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26화 (226/252)

< EP. 43 : 완전한 즐거움. (3) >

“내가 플레이 하고 싶었던 욕심도 조금은 있었거든~”

밝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는 그녀의 미소와 함께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뒤이어 버추어 아이돌의 마지막 캐릭터인 사와노 츠바키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자, 나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둘 만이 있는 텅빈 플렛폼에..

침묵하고 있는 당신의 옆 얼굴이 신경쓰여..

뭐지? CD를 통해 매일 들어왔던 목소리인데, 이렇게까지 심장이 떨려올 줄이야...

그때 내 곁에 있던 마유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이거... 라이브 잖아?”

“뭐라고?”

“노래 중간 중간에 호흡이 느껴지잖아. 모르겠어?”

“그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소중한 것을 잃어가겠지만...

나 역시 그걸 알고 있지만..

아... 확실히 마유미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 확실히 CD에서 들려오던 것과는 달리 목소리에서 현장감이 느껴졌다. 마유미의 말이 맞아. 지금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딘가 숨어 노래를 부르고 있는거야.

잠시 후. 그녀와 나의 대화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통해 대기열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라이브인거 같다는데?”

“어라? 그러고 보니 CD로 듣던 거랑은 미묘하게 호흡이 달라.”

“그렇지...?”

“우오... 소름 돋아~!!”

내 앞에 있던 사람은 팔짱을 낀채 자신의 팔뚝을 쓸어내리며 펜타곤 샵 앞에 설치된 무대를 바라보았다. 강렬한 여름 날의 태양 빛을 고려해 천정에 암막을 설치한 스크린 안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츠바키의 모습이 공개되자. 대기열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안아주세요.

내 몸이 부서질 정도로...

“아아.. 드디어..”

단아하게 흘러내린 검은 머릿결이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 거리며 공개된 그녀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슬픈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새하얀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날아오르자,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마유미가 비틀거리며 내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갑자기 왜 그래?”

“몰라.. 나도 모르게 멍하니 노래를 듣다보니 다리에 힘이 풀려서...”

하지만 마유미의 이야기가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조차도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가슴이 붕 떠오르는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라이브는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그때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그녀의 목소리에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 방금 절정 부분에서 살짝 정신을 놓을 뻔했어.”

“감정을 싣어 노래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난 솔직히 처음 느껴 봐..”

무엇이 그녀의 목소리를 목소리를 이토록 애절하게 만드는지 몰라도 현재 버추어 아이돌에서 그녀의 실력은 친구인 칸나에게는 미안하지만, 가희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결정했다. 버추어 아이돌 타이틀은 사와노 츠바키 버전으로 선택하겠어.”

“나도..”

“이런 젠장. 나도 츠바키 버전으로 사고 싶은데, 혹시 앞에서 다 사가진 않겠지!?”

잔잔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그녀의 라이브가 끝이 나자, 이어서 나와 마유미에게 익숙한 칸나의 노래가 들려왔다.

“오~ 에리카다!!”

버추어 아이돌의 시작을 알린 그녀의 노래는 츠바키로 인해 감상에 젖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아~ 역시 에리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츠바키가 애절하다면, 에리카는 뭐랄까 노래에서 상냥함이 묻어난다고 할까?”

“그렇지. 직장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와 에리카의 노래를 들으면 하루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라니까..”

이번에 츠바키의 노래에서도 느꼈듯이 이번 에리카의 ‘응원가’ 역시 라이브로 진행되었다.

최근 버추어 아이돌의 녹음 일정으로 바쁘게 지내는 탓에 나와 마유미 역시도 칸나의 라이브를 듣는 건 참 오랜만 이었다.

그녀의 노래를 듣던 도중 나는 옆에 있는 마유미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츠바키의 성우와 마찬가지로 칸나도 근처에 있나 봐.”

“그러게 한동안 얼굴도 못 봤는데, 근처에 있으면 만나고 싶네...”

스크린 속에 에리카의 모습이 어딘가 칸나를 닮아 있다고 느끼긴 했었는데, 뭔가 알고 지내던 친구가 저 멀리 떠나간 느낌이 들어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꿈 꿔왔던 미래와 많이 다른 현실에 점점 지쳐가고, 많이 실망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루게될 그대의 세상. 나 항상 그대를 응원할게요~

이윽고 칸나의 노래가 끝이 나자, 자연스럽게 셰릴과 콘노 아즈사의 노래가 연이어 들려오자, 행사장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앞의 두 곡과는 다르게 강렬한 두 사람의 노래는 대기중인 사람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

그럴수록 대기중인 사람들은 대체 4명 버추어 아이돌 중에서 누굴 구입해야 할지 더욱 망설이게 만들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울려 퍼지는 셰릴의 Beat Heart는 남자의 마음에 숨어 있던 열혈이란 불씨를 지피기에 충분했다.

“으아!! 젠장!! 나는 모르겠다!! 그냥 다 사 버리자!!”

“그래. 어차피 우리는 언젠가 다지르고 말거야!!”

“그래 카드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진거니까!!”

여기 저기서 울려 퍼지는 유저들의 함성에 나 역시 한 마디 거들기 위해 팔을 내지르려는 순간 마유미가 내 손을 공중에서 낚아 챘다.

“너 설마 이 자리에서 4장 전부 구입 한다느니, 이딴 소리만 해 봐?”

“······.”

아... 역시 마유미를 데려오는게 아니었어.

결국 나는 츠바키, 마유미는 칸나 버전을 구입해 클리어 하면 서로 바꿔하기로 합의를 보았으나, 여전히 내 마음은 조금 뒤틀려 있었다.

“저기.. 조용한 노래만 두곡 사긴 그러니까.. 셰릴이나 콘노 아즈사 버전중에 하나 더 사는게 어떨까?”

“하나만 해. 어차피 게임기에는 소프트 한 장만 들어가 잖아.”

“아니 그래도 플레이 하다가 지루하면 중간에 바꿔서 할 수도 있는거 잖아...”

하지만 째려보는 그녀의 눈빛에 나의 발언은 가볍게 묵살 당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감히 여자친구와 함께 게임을 사러온 나를 부러워 하거나, 혹은 질투심에 죽일 듯한 눈으로 흘겨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실 이건 이거 대로 피곤하단 말이지...’

내가 뭘 위해서 지난 한 달 동안 그 고생을 했던가?

배고파 쓰러질 것만 같아도 꾹 참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다닌 것은 모두 오늘을 위한 투자였다.

어떻게든 머리를 써야해...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는 그녀의 눈빛을 피해 서둘러 줄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렸다.

&

버추어 아이돌의 축하 무대를 끝으로 본격적인 판매가 개시 되자 서서히 줄어드는 대기 줄에 설레이면서도 한편으론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슬쩍 내부를 살펴 본 결과 계산대는 모두 5곳.

그러니까 마유미와 흩어지기만 한다면 내가 원하는 타이틀을 전부 사서 쇼핑백 안에 집어 넣은 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혹시나 그녀가 내용물을 보자고 할 수도 있으니, 쇼핑백에 테이핑을 해달라고 하면 어떨까?

머릿속에서 한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그녀의 시선을 피할 여러 가지 방법을 구상하던 중 어느새 펜타곤 샵 내부에 입성하게 된 내 눈 앞에 다섯 개의 계산대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로 가지? 일단 마유미랑은 최대한 떨어진 곳에서 계산해야 돼.’

만약에 그녀가 가운데 계산대로 향한다면 끝장이다. 대신 양쪽 끝으로 배치 된다면 그거야 말로 베스트 포지션이고...

일단 빠른 계산을 위해 몰래 가방에서 두둠한 봉투를 꺼내든 나는 마유미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뒷주머니에 돈을 쑤셔 넣었다.

‘됐어. 우선 첫 번째 미션은 클리어다.’

기다려라. 나의 컴플리트 라온..!!

마른 침을 삼키며 점점 줄어드는 대기열을 바라보던 나는 매장 내부를 살피는 척 주위를 둘러보며 계산대로 향하는 사람들의 순번을 살폈다.

‘한 사람당 기기 본체와 소프트를 구입하는 시간은 평균 3~4분. 이렇게 된다면 마유미가 배치 될 곳은 4번 캐셔다. 1번이나 5번이 아니라 아쉽지만 4번도 나름 나쁘지 않다. 적어도 1번이나 2번을 차지 한다면 마유미가 계산하는 쪽에선 내가 계산 하는 물품들이 잘 안보일 테니까.’

아~ 내 돈 주고 게임 하나 사는데, 이렇게까지 힘들어서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버추어 아이돌 중에서 재고가 떨어진 히로인이 아무도 없다는 것. 하지만 대충 눈대중으로 살펴 보니 츠바키 버전이 가장 빨리 소진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벌써 다음이 우리 차례네.”

“그.. 그러게. 너는 본체랑 버추어 아이돌 에리카 버전만 구입할거지?”

“응. 구입해서 칸나한테 사인해 달라고 할거야.”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나도 그래볼까~”

“음? 넌 츠바키 버전으로 산다고 하지 않았어?”

헉!! 이런 멍청한.. 중요한 순간에 이런 자폭을 하다니!!

벌써부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마유미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타이밍 좋게 뒤에서 펜타곤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손님. 4번 계산대로 가주세요.”

“아, 네~!!”

직원의 안내에 따라 4번 계산대로 향하는 마유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느 ㄴ어서 내 차례가 다가오기 만을 기다렸다.

‘1번이든 2번이든 빨리 좀 사라.. 제발!!’

하지만 나의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가 버리고...

“다음 손님 3번 계산대로 가주세요.”

... 제기랄 망했다. 하필이면 마유미 바로 옆 자리에 걸리다니.

혹시나 싶은 마음에 최대한 밍기적 거리며 계산대로 향하는데, 갑자기 1번 계산대에 있던 손님이 쇼핑백을 들고 자리를 떠나는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잠시 스탭이 꼬인척 비틀거리며 1번 계산대로 향했다.

“아, 손님 이쪽으로~!!”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3번 캐셔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재빨리 1번 캐셔로 달려가 준비된 멘트를 내뱉었다.

“컴플리트 라온 1대랑, 버추어 아이돌 4가지 버전. 초회 한정판 전부!! 그리고 풀 메탈 기어 솔리드랑 내가 없는 거리 리메이크 버전 주세요!!”

“아, 그러니까. 오늘 컴플리트 라온과 함께 런칭된 제품 전부 달라는 말씀이시죠?”

“네!!”

나는 직원에게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마유미를 살피며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뒤쪽 공간에서 제품을 하나씩 꺼내들고 온 여직원은 계산대 위에 제품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렸다. 그리곤 옆에 있던 마이크를 후후 불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안내 방송을 알렸다.

“방금 전 주문해주신 고객님을 끝으로 버추어 아이돌 사와노 츠바키를 비롯해 에리카의 한정판 패키지가 소진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 나이스!! 내가 구입한게 츠바키랑 에리카의 마지막 한정판이었구나~!!

어라 잠깐만 에리카라고...?

츠바키 버전만 사기로 했는데... 에리카까지 말해버리면?

불길한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4번 캐셔에서 나를 바라보는 마유미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손님. 구입해주신 컴플리트 라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드려도 될까요?”

“아뇨. 제가 급한 용무가 있어서 빨리 계산해 주세요.”

“그럼 플레이 하시기 전에 설명서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컴플리트 라온과 함께 구입해주신 소프트들까지 총 80,080엔입니다.”

버추어 아이돌 한정판이 개당 9,280엔이니 4개를 합치면 컴플리트 라온보다 비싸다.

하지만 마지막 한정판을 득템했다는 짜릿함 때문일까? 나는 서둘러 봉투에서 만엔짜리 지폐 8장과 100엔짜리 동전 하나를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80,100엔 받았습니다. 여기 잔돈 20엔입니다.”

8장의 지폐를 건네주고 돌아온 구릿빛 동전 두 개를 바라보니 잠시 허탈감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아니다.

거대한 쇼핑백에 묵직한 컴플리트 라온을 넣고 있는 직원을 도와 타이틀까지 한번에 담은 나는 영수증을 챙긴 뒤 서둘러 펜타곤 샵을 빠져 나왔다.

“켄스케!!”

곧이어 뒤따라 매장을 나온 마유미가 나와 비슷한 크기의 쇼핑백을 손에 든 채 성큼 성큼 나에게로 걸어왔다.

“너 대체 얼마나 산거야!?”

“아, 아냐 나도 그냥 칸나한테 사인 받으려고 에리카 버전만 하나 더 산 것 뿐이야.”

“그런데 왜 쇼핑백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지? 잠깐 이리와 봐.”

“아니라니까. 진짜 딱 그거 두 개만 샀대도~!!”

“그러니까 잠깐 보여 달라고!!”

“아, 진짜 유치하게 왜 이래.”

어마어마한 포스를 뿜어내고 나에게 달려드는 마유미를 피해 차도 근처까지 물러난 나는 집요하게 쇼핑백을 향해 손을 뻗는 마유미를 피해 차도 쪽으로 몸을 피했다.

다행히 난간이 있어 넘어질 일은 없었기에 나는 최대한 쇼핑백을 차도쪽으로 내밀어 그녀를 저지했다.

부아아아앙~

빵빵~!!

어디선가 들려오는 경적 소리에 마유미의 목소리가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어차피 내용물을 살피려는 그녀의 수작일 것이 뻔하기에 나는 무거웠지만, 더욱 차도 쪽으로 쇼핑백을 숨기며 그녀에게서 떨어지려 애썼다.

그 순간.

탁~!!

누군가가 내 손등을 친 것만 같은데. 뭔가 손이 허전하다...

“응?”

고개를 돌려 차도 쪽에 뻗어있던 손을 살피니,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커다란 쇼핑백의 손잡이 뿐이었다.

“어라? 이게 뭐야?”

부아아아앙~~

곧이어 들려오는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방금 전까지 내손에 들려 있던 두툼한 쇼핑백은 오토바이 뒷 좌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품에 들려있었다.

이거 설마 날치기냐?

< EP. 43 : 완전한 즐거움. (3)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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