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02화 (202/252)

< EP. 38 : 샤이닝 스타. (3) >

&

천재(天才)

하늘이 내린 재능.

또는 범인(凡人)들이 따라올 수 없는 천부적인 능력가진 자를 지칭 할 때 쓰는 말.

신의 선물의 주인공은 어릴 적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그 천재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타인과 다른 특별한 사람인줄로만 알았다.

아니, 확실히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악기와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으니까.’

그런 능력은 어쩌면 전지전능한 ‘신’ 만이 내릴 수 있는 특별한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신의 선물’은 되려 저주에 가까운 축복이었으니...

세상의 모든 악기를 거진 다룰 수 있는 주인공에게는 특별히 그가 아끼는 4개의 악기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어릴 적부터 자신과 함께 해온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그랬다.

사실 주인공은 피아니스트보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어했다.

본래 활기찼던 주인공의 성격은 부모님의 강압에 의해 피아노를 연주하며 점점 내향적으로 변해갔다.

그로 인해 파생 된 캐릭터가 바로 ‘유키노조 카오리’와 ‘이가와 레이’라는 캐릭터 였다.

밝고 활기찬 성격의 ‘카오리’는 주인공이 바이올린 켰을 때와 같았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레이’의 성격은 피아노를 치는 그를 닮았다.

마찬가지로 음대에 들어가 취미 삼아 배운 챌로는 ‘하루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냈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 정상에 오른 순간... 그는 냉소적이고 엄격한 성격의 ‘사츠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었다.

그녀들은 주인공의 삶. 바로 그 자체 였으며 언제나 그의 곁에서 함께 있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모든 능력을 내려주고, 28살의 젊은 나이에 모든 걸 앗아갔다.’

장기 기억상실증이라 불리우는 알츠하이머(Alzheimer disease)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물론. 어릴 적부터 그와 함께 했던 네 명의 여인들 마저 그의 기억에선 이미 희미해져 가고 있었으니까.

신의 선물의 진짜 엔딩은 스탭롤이 지나간후 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게임속 주요 이벤트가 실제로는 어떤 장면이었는지, 또 다른 일러스트로 보여주었다.

챕터 2에서 분기에 따라 달라졌던 히로인과의 협연이 실은 각 히로인을 대표하는 악기를 들고 있는 그의 독주(獨奏)였다는데에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것이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의 환상이었구나...’

챕터마다 준비된 연주 파트에서 보여지는 히로인 과의 회상 씬은 실은 아직까지 못다한 자신의 악기들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로 그려졌다.

사교성이 없던 탓에 인간 관계가 원채 좁았던 주인공에게 4명의 히로인은 평생을 함께 해온 친구이자, 동반자와 같았다.

그중에서도 어린시절의 주인공에게 가장 처음 말을 걸어온 바이올린 유키노조 카오리는 마지막 엔딩 부분에서 꽃다발을 들고 그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수고 했어...”

자신을 둘러싼 히로인들의 미소와 함께 주인공의 입가가 클로즈 업 되어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 만큼이나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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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울린 비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순간.

내 눈가에 걸려 있던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마치 한편의 소설에 마지막 장을 덮은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긴 여운이 가슴에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 숨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가득 울렸다.

나카무라군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챕터의 세이브 파일을 불러와 한번 더 클리어 해 보았지만, 정말 다시 봐도 매우 인상 깊은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악... 깍...”

창 밖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 소리에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주홍빛 저녁 노을이 구름과 함께 그림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아, 레코드점. 사장님 기다리시겠다.”

정신이 번쩍든 나는 서둘러 눈물을 닦아내곤 기타 케이스를 움켜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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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레코드 점 문틀에 걸린 챠임벨의 맑은 소리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사장님과 함께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칸나야 마침 잘 왔구나. 여기 이 분은...”

“아뇨. 제 소개는 필요 없습니다. 벌써 세 번째 보는 걸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30대 초반의 남성은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죠?”

“강준혁... 이사님?”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중얼 거리자, 레코드점 사장님이 나에게 다가 와 물었다.

“펜타곤 소프트라는 회사에서 나왔다는구나. 요 며칠 네가 부르던 노래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고...”

“아...”

“칸나씨에 대한 이야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상당히 화제가 되고 있던데, 모르셨나요?”

“네? 제 노래가요?”

그가 말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란 아마도 나카무라군이 이야기 하던 PC 통신 커뮤니티 일 것이다. 일전에 나카무라군에게서 얼핏 들은 기억이 있지만, 설마 서로 얼굴도 알지 못하는 그런 곳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확산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잠깐 들어봐도 괜찮을까요?”

“아... 그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지극히 개인적으로 칸나씨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니까요.”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사장님이 마련 해준 작은 공연장 주위로 역앞을 거닐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언제부터일까? 처음엔 4~5명정도 내 음악을 들어주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디서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 4~50명이 모여들고 있었다. 설마 이것이 나카무라군이 말했던 PC 통신의 힘이란 걸까?

기타줄을 튕기며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은 나는 품안에서 성냥을 꺼내 양초에 불을 붙었다.

시간은 어느새 2월 초...

아직도 거리에 찬바람이 불어오긴 하지만, 적어도 1월 만큼 매섭게 느껴지진 않았다.

작은 촛불이 유리병 안에서 일렁이며 조용히 타들어 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차츰 잦아 들었다.

강준혁 이사는 레코드점 사장님과 함께 가게 옆에서 대화를 나누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 만으로도 평소와는 다르게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곡의 분위기와 음악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스쳐 지나는 매일매일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지만,

서로의 마음 만은 언제나 곁에 있다고 생각해

함께 하지 못 해도 괜찮다면서

강한 척 이야기 해 봐도 한숨만 섞이는걸

지나가는 계절 속에 놓아두고 온 보석

그것은 소중한 조각을 잃어 버린 미완성 된 퍼즐...

하얀 눈이 거리를 새하얗게 물들이는 것 처럼

추억으로 이 앨범을 가득 채울수 있도록~

두 눈을 감은채 사람들에게 나의 노래를 들려 주겠다는 마음으로 입술을 때자, 거짓말처럼 긴장감에 움츠러 들었던 마음이 스르륵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 역시 전에도 들었지만, 훌륭한데요?”

강준혁 이사의 칭찬에 얼굴이 화끈 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굳이 그를 바라보진 않았다. 그저 두 눈을 감은채 간주를 마친 나는 2절을 부르고 나서야 작게 숨을 내쉬며 기타 줄에서 손을 내려 놓았다.

그러자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에게서 환호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우와아아~!!! 진짜 좋다.”

“캬~ 목소리가 끝내주네...”

“그런데 ‘그건’ 언제 나오지?”

“기다려 봐. ‘그 노래’는 거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니까.”

“정말 진짜로 신의 선물의 엔딩곡에 가사를 붙인거야?”

“전에 한번 우연히 들어 봤는데, 듣는 순간 심장이 싸늘해 지더라니깐, 너도 한번 들어보면 깜짝 놀랄 걸?”

“내가 비록 실력이 없어 올 S 랭크는 못땄지만, 커뮤니티에 나온 진 엔딩 결말... 진짜 끝내 주더라..”

“아, 그건 진짜 ‘내가 없는 거리’ 이 후로 역사에 길이 남을 세컨드 임팩트였어...”

“내가 없는 거리도 그렇고, 세상에 그 강준혁이란 디렉터는 주인공을 몇 번이나 죽이는 거냐? 진짜 살아 있는 악마가 따로 없다니깐?”

어디선가 들려온 청중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억지로 꾹 참아내었다. 저들의 대화를 직접 들은 본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잠시 헛기침으로 목을 풀은 뒤 두 번째 노래를 시작했다.

몇 번 기타줄을 튕기자, 근처에 있던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어? 이건...?”

“신의 노래 엔딩곡이다.”

“벌써!?”

“아, 잘 됐다. 나 이거 듣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시간 딱 맞췄네.”

사람들의 반응에 살짝 고개를 돌려 강준혁 이사님을 바라보자, 그는 팔짝을 낀채로 나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보였다.

처음 그대를 본 순간...

슬픈 내 사랑을 난 알았죠...

이뤄질 수도, 이뤄져서도 안될...

혼자 만의 슬픈 마음을...

그대 만나러 가는 길...

아픈 내 사랑을 난 알았죠...

내 몸 깊숙이 전해지는 떨림은...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커져요.

&

총 5곡의 짧았던 거리 공연이 끝나고, 가게 안에 들어서자, 사장님께서 따듯한 코코아를 가져다 주셨다.

“이것 좀 마시면서 몸 좀 녹이거라.”

“고맙습니다. 사장님.”

“으음~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칸나 네 덕분에 요새 가게에 손님이 많이 늘었거든~”

“아, 정말요?”

사장님은 깊게 주름을 패이며 나를 향해 껄껄 웃어보이셨다.

그의 등 뒤로 강준혁 이사님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노래.. 잘 들었습니다.”

“어땠.. 어요...?”

“잔잔한 곡에 어울리는 훌륭한 가사였습니다. 아마 유키도 들었다면 엄청 좋아했을 것 같은데요?”

“아, 그러고 보니 유키 언니. 작년 12월 24일에 출산 하셨다고...?”

그러자 강준혁 이사님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나에게 되물었다.

“어라? 그걸 어떻게?”

“사실... 신의 선물의 발매일 날 저도 그걸 사러 갔었거든요. 그런데, 이사님께서 그 날 와이프의 출산으로 급히 병원에 가셨다고 들어서...”

“아~ 그날 칸나씨도 오셨었군요. 미안해요. 그때 만나서 이야기했더라면 이야기가 좀 더 수월했을 텐데...”

강준혁 이사님은 괜스레 뒷머리를 긁적이며 빙긋 웃어보였다.

“일전에 남겨주신 연락처로 전화를 드릴까도 싶었지만, 왠지 용기가 나지 않아서...”

부끄러운 마음에 사장님께서 가져다 주신 코코아를 삼키며 고개를 바닥에 떨구자, 강준혁 이사님은 괘념찮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지금 시간 괜찮아요?”

“네? 아, 네.. 오늘은 가게가 쉬는 날이라.”

“그럼 잠깐 어디 카페라도 가서 저랑 얘기좀 할래요? 사실 칸나씨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이요?”

“네. 가능하면 방금 들었던 신의 선물의 엔딩 테마곡을 라온의 다운로드 공유기로 배포 하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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