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39 : 아이돌 프로젝트. (1) >
‘내가 없는 거리’가 도쿄의 거리와 일상의 연애 감각을 모티브로 하여 플레이어들의 이목을 끌었다면, ‘신의 선물’ 같은 경우엔 게임 속의 장치 중에 하나였던 클래식 음악을 통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래서일까? 1995년 2월 중순에 예정 되어 있는 쇼팽 피아노 콩쿠르 같은 경우엔 근례에 찾아 볼 수 없었던 전 좌석 매진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번 신의 선물 덕분에 게임도 게임이지만, 라온 본체의 판매량이 매우 늘어났다.
지난 ‘내가 없는 거리’ 명성을 등에 업고, 또하나의 그래픽 노블의 탄생에 라이트 유저가 엄청 유입된 느낌이 들었다.
‘신의 선물은 게임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판타지 문학에 가깝다.’
이번 달에 새롭게 창간한 ‘전격 라온’이라는 잡지에서 한 리뷰어가 신의 선물에 내린 최종 게임평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평가에 동의했다.
유키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내가 받았던 느낌은 게임을 만들기 보단 한편의 소설을 써내려나는 듯한 느낌이 강했으니까...
마지막 최종 시나리오를 검토하던 유키는 처음 스토리 의도와는 완전히 달라진 결말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나에게 물었었다.
“마지막 엔딩은 왜 이렇게 바꾼 거예요?”
“글쎄. 처음 신의 선물을 기획 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한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기획 했었거든. 그런데 네가 말한 시나리오를 넣다보니, 뭔가 이야기가 점점 스릴러 장르화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흐음...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제가 괜한 이야기를 했던 걸까요?”
“아냐, 오히려 이런 페이크(fake) 시나리오가 마지막 엔딩에서 더 큰 반전으로 느껴지는 장치가 될테니까.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
당시까지만 해도 설현이를 뱃속에 품고 있던 유키는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들으니, 방금 말한 엔딩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확실히 유저들에게 호불호는 갈릴 거야. 이 것을 단순히 미소녀 연애 게임이라 생각하고 구매한 유저는 엔딩이후 허탈감은 느끼게 될테고, 온전히 스토리에만 집중한 유저에겐 더 할 나위 없는 감동으로 다가 오겠지.”
유키는 내 말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지, 살짝 고개를 갸웃 거리며 두 눈을 깜빡였다.
나는 그런 유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긋 웃어보였다.
“나중에 게임이 발매 되고 나면 내가 한 말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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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
출시 전 내가 했던 말은 대부분 그대로 들어 맞았다.
체험판의 배포로 인해 신규 유저의 유입이 상당수 늘어 났고, 게임에 대한 평도 각종 커뮤니티와 잡지사에서도 극명히 갈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내 예상을 훨씬 웃도는 라이트 유저의 대거 유입이었다.
이 들 같은 경우엔 ‘신의 선물’에 대한 시나리오를 순수히 받아 들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인공의 연주 파트는 스토리를 즐기는 도중에 행하는 일종의 미니 게임처럼 받아 들였는데, 오히려 기존 하드 유저보다 스토리 진행 속도가 더 빠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라이트 유저 중에는 칸나 활약도 섞여 있었다.
[정보] 오늘 하라주쿠에서 진귀한 노래를 들었습니다.
도쿄 하라주쿠에 살고 있는 라온 유저입니다.
지난 달에 구입한 펜타곤 소프트의 ‘신의 선물’을 즐겁게 플레이 중인데, 오늘 퇴근 중에 참 재밌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10대 후반의 여자 아이가 역 근처 레코드점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요.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몇 곡 듣다보니, 뭔가 익숙한 노래가 들려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멜로디에 나도모르게 따라서 흥얼거리다가, 그게 무슨 곡이었는지 깨달은 순간. 무슨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 곡은 다름 아닌 ‘신의 선물’의 엔딩 스탭롤에 나오는 BGM이었습니다.
본래는 가사가 없는 곡인데, 그 아이가 직접 가사를 붙였는지 굉장히 느낌이 좋더군요.
솔직히 감동 받아서 녹음 테잎라도 하나 사고 싶었는데, 따로 음반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더군요.
아무튼 그것 과는 별개로 최근 ‘신의 선물’을 즐겁게 플레이한 유저로서 굉장히 반가운 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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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밑에 분 이야기 듣고 오늘 하라주쿠에 다녀왔습니다.
오오오!!!
방금 저도 듣고 왔습니다. 헌데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미모가!!! 미모가 출중합니다.
굉장히 청순한 이미지더군요.
연주 시작 전에 작은 유리병 속에 촛불을 켜는데,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바라만 보았습니다.
언제까지 그녀의 연주가 계속 될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응원하며 내일도 하라주쿠에 가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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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의 이야기를 듣고 PC 통신 커뮤니티에 접속해 관련 글을 살펴 본 나는 하라주쿠의 그녀가 칸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한 번 찾아가볼까 했었는데 오히려 잘됐다.’
나는 커뮤니티의 글을 몇 번 더 살피며 그녀가 공연하는 날을 대략 살핀 뒤, 그녀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처음 그대를 본 순간...
슬픈 내 사랑을 난 알았죠...
이뤄질 수도, 이뤄져서도 안 될...
혼자 만의 슬픈 마음을...
그녀의 따스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레코드 점 앞에 보여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나서 그녀에 대한 한가지 확신이 생겼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명히 사람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
레코드 점 사장님은 마치 손녀 딸을 바라보는 듯한 흐뭇한 미소로 칸나의 공연을 지켜보다가 나에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곡의 해석도 좋고, 가사의 전달력도 좋네요. 아마 엔딩곡을 쓴 작곡가도 직접 칸나의 노래를 듣는다면 깜짝 놀랄 것 같은데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저 아이는 한번 들은 곡은 곧바로 기타로 쳐낼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처음 엄마 손을 잡고 기타를 사러 왔을 때, 간단히 기본 코드 잡는 법만 알려주었는데 그 후론 독학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죠.”
한 번 들은 곡을 악보 없이 그대로 연주 할 수 있다고?
처... 천재다!!
회귀 인생에는 인복(人福)도 따라오는 건가? 유키 덕에 우연히 만나게 된 우치무라가 피규어의 장인이었다면 칸나 역시 펜타곤을 함께 이끌어 갈 다른 타입의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칸나 역시 유키가 먼저 만났으니, 난 어쩌면 유키의 인복에 그냥 묻어가는 건가...?
나는 칸나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사장님과 함께 가만히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이 정도 노래 실력이라면, 아이돌 전문 ‘Hello 프로젝트’ 프로듀서도 인정해 줄 만 하겠는데?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다섯 번째의 노래가 끝나갈 무렵. 내 곁에 있던 레코드 점 사장님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슬슬 끝나가는군요. 저는 안에서 따듯한 코코아라도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칸나는 자신의 노래를 들어준 사람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유리병 뚜껑을 덮어 안에 있던 촛불을 꺼뜨렸다.
그것은 마치 라이브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그녀만의 의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를 뒤로 하며 레코드 안으로 들어서자, 커피 포트에 물을 담고 있던 사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칸나에겐 무슨 볼일이십니까? 비록 아비 되는 사람은 아니지만, 워낙 어릴 적부터 봐오던 아이라 그런지 궁금하군요.”
사장님의 물음에 나는 쇼윈도 밖에서 기타를 정리중인 칸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가능하면 그녀를 가수로 데뷔 시키고 싶습니다.”
“네? 하지만, 당신은 펜타곤이라는 게임 소프트 회사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뭔가 음반 업계나 방송 쪽 관계자와 줄이라도 닿아 있는 겁니까?”
흐음... 줄이라.
필요하면 연줄이야 얼마든지 가져다 댈 수 있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데뷔와 조금 달랐다. 그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 하던 찰나.
가게 사장님의 표정이 어두워 지며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설령 데뷔한다고 해도 칸나 아버지가 반대할 겁니다.”
“네? 왜요? 자기 딸이 잘 되면 좋지 않나요?”
“그게... 사실 칸나의 어머니와 연관이 좀 있어요.”
“칸나씨의 어머니요?”
커피 포트의 물이 끓어 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사장님은 잠시 옛 기억 떠올랐는지, 쓰게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칸나의 어머니는 굉장히 유명한 엔카 가수였습니다.”
엔카라면? 아~ 한국으로 치면 트로트 풍에 속하던 장르 아냐??
90년대 중반의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음악계에 큰 변화를 맞이 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따져보면 한국 보다 조금 더 빠르달까?
거의 80년대 중반 즈음에 등장한 남성 아이돌 전문 기획사인 쟈니스의 출연과 함께 최근엔 X-JAPAN같은 메탈 그룹의 음악이 한창 성행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중에 엔카는 젊은 층보단 중장년층에 절대 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고, 가요계의 대 선배층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 칸나의 어머니가 유명한 엔카 가수였다니...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나온 말인가?
“혹시 칸나씨의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나의 질문에 사장님은 여전히 쓴 웃음을 지으며 끓은 물을 컵에 옮겨 담았다.
“칸나의 어머니는 칸나가 10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네...?”
“원래부터 몸이 건강한 편은 아니었는데, 행사를 다니며 몸을 혹사한 탓이 크죠.
더구나 칸나 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집안에서도 언론에서도 반대가 심했죠. 유명한 엔카 가수가 라멘집 아들과 결혼이라니... 아마 그녀에게도 많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가게 안에 퍼지는 은은한 코코아의 향기가 내 코 끝을 간지럽혔지만,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연예계 쪽에서 칸나 아버지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려 그 역시도 상처를 많이 받았죠..”
“아...”
“그런 그가 칸나가 가수로 데뷔 한다고 하면 순순히 승낙을 해줄지 의문입니다.”
칸나에 대해 걱정해주는 레코드점 사장님의 마음에는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사장님께서 어떤 점에 대해 고민하는지 충분히 알게 된 나는 그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께서 걱정하시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 할 수 있습니까?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 두고 계신게 있는 건가요?”
“칸나씨가 저의 제안에 응해 가수로 데뷔한다 하여도 아마 TV에서 볼일은 없을 겁니다.”
“네...?”
그때 가게 앞에서 정리를 마친 칸나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고리에 걸어둔 차임벨이 울리자, 사장님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며 그녀에게 따듯한 코코아를 건네 주었다.
“이것 좀 마시면서 몸 좀 녹이거라.”
“고맙습니다. 사장님.”
칸나는 사장님 뒤에 가져진 내 눈치를 보며 따듯한 코코아를 한모금 삼켰다.
“노래 잘 들었어요.”
“어땠... 나요?”
잔뜩 긴장한 칸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웃으며 그녀의 노래를 칭찬해 주었다.
그녀와 짧게 대화하던 도중 한가지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은 유키가 출산 했던 그 날. 칸나 역시 신의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프리미엄 샵에 들렀었다는 것이었다.
나를 찾았었다고? 이거 어쩌면 이야기가 쉽게 풀릴 수도 있겠는데?
나는 그녀에게 신의 선물의 엔딩 테마곡을 펜타곤에 넘겨줄 것을 제안했고, 그녀는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어차피 완성된 곡에 가사만 붙인 것 뿐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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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주쿠의 레코드 점에서 칸나를 만나고 며칠 뒤.
회사에 출근한 나는 그 동안 지역별 오디션으로 선별된 아이돌 지망생들의 프로필을 챙겨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어라? 이사님 어디가세요?”
신의 선물 프로젝트를 끝내고 한숨 돌리는 중이던 모리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인사를 걸어왔다.
“잠시 만나 볼 사람이 있어서, 너도 같이 갈래?”
“네? 저도 가도 됩니까? 대체 누구를 만나시길래...?”
“그룹 하란Q의 보컬인 테라다씨.”
“네에!? 하란Q의 테라다씨라구요!?”
< EP. 39 : 아이돌 프로젝트.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