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01화 (201/252)

< EP. 38 : 샤이닝 스타. (2)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야 올 S랭크로 클리어 했으니까.”

나카무라는 나의 대답에 잠시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되물었다.

“올 S 랭크로 클리어했다고? 칸나 네가? 도대체 어떻게!?”

사실 나카무라군이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 역시 모든 연주를 전부 S랭크로 클리어 하기 위해 연습 모드를 수도 없이 반복했었으니까. 하나의 연주를 완벽히 쳐내기 위해선 반복적인 연습이 중요하다.

그것은 실제 악기를 다룰 때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 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하나하나 신중하게 내려오는 리듬 바를 쳐내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눈으로 리듬바를 보고 타이밍을 맞춰선 안된다.’

눈으로 쫓아 타이밍을 쟤는 순간. 음은 조금씩 미묘하게 틀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것은 순전히 내 예상이지만, 이 게임을 만든 강준혁 디렉터라는 사람...

‘일부러 리듬 바의 타이밍을 어긋나게 해놓았어...’

실제로 몇몇 포인트에서 리듬 바를 아무리 타이밍 좋게 맞춘다 하더라도, Perfect 타이밍이 아닌 Good 타이밍이 뜰 때가 있었다. 조금 이상한 느낌에 감정을 담아 일

부러 조금 느슨하게 타이밍을 맞추자, 곧바로 Perfect 표시를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연주는 단순히 타이밍 만을 맞추는 단순한 리듬 게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 뮤지션이 감정을 담아 건반을 두드리듯 주인공 만이 가지고 있는 ‘곡의 해석’이 따로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될 수 있는 한 리듬 바가 내려오는 타이밍 보다 곡의 흐름과 분위기를 더 중요시 했다. 그러자 이제까지 아무리 반복 해도 A 랭크 밖에 되지 않았던 어려운 난이도의 곡이 하나씩 S랭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처음 쇼팽의 녹턴을 쳤을 때 설레이던 그 느낌 그대로 너무 잘하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곡을 느끼는거야...’

그리고 나머지는 연주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에 모든 것을 맡긴다.

신기하게도 나의 손가락은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피아노 음에 반응하여 자연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몇 번의 반복 끝에 패턴 마저 손에 익어 버린 탓일까?

나카무라군은 유키노조 카오리가 범인이 아니라는 내 말에 그렇다면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린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따듯한 레몬티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건... 말하지 않을래.”

“음? 왜??”

“게임을 클리어 하고 나서 나카무라군이 느낄 감동을 빼앗기 싫으니까. 하지만 연주 파트에서 S 랭크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힌트는 알려줄 수 있어.”

“그게 뭔데?”

“음악을 느끼는 거야. 너무 리듬 바에만 신경쓰지 말고, 주인공의 회상씬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완벽한 연주를 위해 음악에만 집중하면 자연스레 S 랭크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이것 역시 제작자의 의도 일지 모르지만, 신의 선물 연주 파트에서 플레이어의 눈을 현혹시키는 장치가 너무나도 많다.

내려오는 리듬 바와 타이밍 존.

거기다 옆에서는 주인공의 회상씬까지 보여 주기에 처음에는 회상씬에 집중하다보면 음을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얼핏 보기에 음악과 함께하는 회상 씬은 굉장히 애절한 느낌을 전해주지만, 사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리듬 게임을 진행 시키기 위해선 회상씬은 연주 이후에 따로 보여주어도 되지 않았을까?

나카무라는 음악에만 집중하라는 나의 말에 알 듯 말듯한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온 마유리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오래 기다렸어? 미안, 교대 직원이 지각 하는 바람에...”

“아니, 괜찮아. 나카무라군이 사온 잡지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지 뭐야.”

“칸나 너 요새 신의 선물인가, 그 게임에 완전 빠져 들었다며? 그게 그렇게 재밌어?”

마유리의 물음에 나는 지난 한 달 간을 주욱 돌이켜 보았다.

살짝 눈을 감은채 마지막 씬에서 주인공을 포함한 5인의 협주곡을 떠올린 나는 마유리를 향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응. 너무 즐거웠어. 그리고 한편으론 너무나 슬픈 이야기라...”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 것 만으로도 눈가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힐 것만 같았다.

그러자 내 얼굴을 보고 있던 마유리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얼레?? 너 지금 우는 거야?”

“아, 그냥 진짜 결말에 대해 이야기 해주면 안될까? 나 정말 궁금해서 돌아가시겠다.”

나카무라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자신의 손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어떤 게임이든 올 클리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신의 선물은 당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니까? 특히 사츠키 선생이랑 협연 파트는 피아노가 두 대다 보니 손가락에 쥐가 날 지경이야...”

그런 나카무라군을 바라보던 나는 이제라도 가방 안에 있는 라온을 이용해 진 엔딩을 보여 줄까도 싶었지만, 결국에는 그를 위해 꾹 참아내기로 했다.

&

그 날 저녁 마유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꽤나 오랜만에 기타를 꺼내 들었다. 오늘은 가게도 쉬는 날이라 아버지도 집에 안계시니까. 침대 위에 기타 케이스를 올려둔 나는 조심스레 기타를 꺼내어 줄을 튕겨 보았다.

맑은 기타음이 좁은 방안에 울리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어릴적 아빠는 내가 가수가 꿈이라는 것에 대해 별로 탐탁치 않아 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결국 엄마는 아버지 몰래 나에게 기타를 선물해 주셨고, 아버지가 가끔 가게를 비운 날이면 엄마는 내 곁에 앉아 내가 치는 기타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웃어 보이셨다.

“참 신기하다. 우리 딸.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한 번만 들으면 그 곡을 똑같이 칠 수 있다니. 무슨 모차르트도 아니고...”

“모차르트? 그게 뭐예요?”

“오스트리아의 천재적인 음악가란다. 네가 좋아하는 ‘반짝 반짝 작은별’이라는 노래도 사실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클래식 곡이야.”

“아, 나 그 노래 칠 줄 알아요.”

“정말...?”

&

“Twinkle, twinkle little star...”

엄마와의 옛 기억에 방 안에서 기타 줄을 튕기던 나는 기타를 들고 집을 나섰다.

1월의 싸늘한 겨울 바람이 내 몸을 움츠러 들게 하였지만, 나는 기타 케이스의 손잡이를 꼭 움켜쥔 채로 언제나 거리 연주를 하던 곳으로 향했다.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작년 가을이랑은 다르게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역 근처의 상점가에 위치한 레코드 가게를 찾은 나는 유리문을 열어 젖히며 주인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렸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 칸나구나, 어서오거라.”

“아저씨. 오늘 혹시 가게 앞에 설치된 앰프 좀 빌릴 수 있나요?”

“응...? 너 설마 이 추운 날씨에 노래하려고?”

“네. 안... 되나요?”

“그야 안 될 건 없지만, 그러다 감기 걸려 이 녀석아.”

“조금만 부르다 갈게요. 네?”

“나야 가게 홍보도 되니 좋긴 하지만, 원 녀석... 그럼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아저씨는 나의 부탁에 혀를 차며 가게 안 쪽의 쪽방에 들어가시더니, 잠시 후 조그만 난로와 의자를 들고 나오셨다.

“아저씨. 이렇게까지 안해주셔도 되는데...”

“이거 틀어 놓고 옆에서 노래부르는게 앰프를 빌려주는 조건이다. 너 노래 부르다 감기라도 걸리면 하늘에 계신 네 엄마가 얼마나 슬퍼 하겠니?”

“아... 감사합니다. 아저씨...”

“고사리 같은 손 잡고 엄마랑 와서 기타 사갔던게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나 커가지곤...”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어 보이셨다.

잠시 후. 레코드 가게 앞에는 나만을 위한 조그만 공연장이 생겨났다.

간간히 거리에 불어오는 찬 바람은 여전 했지만, 옆에 세워둔 난로 덕분에 적어도 손가락이 굳을 일은 없어 보였다.

나는 문틀에 기댄 채 나를 바라보시는 아저씨를 향해 살짝 미소 지어보인 뒤, 부드럽게 기타줄을 튕겨 바쁘게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웠다.

“어? 이 겨울에 거리에서 연주를?”

“우리 잠깐만 구경하고 가자.”

어느새 주위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인채, 내 앞에 놓인

촟불에 불을 밝혔다.

조그만 유리병 안의 양초에 불을 붙이는 것은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행하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첫곡으로 직접 작사 작곡한 ‘전할 수 없는 사랑’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잠시 목을 가다듬은 나는 곧이어 기타줄을 튕기며 차가운 바람에 내 목소리를 실어 보냈다.

고독해 보이는 너의 모습에, 어째서인지 신경이 쓰여...

깨달으면 어느샌가 너에게로 향하는 내 마음.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너라는 거울에 비춰질까...

두 눈을 꼭 감은 채 내 모든 감정을 담아 노래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첫 노래를 마치고 살며시 감았던 눈을 뜨자, 노래를 시작하기 전보다 두배는 더 많은 사람들이 레코드점 앞에 모여 들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가게 아저씨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어느 때보다 밝게 웃고 계셨다.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기타도 제법 많이 늘었구나. 요새 기타 교습소라도 다니는 게냐?”

“아뇨. 그저 정확하게 치는 것 보다, 곡의 분위기와 그 흐름을 이어가는 법을 깨달았다고 해야하나?”

“호오...? 제법인데? 그래 확실히 정확하게만 연주하는 소리엔 아무런 감정도 실을 수 없는 법이지. 대체 그런건 누구한테 배운 거냐?”

아저씨의 질문에 나는 그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기타줄을 튕겼다.

그러자 이 곡을 알아 들은 관객 중에 몇몇이 ‘어?’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이 곡...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그러게? 뭐지... 굉장히 익숙한데?”

“자.. 잠깐 이거 설마? 게임 ‘신의 선물’의 엔딩곡?”

“헉!! 진짜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레코드 가게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어쨌든 음악이 마음에 드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 나셨다.

처음 그대를 본 순간...

슬픈 내 사랑을 난 알았죠...

이뤄질 수도, 이뤄져서도 안될...

혼자 만의 슬픈 마음을...

&

그후로 며칠동안 나는 아빠 몰래 집을 빠져 나와 레코드 점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사장님은 내가 올 시간이면 미리 가게 앞에 난로와 작은 의자를 준비해 두시곤 했다.

신의 선물의 엔딩곡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른 것이 PC 통신 커뮤니티를 타고 화제가 되었는지, 날이 갈수록 레코드 점 앞에는 점점 사람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따듯한 파카를 차려 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기타 케이스를 둘러맨 채 전화기를 집어들자, 수화기 너머로 나카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칸나.. 하나만 물어볼게. 혹시 네가 본 신의 선물의 진 엔딩이라는게 등장 인물 5인의 협연후에 나오는 엔딩이 맞아?”

“응.. 맞아. 나카무라군도 본거야?”

“어... 방금..”

“어땠어...?”

“이게 뭐야... 결국 히로인도 범인도 애초에 아무도 없는 거 였잖아. 다중 인격 장애로 인한 천재 뮤지션의 자살 기도라니.. 이게 무슨...”

< EP. 38 : 샤이닝 스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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