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13화 (213/252)

< EP. 41 : D-125 (4) >

&

1995년의 초 여름.

현재 게임 업계는 상당한 과도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과도기는 항상 차세대 콘솔이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이긴 했지만, 이번 만큼은 특히나 그 경우가 더욱 심한 해인 듯 싶다.

게임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 눈치 챘겠지만, 바로 이 90년대 중반이 기존 2D 게임과 차세대 3D 게임의 획을 긋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양 옆으로만 캐릭터를 조작했던 기존의 2D 게임들과는 달리, 가상의 공간 안에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3D 게임은 유저들에게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기 충분했다.

아케이드 센터에서 처음 선보인 ‘리얼 파이터’를 시작으로 현재 3D 게임 시장을 주름 잡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콘솔 회사 중 가장 보급이 뒤쳐져 있는 NEGA 였다. 그리고 그 뒤를 바싹 따르고 있는게 NANCO 정도랄까?

둘다 오래 전부터 폴리곤을 활용한 게임을 연구해 왔기에 현재에 이르러 어느정도 선두에 서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덧붙여서 설명하자면 민텐도 역시 슈퍼 패밀리에 폴리곤 그래픽을 사용한 적이 있다.

음? 어떻게 슈퍼 패밀리에 3D 그래픽이 돌아갈 수 있는 거냐고? 뭐 폴리곤위에 덧 씌우는 텍스쳐 없이 통째로 굴린다면야 뭐 못할 것도 없긴 하지만... 솔직히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슈팅 게임인 A-ZERO 라던가. 시게루씨의 ‘카린의 전설’ 타이틀 화면에서 3D로 표현된 3개의 삼각형이 모여 하나의 트라이 포스를 이루는 장면은 게이머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순간이었으니까...

아무튼 그 당시 폴리곤이란 다루기도 까다롭고, 행여 만든다고 하여도 결과물이 결코 예쁘다고 말할 수 없던 시기었던지라 개발자들에게 외면 받는 기술에 불과했다.

바로 ‘텍스쳐’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텍스쳐란 완성된 폴리곤 그래픽의 표면에 덧씌우는 비트맵 이미지를 말한다.

사람의 몸안에 뼈와 근육이 있고, 그 위에 피부가 있듯이 폴리곤에도 마찬가지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마치 찰흙 인형 위에 그림을 오려 붙인 것처럼 아주 단순한 발상이지만, 당시 이런 기발한 발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업계에서도 극히 드물었다. 아니 생각을 했다하더라도 그 상상력을 뒷받침 해 줄만한 고성능 기기는 단가가 너무 비싸기도 했지만...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오락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압도적인 그래픽을 가정용 콘솔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때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1995년이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NEGA에서 발매한 새턴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정밀한 2D 스프라이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콘솔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아케이드 센터에서 가장 높은 동전 회수률을 보이고 있는 SMK사의 킹 오브 시리즈나 사무라이의 투혼 시리즈를 가정에서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이죠.”

“흐음...”

도쿄에 위치한 어느 대학교 강당...

며칠 전 학교장의 요청으로 이곳에서 현 게임 산업를 주제로 한 세미나 열게된 나는 미래의 게임 산업을 주도 할 학생들을 모아두고 강연 중이었다.

고맙게도 펜타곤이 이곳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취직하고 싶은 회사 No.1 이라나?

하지만 그건 그렇다치고, 천장에 매달린 프로젝터의 밝기가 왜이렇게 센거야? 용접하는 것도 아닌데, 눈에 아다리 걸리겠네..

피로한 두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마저 설명을 이어 나가려는데, 강당에 있던 학생 중에 한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기... 하지만 현재 NEGA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게임은 리얼 파이터 아닌가요? 어째서 그런 폴리곤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2D 스프라이트를 기반으로 콘솔을 제작한 겁니까?”

“그에 대한 대답을 해드리기 전에 저기... 프로젝터 밝기 좀 줄여주시겠어요? 세미나 두 번만 했다간 장님 될 거 같은데?”

다소 형식적으로 진행 되었던 세미나는 나의 농담으로 조금은 분위기가 누그러 드는게 느껴졌다. 프로젝터를 담당하던 여 선생은 얼굴을 붉히며 프로젝터의 밝기를 낮춰 주었다.

“이제 좀 학생분들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겠군요. 자~ 그럼 우선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죠. 아~ 하지만 그전에 한가지 더. 이곳에서 제가 NEGA나 민텐도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저라는 개인의 추측일 뿐이라는 걸 밝혀드립니다. 펜타곤에 대해선 펙트만 알려드려도 괜찮지만, 타 회사에 대해선 허위 사실 유포로 소송에 걸릴 수도 있거든요.”

“하하하~”

“자~ 그럼 이제 진짜로 NEGA 새턴에 대해서 소설을 한번 써보기로 하죠. 일단 방금 학생이 질문한 것처럼 현재 NEGA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게임은 ‘리얼 파이터’가 맞습니다. 혹시 여기서 최근에 출시한 리얼 파이터 2 해보신 분?”

그러자 대 강당에 모여 있던 거의 태반의 남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누가 게임 좋아하는 학생들 아니랄까봐 거의 다 해봤네...

“그렇죠. 저도 어느정도 예상 했지만, 남학생들은 거의 다 해봤네요. 현재 강당 안에 성비율이 약 8:2 정도니까 거의 80%가 리얼파이터 2를 해보았다는 이야기군요.”

내 말에 다시 한 번 강당 안에 키득 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웃지들 마시라.. 나도 처음 들어오고 무슨 군대 위문 공연온 줄 알았으니까...

“리얼 파이터2 전작과 비교해서 어땠나요?”

“그래픽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던데요?”

“텍스처가 좋아졌어요.”

“사라와 파이가 이뻐졌어요~!!”

... 방금 전 소감은 나도 동감한다. 확실히 전작에선 사람이 아니었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프레임이 엄청 부드러워졌던데요? 전작은 눈이 좀 아팠었는데...”

나는 마지막에 들려온 학생의 소감에 손가락을 튕기며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방금 굉장히 좋은 지적이었습니다. 프레임. 확실히 기존의 2D 게임과 현재 3D 게임 개발의 다른 점이 있다면 일정한 프레임을 유지시키는 것이니까요.”

나는 단상 위에 준비된 차가운 생수로 목을 축인 뒤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최근 어느 대학의 연구 결과에서 사람의 뇌는 참 특이하게도 2D와 3D를 인식하는 것에서 굉장한 차이를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여러분이 지금 TV 애니메이션인 ‘드래곤 볼’ 보고 있다고 칩시다. 혹시 드래곤 볼에서 손오공이 움직일 때의 초당 몇장의 프레임을 사용 하고 있는지 아시는 분?”

“초당 약 15에서 20 프레임 내외로 알고 있습니다. 전투를 벌일 때는 10 프레임까지 떨어질 때도 있구요.”

아따. 누가 게임 전문 학과 다니는 학생 아니랄까봐 기가 막히게도 알고 있네...

“네. 맞습니다. 반면 미국의 디즈니사에서 만든 ‘알라딘’이나 ‘라이온 킹’ 같은 경우엔 하나의 씬에 초당 48에서 60프레임 가까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드래곤 볼에 비해 굉장히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죠.”

그러자 머릿속에 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린 학생들이 묵묵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전 드래곤 볼이 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드래곤 볼을 보았을 때 혹시 프레임이 모자라 장면이 상상이 안가거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었나요? 아마 이 자리에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여기서 사람의 뇌에 대한 재밌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바로 2D로 그려진 만화에서는 사람의 뇌가 중간 중간 비워진 프레임을 알아서 상상해 준다는 것이죠. 따라서 프레임이 부족한 거친 씬에서도 여러분들이 TV를 볼 때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3D는 조금 달라요. 특이하게 사람의 뇌에서 3D 오브젝트를 하나의 물체로 인식을 하기 때문에 프레임이 떨어지는 순간. 굉장히 어색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하더군요.”

“아아....”

“즉 3D 게임은 적어도 플레이 내내 28 프레임까지는 유지를 시켜주어야 만이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는데 무리를 느끼지 않는 것이죠. NEGA 역시 이 점을 인지하고 리얼 파이터 2의 프레임을 전작의 두배인 60 프레임으로 고정시켰습니다.”

“오오...”

“어라? 그러면 NEGA의 3D 기술력이 현재 최고라는 말씀 아닌가요? 그런데 왜 새턴은 2D 기반으로 제작한 건가요?”

“흐음..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는데, 방금 학생의 말대로 현재 게임 산업에선 3D 격투게임에 대한 IP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만이 그 실력을 인정 받고 있는 추세입니다. NEGA와 NANCO가 그렇죠. 하지만 NEGA가 새턴을 기획할 당시엔 2D 게임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지난 세대에서 민텐도의 슈퍼 패밀리와 저희 펜타곤의 라온에 의해 입지가 낮아진 NEGA는 16비트 콘솔 사업에서 가장 먼저 손을 떼었습니다. 그리고 32비트 시장을 선 독점하기 위해 태양계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태양계 프로젝트요?”

“NEGA 새턴에서 ‘새턴’은 본래 프로젝트 이름이었다고 하네요. 태양계에 맞춰 순서대로 프로젝트를 준비해왔는데, 그중에 가장 반응이 좋았던게 바로 6번째 였던 새턴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 잡지사를 통해 NEGA에서 새로운 차세대 기종을 만들고 있다는 루머가 퍼지자, NEGA는 프로젝트명 그대로 새턴이라는 기기를 공식적으로 발표해버렸죠. 사실 어떤 프로젝트가 낙찰 되느냐에 따라 NEGA 머큐리도 될 수 있었고, 쥬피터로도 불렸을 수도 있겠네요.”

“아~ 그렇구나...”

“물론 최초로 새턴을 발표했을 때 유저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새로운 차세대 기기에서는 현재 아케이드 센터 인기를 끌고 있는 대부분의 2D 격투 게임을 집에서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득했으니까요. 물론 NEGA도 정확히 그 부분을 목표로 했으니, 새로운 콘솔은 반드시 성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죠. 하지만... 93년 말 NEGA의 간판 프로듀서인 스즈키씨가 만들어낸 ‘리얼 파이터’ 하나로 NEGA는 아케이드 센터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새턴 프로젝트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되었죠.”

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세미나에 집중하는 학생들의 표정에 살짝 웃으며 NEGA 새턴의 공식 스펙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덧붙여 주었다.

그동안 게임 업계에 대한 소식을 이토록 세세하게 들어본 경험이 없던 학생들은 어느새 나의 이야기게 푹 빠져 쉬는 시간이 지난 것도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무대 왼편에서 양손을 X자로 교차하고 있는 선생의 제스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도 몰랐네요. 세미나 1부를 마치기 전에 새턴에 대한 저의 소설 같은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자면, 현재 새턴의 부진에 대한 가장 큰 적은 민텐도도 센소니도... 그리고 저희 펜타곤도 아닌 자사 프로듀서의 ‘전대미문의 팀킬’ 이었다. 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한 가지 덧붙이 자면 NEGA의 ‘리얼 파이터’로 인해 차세대 콘솔의 진로를 잡은 곳이 바로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입니다. 잠시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이어지는 2부에서는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에 대한 이야기와...”

나는 잠시 마이크를 떼어 내며 한 템포 멈춘 뒤. 학생들을 향해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펜타곤에서 제작한 차세대.. TV 거치형 콘솔의 발표가 이 자리에서 있겠습니다.”

“허어어억!!!!!!! 이런 세상에.. 여기서 발표 한다고!? 계 탔다.”

“미친.. 대박이다. 대박이야!!”

나의 마지막 멘트에 강당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비명과도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순간 강당 분위기가 CES 행사 때 저리가라 할 정도로 끓어 올랐다.

하긴 이런 대학 세미나에서 신기종 발표할 줄은 아무도 생각 못했겠지...

나는 단상 위에 남아 있는 물을 마저 삼키곤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 EP. 41 : D-125 (4)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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