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09화 (209/252)

< EP. 40 : 사회적 활동. (4) >

“야~ 인마!! 강준혁!! 나도 왔다구~!! 아는 척 좀 해!!!”

“알았다. 알았어. 너랑 내가 하루 이틀 보냐? 오늘따라 왜 이리 칭얼거려?”

사실 이렇게 준페이가 내 옆에 붙어 있으려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취재? 인터뷰? 뭐 그런 것들이야 내가 아니더라도 적당히 주변에 돌아다니는 펜타곤 직원에게 물으면 훨씬 수월한 인터뷰가 가능할테니까...

녀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미사토씨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그리고 내 예상대로 녀석은 나의 면박에 툴툴 거리면서도 나와 미사토씨 뒤를 쫄래쫄래 쫓아 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준페이의 행동에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잠시 후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 살짝 머리를 굴리던 찰나,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다들 빨리 나와봐~!! 방금 타야마씨네 큰 아들이 구조대원에게 발견됐데!!!”

“뭐라고!?”

그러자 내 옆에 있던 미사토씨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그에게 물었다.

“거기가 어디죠?”

“네...? 아 그게.. 여기서 그렇게 멀진 않은데...”

“안내 좀 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미사토씨는 자신의 카메라맨을 데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하긴 게임 회사 인터뷰야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저런 특종감을 놓칠 순 없지..

준페이는 혼자 남은 나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무시 당한 기분이 어때?”

“음... 미안하다.”

“괜찮다. 친구 아이가~”

준페이는 어줍잖은 관서 사투리를 흉내내며 가볍게 내 어깨를 툭치곤 뒤에 말을 이었다.

“지진이 일어나고 거의 60시간이 다 되어 구조되다니. 실로 기적이구만...”

강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타야마라는 아이가 살아있음에 안도하며 웅성이고 있었다. 그중에 평소 아이와 알고 지내던 몇몇 사람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미사토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낯익은 꼬맹이 하나가 새빨게진 눈으로 강당을 빠져 나가는 걸 본 나는 나도 모르게 두 눈으로 녀석을 쫓았다.

그 아이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운동장에서 그네에 홀로 앉아 울고있던 꼬맹이었다.

“어라...?”

“왜 아는 아이야?”

“설마...”

“응? 뭔데? 갑자기 왜그래?”

등 뒤에서 준페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발은 이미 구조현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따라 걸음 달리기 시작했다.

“야~!! 강준혁!! 저 자식 갑자기 왜 저래?”

&

잠시 후. 폐허로 변한 골목길의 무너진 콘트리트 더미를 밟고 얼마나 달렸을까?

주황색 옷차림의 구급 대원들과 함께 미사토씨가 데리고 다니는 카메라맨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아까전의 꼬마 아이가 부모님의 손을 꼭 잡은채 구조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긴가?’

준페이와 함께 현장에 도착하자 구급대원들이 지랫대를 이용해 콘크리트 더미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구급 대원들의 반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기중기(起重機)는 아직인가!? 대체 얼마나 걸리는거야!?”

“치직!! 현재 현장으로 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도중에 장애물이 많아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입니다. 치지직..”

“야, 인마. 그걸 지금 보고라고 하는 거야!? 환자가 지금 탈진 상태라고!!”

“칙!! 최대한 신속하게 이동해 달라고, 다시 한 번 요청 하겠습니다.”

무전 내용만 듣기로는 아직 한창 구조활동이 진행 중인 것 같은데...

무너진 콘트리트 더미 주변에는 불안한 표정으로 현장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이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구조 반장은 입맛살을 찌푸리며 지랫대를 받쳐들고 있는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거기 절대 손 놓지마!! 그것 마저 무너지면 진짜 큰일난다!!”

“네. 알겠습니다!!”

이를 악문 채 전신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던 세명의 구조 대원은 반장을 등진 채로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 그 상태로 잠시만 버텨라. 내가 들어가 볼테니.”

“네? 하지만 반장님!?”

“기중기가 도착 하려면 아직 멀은 것 같은데, 빨리 병원으로 옮기려면 이 방법 밖에 없어.”

옷에 걸치고 있던 장비를 풀어 헤친 구조 반장은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여 아이가 쓰러져 있는 좁은 틈새로 향했다.

하지만, 중년치고 굉장히 다부진 체격을 가진 구조 반장이 들어가기엔 그 틈이 너무나 좁게 느껴졌다.

“젠장 맞을... 조금만 더 틈을 벌릴 수 없나?”

“안됩니다. 그랬다간 지랫대가 부러질 수도 있어요.”

“크윽... 제기랄..”

비통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구조 반장의 모습에 사고 현장 아래 갖혀 있는 아이의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먹였다.

“우리 애기 어떡해...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

하지만 긴박한 현장에서 누구 하나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다.

아이의 부모님은 가능하다면 자신들이라도 대신 들어가 아이를 구하고 싶어 했지만, 두 분 다 워낙에 육중한 체격이라 저 틈새로 들어가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때였다.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현장의 긴박한 소식을 카메라를 통해 전하던 미사토씨가 마이크를 내려 놓으며 구조 반장에게로 향했다.

“제가 들어 갈게요.”

“네!?”

“저라면 저 틈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니. 그래도 2차 사고 발생을 고려해 민간인의 도움을 받을 수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조금만 버텨 주신다면 제가 들어가서 아이를 먼저 꺼내 올릴게요.”

그러자 그녀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끼긴 했지만, 성격 한 번 똑 부러지는구나.

내심 속으로 감탄하던 나는 잠시 콘크리트 틈새를 살펴 보다가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차라리 제가 들어 가겠습니다.”

그러자 나를 따라온 펜타곤 직원 몇몇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사님!! 너무 위험합니다.”

나는 직원들의 만류에도 슈트와 넥타이를 벗어 던지며 최대한 움직이기 편한 상태로 두었다. 어떻게 살짝 비집고 들어 가면 들어갈 것 같기도 한데...

살짝 몸을 풀어내고 현장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

“응...? 뭐냐. 준페이.”

“너 인마. 유키씨랑 이제 갓 태어난 설현이 생각도 해야지. 혹시라도 지랫대가 부러지면 어떡하려고..”

준페이는 잠시 사고 현장의 틈새를 바라보다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내가 갈게.”

“그래. 네가 나보다 더 말랐으니 그거 좋은 생각이다.”

“어...? 아니, 잠깐만...”

“후딱 들어가서 아이 올려 보내고, 너도 가볍게 빠져 나오는거야.”

“아니, 잠깐 잠깐.. 나도 부모님 생각 좀...”

순간 뭔가 아니다 싶었는지 한발 뒤로 빠져 나가려는 준페이를 재빨리 끌어 안은 나는 녀석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무사히 살아 돌아 온다면... 그때 네가 갖고 싶어했던 ‘사이킥 포스’ 전시용 피규어 하나 줄게.”

“두 개 줘.”

... 이런 황당한 자식. 이런 상황에서 딜을 때릴 줄이야. 결국 나는 준페이 녀석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콜.”

“······ 그래. 내가 가마.”

결국 깡마른 체격의 준페이가 아이를 끌어 올리기 위해 구조 현장에 투입하기로 결정이 나고, 녀석은 두터운 파카를 벗어 던진 뒤 벌어진 콘크리트 틈새로 다리를 집어 넣었다.

나는 구급 대원들과 함께 녀석이 들어간 현장 주변에서 함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받쳐 들었다.

밑으로 내려간 준페이가 손전등을 키자, 어두운 공간 너머로 쓰러져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네에 있던 꼬마보다 조금 더 키가 클뿐 깡마른 체격이라 쉽게 틈새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숨 쉬고 있어요~!! 살아 있습니다!!”

그러자 준페이의 목소리에 반응해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바스스 소리가 들려왔다.

구조반장은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준페이에게 말을 전했다.

“너무 크게 소리치면 진동으로 내부가 울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이가 다치곳은 없습니까? 피가 나거나 어디가 끼어 있거나..”

“그...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그냥 매우 지쳐 보입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부터 천천히 아이를 끌어서 이 쪽으로 올려 보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준페이는 구조 반장의 조언에 따라 아이를 천천히 끌어내 우리가 있는 근처까지 다가왔다.

“좋아요. 잘하고 계십니다. 일단 아이의 머리를 위로 향하게 해서 이쪽으로 올려주세요.”

행여 아이의 머리가 콘크리트에 부딪힐까 조심스레 아이를 받쳐들고 들어 올리자 구조 반장은 아이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집어 넣어 밖으로 끄집어 내었다.

“우와아아아!!! 됐다~!! 됐어!!”

아이의 몸이 사고 현장 밖으로 나오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외치기 시작했다. 구조 현장 실황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던 미사토씨와 카메라맨도 흥분을 감치지 못한 표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어이, 수고했다. 멋진데?”

“너 이 새끼.. 아까 나랑 한 약속 꼭 지켜라...”

“알았다. 알았어. 뭐하면 디오라마 통째로 패미통신에 기증해줄까?”

“아니. 그건 싫어. 그러면 내 것이 아니잖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내려가더니 입은 살아가지곤..

어둠 속에서 새하얀 이를 드러낸 채 미소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뻗는 준페이의 손을 잡은 나는 힘을 주어 그를 끌어 올려주었다.

그때였다.

파슥...

어라..?

“지랫대가 부러졌습니다!!!”

다급한 구조대원의 목소리와 함께 내 키의 두배만 한 크기의 콘크리트 벽이 우리를 향해 덮쳤다.

“막아!!”

쿠웅!!! 그 순간 나는 부러진 지랫대에 당황한 구급 대원들 대신 일단 어깨로 콘크리트 벽을 받쳐 세웠다. 생각보다 엄청난 콘크리트의 무게에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며 주저 앉을 뻔 했지만, 구조 반장과 대원들이 서둘러 벽을 밀어 올려준 덕에 가까스로 버텨낼 수 있었다.

“야, 인마. 빨리 튀어 나와~!!!”

“어어억~!!”

갑작스런 사고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준페이가 네발로 기어 나오자, 나와 구조 대원들은 천천히 콘크리트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긴장이 풀린 나는 바닥에 주저 앉으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휴... 십년 감수했네..”

“우와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어깨에 욱씬 거렸지만, 그래도 친구 하나 살렸다 생각하니 스스로에게도 굉장히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깨가 왜이렇게 축축하지...?

땀을 흘린 것도 아닌데...

슬쩍 고개를 돌려 오른쪽 어깨를 바라보니 새하얀 셔츠가 피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어억!! 이사님!!”

당황한 펜타곤 직원들이 내 어깨를 보자마자 후다닥 달려왔다.

아무래도 콘크리트 속에서 튀어 나와 있던 철근에 살이 찢긴 모양이었다.

헐... 이거 조금만 각도가 틀어졌으면 팔을 관통할 뻔 했잖아...?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기에 찢어진 상처가 화끈 거릴뿐 팔을 못쓸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이 모든 상황을 지켜 보던 미사토씨가 나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거 인터뷰 거리가 더 늘어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

펜타곤 직원들과 함께 지진 피해 지역을 다녀온지 한 달이 지나고, 뉴스를 통해 미사토씨와의 인터뷰 내용이 공개 된 뒤. 펜타곤 소프트에 대해 일본 국민이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지진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사고 현장을 찾은 기업. 구조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인명(人命)을 구해낸 강준혁 이사.

이재민들에게 꼭 필요한 구호 물품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재난 지역 게이머들에 한해 파손된 콘솔을 무료로 교체해주는 특별 A/S 정책으로 펜타곤이라는 기업 이미지가 대폭 상승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전에는 그저 게이머들에게만 친숙한 기업이었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열도의 국민들에게 사랑받은 호감형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 동안 유저들에게 입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이와 같은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는 인터뷰 내용에 각종 언론은 펜타곤에 대해 칭찬 일색의 기사를 실었고, 그에 따른 이미지 홍보 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게임 잡지사를 통해 라온으로 발매된 게임의 DL 판을 구매시 자동으로 일부 수익을 이재민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내용을 전파하자, 단말기를 이용한 다운로드 수익이 배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재밌는 것은 우리가 구해낸 아이였는데, 병원에서 아이가 눈을 뜨고 처음 한 말이 아주 가관이었다.

“60시간 동안 어둠속에 갖혀 있었는데, 히로시군. 그 당시 가장 하고 싶었던게 무엇이었는지 물어도 될까?”

“······.”

“뭐든 좋으니까. 한마디만 해줄래?”

“라온...”

“음?”

“라온이 엄청 하고 싶었어요.”

< EP. 40 : 사회적 활동.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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