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11화 (211/252)

< EP. 41 : D-125 (2) >

[전격 데뷔 D-125.]

혹시 눈치가 빠른 사람은 바로 알아 차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데뷔하는 바로 그 날이 ‘컴플리트 라온’의 출시일이었다.

&

펜타곤 직원 중에서도 상부의 몇몇만이 칸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그녀의 노래는 재난 피해지역을 시작으로 천천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노래가 게임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은 단순히 한 가수가 작곡한 이재민들을 위한 ‘응원가’ 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가사에서 전달 되어 오는 곡의 느낌은 꼭 이재민들 뿐만아니라 힘든 업무를 끝낸 직장인들의 하루를 보듬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직접 곡을 만든 칸나의 이야기로는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라나?

통기타의 반주와 달달한 그녀의 음성만으로도 뭔가 기가 막힌 곡이 나올거라 기대했지만, 설마 이정도로 퀄리티 높은 곡이 나올 줄이야...

칸나에게서 첫 녹음 테이프를 받은 날.

집으로 돌아와 유키와 함께 테이프에 담긴 노래를 처음 듣고 서로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키시모리 칸나.

그녀는 신의 선물의 엔딩곡에서 증명했듯이 싱어송 라이터로서 천재적인 센스를 지니고 있었다.

시험삼아 그녀의 녹음 테이프를 하란Q의 보컬인 테라다씨에게 들려주자, 그 역시 칸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굉장합니다. 실로 천재에요!! 현재 제가 알고 있는 가수 중에도 그녀만큼 가사 전달력이 좋은 사람이 드물 정도니까요. 거기다 호소력 짙은 매력적인 보이스까지... 이 정도 곡이라면 발표와 동시에 거리에서 기적 같은 일 벌어 질 것입니다.”

“기적 같은 일이요?”

당시에 테라다씨의 말을 들은 나는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했다.

테라다씨는 관서 사람 특유의 리액션이 크고 조금 오버하는 면이 있었던지라,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흘려 들었었는데...

“이것이 테라다씨가 말한 기적 같은 일인가?”

방금 전 오사카의 덴덴 타운에 위치한 제법 큰 게임 샵에 홍보용 CD를 전달해준 나와 모리타는 근처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 보고 있었다.

처음 가게 문을 열고 나온 점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매장 앞에 설치된 CD 플레이어에 음악을 재생 시키자, 스피커를 통해 잔잔한 통기타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칸나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지자, 길을 가던 사람들의 걸음이 하나 둘씩 멈추기 시작했다.

“어? 뭐지.. 처음 들어보는 노랜데?”

“그러게 가수가 누구지? 노래 좋은데?”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칸나의 고운 목소리에 홀린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거 없이 게임 샵 앞으로 모여 들었다. 그러자 방금 전 CD 재생 시켰던 점원 조차 멍하니 그녀를 노래를 듣고 있다가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사님... 이거?”

“잠깐만, 조금만 더 지켜보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부르는 모리타의 목소리에 나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솔직히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도 이렇게까지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누군가의 음악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저기, 지금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가수가 누군가요?”

“네? 아, 그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펜타곤 소프트에서 홍보용 CD라고 가져다 준거라서...”

그러자 점원의 이야기를 들은 손님들이 추측성 대화를 내뱉기 시작했다.

“펜타곤이라면 게임 회사 아냐?”

“맞아. 거기다 최근에 지진 피해를 입은 고베 지역 자원 봉사로 유명하지. 그런데 왜 이런 음악을 홍보하지? 설마 연예계 사업이라도 시작하려는 건가?”

“에이... 설마 그냥 신작 게임 홍보겠지. 예전에 신의 선물도 음악을 주제로 했었잖아.”

“어라? 이 시기의 신작 게임이라면...? 설마...”

“컴플리트 라온!?”

가게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남자 두명은 다급한 표정으로 점원에게 물었다.

“설마 저 CD. 펜타곤에서 만드는 거치형 콘솔의 신작 게임인가요?”

난처한 표정으로 뒷 머리를 긁적이던 점원은 손님의 질문에 이번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긴 당연히 그럴 것이 우리도 CD에 대해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거든...

물론 ‘컴플리트 라온’과 함께 홍보한다면 그 효과가 배가 되겠지만, 그것보다 나는 사람들이 아무런 편견 없이 칸나의 노래를 들어 주기를 바랬다.

그때 모든 질문에 모른다고만 대답하던 점원이 은근슬쩍 고개를 들며 손님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CD를 원하는 고객들이 있다면 배포 해달라고, 펜타곤에서 50개 정도 주고 갔는데 필요하세요?”

“······. 그런건 빨리 말씀 하셨어야죠!! 당장 주세요!!”

“저도요!!”

“저도 주세요~!!”

잠시 후. 순식간에 동이 난 상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점원은 살짝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차.. 내 것도 따로 챙길 걸...”

나른한 봄 햇살 아래 울려 퍼지는 칸나의 기분 좋은 목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삼키던 나는 홍보용 미니 CD를 손에 들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지그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당신을 위한 ‘응원가’ 라는 테마로 진행된 ‘버츄어 아이돌’ 프로젝트의 그 첫 번째 신호탄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칸나의 노래는 이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고베에서 오사카. 그리고 교토와 나고야를 거쳐 도쿄에 다다랐다. 약 3~4일의 간격을 두고 지역별 게임 샵에 소량으로 배포된 이 CD를 얻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낳고 있었다.

일반 CD 보다 3분의 1정도 크기로 제작된 홍보용 CD은 주로 1~2곡의 음악을 담기 위해 일반 가수들도 자주 사용하는 미니 디스크 였는데, 세로로 제작된 CD 커버에는 칸나를 이미지로 삼은 실루엣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일반 레코드 점에 따로 팔지도 않고 오로지 홍보용 디스크로만 제작, 배포 되었기에 ‘레어’한물건이라는 소문 때문일까?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키바의 펜타곤 샵에서도 1,2호점을 통틀어 약 500장의 CD를 뿌렸건만,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동이나 버렸다.

물론 펜타곤을 찾아오는 유저를 생각한다면 훨씬 더 많은 수량을 준비해야 하는게 당연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홍보용 CD’ 니까...

오히려 넉넉한 수량을 뿌리는 것보다 모자르게 뿌려야지만, 그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다.

펜타곤 샵이라면 많은 수량을 뿌릴 거라 기대하고 멀리서 온 손님들도 있었지만, 무료 배포되는 CD에 클레임을 걸수도 없기에 안타까움을 토로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혹시나 게임 매장에 남은 CD가 없나 아키하바라를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나는 펜타곤 샵으로 들어오는 한 커플에 눈길을 돌렸다.

“아~!! 없어!! 또 없어~!! 아무데도 없어!!”

“지.. 진정해 나카무라. 응?”

“그러게 내가 아침 일찍 오자고 했잖아. 내가 이럴줄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그건 내가 잘 못했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사정이 있었다고!!”

이제 갓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는 ‘버추어 아이돌’ 홍보 CD가 전부 떨어졌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들리는 대화 내용으로 보아 아침 일찍 오려고 했는데, 여자쪽에 사정이 생겨서 늦은 모양이었다.

남자쪽 펜타곤 소프트의 광팬이었는지. 라온용 소프트를 구입할 때 지급하는 굿즈 아이템 포인트로 교환할 수 있는 드래곤 엠블렘 백팩을 둘러매고 있었다.

‘허걱... 저걸 실제로 매고 다니는 사람이 우치무라 말고 또 있었네...?’

아무튼 남자는 굉장히 억울했는지 점장인 미야자키에게 통 사정을 해보고 있었지만, 그런 손님이 한 둘이 아니다보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몇분의 실랑이 끝에 포기한 남자는 세상 모든 걸 잃은 표정으로 터벅터벅 가게 문을 나섰다.

“나카무라.. 미안해. 응? 화 풀어...”

“아냐. 괜찮아. 뭐 어쩔 수 없지. 내일이나 모레 쯤 사이타마 쪽 게임샵에 한 번 들러보고.. 그래도 안되면 홋카이도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구해내고 말겠어.”

... 홋카이도는 왕복 차비를 생각하면 좀 오버 아닌가...?

“아, 진짜. 남자가 쪼잔하게... 자꾸 그럴거야? 대체 무슨 노래길래 그렇게 구하고 싶어 안달인데? 그렇게 구하고 싶으면 후쿠시마쪽에 친척 분이 살고 있으니까. 그 분께 부탁해서 구해달라고 할게. 아마 시골이라 금방 구해주실거야.”

“지.. 진짜?”

남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그제서야 굳어진 얼굴을 풀며 웃어보였다.

그때 때마침 펜타곤 샵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칸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대여~ 너무나 힘든 하루였죠.

마음먹은 일 하나도 되지 않는 그런 하루.

그대의 슬픈 마음 알아요..

그대여~ 너무 바쁜 하루였죠.

마음 편히 숨 돌릴 여유조차 없는 그런 하루.

그대의 그런 마음 이해해요~

그 순간 남자의 표정에 생기가 돌며 스피커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곤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며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오!! 그래. 이 노래야!!”

“이 노래라고..? 어디 얼마나 좋길래..”

여자친구는 잠시 두 눈을 감은 채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노랫 소리에 집중하는 듯해 보였다.

안그래도 심심했던 나는 한 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음악을 듣고 있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때? 마유미. 노래 좋지?”

남자친구의 밝은 미소에 살짝 얼굴을 붉힌 여자친구는 짐짓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러고 보니 저 남자 제법 잘 생겼네. 눈도 크고 코도 시원하게도 뻗었네. 전형적인 미남이라 그런지 내가 보기엔 남자보다 여자쪽이 훨씬 좋아하는 것 같은데?

대신 눈치가 좀 없어 보이긴 한다. 전형적인 우유부단 형이야...

“뭐.. 괘.. 괜찮네. 응. 솔직히 나쁘지 않아. 그런데...”

“그런데...? 뭐?”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나카무라. 안 그래?”

“글쎄... 그러고보니..”

“그러고보니? 그 것 봐. 너도 그렇지?”

“신의 선물.. 엔딩곡 테마를 부른 사람의 목소리랑 비슷한거 같기고 하고...”

저런 대답은 좋지 않아. 만약에 유키라면 곧 장.

퍼억!!

... 그래.. 왠지 곧 있으면 한 대 맞을거 같더라니. 그들을 지켜보던 나는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야이~ 맹추야. 넌 머릿속에 든 게 게임 밖에 없니!? 그거 말고 칸나 말야. 우리 친구 키시모리 칸나!!”

어라? 방금 저 아이 칸나라고 한 거 맞지?

손에 잘 닿지도 않는 곳에 등짝 스매싱을 제대로 얻어 맞은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칸나? 칸나가 왜 이런 곳에서 노래를... 어라? 잠깐 네 말을 들어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한데? 확실히 목소리가 익숙해.”

“그렇지? 맞지!? 이거 칸나 목소리지?”

어라..? 설마 쟤네들.. 칸나 친구인가?

< EP. 41 : D-125 (2) > 끝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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