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3 : 완전한 즐거움.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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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에 참가하기 위한 티켓은 따로 구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든 건 여러분께서 플레이 해주신 히로인의 육성 포인트로 대체 할 수 있으니까요.”
버추어 아이돌에 대한 강준혁 디렉터의 설명은 굉장히 심플 하면서도 엄청난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게임 출시와 더불어 이런 충격적인 발표라니...
방금 전 셰릴과 아즈사의 훌륭한 라이브 무대를 보고난 뒤라 그런지, 객석에 있는 유저들에게서 너무 가혹한 정책이라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말이다.
돌이켜 보면 강준혁 디렉터가 만들었던 모든 게임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가혹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미 그는 패밀리 시절부터 ‘드래곤 엠블렘’이라는 초 고난이도 게임으로 유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캐릭터 사망시에 플레이 데이터가 날아가던 그 게임은 2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을 달고 나왔다. 그때도 유저들은 드래곤 엠블렘의 플레이 방식이 너무나 가혹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파티 플레이시 제대로 전술적 행동을 무시하는 플레이어 덕분에 파티 전체가 전멸하는 사례가 빈번했으니까. 언젠가 강준혁 디렉터는 패미통신 잡지에서 그러한 유저들의 피드백을 단 한 마디로 일축했다.
“드래곤 엠블렘 시리즈는 본래 그렇게 즐기는 것입니다.”
전혀 유저를 배려하지 않은 그의 답변에 업계내에서는 건방지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했다.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유저들은 신뢰할 만한 플레이어를 모아 클랜을 만들었고, 함께 던전 레이드에 도전하였다.
마치 RPG 게임 속에서나 볼법 했던 동료와의 유대가 드래곤 엠블렘의 미칠듯한 난이도로 인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어떤 게임 잡지에서는 EASY, NORMAL, HARD 라는 난이도 위에 ‘강준혁’이라는 난이도가 따로 존재한다고 비유했을 정도니까.
그렇게 강준혁이라는 이름 자체가 유저들에게 전해주는 묘한 설레임. 그 기대감 때문일까? 현재까지 그가 만든 게임은 언제나 대 히트를 기록했다.
만약에 그가 유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금이라도 쉬운길을 택했다면 이번엔 초심을 잃었다고 맹비난 했겠지...
사람의 시선이란 것이 항상 그렇다.
자신의 기준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일단 그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신의 입맛에 맞추고 싶어한다.
실제로도 슈퍼 패밀리 시절에도 너무 어렵다는 유저의 피드백을 반영해 라이트 버전을 출시했다가 판매 부진으로 본작마저 덤핑이 되어버린 게임들도 존재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강준혁 디렉터는 유저들의 평가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굉장한 뚝심을 가진 디렉터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도 설마 아이돌 육성 게임에 이토록 잔혹한 시스템을 집어 넣을 줄이야...
‘아무튼 유저를 벼랑 끝까지 옭아매는 특유의 스타일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구나...’
한편으론 정말 그의 일관성에 경의를 표할 정도이다. 그때 무대 앞쪽에 앉아있던 유저가 그에게 물었다.
“방금 설명한 육성 포인트라는 것은 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건가요? 설마 라이브 회장에 컴플리트 라온을 들고 가야하는 겁니까?”
하긴 듣고 보니 그렇네? 대체 어떤 방식으로 포인트를 결제 시키는 거지?
모두의 눈길이 다시 강준혁씨에게로 향하자 그는 되려 황당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가방 속에 라온 하나씩은 들고 있지 않으신가요?”
그 순간 내 머릿 속에 아까 레스토랑에서 보았던 컴플리트 라온의 설명서가 떠올랐다.
설마.. 그럼?
“버추어 아이돌의 메인 화면에서 동기화 메뉴를 선택하면 여러분의 플레이 데이터를 휴대용 라온과 연동시킬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연동 기능은 펜타곤에서 출시하는 모든 게임에 반드시 들어갈 예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버추어 아이돌 같은 경우엔 라온과 연동시 외부에서 미니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펜타곤 샵의 단말기를 통해 각 히로인의 포인트 수치를 실시간으로 확인 할 수 있으며 매주 업데이트 되는 새로운 무대 의상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우와아... 쩌... 쩐다.”
강준혁 디렉터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가 만들어낸 컴플리트 라온은 기존에 콘솔 게임이 가지고 있던 틀 자체를 완전히 깨부숴 버렸다. 설마 기존에 발매한 휴대용 게임기를 이용해 이렇게까지 게임의 바리에이션을 넓힐 줄이야...
단지 기존의 유저들을 배려하기 위한 장치라고만 생각했던 휴대용 라온의 연결 포트...
하지만 방금 전 강준혁 디렉터의 설명으로 내가 했던 생각이 그의 의도와 정 반대였다는 걸 단번에 알아 차렸다.
‘연결 포트를 이용해 기존에 발매한 휴대용 라온의 판매량을 더욱 늘리려는 거야...!!’
휴대용 라온은 그 자체만으로 컴플리트 라온의 훌륭한 주변기기였다.
게임의 화면을 뿌려주는 미니 디스플레이 장치와 더불어 따로 예비 컨트롤러를 구입하지 않아도 라온 자체를 게임 패드로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버추어 아이돌과의 연동 기능으로 인해 휴대용 라온은 그저 훌륭한 주변기기가 아닌 ‘반드시’ 필요한 주변기기로 급부상 되었다.
더구나 은근히 도발적인 그의 멘트는 아직 라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유저들의 자존심을 긁어내리기 충분했다.
마치 ‘뭐야? 당신 아직도 라온을 안가지고 있었어? 그럼 그동안 당신이 모은 포인트는 어떻게 처리할 건데?’ 라고 묻는 듯한 그의 태도는 불손함을 넘어서 고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휴대용 라온이 한 두푼도 아니고... 미리 가지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구입 할 물건을 아닐텐데?’
그때 강준혁 디렉터의 등 뒤에 있던 스크린에 휴대용 라온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간단히 기존의 라온을 이용해 커치형 기기에서 이용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능이 소개되고 있었다.
“아~ 풀 메탈 기어 솔리드에서 휴대용 라온을 사용하면, MAP 화면이랑 무전 수신을 라온으로 받을 수 있구나...”
“라온의 연동 기능은 서드 파티에서도 활용할 수 있나본데?”
단순히 무선 수신음이 휴대용 라온을 통해 들린 것 뿐인데도 굉장한 현실감이 느껴졌다.
두 개의 디스플레이가 전해주는 멀티 효과에 객석에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또 다시 탄성이 새어 나왔다.
“크으... 도저희 버틸 수가 없다. 이거 끝나면 1층에 내려가서 라온도 사야할 거 같아...”
“안 돼.. 여기서 라온까지 사가지고 돌아가면 와이프한테 쫓겨날 거야..”
“박스를 버리고 가방에 넣고 가는 건 어떨까?”
“미쳤냐. 어떻게 패키지 박스를 버리고 알맹이만 들고 갈 수 있어!?”
... 그렇지. 박스도 소중히 보관해야 모름지기 게이머라 할 수 있지.
나중에 중고로 팔때도 값을 더 받을 수 있고 말야.
하지만 왠지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휴대용 라온을 이용해 플레이하면 뭔가 더 재밌을 것 같네...
그러던 중 다음으로 등장한 ‘내가 없는 거리’의 리메이크판 영상에서 구매 심리의 끝판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컴플리트 라온과의 연동시에 나타나는 내가 없는 거리의 비밀 앨범 모드였다.
주인공이 죽기 전 히로인을 위해 남겨두었던 편지 30장여장과 더불어 그의 서랍에 보관하고 있었던 그녀들과의 추억이 담긴 앨범을 소개하자, 객석에 있던 한 유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으아아!!! 젠장~!! 지금 사러 갑니다.”
아직까지 펜타곤의 ‘내가 없는 거리’를 좋아해 주었던 유저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혹시나 모를 품절 사태를 대비해 미리 구입하고 돌아오려는 모양이었다.
그때 스피커에서 경쾌한 효과음이 들려오며 출입구로 향하던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는데, 이부분에선 나 역시 강준혁 디렉터의 치밀한 마케팅 실력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컴플리트 라온의 출시를 기념해 기존의 라온의 소비자 가격을 오늘부터 한달 간 30% 인하 합니다.-
“우와아아아!!!”
“젠장. 마누라한테 쫓겨나도 이건 사야겠다.”
“이미 가지고 있지만, 소장용으로 하나 더 사야겠다.”
“빌어먹을... 지갑이 점점 얇아진다.”
설마 이 타이밍에 가격 인하를 할 줄이야...
실로 무서운 전략이 아닐 수 없었다.
일전에 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마케팅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교수님께서 펜타곤의 마케팅 방식에 대해 극찬한 적이 있었다.
판매량의 공개 카운트를 이용해 내가 없는 거리의 판매를 촉진 시켰던 점을 비롯해 발렌타인 데이에서 보여 주었던 독특한 코스튬 이벤트와 함께 CES의 컴퍼런스까지 강준혁 디렉터는 게임 개발 실력 말고도 마케팅 쪽에 천재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나?
그러고 보니 민텐도 카린의 전설에서 ‘황금색 카트리지 한정판’도 사실은 그의 아이디어였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럼 이상으로 버추어 아이돌을 비롯해 라온의 연동 기능에 대한 부가 설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에리카와 츠바키씨의 무대도 기대해 주세요.”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는 채 무대를 등지는 강준혁씨의 모습에 내 옆에 있던 마유미가 중얼 거렸다.
“멋있다. 전에도 느꼈지만, 저 사람은 뭔가 행동 하나 하나에 자신감이 넘쳐 보여.”
치... 인정하기 싫지만, 나 역시 마유미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이미 라이브 홀의 분위기는 그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잠시 후. 라이브 공연을 위해 부대의 조명이 어두워지며 강준혁 디렉터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스크린 속에 에리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칸나 노래다.”
“쉿. 준혁씨가 칸나의 이름은 비밀이랬잖아...”
“아, 맞다. 나도 모르게 그만...”
스크린 속에서 차분히 기타줄을 튕기는 에리카의 모습에 어수선했던 회장의 분위기가 차츰 가라 앉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에리카를 목소리를 연기한 칸나가 스포트 라이트에 비쳐 모습을 드러내자, 숨막힐 듯한 그녀의 청순한 미모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전에 마유미와 함께 만날 때도 느끼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예뻤나 의심이 들 정도로 지금 그녀의 모습은 무대위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응원하는 그녀의 노래는 주로 2~30대 연령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물론 셰릴의 Beating Heart에 비하면 다소 임팩트가 떨어지는 감이 없진 않지만, 그녀의 노래는 츠바키의 ‘안아 주세요.’와 같이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담백함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좀 다른데...
그때 나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칸나를 지켜보던 마유미가 입을 열었다.
"칸나한테 무슨 일 있나? 오늘따라 왜이렇게 슬퍼 보이지?"
"그러게.. 확실히 잘부르고 있긴하지만, 뭐랄까 평소처럼 밝은 톤이 느껴지지 않아..."
잠시 후. 두 눈을 감은채 차분히 노래를 마친 칸나는 기타 연주를 위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내려와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버추어 아이돌에서 카타기리 에리카를 연기하게된 키시모리 칸나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께 처음으로 인사를 드려 무척이나 떨리지만, 조금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음...? 뭐지?”
칸나는 고개를 갸웃 거리는 사람들의 반응에 잠시 불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무대 안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 받은 그녀는 잠시 후. 지그시 아랫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저의 다음 무대였던 츠바키씨의 담당 성우가 컨디션 난조로 오늘은 노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헉... 안 돼!!”
“뭐야. 이거 실망이네...”
“첫 무대라 긴장했나?”
“오전에 스피커를 통해 들었는 때 굉장히 느낌이 좋아서 다시 듣고 싶었는데...”
“크흑.. 모습도 공개하지 못하다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유저들의 불만에 무대 위의 칸나는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라이브는 끝나는 건가?”
“마지막 무대를 못보게 되니 뭔가 김새는데?”
“그러게 말야..”
하긴 오늘 라이브의 클라이막스라고 여겼던 부분인데, 이렇게 되버리다니. 유저들이 실망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마유미 역시 츠바키의 무대를 볼 수 없다는 말에 굉장히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 때 웅성거리는 객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칸나가 천천히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 혹시 여러분들께서 괜찮으시다면, 츠바키씨의 ‘안아주세요.’를 제가 대신 불러도 될까요?”
< EP. 43 : 완전한 즐거움. (6) > 끝
ⓒ 손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