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37 : 불량품.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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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점을 나와 병원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이어폰 코너에서 들은 유저들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노멀 엔딩 딱 한번 보고 2회차에서 거기까지 추측해 내다니. 완전 명탐정 코난이 따로없네...’
처음 고주파수 비트음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에노씨에게 내 생각을 전했을 때,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연속으로 떠올라 입가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과연 모든 이야기의 끝을 보았을 때, 유저들은 과연 내가 만든 신의 선물이라는 작품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릴까?’
하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선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듯 하다.
나는 빨간 신호등에서 차를 멈춰 세우곤 조수석에 놓여진 레코드점 쇼핑백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컴플리트 라온’의 주요 런칭작을 담당하게 될 한 프로듀서의 음악 CD가 왕창 들어가 있었다.
그가 누구냐고? 글쎄... 아직까진 비밀이라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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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분만인 탓일까?
생각보다 유키가 기운을 일찍차린 덕에 입원실에 도착한 나는 잠시 신생아실에서 나온 설현이를 볼 수 있었다.
“설현아~ 저기, 아빠 왔다~ 아빠 왔어요~”
“뭐야, 벌써 그렇게 안고 있어도 되는 거야?”
그러자 장모님께서 다소 지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도 말아. 어젯밤부터 설현이가 보고 싶다고 얼마나 보채던지. 어젯밤 자네가 집에가고 신생아실에 12번도 더 다녀왔다니깐? 오늘 아침부터 5번이나 들락 거리니 의사 선생님도 안되겠는지 데려다 주셨어.”
“설현아~ 엄마야~ 까꿍~”
어젯밤부터 그새 많이도 연습했는지, 이젠 제법 ‘설현’이라는 발음이 꽤나 자연스럽게 들렸다. 나는 그런 유키를 잠시 바라보다가 어제부터 자리를 지켜준 장인어르신과 장모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죄송합니다. 장모님. 제가 너무 늦었죠?”
“아냐, 아냐. 덕분에 간만에 딸이랑 오붓한 시간도 보내고 굉장히 좋았어. 유키가 자네 자랑을 얼마나 하던지. 진짜 다른 집 딸들은 이럴 때 엄마한테 남편 흉도 보고 그러던데, 준혁군은 와이프 교육을 잘 시켰나 봐?”
어머니 등 뒤로 설현이를 품에 앉은 채 ‘브이’를 그리고 있는 귀여운 유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유키가 어머님 닮아 워낙 착하고 이쁘잖아요. 다 어머님 덕이죠.”
“어이구~ 내 사위. 말도 이쁘게 하네~ 진짜 내 딸이지만 나도 부러울 만큼 시집 잘 갔네.”
마치 옆에 있는 남편에게 보고 배우라는 듯 한 장모님의 일침에 장인어른은 헛기침을 하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거 참... 정도 것 좀 하게나. 이러다 집에 가면 내가 얼마나 비교 당하는지 알나?”
“하하.. 죄송합니다.”
“우리 큰 딸도 어서 준혁군 같이 듬직한 사위를 얻어와야 할 텐데, 이것이 눈만 높아 가지고... 준혁군. 어디 우리 유코에게 소개 시켜 줄만 한 사윗감 없나?”
“네? 아, 그게..”
장모님의 말에 머릿 속으로 펜타곤 직원들 중 몇몇을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내가 알고 있는 돈 잘 버는 솔로 중에선 ‘로리 붐의 시대’를 기다리는 두 마리의 야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유코씨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펜타곤 직원 말고 그 외의 인물은 누가 있을까? 하고 한 사람을 떠올린 순간.
입원실 문이 벌컥 열리며 내가 생각한 그 인물이 들어왔다.
“내 친구 준혁아~!! 아들이냐, 딸이냐~!! 왜 연락이 없는 것이냐~!!”
그러자 유키 품에 안겨 있던 설현이가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빼액 울어댔다.
“어머? 준페이씨~”
설현이를 얼르며 반겨 주는 유키와는 다르게 장모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감히 손녀를 울리며 요란스럽게 등장한 준페이의 행동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다.
‘쟨 볼 것도 없이 탈락. 말 꺼내기 전이라 다행이다.’
잠시 후. 장인 어른과 장모님은 유키와 설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본가로 돌아가셨다.
놀란 설현이는 유키의 품안에서 어느정도 진정이 됐는지, 금새 조그만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유키의 볼을 어루만졌다.
“유키씨네 부모님. 엄청 젊어 보이시네요?”
“실제로도 젊으세요. 결혼을 일찍 하셔서...”
“아, 유키씨가 미인인 이유가 어머니를 닮아서 였군요. 부디 설현이도 유키씨를 닮아 이쁘게 자라길 바랍니다.”
“좋은 말씀 감사해요~”
나는 유키와 이야기를 나누던 준페이에게 음료수 하나를 건네 주며 물었다.
“미안하다. 나도 어제 너무 정신이 없어서 너한테 전화 준단 걸 깜빡했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요즘 너희 엄청 바쁘지 않아?”
“바쁘지. 바빠. 회사 창립이래 요즘이 가장 바쁜 시기인 듯 싶다. NEGA 새턴 출시에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 거기다 너희 펜타곤에서 나온 신의 선물까지. 연말에 아주 일복이 터졌어요. 지금 우리 직원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니깐?”
“그런 시기에 여기 와도 돼?”
“야, 내가 게임 기자 짬밥이 몇 년인데, 그럼 궂은 일은 밑에 직원한테 다 시켜놓고, 고급진 일 하러왔지.”
“고급진 일?”
“응. 너 인터뷰 따러왔지.”
“······.”
“친구 와이프 순산 축하도 할 겸...”
“어째 앞 뒤 순서가 바뀐거 같지 않아?”
“······기분 탓일 걸?”
나는 준페이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헛웃음을 삼키며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와~ 재밌겠다. 설현아~ 아빠가 여기서 인터뷰한데요~”
유키는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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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준혁씨. 잘 다녀와요.”
“응. 한 달 만에 출근하려니 좀 낮설긴 하네.”
“출근하면 금새 적응 될 걸요? 설현아. 아빠 잘 다녀오세요~ 해야지.”
유키는 설현이의 조그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야외 주차장까지 마중을 나왔다. 나는 그런 두 모녀의 이마에 한차례 입을 맞춘 뒤 차에 올랐다.
브레이크를 밟은 채 시동을 걸으니,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굉장히 딱딱하게만 느껴졌다.
‘휴~ 좋은 날도 다 갔고, 이제 다시 일 좀 해볼까?’
그러고보니, 설현이가 태어나는 통에 그 날 이후로 칸나를 보러가지 못했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나의 제의에 응해 회사로 연락을 했다면 직원들이 나한테 알려주었을 텐데, 그동안 아무 연락이 없던 걸 보면 역시나 ‘아이돌 데뷔’에는 관심이 없던 것일까?
씁쓸한 기분에 입맛을 다시며 엑셀을 밟자, 미끄러지듯 주차 공간을 빠져 나오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유키가 보였다.
나는 그녀의 손짓에 마주 손을 흔드며 맨션 주차장을 빠져나와 대로로 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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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부장... 아니지. 이사님~!!”
본사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등 뒤에서 카오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 디자인 팀 소속의 카오리는 신의 선물에 등장하는 ‘유키노조 카오리’랑 이름이 같아 출시 당시 직원들에게 종종 놀림을 받았으나, 워낙에 당찬 성격이라 그런지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곤 했다.
오늘 아침도 역시나 하야시와 함께 출근하는 걸 보니 최근에 이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긴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응. 너도 많이 받고, 올해는 하야시랑 결혼하렴.”
그러자 옆에서 나에게 인사를 건네려던 하야시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외쳤다.
“이사님.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끄아아악!!!”
카오리의 뾰족한 하이힐에 발등을 찍힌 하야시는 눈깔을 뒤집은 채 로비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이 녀석도 캐릭터가 완전 바뀌었네.’
전에 민텐도에서 일할 땐 굉장히 차갑고, 이성적인 녀석이었는데, 펜타곤으로 넘어와서 카오리를 만난 뒤,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츤데레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베지터 같은 녀석.’
나는 속으로 하야시를 향해 웃어보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포기하고 그냥 데리고 살아~ 어차피 너도 카오리 좋아하잖아.”
“벼.. 별로 그렇지도 않... 으어어억!!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너 진짜 부장을 뭘로 보는 거냐!!”
하야시는 자신를 향해 혀를 쏙 내밀고 달려가버리는 카오리를 바라보며 한동안 씩씩 대었다. 이거 참. 오랜만에 회사에 복귀하는 거라 굉장히 어색할 줄 알았는데, 마치 지난 주까지 회사 다니다가 주말 보내고 나온 느낌이네.
나는 카오리에게 쩔쩔 매는 하야시에게 피식 웃음을 던지며 그에게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회사에 별일은 없었어?”
“별 일 없긴요. 어마어마했죠. 각 잡지사에서 신의 선물에 대해 기사를 쓰고 싶다고 이사님을 얼마나 찾았는데요.”
“그런 것 치고는 회사에서 아무 연락도 없던데?”
“뭐 그거야, 카와구치 대표님이랑, 우에노씨가 기자들의 인터뷰에 대신 응해주셨으니까요.”
“아, 그렇구나. 대표님이랑 우에노 디렉터가 고생 많았겠네...”
“하지만 워낙에 칭찬 일색이어서 그런지. 본인들도 즐거워 하시던데요? 특히 우에노씨는 자기가 직접 나서서 인터뷰에 응했으니...”
“진짜? 우에노씨도 굉장히 조용한 성격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나봐?”
“누가 아니랍니까? 그런데, 이번 달 패미통신에 실린 이사님 인터뷰는 대체 어디서 하신 겁니까? 준페이씨가 기사를 아주 잘 써주셨더라구요.”
하야시의 질문에 나는 그 날의 인터뷰가 떠올라 빙긋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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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실 옆자리에 새로 만들어진 이사실에 들어선 나는 옷걸이에 코트를 벗어 걸어 둔채 컴퓨터 전원을 올렸다.
책상 위에는 내가 없는 동안 회사에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적어둔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컴퓨터가 켜질 동안 의자에 몸을 기댄채 보고서를 훓어 보고 있었는데, 노크가 울리며 모리타와 우치무라가 들어왔다.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휴가는 잘 보내셨나요?”
“누가 들으면 1년 만에 복직한 줄 알겠다. 하야시도 그렇고 다들 너무 요란 떠는 거 아냐?”
그러자 모리타 옆에 있던 우치무라가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만큼 반가워서 그렇지요. 그 한 달 새에 해가 바뀌어 벌써 1995년 인 걸요.”
본래 자택에서 피규어를 만들던 우치무라는 작년에 CES를 다녀온 뒤로 모리타와 부쩍 친해져 두 달 전부터 제 2 개발팀에서 폴리곤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피규어를 만드는 것과 3D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지.
우치무라는 로우 폴리곤을 활용해 제법 그럴 듯한 캐릭터 디자인을 만들어 내었고, 모리타는 그런 우치무라를 극찬하며 항상 자신의 곁에 데리고 다녔다.
‘정말로 잘 어울리는 스승과 제자로구나...’
나는 잠시 보고서를 책상에 올려두며 모리타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 전에 말씀하신 각 지역의 오디션 상황을 말씀 드리려고 왔습니다.”
아차. 그러고보니, 신의 선물을 발매하기 전에 ‘컴플리트 라온’의 런칭작으로 ‘버추어 아이돌’ 프로젝트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했었지. 복귀하자마자 처리 할 일이
산더미로구나...
하지만 누굴 탓하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인 것을...
“이 서류는 일단 각 지역 별로 최종 결승까지 올라온 참가자들의 프로필과 오디션장 녹화 테잎입니다.”
모리타에게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건네 받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때 모리타 곁에 있던 우치무라가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이사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응? 뭔데?”
“그게... 신의 선물의 엔딩곡 테마에 대한 건데, 요즘 하라주쿠에서 신의 선물의 엔딩곡 테마에 직접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르는 여자 아이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 커뮤니티에서 제법 화제가 되고 있더라구요. 사람들 말로는 노래 솜씨가 수준급이라고 하던데...”
하라주쿠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 아이라고... 설마...?
< EP. 37 : 불량품.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