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17화 (217/252)

< EP. 42 : 갈라쇼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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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초여름.

버추어 아이돌의 두 번째 캐릭터인 셰릴의 ‘Beating Heart’는 에리카의 응원가와 함께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비록 정식 앨범이 아닌지라 오리콘 차트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노래는 차트 10위권 내의 음악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발휘 했다.

일본의 유명 음반사인 J-레코드에서도 펜타곤에 정식으로 앨범 유통에 대해 요청을 해왔을 정도였니까. 그에 대한 설명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만큼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물론 앨범을 제작할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정규 앨범이 발매되는 것에는 조금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만 같다.

버추어 아이돌에 들어갈 곡을 위해 하란Q의 테라다와 유명 작곡가인 칸노 요우코를 비롯해 수 많은 작곡가 분들이 도움을 주었는데, 그래서 일까? 정말 앗 하는 순간에 버추어 아이돌의 데이터 베이스에는 수 많은 명곡들이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나와 우에노 씨. 그리고 테라다씨는 오디션을 통과한 이들과 개별 면접을 통해 적절한 곡을 매칭해 주었고, 그녀들은 현재 펜타곤에서 마련해준 연습실에서 자신의 노래를 발표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 중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들의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위해 동분서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컴플리트 라온. ‘완전한 즐거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력한 성능을 탑재한 펜타곤의 신모델은 지난 세미나에서 정식 발표와 동시에 유저들에게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휴대용 라온과는 대비되는 묵직한 블랙 색상은 무광 처리가 되어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었다.

유저들은 펜타곤 샵 내부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는 컴플리트 라온을 바라보며 연일 침만 꼴깍 삼키고 있었다.

“아~ 진짜 갖고 싶다.”

“아직도 발매까지 석달이나 남았다니, 피가 바싹 말라가는 기분이야...”

“누가 아니래냐. 집에 기어 스테이션도 가지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풀 메탈 기어 솔리드’가 떠나가질 않으니...”

고등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은 벌써 30분째 전시 중인 컴플리트 라온 앞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저러다 망부석 되겠네...’

간만에 펜타곤 샵에 들러 머리를 식히던 나는 미야자키가 가져다준 차를 마시며 웃음지었다.

게이머들에게 있어 새로운 콘솔의 등장 만큼이나 가슴 설레이는 일이 또 있을까?

나 역시 개발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저 분들 말고도 거의 매일 같이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많아요. 전시되어 있는 모조품을 자기한테 팔지 않겠냐고 직원들에게 물어보신 분도 계셨구요.”

“전시용 모조품을...?”

아니... 그건 대체 가져가서 뭐하려고? 어차피 플라스틱 껍데기일 뿐인데...

나는 심상치 않은 유저들의 기대 심리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시 중인 컴플리트 라온의 양 옆에는 저번 세미나에서 공개했던 폭스 소프트의 ‘풀 메탈기어 솔리드’와 ‘버추어 아이돌’의 영상이 계속해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두 학생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는지 홍보 영상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내 매장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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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서 정보를 공개한 이후. 새로운 콘솔에 대한 유저들의 기대감이 오르는 것은 좋지만, 그럴수록 다른 기업에 대한 견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전 세대 같은 경우엔 휴대용 게임기라는 틈새 시장을 파고들어 제대로 공략했지만, 이번 만큼은 정면 승부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더구나 민텐도가 없는 지금 시장을 잡기 위해 센소니와 NEGA는 신규 유저를 끌어들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마케팅을 쏟아내고 있었다.

특히나 NEGA같은 경우는 북미 지역에서 399달러였던 새턴의 가격을 기어 스테이션과 같은 299달러로 인하했다.

듀얼 CPU로 인해 399 달러에서도 큰 적자를 보고 있던 NEGA가 센소니를 잡기 위해 신의 한수를 던진 것이다.

스즈키씨 같은 경우에도 새턴의 변태같은 개발툴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리얼 파이터2 만큼은 아케이드 판에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훌륭한 퀄리티로 출시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응해 현재 3D 격투 게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우는 아이언 피스트 2 역시 가만 있지 않았다. 물론 리얼파이터의 화려한 그래픽에 비해 다소 딱딱하지만, 기어 스테이션으로 이식된 아이언 피스트2는 가정용 콘솔 만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모드를 추가하여 ‘초월이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각 캐릭터 별로 준비된 수준급 엔딩 영상으로 인해 아케이드 판과는 차원이 다른 스토리 몰입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봤자, 절벽에서 기어올라온 아비가 아들을 타오르는 화산에 내던지는 엽기적인 시나리오였지만... 그래도 씨디 한 장에 그 많은 캐릭터의 엔딩 CG를 담아 내는 것은 쉽지 않았겠지...)

그러자 아케이드와 똑같은 허무한 엔딩에 모드라고는 달랑 VS 모드 하나 들고 나온 리얼 파이터2는 훌륭한 이식작임에도 또 한번 아이언 피스트와 비교 될 수밖에 없었다.

고고했던 민텐도와 다르게 새로히 콘솔 사업을 시작한 센소니는 방심하지 않았다.

거대한 자본으로 어떻게든 민텐도가 없는 현재 시장을 잡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었다.

신중히 가드를 올리고 적이 치고 들어 올 때 마다 짜릿한 카운터를 선사하는 센소니의 마케팅은 동종 업계인 우리가 보더라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으니. 당하는 NEGA 입장에선 지금 상황이 얼마나 기가 찼을까?

하지만 그런 센소니 조차 펜타곤에서 발매하는 컴플리트 라온에 대해선 상당히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센소니에서 저희 폭스 소프트의 상층부를 통해 ‘풀 메탈 기어 솔리드’의 기어 스테이션 이식을 요청한 듯 합니다.”

현재 가장 이목을 얻고 있는 3D 잠입 액션 게임을 멀티로 발매 시키기 위해 센소니가 폭스 소프트에 접근한 것이다.

이미 북미와 일본 지역을 통해 100만대를 눈 앞에 두고 있었기에 폭스 소프트에서는 센소니의 제안이 굉장히 달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센소니에서도 간과한 부분이 있었으니, 호우지마씨의 ‘풀 메탈 기어’는 펜타곤의 자본도 대량으로 투입된 결과물 중에 하나였다. 즉 ‘풀 메탈 기어 솔리드’의 절반 이상은 우리 펜타곤의 소유나 다름 없다는 것이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7월 중순.

컴플리트 라온 발매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펜타곤은 유저들을 위한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그것은 일전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무산 되었던 ‘신의 선물’의 갈라 콘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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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사를 통해 추첨 방식으로 진행된 콘서트 티켓은 예상대로 유저들의 어마어마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어떤 이는 권당 한 장씩 들어있는 콘서트 신청권을 위해 5권의 잡지를 사서 응모한 유저도 있었으니까. 덕분에 불티나게 팔려나간 지난 달 잡지 판매로 인해 준페이는 며칠째 미사토씨와의 데이트도 못하고 야근 중이었다.

“빌어먹을 신청권이 대체 몇장이나 날아오는거여...”

“다른 잡지사에도 물어봤지만, 그정도까진 아니던데. 역시 패미통신이 게이머들에게 인기가 좋나보네..”

“경쟁률에 비하면 다른 잡지사에 투고 하는게 확률이 더 높지 않았을까?”

“그래도 패미통신에는 티켓 150장 뿌려줬잖아.”

“잡지 많이 팔린다고 내 월급이 더 들어오는 건 아니라고 몇 번을 얘기했냐.”

“그것까진 모르겠고, 이쪽도 공연 준비로 바빠서 이만 끊어야겠다. 공연 때 미사토씨랑 같이 올거지?”

“좀 멀긴 하지만, 취재도 할 겸 가봐야지. 아무튼 수고해라.”

“그래 알았다. 그때 보자.”

준페이와의 통화를 종료한 나는 고개를 돌려 무대 쪽을 살폈다.

“어이~!! 거기 왼쪽 무대 중앙이랑 균형이 안맞으니, 좀 더 올려~!!”

“네. 알겠습니다.”

습하고 더운 공기를 가득 머금은 7월...

에어컨 하나 없이 작업하는 인부들을 위해 나와 펜타곤 직원들도 열심히 작업에 매달렸다.

“도시락 왔어요~!! 다들 내려오셔서 식사들 하세요!!”

돌아오는 가을. 하야시와의 결혼 발표로 회사를 충격에 빠뜨린 카오리의 목소리가 강당 안에 울리자, 작업중이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공연까지 앞으로 삼일. 목에 둘러맨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도시락을 받아든 인부들은 직원들과 함께 강당에 주저 앉아 차가운 물을 삼켰다.

“푸하~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여기 생수 좀 더 갖다주소!!”

1리터 가량의 물을 단숨에 들이킨 인부 하나가 빈 페트병을 흔들어 보이자, 카오리가 웃으며 차가운 물 한 통을 더 가져다 주었다.

“자 여기요. 이렇게 더울 때 차가운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할 수도 있으니 천천히 마시세요.”

“아따. 아가씨 싹싹하네잉. 어서 왔소?”

“어이구. 이눔아. 말투 들으면 모르겄어? 도쿄 사람이잖아. 도쿄.”

“하하. 네 맞아요. 도쿄에서 왔습니다.”

작고 귀여운 카오리는 특유의 붙임성 있는 성격 덕분인지, 인부 아저씨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저씨에게 페트병을 건네준 카오리는 아저씨와 몇마디 더 나눈 뒤 나를 향해 도도도 달려왔다.

“수고 했어.”

“고마워요. 이사님.”

자기 몫의 도시락을 받아온 카오리는 내 옆자리에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어 젖혔다.

“많이 덥지? 멀리까지 와서 고생하네.”

“괜찮아요. 딱히 한 일도 없는데요. 그보다 복구가 엄청 빠르네요. 완전히 폐허였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하긴 카오리의 말도 무리는 아니지.

나 역시 4개월 만에 이정도까지 복구가 됐을 줄은 몰랐으니까...

현재 우리가 식사 중인 이곳은 지난 2월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이 베이스 캠프로 삼았던 강당이었다.

고베 대지진을 경기 회복의 기회로 삼은 일본 정부는 복구 작업에 전 일본의 건설사를 모두 투입 시켰다. 덕분에 지진 잔해는 엄청난 속도로 제거 되었고, 현재 학교 주변에는 피해 주민들의 임시 거주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건물 자체는 임대형 조립 아파트 수준의 환경이었지만, 워낙에 집을 좁게 쓰는 일본인들은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야시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뭐 그 사람이야 여기보단 개발실이 어울리는 사람이니까요. 결혼식이 코앞이어도 게임 개발한다고 휙 가버리는 건 아닌지.”

카오리의 말에 결혼 전에 유키가 했던 말이 떠올라 밥알이 목구멍에 걸렸다.

나도 유키랑 결혼 전까지 드래곤 엠블렘 2 때문에 엄청 바빴었으니까...

“어머, 왜 그러세요? 이사님?”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카오리의 눈을 피한 나는 벌컥벌컥 물을 삼켰다.

그때 강당에 들어온 펜타곤 직원이 카오리를 찾았다.

“저기요 카오리씨. 식사 중에 미안한데, 잠깐만 여기 와줄래요?”

“네~!! 그럼 이사님. 잠깐 제 도시락 좀 맡아주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어... 그래.”

직원을 향해 달려가는 카오리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세팅중인 행사장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프로젝터용 스크린이 팽팽하게 잡아 당겨진 무대 위...

앞으로 3일 뒤. 신의 선물의 갈라 콘서트와 함께 그녀들의 첫 무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 EP. 42 : 갈라쇼 (1)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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