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37 : 불량품.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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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마 몇 시간이 흐르고나면 분명 나와 유키는 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명확히 실감이 나질 않았다.
유키가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어머님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 머릿 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994년 12월 24일. 새벽 5시 반.
붉은 신호등 앞에 차를 멈춰선 나는 초조함에 핸들을 두드렸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도로는 한적했지만, 성급한 마음에 엑셀을 밟으려 할때마다 방금전 어머님와의 통화가 귓가에 맴돌았다.
‘유키는 무사히 병원에 도착해서 분만실로 들어갔으니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와. 운전 조심하고...’
그래. 괜히 성급하게 행동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 천천히 가자.
나는 텅빈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뀔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엑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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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병원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차를 주차장에 대어 놓고 건물 안으로 달렸다.
다행히 당직을 서고 있던 간호사가 곧바로 나를 분만실로 데려다 주었기에 병원 안을 해맬일은 없었다.
“준혁군. 왔는가?”
분만실 앞에서 서성이던 장인 어른과 장모님은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손을 꼭 잡아 주셨다.
“유키는 어때요?”
“이제 한 시간 정도 됐으니, 소식이 들릴 때가 됐는데...”
어머님은 잠결에 서둘러 달려 나오셨는지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계셨다. 나에겐 천천히 오라고 하셨지만, 본인도 많이 당황하셨던 모양이다.
“죄송해요. 일 때문에 유키 옆에 있어 주지도 못하고...”
“가족이 좋다는게 뭐겠나, 이럴 때 서로 돕는 거지.”
장인 어른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애써 웃어 보이셨다. 하지만 항상 유쾌해보이던 장인 어른도 이 순간 만큼은 떨리는지 표정이 굳어진게 느껴졌다. 그나마 내가 곧바로 와준 것이 두 분에게 위안이 되는 모양이었다.
분만실에서 간간히 유키의 신음 소리가 들려 올 때마다 어머님은 두 손을 마주 쥔 채로 신께 기도를 올렸다.
장모님 입장에서는 아기도 아기지만, 유키의 건강이 가장 중요할테니까...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유키는 내가 도착한 후로도 한 시간이나 더 신음하며 나와 부모님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원래 아이가 이렇게 늦게 나오는 건가?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이야...
그때였다. 분만실 안쪽에서 작은 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유키의 신음소리가 잦아 들었다.
“나왔나...?”
우리 세 사람은 너나 할거 없이 분만실 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녹색 수술복에 마스크를 쓰고 나온 의사선생님이 분만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서.. 선생님. 어떻게 산모랑 아이는 무사한가요?”
유키 어머님의 물음에 마스크를 벗은 의사 선생님은 입가에 미소를 띄운채 고개를 끄덕였다.
“산모를 똑 닮은 공주님이세요. 산모도 아이도 건강하니, 한시름 놓으셔도 됩니다.”
“하아... 다행이다.”
어머님은 대기실 의자에 쓰러지듯 앉으시며 이마에 손을 얹은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를 향해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어디론가로 사라졌고, 우리는 유키가 나올 때까지 분만실 앞을 계속 서성였다.
그나마 의사 선생님이 해준 말 덕분에 장인어른도 장모님도 표정이 한결 밝아 보였다.
“준혁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장인 어른..”
“딸이라는데 아쉽지는 않은가?”
“전혀요. 오히려 아들보다 딸이라니, 더 좋은 걸요?”
“자네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우리도 고맙구만...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나오지?
무슨 일 있나?”
그 순간. 장인 어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분만실의 문이 열리며 간호사들이 유키를 간이 침대에 옮겨 데리고 나왔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분만실에서 나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유키의 손을 잡아 주었다.
“고생 많았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유키는 침대에 몸을 뉘인 채 나를 바라보며 힘없이 웃어보였다.
“준혁씨 바램대로 저랑 준혁씨를 쏙 빼닮은 딸이래요.”
“의사 선생님한테 들었어. 나보다는 너를 더 닮았다던데?”
“제가 보기에 눈은 준혁씨랑 똑같은거 같아요. 하하... 아.. 힘들다.”
혼자서 많이 힘들었을텐데도 기다려준 우리를 생각해 웃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장모님은 그런 유키의 마음을 느꼈는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 붙은 머릿칼을 넘겨주며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어이구, 우리 딸 고생 많았네.”
“엄마.. 엄마는 날 어떻게 낳았데? 나는 솔직히 둘째는 힘들 것 같아... 너무 힘들었어..”
유키는 어머니의 손길에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흐느끼듯 입을 열었다.
“괜찮아. 잘했어. 우리 딸... 너도 이제 엄마인데, 아이처럼 울면 어떻게?”
“응.. 그래도 엄마 손이 이렇게 따듯한 걸...”
유키는 자신의 볼에 닿은 어머니의 손을 꼭 쥔 채로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게 모성애라는 것이겠지?
그때 내 곁에 서 있던 장인 어른이 내 어깨를 꽉 움겨 쥐며 말했다.
“후우... 이럴 때 말야. 남자들은 어떻게 대처 해야할지 도통 감을 못잡겠다니까?
참 쓸모없네. 쓸모없어...”
“그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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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것도 온 세상 사람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겨울에 태어난 이 아이는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순수한 존재...
그렇기에 내 일생을 바쳐 지켜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인 유키의 이름을 따와 눈 ‘설’자와 현명한 아이가 되어 달라는 마음에 ‘현’자를 붙여 ‘강 설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소 일본인들에게는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었지만, 유키는 설현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유리벽 너머 인큐베이터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꺄르르 웃어 보였다.
“솔횬아.. 아쿠, 우리 애기. 여기 봐~ 엄마 봐~ 까꿍~”
역시 일본인에겐 너무 힘든 발음이긴 한가보다. 그래도 유키는 애써 설현이라는 이름을 똑바로 발음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유리창을 톡톡 두드리며 설현이를 바라보는 유키의 모습를 바라보니, 항상 어리게만 보였던 그녀도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갑자기 울린 전화 벨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째려보는 유키의 눈을 피해 황급히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았다.
“부장.. 아니지 이사님~!! 아이는 무사히 잘 태어났나요?”
수화기 너머 하야시의 목소리 말고도 주변에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펜타곤 직원 모두가 유키와 아이의 소식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 오전 6시 52분에 태어났다.”
“오오!! 왕자님입니까? 공주님입니까?”
“딸이야. 이름은 강설현.”
“강 솔... 뭐라구요?”
“설.현.”
“소..룐..?”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름을 바꿀까?
아무튼 하야시는 수화기 너머로 유키의 출산 소식을 전했고, 그와 동시에 귀가 따가울 정도로 기뻐하는 직원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나는 손목 시계로 시간을 바라보며 하야시에게 물었다.
“그런데, 한창 바쁠 때 아냐? 신의 선물은 반응이 좀 어때?”
“좀 어떻긴요. 준비한 카트리지는 전량 판매 되었고, 현재는 단말기를 이용한 다운로드 판매를 이용하는 유저들 뿐입니다. 하지만 소장욕 때문인지 대부분 2차 물량을 기다린다고 하고 돌아갔지만요...”
“뭐...? 오후 3시 밖에 안됐는데, 초도 물량 1500개가 전부 나갔다고!?”
“10월에 무료로 배포했던 체험판이 게임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도 눈길을 끌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라온 본체만 해도 펜타곤 샵에서만 500대가 넘게 나갔습니다.”
보통 기대작이나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게임 시리즈가 출시되면 대응 하드를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하곤 하지만, 신의 선물은 단일 IP 치고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펜타곤 샵에서만 미리 예약을 받았던 한정판의 예약 마감까지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일단 이곳 상황 좀 정리한 후에 대표님과 함께 병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응...? 아냐 아냐. 오늘은 유키도 안정을 취해야하니까, 나중에 직원들이랑 와 줄래?”
“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오늘은 마음만 받을게. 고맙다. 다들 수고 했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어.”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찾아 뵙겠습니다.”
하야시와의 통화를 마친 나는 묵직한 휴대폰을 허리춤에 채워 넣고 유키에게로 돌아왔다.
“회사에요?”
“응. 하야시가 축하한다고 전해달래.”
“설마 직원 분들 지금 병원에 오신데요? 클났네. 나 얼굴 많이 부었는데!?”
“걱정 마. 안 그래도 너 신경 쓰일까봐 나중에 오라고 했으니.”
“아휴~ 다행이다...”
“자~ 그럼 설현이도 봤으니, 이제 들어가서 좀 쉬자. 응?”
“봐도 봐도 계속 보고 싶은데, 어떡해요...”
유키는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돌려 나와 함께 입원실로 돌아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그녀가 입원할 때까지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가셨기에 병실엔 나와 유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유키를 팔을 부축해 침대에 뉘이니 때마침 간호사가 간식으로 죽을 준비해주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만 잔 산모를 위해 병원에서 따로 마련 해준 식단이었다.
잠시 후. 침대 위 간이 테이블에 따듯한 죽을 올려 놓은 간호사는 유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한 뒤 병실은 나섰다.
“마침 배 고팠는데, 잘됐다.”
유키는 죽을 보니 군침이 도는지 침을 꼴깍 삼키며 나를 향해 아~ 하고 입을 벌렸다.
그 모습이 하도 귀여워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그녀는 입을 앙 다문채 새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빨리 먹여 줘요. 나 솔횬이 때문에 고생해서 숟가락 들 힘도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빨리 아~~”
창가에 내비치는 노을 빛 하늘...
시간은 오후 4시 밖에 안되었지만, 겨울에는 유난히 해가 빨리 떨어지는 탓에 창밖의 하늘은 황금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어린 새가 어미에게 모이를 달라 보채듯 살짝 입을 벌린채 두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놀란 그녀가 잠시 몸을 움찔 거렸지만, 이내 유키는 내 리드에 맞춰 부드럽게 나를 끌어 안았다.
“병원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예요.”
“뭐 어때... 내 여자한테 키스하는 건데.”
“나 이도 안 닦았는데...”
부끄러운지 슬쩍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볼을 잠시 어루만지던 나는 그녀의 고개를 내쪽으로 돌려 다시 한 번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아... 준혁씨.”
비음 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를 끌어 안은채 잠시 그녀의 온기를 느끼던 중...
덜컥...
입원실에 문이 열리고 장인 장모님이 들어오셨다.
“어이구~ 우리 사위. 급하기도 해라. 벌써 둘째 계획 중이야?”
“엄마~ 노크 좀.. 하지...”
“좋아 좋아~ 이렇게 둘째로 아들 한 번 도전하자~!!”
장인 장모의 놀림에 나와 유키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오시다니.. 하하...
“강 서방은 이제 들어가 봐. 안그래도 새벽까지 일하고 오느라 한숨도 못 잤을 텐데, 들어가서 씻고 쉬어야지. 여기는 내가 보고 있을테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옷도 꾀죄죄 해가지곤.. 가서 옷도 좀 갈아 입고, 푹 잔 다음에 내일 아침 병원으로 오게. 내일은 출근 안해도 되지?”
“아, 네.. 괜찮습니다.”
“그럼. 얼른 들어가 쉬어.”
“장모님도 피곤 하실텐데...”
“나는 여기서 유키 좀 봐주다가 눈 붙일 테니까. 내 걱정을 말고...”
그러자 유키 마저 웃으며 장모님의 말에 동의 했다.
“그래요. 저는 오늘 엄마랑 할 얘기도 있으니까. 먼저 들어가 쉬어요.”
“흐음.. 그래, 알았어. 대신 내일 아침 일찍 올게.”
“네. 오늘 바로 와줘서 고마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요.”
“응.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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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슈트를 벗어 던지고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고양이 하루 역시 장모님 집에서 볼보고 있는터라. 혼자 있는 집안은 매우 고요했다.
‘우리집이 이렇게 조용했었나...?’
핸드폰을 탁자에 올려 놓은채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신의 선물’을 플레이 해본 유저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잠깐 PC 통신 커뮤니티에 접속해 볼까?”
< EP. 37 : 불량품.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