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36 : 싱어송라이터.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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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곤 소프트 이사. 강준혁.
‘이사’ 라면 회사 내에서도 꽤나 높은 직위 아닌가?
침대에 누워 손 끝에 걸린 명함 한 장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책상위에 명함을 올려두었다.
그리곤 옷장 위에 올려진 숨겨진 엄마의 기타 케이스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 거려 본다.
“엄마. 나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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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오전 수업을 위해 학교로 향하는 전철 안은 언제나 사람들로 많이 붐빈다.
출근하는 직장인과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어렵사리 전철에 오르면 나는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인데, 다들 용케도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은 여전히 조그만 책을 손에 들고 보시지만, 내 나이 정도의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전철에 오르자마자, 새하얀 게임기를 꺼내들었다.
민텐도에서 휴대용 겜보이라는 걸 출시했을 때부터 전철 안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긴 했는데, 저 새하얀 게임기가 나타나고 부터는 폭발적으로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더구나 학교 내에서도 휴강 때 캠퍼스에 모여 책을 읽던 아이들 조차 최근엔 서로의 게임기에 케이블을 연결하고 함께 무언가를 즐기곤 하였다.
‘라온..’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 게임기의 이름 뿐이었다.
잠시 후. 전철이 학교가 위치한 역에 멈춰선 뒤, 겨우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온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칸나~”
전철 역 계단을 내려오니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마유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녀의 남자 친구인 나카무라군이 오늘도 이어폰을 꽂은 채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마유미와 나는 학과는 달랐지만,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한 친구였다.
“마유미, 나카무라군. 좋은 아침~”
하지만 나카무라는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열심히 게임기만 두드리고 있었다.
결국 마유미에게 등짝을 쎄게 얻어 맞은 나카무라는 비명을 내지르며 이어폰을 뽑아 내었다.
“아~ 씨!! 잘되어 가고 있었는데~!! 128콤보였단 말야...”
“너 진짜 아침부터 내내 그 게임기만 붙잡고 말야. 사람이 옆에서 인사 하면 들을 줄 알아야지!!”
“인사 하려고 했어. 하려고 했다고~!!”
나카무라는 아쉬운 표정으로 툴툴대며 손에 들고 있던 게임기의 전원을 내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나카무라의 게임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그거 라온이지?”
나의 물음에 나카무라군과 마유미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떠보이며 나에게 되물었다.
“칸나, 네가 라온을 알아?”
“응. 뭐 워낙에 유명하니까. 요즘 지하철에서도 많이 보고...”
“그래도 이름까지 콕 집어 언급한 건 처음이잖아.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네...”
나카무라는 가방 안에 라온을 집어 넣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나는 그런 나카무라군을 향해 재차 물어보았다.
“나카무라군은 게임 좋아하지?”
“물론이지. 말이라고~”
“주로 어떤 게임을 좋아해?”
“글쎄... 굳이 장르를 따지진 않지만, RPG 게임을 주로 하는 편이지. 그리고 펜타곤 게임이랄까?”
“펜타곤 게임?? 그런 장르도 있어?”
그러자 나카무라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내 질문에 자세히 답해 주었다.
“펜타곤 게임이란 장르명이 아니라, 말 그대로 펜타곤이란 게임 회사에서 제작한 게임들을 일컫는 말이야. 아무리 게임을 잘 모르는 너라도 파이널 프론티어. 드래곤 엠블렘 같은 게임은 들어 봤을거 아냐? 그 작품들이 전부 펜타곤에서 만들어진 작품이거든. 명작 제조기라고도 불리우는 회사인데, 팬층이 어마어마하지. 그 외로도 뉴스에도 나왔던 내가 없는 거리라던가...”
그때 나카무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유미가 손가락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아~!! 내가 없는 거리!! 그 게임은 나도 그거 알아.”
나와 마찬가지로 게임에 대해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마유미 조차 ‘내가 없는 거리’에 대해선 꽤나 관심을 보였다.
“어라? 너도 그 게임 해봤냐?”
“아니. 한창 그 게임이 출시 됐을 적에 새벽에 물 마시러 거실에 내려 갔더니, 남동생 방에서 막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살짝 문을 열어 봤더니, 게임 패드인가? 그걸 이마에 대고 펑펑 울고 있던데?”
마유미의 말에 나카무라군 역시 충분히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없는 거리는 내 인생 최고의 게임이었지.”
“히이익~!! 오타쿠!!”
순간 자신과 슬쩍 거리를 두는 마유미에게 나카무라는 픽 하고 웃음을 새어보였다.
“그 게임은 진짜 작정하고 울리려고 만든 게임이라, 일반인들한테도 인기가 많았어. 특히 2부 부터는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걸?”
“정말 그 정도야?”
“빌려줄테니까, 한번 해볼래?”
“아냐, 내 동생도 무슨 신주 단지 모셔놓듯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해볼 수 있으니까 괜찮아.”
나카무라와 마유미의 반응에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펜타곤 소프트라는 곳이 굉장히 유명한 곳이었구나. 그런데 왜 그런 곳에서 나에게 아이돌이 되어 달라는 말을 했던 것일까?’
강준혁이라는 사람.
인상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던데, 더구나 정말 유키 언니의 남편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 인 것 같고...
그 날 오후.
첫 강의를 마치고 학생 식당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학생들이 식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식권을 끊고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칸나~ 여기야~!!”
“아, 마유미.”
나카무라와 식사중이었던 그녀는 손수 의자를 빼주며 나에게 권했다.
이미 식사를 마친 나카무라는 테이블에 앉아 이어폰을 꽂은 채 라온에 열중하고 있었다.
“또 시작 됐다. 또 시작됐어.”
마유미는 손수 싸온 도시락 반찬을 삼키며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게임기를 두드리던 나카무라는 잠시 후. 비명을 내지르며 테이블에 엎드렸다.
“으어어... 젠장 맞을 고지를 앞에 두고, 187콤보에서 무릎을 꿇다니.”
너무나 억울해하는 나카무라의 모습에 괜히 궁금해진 나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아침부터 무슨 게임을 하는 거야?”
“음.. 글쎄.. 리듬 게임이라고 해야하나?”
“리듬 게임?”
“아침에 말한 펜타곤에서 이번에 새로 나오는 신작 게임인데, 이게 진짜 한번 해보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니까?”
“그 정도야?”
그러자 나카무라는 자신의 손에 들린 라온을 나한테 내밀며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다면 직접 한 번 플레이 해볼래?”
“한 번... 해봐도 돼?”
“물론이지. 자~ 내가 알려줄게.”
나카무라는 자리를 옮겨 내 옆자리에 앉은 뒤 비교적 쉬운 곡이라며 내 손에 라온을 들려 주었다. 처음 손에 쥐어보는 라온은 왠지 부드럽게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가볍네?”
“그치? 자~ 그럼 여기서 A버튼을 누르고, 데모 플레이를 선택 하면...”
생각보다 간단한 조작 법에 나는 나카무라군이 알려주는 대로 고개를 끄덕인 뒤 이어폰을 꽂았다.
‘화면 위에서 내려오는 리듬 바를 하단의 타이밍 노트에 맞춰 버튼을 누른다고 했지...?’
잠시 후. 나는 상단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붉은 색 리듬 바를 주시하며 버튼을 누르자, 맑고 청량한 피아노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춰 화면 안에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 소녀의 뒷모습이 잠깐 스쳐보였다.
“아...”
작게 탄성을 내지르며 이어서 내려오는 리듬 바에 맞춰 또다른 버튼을 누르자, 베이스 음악 토대로 하나의 피아노 연주곡이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 치곤 제법인데?”
옆에서 들려온 나카무라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올 정도로 음악에 집중한 나는 이어서 내려오는 리듬 바를 타이밍 좋네 쳐내며 음악을 이어 나갔다.
연속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타이밍에 맟춰 내 손가락이 춤을 추 듯 움직이자, 이어폰 넘어로 나카무라군의 탄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지금 화면에 스쳐지나는 소녀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그녀의 모습은 다시 이전 장면으로 돌아가기에 히로인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기 위해선 기계처럼 정밀한 타이밍으로 퍼팩트 콤보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지만, 음악이 중반부로 흐르자 상단에 수많은 리듬바가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내려와 타이밍을 맞추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칸나~!!”
어느새 마유미까지 내 곁에 붙어 응원해 주었지만, 결국 65콤보에서 내 플레이는 무너지고 말았다.
한 번 타이밍이 어긋나기 시작하자, 회상 게이지라는 막대 그래프가 순식간에 밑으로 떨어지더니 게임 종료를 알린 것이다.
“이야... 그래도 처음 플레이에 65콤보라니, 대단한데?”
이어폰을 빼내자, 나카무라군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라온을 넘겨 받았다.
“그러게 정말 처음 해본 거 맞아?”
“응.. 근데 뭔가 신선했어. 내가 알던 게임은 슈퍼 마리지처럼 적을 물리치는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건 뭔가 좀 특별하달까?”
“그렇지? 이게 바로 내가 펜타곤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지. 뭔가 새로운 게임이 발매 될 때마다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주거든~”
딱 한번 플레이해 보았지만, 나카무라군이 저렇게까지 극찬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때 칸나 재밌었어?”
마유미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솔직한 감상을 내 놓았다.
“뭔가... 슬펐어.”
“으잉? 슬프다고?”
“응... 뭐랄까 연주곡이 굉장히 아련하게 다가와서 플레이 하는 내내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쓰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달까? 마치 피아노 솔리스트 연주를 하고 난 느낌이 들어...”
“빙고~ 아주 정확한데? 실제로 PC 통신 커뮤니티에도 애절하다고 감상평이 자주 올라오거든.”
이후에 들은 나카무라의 설명으로는 ‘신의 선물’ 이라는 제목의 이 게임은 다음 달인 12월 24일 정식버전이 발매 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내가 플레이한 것은 본편에서 플레이 가능한 연주곡 중에 4곡이 담겨 있는 플레이 데모 버전이었고, 이 체험판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는 팜플렛에 그려진 히로인 뒷모습 말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카무라 군이 풀 콤보 등급으로 클리어한 캐릭터는 생기발랄 해보이는 금발 머리의 캐릭터 유키노조 카오리와 귀여운 외모의 챌리스트 오오타니 하루카라는 캐릭터였다.
모든 리듬바를 풀콤보로 클리어 하고 나면 특전으로 언제든지 히로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나
?
“이제 나머지 두 명의 얼굴을 보기 위해 데모 플레이 시간만 62시간을 플레이 중이지... 그중에 특히 주인공의 레슨 선생 역할로 나온 ‘사츠키 노리코’ 는 내가 알기론 아직까지 클리어한 사람이 없다더라...”
“헉~ 그 정도야?”
마유미는 나카무라군의 설명에 호기심이 동했는지, 최고 난이도라 불리우는 사츠키 노리코 테마를 시켜달라고 졸라댔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는 격정적인 도입 연주와 함께 쏟아져 내리는 리듬 바를 명하니 바라보며 깨달게 되었다.
“왜 내가 매일 같이 버튼을 두드리고 있는지 이제 이해가 좀 가냐?”
“그럼 여태 등교할 때마다 라온으로 이걸 치고 있었던 거야?”
마유미의 물음에 나카무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테이블 위해 올려져 있는 라온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나카무라군에게 물었다.
“이 라온이라는 게임기. 얼마 정도면 살 수 있는 거야?”
“칸나, 너 지금 이 걸 사려는 거야?”
“응. 가능하면 신의 선물이라는 게임도 같이...”
나의 대답에 나카무라는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으하하하~ 좋아. 칸나 다음 달 12월 24일에 나와 함께 성지로 가자꾸나~!!”
“성지...? 거기가 어딘데?”
“어디긴 어디야. 전 일본 오타쿠들의 성지라면 아키하바라 밖에 더 있겠냐~!!”
< EP. 36 : 싱어송라이터.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