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28화 (228/252)

< EP. 43 : 완전한 즐거움. (5) >

&

셰릴의 등장으로 화려하게 시작한 라이브는 순식간에 라이브 홀에 모여 있는 유저들의 마음을 휘어잡는데 성공했다. 스크린 속의 캐릭터는 푸른 장교복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종아리 부분까지 채운 가죽 부츠가 묘하게 섹시한 느낌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우와아!!! 첫 곡은 셰릴이구나~!!”

콘서트를 여는 오프닝 곡으로 셰릴의 Beating Heart는 매우 훌륭한 선곡라 볼 수 있었다.

4명의 히로인 중에 가장 강렬한 포스를 지닌 셰릴은 등장 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밝게 탈색된 그녀의 분홍빛 머릿결과 청명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내 두 눈과 마주치자, 나는 선채로 얼어붙어 버렸다.

이윽고 조그만 입술 위를 혀끝으로 살짝 훓으며 미소 지은 그녀가 입을 뗀 순간.

무대 위로 실제 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헉!! 뭐야!?”

마치 화면 속에서 튀어 나온 것처럼 캐릭터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나온 그녀는 시원스럽게 뻗은 자신의 다리를 스피커에 올리며 마이크를 가져다 대었다.

중력에 반하는, 그대를 향하는 내 마음을

너는 아는지, 내 마음 속 Beating Heart.

흘러내린 머릿칼 사이로 두 눈을 감은채 노래하는 그녀의 제스쳐는 버추어 아이돌의 셰릴과 똑 닮아 있었다. 아니 이 경우라면 차라리 셰릴이라는 캐릭터가 그녀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그러고 보니 칸나가 담당한 에리카 역시 어딘지 모르게 그녀와 닮아 있었다.

망상의 galaxy. 미끄러진 순간 poison sea.

하지만 멈추지 않아. 시간조차 뛰어 넘는 대담한 키스로 너에게 다가갈거야.

유저들과 호흥하며 조금씩 라이브를 기세를 끌어 올리던 그녀는 절정 부분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마이크를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타이틀곡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환호하며 Beating Heart의 절정 부분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가져가~!!!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자신의 몸짓 하나하나에 반응 하는 유저들을 바라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린 그녀는 뒤돌아 선채 겉 옷을 벗어 던졌다.

“어억!!!”

“헉!! 대박..”

물론 안쪽에 탱크탑을 입고 있었지만, 무대의 열기로 인해 송글송글 땀이 맺힌 그녀의 가슴 골에 저절로 눈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의 옆구리로 파고든 마유미의 손이 갈빗뼈를 통째로 뜯어낼 기세로 깊숙이 찔러왔다.

“크허어억!!!!!”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자, 마유미는 두 눈을 째려보며 나를 비난 했다.

“아주 그냥 눈이 훽훽 돌아가지?”

“아악! 잠깐만 이건 본능이었어..”

“본능? 어쭈!?”

“알았어. 잠깐, 잠깐만~!!”

“거~ 싸울거면 나가서 싸우세요.”

안 그래도 남자들이 득실대는 버추어 아이돌의 공연 장소에서 여자 친구와 티격 대는 나의 모습이 영 못마땅 했는지 여기 저기서 한소리씩 들려왔다.

‘나카무라 켄스케. 칸나 공연 때문에 한번 봐준다.’

‘아, 네. 알겠습니다.’

셰릴 성우의 파격적인 연출에 라이브의 분위기는 단번에 치솟아 올랐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동안 버추어 아이돌의 출시만을 기다려오며 답답했던 속을 뻥 뚫어주는 듯했다.

“휘이이익~!!”

“최고다!!”

“크흐.. 여왕님. 당신의 패키지를 구입한데에 있어 한 치도 후회가 없습니다.”

관객들의 수 많은 박수와 함께 노래를 끝 마친 그녀는 무대한 가운데 당당히 선채 삐뚤어진 베레모를 고쳐썼다.

“오늘 버추어 아이돌 라이브에 오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모두 고마워요~!!”

드디어 제대로 우리와 눈을 마주친 그녀의 얼굴은 대략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섹시한 골반에 한 손을 얹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쉰 그녀는 잠시 크게 숨을 고르며 라이브 진행을 이어 갔다.

간단한 자신의 소개와 더불어 버추어 아이돌을 하게 된 계기.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에 대해 간단한 토크를 이어나가던 그녀는 잠시 후. 장난끼 섞인 표정으로 객석을 향해 물었다.

“혹시 이 자리에서 버추어 아이돌 셰릴 버전을 구입해주신 분이 계시다면 손 한번 들어 주시겠어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이내 쇼핑백 통째로 날치기를 당했던 사실을 떠올린 나는 천천히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려 놓았다.

하지만 객석 안에 3분의 1 정도 사람들이 그녀의 물음에 손을 들어 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그녀 조차 놀랐는지, 그녀는 유저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마지막으로 손 끝에 키스를 실어 보냈다.

“사실 이 곳에 오기 전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컴플리트 라온과 오늘 출시된 게임을 전부 구입해주신 한 유저분이 차도에서 날치기를 당했다고 하네요. 다행히 다치진 않으셨다고 하던데, 혹시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신가요?”

마이크를 손에 쥔 채 객석을 두리번 거리는 셰릴의 모습에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자,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어보였다.

“오늘 라이브가 끝나면 추첨식이 있어요. 그러니 마지막까지 꼭 남아 계셔야 해요.”

“가.. 감사합니다.”

“당신에게 행운이 있길 바라며... 그럼~ 이어서 여러분께 들려드릴 곡은 버추어 아이돌의 막내 캐릭터인 콘노 아즈사의 무대가 있겠습니다.”

셰릴을 연기한 그녀의 무대가 끝나자, 라이브 무대의 조명이 전부 꺼지며 일 순간 주변이 굉장히 어두워 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드럼의 스틱끼리 부딪히는 소리.

“원, 투, 쓰리, 포.”

어둠 속에 들려오는 소녀의 긴장된 목소리와 함께 스크린 속에 콘노 아즈사의 모습이 등장했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마유미가 쿡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나에게 말했다.

“콘노 아즈사라는 캐릭터 굉장히 귀엽더라. 쟤도 인기 많지?”

유저들이 붙인 셰릴의 별명이 여왕이라면 아즈사의 별명은 여동생이었다.

그녀의 덜렁 거리는 성격을 대변해 주는 무릎에 붙어 있는 반창고와 한쪽으로 뾰족하게 솟아있는 헤어 스타일. 그리고 셰릴의 화려한 무대 의상과는 달리 어디서나 볼법한 교복 의상이 묘하게 친근감을 불러온 달까?

그래서 인지 그녀의 팬층은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마유미처럼 셰릴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 유저까지도 흡수한 탓에 콘노 아즈사의 인기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만약에 버추어 아이돌이 츠바키를 제외하고 3인 체제로 등장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큰 인기를 누렸을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만큼 마지막에 등장한 츠바키의 노래가 어마어마하긴 했지..’

-중요한건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 역시 사랑할 수 없어~!!-

어느새 무대 위로 올라온 그녀의 성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게임속 캐릭터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얼핏 생김새가 닮아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여유있게 셰릴을 연기했던 전 무대와는 다르게 잔뜩 긴장한 그녀의 목소리에 라이브를 듣고 있던 나조차 불안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마쳤다.

“하아... 하아... 감사합니다.”

무대의 완성도는 셰릴 보다 못했지만, 마치 고등학생 학예회를 본 듯한 기분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하긴 저들도 어찌보면 오늘이 데뷔 무대였을 텐데, 떨리는게 당연하겠지...

연달아 두 곡이 끝나고, 다음으로 칸나의 차례가 아닐까 싶었던 찰나. 무대가 밝아지며 강준혁 디렉터가 무대에 올랐다.

버추어 아이돌의 메인 디렉터이자, 컴플리트 라온의 개발자인 그는 무대 중앙에 서서 유저들에게 인사를 마친 뒤. 여유있게 웃어 보였다.

“컴플리트 라온의 구입과 더불어 버추어 아이돌의 라이브 공연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공연을 보여드리기 전에 잠시 버추어 아이돌의 플레이 방식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여러분께서 구입하신 버추어 아이돌은 단순히 아이돌을 키우는 육성 시뮬레이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준혁 디렉터의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무대를 향해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안에는 물론 나와 마유미도 마찬가지 포함되어 있었다.

마치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듯 잠시 회장의 분위기를 살피던 강준혁씨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뒤에 있던 스크린에 PPT 화면이 떠올랐다.

다양한 무대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는 히로인들의 모습 스쳐 지난 뒤, 오늘 데뷔한 4명의 캐릭터의 모습이 4분할로 차례 차례 공개 되기 시작했다.

한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그녀들의 프로필 옆에 스케쥴 표로 날짜가 쓰여 있었는데, 거의 2주에서 3주 간격으로 일본 각 지역별 이름이 쓰여 있었다.

“뭐지 저게?”

“글쎄... 무슨 이벤트를 하는 건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강준혁 디렉터는 스크린 가리키며 설명을 더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그녀들 옆에 쓰여 있는 스케쥴은 라이브 공연이 있는 날짜입니다.”

“으잉...?”

뜬금없는 그의 발언에 객석에 있는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게임이 발매 한 뒤에도 라이브 공연을 계속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녀들의 스케쥴표에는 같은 날짜에 모두 제 각각의 장소를 담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의문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방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버추어 아이돌은 단순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극단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여러분들께서 구입하신 게임 디스크는 그녀들의 정식 데뷔를 도울 수 있는 일종의 오디션 장치라고 할까요...?”

“오디션이라고?”

그리고 이어진 버추어 아이돌에 대한 강준혁씨의 설명에서 나는 또 한 번 펜타곤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게임성에 치를 떨 수 밖에 없었다.

“버추어 아이돌이라는 게임은 성장형 컨텐츠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좋아하는 캐릭터를 육성시켜 얻게 되는 포인트는 굉장히 다양한 곳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캐릭터의 무대 의상이나, 평상복. 악세서리등 캐릭터를 꾸밀 수도 있고, 매월 업데이트 되는 신규 라이브 곡이나 새로운 무대 의상을 손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꼭 중요한 순간에 일부러 뜸을 들이는 그의 화법은 듣는 이로 하여금 숨막힐 듯한 긴장감을 전해주었다.

‘대체 뭐냐... 뭐가 가장 중요한 건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투... 투표권? 대체 무엇에 대한 투표란 말이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강준혁 디렉터가 말했던 ‘오디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설마... 지금 저 사람이 하는 말이...?

“그렇습니다. 여러분께서 구입해 주신 소중한 캐릭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선 여러분들 스스로 다른 유저들과 경쟁해야하는 거죠. 방식은 굉장히 쉽습니다. 그녀의 라이브 행사가 있는 날에 공연장에 참석해주시면 됩니다. 혹시나 거리가 너무 멀어 참석이 어렵다면 근처의 펜타곤 샵으로 달려가 휴대용 라온의 통신 단말기를 통해 포인트를 전달할 수도 있지요.”

그때 궁금함을 참지 못한 한 유저가 강준혁 디렉터에게 물었다.

“호... 혹시 제가 구입한 캐릭터의 포인트가 가장 낮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자 강준혁 디렉터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라이브 행사가 끝난 뒤 그녀에 대한 업데이트는 종료됩니다. 물론 게임 안에선 계속해서 즐길 수 있지만, 그녀에 대한 이벤트영상이나 무대의상에 대한 컨텐츠 업데이트는 완전히 종료됩니다.”

“허억...”

“그럼 타이틀을 두 개 이상 구입한 사람은 전부 투표할 수 있는 건가요?”

이어진 한 유저의 물음에 강준혁 디렉터는 여전히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식이라 별로 추천 드리고 싶지 않군요. 왜냐하면 보다시피 캐릭터들간에 공연이 겹쳐 있는 날이 있거든요. 만약에 에리카와 츠바키, 셰릴과 아즈사의 공연이 단 하루에 진행 된다면 여러분은 그 날 누구의 공연에 참석 하실 건가요?”

그의 대답에 객석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 저저... 악독한 놈 같으니...

이젠 실제로 유저들을 뺑뺑이 돌리다가 자신의 캐릭터가 탈락하는 내상까지 입으라는 거냐?

< EP. 43 : 완전한 즐거움. (5)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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