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1 : D-125 (3) >
“그렇지? 맞지!? 이거 칸나 목소리지?”
어라..? 설마 쟤네들.. 칸나 친구인가?
우연한 기회로 그들이 칸나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걸 눈치챈 나는 점장인 미야자키에게 부탁해 그들을 사무실 안으로 불러 들였다.
“이사님. 말씀하신 두 분 모시고 왔습니다.”
“고마워요. 미야자키씨.”
미야자키씨에게 이끌려 사무실로 들어온 남녀 커플은 어색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편히 앉으세요. 미야자키씨 미안한데, 마실 것 좀 가져다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미야자키는 나의 부탁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나섰다.
여전히 좌불안석(坐不安席)으로 엉덩이를 반쯤 걸터 앉아 있는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최대한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에게 내 소개를 전했다.
“갑자기 이런 곳에 불러들여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다른 고객님들의 눈이 좀 있어서 함부로 전해 드리기가 그렇거든요.”
그와 동시에 품안에서 한 장의 미니 앨범을 꺼내들자, 내 앞에 앉아 있던 남자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새어 나왔다.
“우왓~!!”
이 녀석... 보기완 다르게 굉장히 호들갑스러운 성격이네, 아니면 게임에 관해서만 그런건가? 생각보다 가벼운 그의 성격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이블 위해 앨범을 내려 놓자, 남자의 눈이 그대로 앨범을 쫓았다.
마음 같아선 좌우로 앨범을 휘적이며 놀려보고 싶었지만, 아까부터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이거.. 상당히 구하기 힘든 앨범이라면서요? 다른 손님도 있는데, 이렇게 막 주셔도 되나요?”
역시나 홍보 앨범에 눈이 돌아간 남자보다 여자 쪽이 날카로운 질문을 날릴 줄 아는군.
나는 테이블 위해 CD를 올려둔 채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안되죠. 그래서 이렇게 ‘몰래’ 드리고 있잖아요.”
“왜죠...?”
여전히 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는 그녀를 향해 난감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그녀 곁에 앉아 있는 남자친구가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까 들어올 때 못 들었어? 이사님이라잖아. 그정도 직급이라면 이 정도야...”
그러던 중 나와 눈 마주친 남자는 잠시 할 말을 잊은채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 거렸다.
“혹시 강준혁 디렉터...”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네요. 방금 말씀해 주신대로 펜타곤의 강준혁입니다.”
“어억!! 실물이다!! 가끔 펜타곤 샵에 들린다더니, 사실이었어!!”
... 나를 본게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인가?
침까지 튀어가며 기겁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호들갑 떨어대던 옛날의 준페이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뻔 했다.
“실례가 안된다면 잠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그.. 나, 나카무라라고 합니다. 이 쪽은 여자친구인 마유미구요.”
“반갑습니다. 나카무라씨. 그리고 마유미씨. 사실 두 분을 이곳에 부른 건 제가 본의 아니게 여러분이 나눈 대화를 엿들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대화를요?”
“아까 매장안에서 노래를 듣다가 ‘칸나’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으셨나요? 저는 분명 그렇게 들었는데...?”
“헉? 그 말씀은 설마, 이 노래를 정말 칸나가 불렀다는 말씀이세요?”
마유미라는 여자의 물음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이번에 저희 펜타곤에서 기획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칸나씨의 노래가 ‘첫 번째’로 공개되었습니다.”
“아~ 역시... 거 봐~ 나카무라 내 말이 맞지? 나는 한 번에 알겠던데.. 이 둔팅이...”
“와.. 그렇구나. 난 진짜 꿈에도 몰랐네. 어? 그럼 잠깐만... 혹시 그러면 신의 선물의 엔딩곡도 혹시?”
그제서야 눈치를 챈 나카무라의 질문에 나는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허어억.. 나 방금 소름 돋았어. 설마 그 엔딩곡을 칸나가 부른 것일 줄이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치사하네. 친구인 우리들한테까지 비밀로 할 줄이야. 섭섭하다.”
“뭔가 우리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겠지.”
칸나의 사정을 이해해주려는 마유미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준비하는 프로젝트는 사내에서도 비공개 프로젝트에 속하기에 직접 개발에 참여하는 팀장급 인원 말고는 그녀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비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요청이기도 하구요.”
“아... 그럼 혹시 칸나의 이 노래가 성공하면 그... 데뷔도 가능한 건가요?”
“그것에 대해선 확답을 드리기가 좀 힘드네요.”
그때 우리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나카무라가 나에게 물었다.
“저기 아까 전에 하신 말씀 중에...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요.”
“말씀해보세요. 제가 말할 수 있는 선에 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칸나의 노래가 ‘첫 번째’로 공개 되었다고 하셨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오호라...? 이 녀석은 게임에 대해선 상당히 눈치가 빠른데?
그러고 보니 나도 무의식 중에 ‘첫 번째’ 라는 말을 입에 담아 버렸군.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딱히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기에 나는 테이블 위의 미니 앨범을 집어들며 대답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선 이 앨범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겠네요. 하지만 그 전에 한가지 약속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네?”
“이 앨범에 대해서도. 그리고 특히 칸나씨에 대해서도. 일절 외부에 알려져선 안됩니다. 여러분이 칸나씨의 친구라면 그녀를 위해서도 꼭 비밀을 지켜주세요.”
내 말을 듣고 난 커플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칸나의 대학 친구인 나카무라 커플이 다녀가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퇴근후 사적으로 만난 술 자리에서 준페이 500cc 가득 채워진 맥주 쪼끼를 벌컥벌컥 삼키고 있었다.
“푸하~!! 크으~!!”
“천천히 좀 마셔라. 인마.”
“야. 내가 지금 안 마시게 생겼냐?”
“그쪽도 뭔가 일이 바쁘니 연락이 잘 안되는 거겠지. 미사토씨가 백수도 아니고, 연락 몇 번 씹힌 걸로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
“씹혀? 그래. 그거 참 지금 내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이다. 그래 씹힌 거지.. 씹힌 거야..”
지난번 지진 사건 이후로 어떻게 연락처를 주고 받아서 미사토씨와 잘되가나 싶더니, 한 10일 전부터 그녀와 연락이 끊겼다고 아까부터 얼마나 징징거리는지...
나는 카운터 너머의 마스터에게 맥주 한 잔을 더 주문한 뒤 안주로 나온 고로케를 씹었다.
“이럴수록 그냥 일에만 집중해. 그래야 생각도 덜나는 법이야.”
“네가 생각해도 나 까인거 맞지? 그렇지?”
“······.”
물론 미사토씨 널 좋아한다면 굳이 연락을 안 기다려도 먼저 연락이 왔겠지. 나도 연애를 많이 해본 건 아니라 어떻게 조언할 처지가 못 되긴 하지만, 10일 정도 연락이 끊긴 거라면 뭐 끝났다고 볼 수 있지.
나는 가볍게 준페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위로해주었다.
“생맥주 나왔습니다.”
주인장이 가져다준 맥주를 준페이 앞으로 밀어주자, 녀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맥주잔을 집어 들었다.
“야, 야, 천천히 마시라니깐~!!”
“저기... 손님.”
“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시끄러웠죠?”
“아뇨. 그게 아니라 혹시 괜찮으시다면 가게 안에 음악을 좀 틀어도 되겠습니까? 최근에 아들 녀석이 선물해준 CD가 있는데, 어찌나 노래가 좋던지 자꾸만 듣게 되네요.”
“네? 아, 네. 물론이죠. 저희는 상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주인장은 다른 손님들에게도 양해를 구한 뒤, 조그만 CD를 플레이어 안에 고정시켰다.
“히꾹. 쳇.. 안그래도 여자한테 까여서 기분도 더러운데, 노래는 무슨...”
“어이, 너 취했냐?”
빈정거리는 말투로 툴툴대는 준페이의 목소리가 혹시나 주인장 귀에 들렸을까 눈치를 살피던 중 가게 안에 놓여진 조그만 CD 플레이어에서 익숙한 기타음이 흘러 나왔다.
“어라.. 이건?”
“아들 녀석이 그러는데, 현재 구하기도 쉽지 않은 음반이라고 하더군요. 저야 엔카쪽이 훨씬 취향에 맞긴 하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좋더군요.”
그때 음악에 쫑긋 귀를 세우던 준페이가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라? 이거 당신을 위한 응원가 아냐? 히꾹. 아~ 이 노래 좋지~”
“그렇죠? 손님께서 뭘 좀 아시는 군요.”
“암요~ 알다마다요. 하지만~!! 내 옆에 있는 이 녀석이 더 잘 알 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녀석 좀 취해서 그래요. 신경쓰지 마세요.”
“허허.. 그런 듯 하네요. 친구분 뒤로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저희 가게는 의자 등받이가 없어서 가끔 손님들위 뒤로 나자빠지시거든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저기 마스터. 여기 생맥주 하나 더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반대편 테이블의 주문에 서둘러 자리를 옮기는 주인장을 바라보며 잠시 한 눈 판 사이. 준페이는 어느새 방금 나온 맥주 500을 단숨에 비워내고 빈 잔을 내려두고 있었다.
“꿈 꿔왔던 미래와 많이 다른 현실에 점점 지쳐가고, 많이 실망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루게될 그대의 세상. 나 항상 그대를 응원할게요.”
한껏 취기가 올랐는지,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던 녀석은 갑자기 빈 맥주잔을 움켜쥔채 나에게 말했다.
“너. 지금 이 노래 부르는 사람 만나봤지?”
“응? 아, 그거야 물론이지.”
“이쁘냐?”
“······.”
하여간 저 질문은 남자라면 동서양을 막론라고 한 결 같구나. 나는 잠시 기타줄을 튕기던 칸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예뻐. 좀 청순한 스타일이야.”
“정말? 그럼 나 소개 좀 시켜주라. 사실 너에게는 말 안했었지만, 오래 전부터 노래 잘 부르는 여자가 내 이상형이었거든.”
“아~ 그랬어? 거의 10년을 알고 지내면서도 몰랐네...”
“그렇지? 내가 좀 센티한 구석도 있거든. 어때? 가능해?”
“아니.”
“아~ 왜~!!”
“준페이 너 고등학교 1학년 때 뭐하고 살았냐?”
“응? 뭐 그때 부활동하고, 친구들이랑 놀러다니고 그랬지? 그런데 갑자기 고등학교 얘긴 왜 꺼내냐?”
“아.. 저 노래 부르는 아이. 그때 태어난 아이거든.”
“······.”
녀석은 그 후로 다시는 칸나에 대해서 일절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 EP. 41 : D-125 (3) > 끝
ⓒ 손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