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04화 (204/252)

< EP. 39 : 아이돌 프로젝트. (2) >

“네에!? 하란Q의 테라다씨라구요!?”

테라다 마츠오는 현재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 사운드 하란Q의 보컬겸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뮤지션이다.

모리타가 저렇게 깜짝 놀란 이유는 하란Q가 작년에 발표한 ‘싱글베드’ 라는 곡을 듣고 테라다의 열렬한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리타가 좋아하는 ‘싱글 베드’라는 곡은 한 유명 가수가 무명 시절에 헤어진 여인에 대한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사에 담아 부른 곡으로 초반에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차츰 입소문을 타고 꽤나 오랬동안 오리콘 차트 순위에 머무른 하란Q의 대표곡 중 하나이다.

그런데말야. 생각해보니 모리타. 넌 모태 솔로 잖아? 애초에 헤어진 여인이 없는데, 어떻게 공감하는 거지...?

“천천히 준비하고 와.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 알겠습니다~!!”

모리타는 나의 제안에 한껏 들 뜬 목소리로 개발실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음 짓던 나는 잠시 후 휴게실에 설치된 티비에 눈을 돌렸다.

끼이익...

직원들의 흡연 공간인 동시에 음료수 자판기가 설치 되어 있는 이곳에는 각종 콘솔기기들과 더불어 대형TV도 함께 설치 되어 있었다.

아직 오전 시간이라 휴게실을 이용하고 있는 직원이 없었기에 나는 리모콘을 들고 TV를 틀어 보았다.

‘이상해...’

최근에 나는 일본에서 일어날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다.

그 사건은 바로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던 ‘고베 대지진’ 사건.

본래라면 1995년 1월. 그러니까 지난 달쯤에 일어났어야 할 대지진이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재앙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안그래도 경기 침체기인 현재 고베 대지진까지 겹쳐 버린다면 펜타곤에서 판매할 차기 콘솔의 판매량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

현재 컴플리트 라온의 발매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도 사실 이 때문이다.

한신 또는 고베 대지진이라 불린 이 사건은 진도 7.2의 지진으로 단 14초만에 일본 고베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초 거대 강진이었다.

지난 10년동안 일본에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지진에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1995년에 벌어질 이 지진 만큼은 솔직히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6,000명 이상의 사망자.

43,000명의 부상자.

약 1,400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낸 희대의 참극.

가능하다면 지진 사실을 사전에 피해를 줄이고 싶었지만, 솔직히 이것 만큼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준이 아니었다.

매스컴에 알려봤자, 지질학 출신도 아닌 내가 대체 무슨 수로 그들을 설득 시킬 것인가?

더구나 강진이 일어난 이와지 지역은 본래 거대한 갯벌 위에 토목공사로 지반을 다져 세운 지역이기에 지반 자체가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내가 알고 지내는 이들에게 당분간 오사카의 고베 지역은 될 수 있으면 가지 않기를 권하는 것 뿐이었다.

‘정확한 날짜까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1월 중순 경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아직까지 조용할까?’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과거가 뒤틀어진 느낌에 기묘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설마, 고베가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지진이 터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뉴스 채널을 돌리며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던 나는 휴게실 문을 두드리는 모리타의 모습에 TV 전원을 내렸다.

“가시죠. 이사님.”

“그래.”

모리타는 내가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대신 들어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이사님께서 테라다씨를 만난 다는 것은 전에 말씀하신 아이돌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우에노씨에게 물어보니 대중가요 쪽은 자기 전문이 아니라고 테라다씨를 추천하더라고...”

“아~ 역시 우에노씨. 보는 눈이 있네요. 하란Q 저도 정말 좋아하는 그룹입니다.”

“나도 알아. 너 가끔 혼자서 하란Q 노래 흥얼 거리잖아. 싱글베드라는 곡이던가...?”

“네. 맞아요~!!”

모리타는 테라다씨를 볼 생각에 설레이는지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모리타와 하란Q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회사를 빠져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던 중. 순간 바닥이 꿈틀거리는 느낌에 걸음을 멈추었다.

“어...?”

모리타 역시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걸음을 멈추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살짝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주차된 차들을 바라보며 나와 모리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지진이지?”

“네. 그런 것 같은데요?”

주변에 걸어다니던 사람들 조차 멍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걸로 보아, 다들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좀 쎈 것 같은데, 다행이 오래가진 않았네요.”

“그러게...”

방금 전까지 지진에 대한 생각을 해서 그런지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진이 일상 생활이나 마찬가지인 모리타는 이내 별일 아니라는 듯 걸음을 옮겼다.

“어이, 그래도 이정도 지진이면 적어도 진도 4는 될거야. 그렇게 섣불리 움직이면...!!”

그때였다. 쿠우웅..!!!

“어억!! 뭐야!?”

모리타는 짧은 비명과 함께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 역시 갑작스런 지진에 자세를 낮추며 재빨리 주변을 살피니 주차장에 서있던 차량들이 들썩이며 요란한 경보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삐...!!!!

끼긱!! 끼기긱!!

차도에 있는 도로 표지판까지 흔들리는 걸 보아 규모가 어마어마한 거 같은데?

“어이, 모리타 괜찮아?”

“아, 네. 전 괜찮습니다. 이사님은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인도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모리타처럼 중심을 잃고 넘어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는 없었기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허리춤에 느껴지는 진동음에 핸드폰을 열어 전화를 받으니 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혁씨. 괜찮아요? 방금 꽤나 큰 지진이 있었는데!?”

“어, 괜찮아. 설현이는??”

“침대가 흔들려서 놀란 거 빼곤 괜찮아요.”

“그래? 휴우... 다행이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넘어진 모리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유키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 시키며 차에 올랐다.

“응. 그래. 알았어. 가능하면 오늘은 일찍 들어갈게.”

유키와 통화를 마치고 안전 밸트를 둘러 매고 있는데, 조수석에 올라탄 모리타가 자신의 핸드폰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왜 그래?”

“가족이란 좋네요. 지진이 나자마자 안부 전화부터 오고... 저는 이 비싼 핸드폰을 대체 왜 샀는지 모르겠네요. 전화 오는 곳이라고 해봤자 우치무라군이랑 하야시 녀석 밖에 없는데...”

“······.”

너 이 자식 파이팅...

&

다행히 우리가 겪은 지진 이후에 더 이상의 여진은 없었다.

안 그래도 지진에 대해 생각하다가 갑자기 겪은 일이라 그런지 가슴이 두근 거릴 정도로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속보입니다. 금일 오전 11시 13분 경. 도쿄 해협에서 진도 4.8의 강진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높이 3미터의 높은 파도가 일어나 인근 해협을 덮쳤고, 이로인해 어업 작업 중이던 42살 마츠타카씨를 비롯한 3명이 실종되어 현재 구급대원들이 수색에 나섰습니다.”

“새.. 생각보다 지진 규모가 컸네요. 거의 5에 근접하다니...”

모리타 역시 많이 놀랐는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입을 열었다.

“그러게 같은 4.8이었어도 이번 지진은 느낌이 확 다르더라.”

“제가 보기에 바닥이 꿀렁 거리는 것을 느꼈을 정도니, 아마도 상하 떨림이 아닌가 싶던데요.”

모리타의 말대로 지진에는 두가지 타입이 존재 하는데, 좌우로 흔들리는 것과 상하로 흔들리는 것은 같은 강도라도 세로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넓고 얇은 푸딩을 좌우로 살짝 흔들어 보는 것과 상하로 흔드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단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의 여진은 없어서 다행이네요.”

“과연 그럴까?”

“네? 그게 무슨...?”

“아니, 아무 것도 아냐. 그냥 혼잣 말이었어.”

모리타는 내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도쿄 외곽에서도 상당히 복잡한 동네에 위치한 터라 하란Q의 사무실을 찾기도 만만치가 않았다.

‘핸드폰은 어떻게 시간이 흘러 해결됐는데, 네비게이션 나올 때까진 또 언제 기다리냐...’

차를 운전하다보니 어느새 긴장이 풀린 나는 근처의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무실을 찾았다.

그룹 사운드 하란Q의 사무실은 건물 외관 과는 달리 그래도 내부는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대형 기획사가 아닌 그룹 사운드 전용 사무실이었기에 약간 비좁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어서오세요. 펜타곤 직원 여러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지진이 있었는데, 몸은 괜찮으신가요??”

모리타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서자, 조그만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약간 촌티나는 얼굴의 테라다씨가 우리를 반겼다.

그런데 이 사람 벌건 대낮에 실내에서 선글라스는 왜 쓰고 있지? 안 어둡나?

“안녕하세요. 우에노씨의 도움으로 찾아 뵙게 된 강준혁 이라고 합니다.”

인사와 함께 버릇처럼 테라다씨와 함께 명함을 주고 받은 뒤. 그는 나와 모리타를 사무실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응접 테이블 소파로 안내했다.

“이야~ 우에노씨에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설마 강준혁 이사님이 직접 이곳을 찾아 주실 지는 몰랐네요. 지난 12월에 펜타곤에서 발매한 신의 선물. 저도 정말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다른 것보다. ‘클래식 장르’를 주제로 했다는 점이 굉장히 신선하더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에 테라다씨를 찾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인데요. 그것에 관해서도 우에노씨에게 이야기를 들으신게 있나요?”

“네!! 그럼요. 우에노씨에게 ‘버추어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저 역시 굉장히 기대가 되더군요. 아마 게임계에서도 연예계에서도 역사에 남을 위대한 기획이라 생각합니다.”

“······.”

이 사람 왜 이렇게 오버 액션이냐...

우에노씨에게 듣기론 항상 하이텐션을 유지하는 성격이라더니,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테라다씨는 이후에도 자기 PR과 함께 펜타곤과 신의 선물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아닌게 아니라, 여성 아이돌를 위한 프로듀서를 찾으신다면 정말 잘 찾아오신 겁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초대 아이돌인 키쿠치 모모코의 광팬이거든요.”

과연... 차후 여성 아이돌 전문 기획사 Hello 프로젝트의 대표가 될만한 덕심이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자신이 원하는 아이돌 그룹이 없다면 만드는게 제격이지...

테라다씨는 나에게서 건네 받은 기획서와 오디션 통과자들의 프로필을 살피며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생각해두고 계신 곡이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 여성 아이돌 그룹이라면 첫사랑의 분위기를 강조한다던가... 조금 발랄한 느낌이 좋겠죠?”

“... 그것보단 힘이 나는 응원곡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으, 응원곡이요?”

“힘든 이에게 기운을 돋아주는.. 예를 들어 오늘 같은 지진으로 피해 입은 지역이 있다면 그곳에 달려가 사람들의 힘을 북 돋아 줄 만 한 그런 곡 없을까요?”

“힘을 돋아줄만 한 응원곡이라. 조금 어렵군요. 뭔가 예시가 될만한 샘플곡이 있다면 좋겠는데...”

테라다씨의 대답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테이프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럴 줄 알고 아주 적절한 샘플곡 하나를 가져왔지.

테라다씨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악 테이프을 바라보며 선글라스를 고쳐 올렸다.

“이게 뭔가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한국음악입니다.”

“아~ 그렇군요. 제목이...?”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라고 합니다.”

“오~!! 감사합니다. 곧바로 들어보죠.”

테라다는 사무실 한켠에 있는 스테레오 박스에 테이프를 넣은 뒤 곧장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빠바바바바밤빰 빠바바바밤빠밤~

빠바바바바밤빰 빠바바바밤빠밤~

챙챙

빰빰빰 빠바바바밤빰 빠바바~~

오~ 예에~!! 오오오워어~!!

“허어.... 이건..”

< EP. 39 : 아이돌 프로젝트. (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