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27화 (227/252)

< EP. 43 : 완전한 즐거움. (4) >

“꺅!! 켄스케군!! 괜찮아!?”

마유미의 비명소리에 아직 구매 대기 중이었던 사람들이 눈빛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털썩...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쇼핑백 손잡이만 꼭 쥔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괜찮아? 어디 다친데는 없어!?”

“······.”

걱정이 잔뜩 묻어난 마유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뭐라고 대꾸를 못하겠다.

내 쇼핑백을 날치기한 범인들은 이미 다음 사거리에서 급하게 좌회전을 틀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내 손에는 무려 8만엔 짜리 쇼핑백의 손잡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워낙에 큰 충격을 받으면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하던가?

길 잃은 어린 아이 마냥 더듬 거리는 말투로 고개를 휘적거리자, 내 몸 여기저기를 만지던 마유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옆에 주저 앉았다.

“다친 곳은 없네. 천만 다행이다.”

“천만... 다행이라구?”

어디가 천만 다행이냐... 내 돈 8만엔이 눈 앞에서 사라졌는데, 아니 그걸 떠나서 버추어 아이돌 한정판은 다시 사고 싶어도 살 수 조차 없다구~!!!

끝났다. 모조리 끝났어.

예전에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가 출시 되었을 때, 불량 학생들이 뒷골목으로 끌고가 카트리지를 빼앗아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설마 이런 식으로 날치기를 당할 줄이야.

황당하고 억울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켄스케 지금 우는 거야?”

“누, 누가 울었다고 그래.”

마유미의 목소리에 나는 눈가를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주변에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저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느껴졌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 하더라도 웃음 거리 밖에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 나는 서둘러 전철 역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재 수중에 남은 돈으로는 컴플리트 라온을 다시 산다고 해도, 게임 타이틀까지 구입할 돈이 없었다.

“케, 켄스케군. 같이 가.”

마유미의 목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자, 등 뒤에서 또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손님!!”

고개를 돌리니 방금 전 컴플리트 라온의 계산을 도와주었던 캐셔 분이 서둘러 나에게 달려와 종이 한 장을 건네 주었다.

“너무 서둘러 나가시느라, 이 걸 전해드리는 걸 깜박했어요.”

숫자가 적혀 있는 티켓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오후에 있을 라이브 무대의 추첨권이에요.”

“추첨권?”

“버추어 아이돌의 성우를 맡으신 분들께서 직접 추첨하여 선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에 들린 추첨권의 번호는 231번이었다.

“라이브는 오후 2시에 예정 되어 있으니, 괜찮으시다면 꼭 참가해주세요.”

“아, 그게...”

펜타곤 직원은 내 손에 추첨권을 들려주곤 곧바로 샵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길게 뻗어 있는 구매 행렬 덕분에 잠시도 자리를 비우기 힘든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 손에 들려 있던 묵직한 컴플리트 라온 대신 추첨권 한 장이라...

솔직히 이런게 당첨 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231번이라는 숫자가 의미 하는 것은 내 앞에 이미 230명의 사람들이 라온을 구입했다는 것이고, 현재 줄을 서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두 배 이상으로 추첨 번호가 늘어날 수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달랑 추첨 번호 하나만 믿고, 오후의 라이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때 내 옆에 있던 마유미가 나에게 물었다.

“켄스케. 칸나는 안 보고 돌아갈 거야?”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칸나를 보기로 했었지...”

정신이 하나도 없던 탓에 그녀를 보기로 한 약속을 잊고 있었네...

사실 지금 기분 같아선 그냥 집으로 돌아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지만, 마유미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대로 돌아가기엔 굉장히 아쉬워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밥이라도 먹을까?”

아침 조차 거르고 달려온 탓에 허기가 진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응. 그러자...”

&

잠시 후.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테이블 한켠에 쇼핑백을 올려두고 서로 마주 앉았다.

“괜찮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마유미의 목소리에 나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기 때문에 내가 산 라온이 날치기를 당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한데...

솔직히 아까 전까지만 해도 끓어오르는 분노와 허탈감에 눈에 뵈는게 없었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니 이 모든게 내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이라는게 느껴졌다.

‘차라리 마유미의 말을 들을 걸...’

후회가 몰려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마유미까지 의기소침 해진 탓에 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며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 다음 달에 월급 받아서 다시 사면 되지.”

“그래도 많이 기대했을 텐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마유미의 표정에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보이자, 그녀는 자신의 옆에 놓인 컴플리트 라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괜찮으니까. 먼저 가져가서 플레이 해볼래?”

솔직한 마음으로 방금 마유미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집에서 오매불망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마유미의 동생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동생 한테는 뭐라고 말하려고...”

“아니, 그냥 사정이 있어서 못 샀다고 하면 되니까...”

“하지만 너도 해보고 싶다고 했잖아. 버추어 아이돌...”

솔직히 마유미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이 때까지 게임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질색하던 그녀가 드디어 나의 취미 생활을 인정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는 도중 우리는 컴플리트 라온을 꺼내어 실물을 구경해 보았다.

무광 플라스틱으로 마감된 고급스러운 본체는 세워서도 사용 할 수 있게 설계 되어 있었다.

CD를 꽂아 넣는 트레이 부분은 기어스테이션이나 새턴과는 달리 뚜껑을 여는 방식이 아닌 트레이를 옆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이걸 열고 CD를 꽂으면 되는 거지?”

“방식은 CD 플레이어와 같아 가운데 구동 축 부분에 씨디를 끼워 넣고, 트레이를 닫으면 돼. 그리고 전원 버튼을 누르는 거야.”

마유미는 나의 설명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비록 마음은 허전했지만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컴플리트 라온의 작동법을 배우는 그녀의 모습이 굉장히 귀엽게 느껴졌다.

뭐 케이블을 연결하는 법까지는 그녀의 동생이 잘 알고 있을테니까. 추가적인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켄스케 여기에 있는 구멍은 뭐야?”

마유미의 질문에 컴플리트 라온의 정면 하단부를 살피자, 컨트롤러를 장착하는 곳 바로 옆에 독특한 포트가 달려 있었다.

“어라? 그러게...”

기어 스테이션 같은 경우엔 컨트롤러 포트 위에 메모리 카드를 넣을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컴플리트 라온은 내장 메모리를 사용하기에 따로 저장 장치를 구입할 필요는 없었다.

제법 두툼한 포트 였기에 설명서를 펼치고 작 부위의 명칭을 살피자, 이내 그 포트가 무얼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휴대용 라온을 연결하는 장치야.”

“휴대용 라온이라면 켄스케군이 가지고 있는 게임기를 말하는 거야?”

놀랍게도 컴플리트 라온의 본체에는 기존의 라온을 연동시킬 수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CD를 넣고 플레이 화면에서 라온을 연동 시키면 해당 게임에 대한 미니 게임을 다운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하나의 게임을 사면 컴플리트 라온과 휴대용 라온용으로 두가지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다는 뜻이지.

간단한 예로 버추어 아이돌의 게임 데이터를 휴대용 라온에 설치하면 밖에서도 자신의 아이돌을 육성 시킬 수 있는 간단한 미니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새로운 콘솔을 출시했다고 기존의 유저를 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라온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컴플리트 라온을 구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어..’

거기다 TV 모드를 이용하면 휴대용 라온의 디스플레이에 게임 화면을 표시할 수가 있어 TV가 한 대밖에 없는 집에서도 휴대용 라온을 이용해 자유롭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었다.

‘잠깐 이런 구조는 휴대용 라온을 설계 할 때부터 이미 컴플리트 라온을 기획 중이었다는 이야기인가!?’

새삼 느껴지는 펜타곤의 치밀한 기기연동 방식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거 나중에 민텐도64가 발매 되더라도 이 정도 완성도라면 상당히 위험하겠는데?’

그때 설명서 너머로 마유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켄스케. 이따가 칸나의 라이브 보러 갈거지...?”

“물론이지. 아깐 내가 너무 정신 없어서 제대로 대답을 못했어.”

그러자 그제서야 마유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밝게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자기 때문에 기분이 상한 탓에 그냥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나보다.

“라이브는 오후니까. 카페라도 가서 시간 좀 떼우다 가자.”

“응.”

&

펜타곤의 컴플리트 라온은 채 12시가 되기 전에 전량 소진에 대한 피켓을 내걸렸다.

9시에 판매 개시 후. 단 3시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펜타곤 샵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긴 구매 행렬은 어느새 흩어져 사라지고, 아키하바라는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저마다 거대한 쇼핑백을 들고 다녔는데, 그 크기가 다들 비슷한 걸 보아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안 봐도 대충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재 시간 오후 1시 55분. 최근 몇 개월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버추어 아이돌의 라이브 행사를 앞두고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썰렁한 거 아닌가?

“켄스케군. 칸나의 라이브 행사 여기서 하는게 확실해?”

맞은 편에 앉아 유심히 티켓을 살피던 마유미가 나에게 물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어느새 펜타곤 샵 앞에 설치해 두었던 조그만 무대도 사라지고 없네?

나는 주머니에 쑤셔 넣어 두었던 라이브 티켓을 꺼내서 장소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행사 장소에 대한 약도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차. 하긴 이런 땡볕에서 야외 라이브를 할 리가 없지. 어쩐지 행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길거리가 허전하더라.’

“미안, 마유미. 버추어 아이돌의 라이브 행사는 여기가 아니었어.”

“뭐? 그럼 어딘데!?”

“드래곤 엠블렘 샵이라고 근처에 펜타곤 샵이 하나 더 있는데, 그곳에서 공연을 하나 봐. 다행히 여기서 멀지 않으니 서두르자.”

나는 마유미 대신 컴플리트 라온 쇼핑백을 손에 들고 행사장으로 달렸다.

&

잠시 후. 드래곤 엠블렘 샵에 도착한 우리는 직원에게 라이브 티켓을 보여주고 곧장 2층의 이벤트 홀로 향했다. 이미 유저들이 전부 입장했는지 2층으로 향하는 통로는 한산했다.

쿵쿵쿵쿵쿵~!!

방음 설계로 인해 극장에서나 볼법한 두꺼운 문이 설치되어 있었음에도 안에선 유저들의 어마어마한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 버추어 아이돌의 인기라면 이 정도는 되었어야지...’

잠시 마른 침을 삼키며 굳게 닫혀진 문을 열어 젖힌 순간. 내부에서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유저들의 함성 소리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짜악~!!

그 순간 익숙한 채찍 소리와 함께 도발적인 셰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노래로 이 무대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보이겠어.”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것은 4년전 라온을 출시 했을 당시 펜타곤 샵에서 보여 주었던 신작 런칭에 대한 컨퍼런스였다.

'그래... 펜타곤의 런칭 행사는 아직 끝난게 아니었어...'

< EP. 43 : 완전한 즐거움. (4)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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