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0 : 사회적 활동.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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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틀 뒤.
여진 활동이 어느 정도 멈추고 피해 지역의 구조 활동으로 한창 일손이 모자라던 때에...
나는 자진 해서 지원한 펜타곤 직원 스무명 정도를 데리고 현장을 찾았다.
원래라면 적어도 일주일에서 10일 정도 여유를 두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오려고 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이 겹치는 바람에 일정이 좀 앞 당겨져 버렸다.
“이사님~!! 여기에요~!!”
이번 지진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아와지 지역에 도착한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멀리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카오리 아냐?”
“와~ 모리타 팀장님도 와주셨네요~!!”
반가운 직원들이 하나 둘 차에서 내리자, 카오리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두건을 쓴 하야시가 나를 바라보며 힘겹게 웃어 보였다.
“이렇게까지 서둘러 오실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같이 일하는 직원의 부모님이 다치셨는데, 될 수 있는 한 빨리 와야지.
어머님은 좀 어떠셔?”
“무너지는 집을 빠져 나오시며 다리가 끼이셨는데, 다행히 그 외에는 별 다른 상처는 없으십니다.”
“그래? 정말 다행이다...”
“대신 어릴 적부터 살던 집은 아주 폭삭 무너졌지만요. 하하~”
하야시는 복구 작업을 돕던 중에 마중을 나왔는지 얼굴 여기 저기에 검은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하야시의 안내를 받아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중학교 강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집터였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현장은 TV에서 보던 것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해 보였다.
다른 직원들 역시 생각보다 심각한 피해 상황에 저 마다 한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자.. 장난 아닌데?”
사고 현장 곳곳에서 무너져 내린 잔해들을 헤치며 구조 활동 중인 119 구급 대원들의 모습에 펜타곤 샵에서 지원을 나온 미야자키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괜히 저희가 와서 방해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러자 그녀와 함께 걷고 있던 카오리가 대답했다.
“괜찮아. 미야자키. 우리가 이곳에서 해야할 일은 구조 활동이 아니니까~”
작년에 함께 CES를 다녀온 후로 부쩍 친해진 이 둘은 최근에는 마치 친자매처럼 함께 어울려 다니곤 했다. 특히나 회사가 끝나면 펜타곤 샵으로 달려가 미야자키를 도와주며 손님 응대도 하는 편이었는데, 특유의 붙임성 덕분인지 카오리는 정식 판매직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에게 꽤나 인기가 많았다.
펜타곤은 독자적인 프리미엄 샵을 운영하고 있어, 다른 게임 회사들과는 달리 상당히 개방적인 유통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외로도 샵 내부에서 정기적으로 독특한 이벤트를 열고 있었는데, 사실 이번 지진만 아니었다면 2월 말 ‘신의 선물’를 테마로 한 갈라쇼 이벤트를 준비할 예정이었다.
‘여러모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군. 덕분에 컴플리트 라온의 출시 일을 맞추기도 애매해졌어. 전 국민이 비탄에 빠진 가운데 신났다고 신제품을 발매하면 팔리기나 하겠어? 되려 역풍 맞기 딱 좋지...’
하지만 이런 나의 고민은 같은 시기의 다른 회사에 비하면 굉장히 가벼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컴플리트 라온’ 경우에야 미치 유저들로부터 작년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신제품이니 발매 시기를 조금 늦춘다하여도 별 다른 타격은 없으니까...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특히 라온을 통해 다음 달 발매로 잡혀 있던 ‘절명 도시’라는 생존 서바이벌 게임이 문제였다. ‘절명 도시’는 대 재난 속에서 생존을 목표로하는 주인공의 서바이벌 어드벤쳐 게임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테마가 ‘지진’이었다.
덕분에 카트리지 생산 직전까지 들어갔던 이 작품은 이번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발매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CEO로서는 분명히 옳은 판단이라 생각 하지만, 회사 재정을 생각하면 상당한 리스크를 떠안아야할 판이었다. 무려 1년이나 공들여 제작한 게임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사장되어 버리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잠시 후. 하야시와 카오리 커플(?)을 따라 도착한 중학교 강당 앞에는 펜타곤에서 미리 대절한 각종 구호품이 실린 트레일러가 이미 운동장에 주차되어 있었다.
본래는 아키바에서 거리 행사에 쓰일 예정이었던 이 트레일러에는 펜타곤 소프트를 의미하는 오각형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어라, 이사님~!!”
트레일러를 인도하며 다른 루트로 돌아온 후발대와 카와구치 대표를 만난 우리는 잠깐의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이재민들에게 구호품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펜타곤에서 대량으로 주문한 담요와 함께 식수를 내리자, 강당에 있던 이재민들 몇몇이 함께 나와 우리를 도와 주었다.
그때 이재민 대표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식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갑작스런 재난에 상심이 크실 듯 합니다. 일단은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만 먼저 챙겨왔는데, 혹시라도 더 필요한게 있으시면 말씀만 하세요.”
“이렇게 찾아와 와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요. 그런데 혹시... 어디에서 오신 분들인지?”
“아, 저희는 펜타곤이라는 게임 개발 업체 사람들입니다.”
그러자 이재민 대표는 살짝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나에게 되물었다.
“게임 개발이라구요? 구호단체가 아니라?”
“네. 그렇습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게임을 즐기는 일본에서도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에 그의 그런 반응이 섭섭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때 우리 옆에서 물통을 나르던 청년 하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외쳤다.
“이 보급품들이 펜타곤에서 온 것이라구요?”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물통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우리회사의 로고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혹시 강준혁 디렉터세요!?”
헐... 여기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하긴 최근에는 게임 잡지에도 여러번 실려서 그런지, 이제는 아키바를 돌아다닐 때면 나를 알아보는 유저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그때 이재민 대표가 청년에게 물었다.
“타쿠야. 너도 아는 회사냐?”
“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아버지. 대학 졸업하면 도쿄에 가서 펜타곤에 취직하고 싶다고...”
“그때 네가 말했던 회사가 이분이 말 한 펜타곤이었냐!?”
“네. 맞아요.”
“허어~ 무슨 게임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길래, 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라 걱정했더니. 제법 탄탄한 회사인가 보구나.”
“아버지야 게임 회사라면 민텐도 밖에 모르시니까요. 펜타곤은 지금 제 나이 또래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 중 1위라구요.”
하하... 이거 칭찬은 고맙지만, 이런 곳에서 마냥 기뻐할 수도 없고...
나는 잠시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 시키며 이재민 대표에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혹시라도 필요한 물품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하시거나, 근처에 저희 직원들에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명함이라도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이재민 대표는 내게서 명함을 받아든 뒤 잠시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직급이 이사님이셨군요. 그런 이름이 좀 특이한데... 혹시 한국인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먼 타국 땅에서 이렇게 자원봉사까지 나와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다른 직원들과 함께 구호품을 내리러 가보겠습니다.”
“네. 저희도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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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식수와 함께 구호품을 내린 펜타곤 직원들은 이재민 아주머니들과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점심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단지 이동식 차량에 설치된 주방 설비로 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된 식사를 배급해주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식사는 간단한 크림 스튜와 빵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도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식사 중인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하야시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강당을 빠져 나왔다.
때마침 구호품을 나르고 간단히 끼니를 떼우고 있던 펜타곤 직원들이 나를 보자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신경쓰지말고 식사들 해. 다들 수고 많았다.”
“이사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응. 아까 빵으로 간단히 떼웠어.”
펜타곤 직원들 중에서도 제 2 개발팀 인원은 전부 자원해서 이곳에 온지라 예전부터 나와 알고 지내던 직원이 많이도 따라와 주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지금 제 2 개발팀은 하야시가 팀장인데, 상사가 변고를 당했으니 와보는게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그런데 여기에도 하야시의 얼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혹시 하야시 어디 있는지 알아?”
“잠시 부모님을 뵈러간다고 학교로 가시던데요?”
아... 어쩐지 이재민 수용실에 환자가 하나도 안보인다 했더니, 재난으로 다친 사람들은 학교에 있었구나.
나는 식사중인 직원들에게 마저 먹으라고 말을 건넨 뒤 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학교 건물로 향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학교 앞에 설치된 벤치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하야시와 눈이 마주친 나는 살짝 웃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가 벤치에 몸을 기대었다.
“부모님은 좀 어떠셔?
“괜찮으세요. 대신 알고 지내던 이웃 분들 중에 많이 다치신 분도 계시고, 돌아가신 분도 계셔서 마음이 좀 허전 하네요.”
하야시는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나는 그런 하야시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도 그에겐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으니까...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고 3일째가 되는 오늘...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을 인명(人命)을 구하기 위한 구조 대원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재민 대표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현재 강당에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중에 10분의 1정도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강당에 붙어 있는 실종자 명단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를 기록하고 있었기에 영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게 강당 쪽으로 발길을 돌리던 중. 나는 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그네에 홀로 앉아 있는 아이를 보았다.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걱정이 된 나는 가까이 다가가 아이에게 물었다.
“넌 왜 혼자 여기 있니?”
나의 목소리에 빼꼼히 고개를 든 꼬마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형이 없어졌어요...”
“형...?”
“지진이 일어 났을 때. 엄마 아빠가 나랑 형을 데리고 집을 나오려는데, 형이 있던 방이 갑자기 통째로 무너지는 바람에...”
“아... 부모님은..?”
“엄마랑 아빠는 집으로 갔어요. 형을 찾아야 한다고...”
“너무 걱정하지마. 조금만 기다리면 구조대 아저씨들이 형을 꼭 찾아 줄 테니까.”
그러자, 내 말을 듣고 있던 꼬마의 어깨가 위 아래로 천천히 들썩였다.
“히잉...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형이 게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양보해 주는 건데... 내가 괜히 떼를 써서...”
“형이랑 싸웠니...?”
옥구슬처럼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팔뚝으로 닦으며 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 날은 형이 게임 하는 날인데, 내가 막 우겨서.. 흑.. 으윽...”
꼬마는 그 날의 일이 후회되는지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훌쩍였다.
나는 잠시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녀석을 위로해 주었다.
“너무 걱정마라. 형 아무일 없을테니까... 알았지? 혹시 오늘이라도 형을 찾으면 저기 강당에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서 나한테 와. 아저씨가 너희 형제한테 좋은 선물을 줄테니. 알았지?”
겨우 울음을 그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에게 내 명함 한 장과 가지고 있던 빵 하나를 쥐어준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거 진짜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네...’
나는 강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바깥 상황을 살펴볼까 하는 마음에 학교를 나와 피해 지역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구급 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인들은 아직 학교 밖으로 나오시면 안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둘러보고 금방 돌아갈게요.”
나는 학교 앞으로 길게 뻗어 있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바닥엔 무너진 집들의 잔해와 더불어 누구의 것이었는지도 모를 가재도구가 산산히 흩어져 있었다. 걔중에는 액정 플라스틱이 깨진채 바닥에 나뒹둘고 있는 민텐도의 휴대용 겜보이도 섞여 있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천천히 그것을 주워든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전원 버튼을 올려 보았다.
띵~~
헉... 작동이 되네? 비록 카트리지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찾을 수 없었지만, 기기만은 살아 있었다.
카마우치 사장이 튼튼하게 만들라고 바닥에 집어 던진게 엊그제 같은데, 아무튼 그 당시에 나랑 군페이씨가 잘 만들긴 했구나...
문득 떠오른 옛 기억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이번엔 발밑에 라온의 카트리지 케이스가 보였다.
“어라...? 드래곤 엠블렘 1이잖아?”
그러고 보니 여기 근처에 잔해물은 죄다 게임 카트리지 뿐이네? 뭐지?
설마 엄청난 게임 수집가의 집이었던가? 하지만 나의 의문은 근처에 있던 남자의 한 마디에 곧바로 풀려버렸다.
“하아... 망했다. 망했어... 가게 문 연지 일주일만에 이게 뭐야...”
< EP. 40 : 사회적 활동.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