아블로 시리즈를 제작한 ‘프로스트’가 있었다.
비록 민텐도는 연이은 콘솔 사업의 실패로 과거의 영광을 잃었지만, 쿠마모토 시게루씨는 게임 업계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그가 만들어낸 다양한 게임들은 그 후배 디렉터들이 이어 받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만약에 그 안에서 꽤나 실력있는 메인 디렉터 하나가 나를 대신해 이곳에 떨어졌다면, 지금 내가 있는 이 세계는 정말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나란 존재가 한 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지금 게임 업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인가...
앞으로도 내가 만드는 게임을 게이머들이 좋아해 줄까?
최근에 나는 마치 내가 만든 ‘신의 선물’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다. 내가 알고 있는 과거를 조금은 다른 형태로 다시 한번 반복해서 살아 가는 느낌이랄까?
‘이럴 때면 정말 나를 이곳에 보냈던 게임 가게 할아버지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만나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은데...’
어느새 필터 끝까지 태워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자, 한동안 말없이 나를 지켜 보던 하야시가 나에게 말했다.
“이사님.”
“응?”
“이사님은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기운이 없어 보이시길래. 별거 아니지만 이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 그래. 고맙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채 싱긋 웃어보이는 하야시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건드린 나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래 어차피 이곳에 온지도 12년이 흘렀다.
나의 결혼식에 와주셨던 할아버지도 마음 껏 날뛰어 보라하였으니, 적어도 완전히 틀린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그 분을 자연스럽게 보게 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좋든 싫든 2015년의 그 날 오게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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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의 10월 초.
고베와 오사카의 라이브 장소에는 각각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 들었다.
원만한 행사 진행을 위해 따로 보안 업체까지 섭외하였지만, 라이브 회장에 모여든 관람객 수는 이미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은 칸나의 라이브 장소인 고베 지역이었는데, 다소 불편한 교통 상황 속에서도 일본의 각 지역에서 모여든 유저들로 인해 행사장 밖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우오오!! 오늘의 라이브를 위해 후쿠오카에서 달려왔다!!”
“이 정도라면 에리카의 압승이 분명해.”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칸나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살짝 움켜 쥐었다.
창가에 기댄 채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칸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긴장할 필요없어. 먼저 너를 대신해 게임 캐릭터인 에리카가 신곡을 발표할 테니까. 마지막 라이브 무대에만 신경 쓰면 돼.”
“네. 그런데..”
“응?”
“이 치마 길이. 아무래도 너무 짧은 거 같은데요?”
“하하... 좀 그렇지? 다음 번 라이브 의상을 기획할 때 모리타에게 전해둘게.”
“오사카 무대는 어떤가요? 콘노 아즈사를 맡고 있는 아오이양. 많이 긴장했던데..”
“그쪽도 사람이 어마어마한가 봐. 아무래도 고베보단 오사카가 교통이 더 편리하기도 하고, 오히려 네가 더 긴장 해야할 걸?”
“저는 괜찮아요.”
대본을 움켜쥔 채 살포시 웃어보이는 칸나의 미소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런데 아까부터 뭘 그리 적고 있는 거야?”
“아, 이건... 내일 츠바키 언니에게 드릴 곡이에요. 오늘 아침에 이곳에 오는 차 안에서 겨우 완성했거든요.”
“그래? 잠깐만 봐도 될까?”
그러자 칸나는 서둘러 허리 뒷쪽으로 노래 가사가 적힌 악보를 숨기며 난처하게 웃어보였다.
“죄송하지만, 츠바키 언니가 절대로 준혁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했어요.”
“으잉? 왜?”
“그게, 준혁씨에게는 꼭 무대에서 처음으로 들려드리고 싶다고 하셔서... 현재는 저희랑 우에노씨. 그리고 테라다씨만 알고 있는 곡이에요.”
“흐음~ 뭐 그들이 인정했다면 분명 좋은 곡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좀 섭섭한데?”
“그래도 안돼요. 언니랑 약속 했으니까. 가사는 언니가 주셨고, 곡은 제가 썼는데, 우에노씨가 둘다 굉장하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그래? 그것 참 기대 되는 걸?”
“다음 주에는 츠바키 언니의 공연이니까 그때 꼭 들어보세요.”
그때 스탭실의 문이 열리며 행사 진행을 맡고 있는 펜타곤 직원이 나를 찾았다.
“이사님. 이제 곧 첫 라이브가 시작됩니다. 준비해 주세요.”
“그래. 바로 올라 갈게.”
직원이 물러간 뒤, 거울을 한번 살핀 나는 옷깃을 잡아 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럼 가볼까?”
“힘내세요. 이사님.”
뒤에서 나를 응원하는 칸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나는 무대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칸나와 함께 작업중이라던 츠바키의 곡이 완성 됐구나...
솔직히 칸나의 공연 중에 몰래 볼수도 있지만,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숨기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어차피 일주일 뒤에 츠바키의 공연이 있으니 조금만 참도록 하자.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그 날 츠바키의 부탁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준혁씨 혹시 제 건강 때문에 외부에서 공연이 힘들다면... 이 곳 병원에서 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다른 환자분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으니, 그들의 허락 하에 아주 작은 공연으로요..’
< EP. 44 : 츠바키의 부탁. (3) > 끝
ⓒ 손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