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92화 (192/252)

< EP. 36 : 싱어송라이터. (2) >

“아, 당신은 설마!?”

“아하하... 오해 하지 마세요. 단지 배가 고파서 찾아 왔을 뿐입니다.”

“어서오십쇼~ 손님. 어이 칸나 뭐하고 있는 거야? 손님이 오셨으면 어서 자리에 모셔야지.”

요리사 복장을 하고 있는 덩치 큰 남자의 목소리에 퍼뜩 놀란 그녀는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한창 바쁠 시간에 넋 놓고 있으면 안된다.”

“죄송해요. 아빠.”

허억!! 아빠!? 주방에 서있는 골리앗을 닮은 저 남자가 그녀의 아빠라고?

하지만 바쁘다는 그의 말처럼 좁은 가게 안은 손님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주방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뜨거운 육수의 증기가 가게 안을 가득 메우고 있어 꼭 한증막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잠시 후. 물수건과 함께 차가운 물을 가져다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나는 허기짐에 일단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뭘로 하시겠습니까. 손님~”

경쾌한 주방장의 목소리에 나는 돈코츠(돼지뼈) 라멘과 교자. 그리고 하이볼이라는 가벼운 주류를 주문했다.

종업원인 칸나씨와 주방 인원까지 도합 4명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라멘집은 마치 달리는 증기기관차에 석탄을 집어 넣듯 힘차게 메뉴를 외치며 각자 조리에 들어갔다.

지글거리는 기름 튀는 소리와 사람들의 수다...

이곳은 하루를 마감하는 직장인들의 휴식 공간과도 같은 곳이었다.

“주문하신 돈코츠 라멘과 하이볼 나왔습니다~ 교자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멘의 면발을 휘적 거리다 후루룩 면발을 집어 삼킨 나는 입안 가득 진하게 느껴지는 육수의 맛에 빙긋 미소가 그려졌다.

“와아. 이 라멘 진짜 맛있는데요?”

“감사합니다~ 저희 가게는 처음이신가요?”

“네. 저는 록폰기쪽에 살고 있거든요. 일본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하라주쿠는 자주 오질 않아서...”

“잘 오셨습니다. 사실 저희 가게가 하라주쿠에서 꽤나 유명한 라멘집이거든요.”

“아, 그래요? 어쩐지 라멘 맛이 아주 좋네요.”

“손님. 혹시 ‘오늘은 어디가요? 오나카 스이타상’이란 프로그램 알고 계시나요?”

음? 오나카 스이타 상이라면 유키가 제작년에 맡았던 심야 먹방 드라마?

“아... 네. 알고 있어요. 설마?”

“으하하~ 맞습니다. 실은 저희 가게가 거기 5화에 소개 됐었거든요. 그 이후로 점점 손님이 늘어나더니, 지금도 이렇게 많이들 찾아와 주시고 있죠. 역 앞 상점가도 아니고, 이런 외진 골목의 라멘집까지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 덕에 바쁘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습니다.”

어쩐지 가게 안이 좀 낯이 익다 싶더라니...

시원한 얼음이 들어있는 하이볼을 삼키며 천천히 가게안을 둘러보니, 과연 가게 안에 드라마 주인공과 주인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 이곳저곳에 걸려 있었다.

그러던 중 모퉁이에 걸려 있던 사진 한 장을 바라본 나는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주인장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아는 분인가요?”

“여기 사진 속에 있는 여자... 드라마 작가죠?”

“어? 맞아요. 손님이 어떻게 그걸?”

그때 카운터 쪽에서 계산을 마치고 돌아오던 칸나씨가 입을 열었다.

“저 분 방송 관계자시거든요.”

“허억!! 정말이십니까?”

“네...? 아니 저는...”

으잉... 이거 어째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네?

&

결국 서비스랍시고 교자에 카라아게(닭튀김) 까지 얹어주신 덕에 속이 더부룩해진 나는 식사를 마치고 입가심 겸 하이볼을 한잔 더 주문하였다.

“식사는 입에 맞으셨습니까?”

“아, 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하~ 설마 유키씨의 남편 분이실 줄이야. 깜짝 놀랐네요. 그런데 하라주쿠엔 어쩐 일로 오셨나요? 뭔가 다른 취재거리라도 있는건가요?”

“실은 다케시타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을 좀 보러왔습니다.”

“아~ 그 인디 밴드인가 뭐시긴가 하는 젊은이들 말이군요. 어휴~ 그거라면 전 별로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군요. 안 그래도 요즘 그것 때문에 정신 사나워 죽을 지경입니다. 초저녁부터 별 노래 같지도 않는 노래나 불러 싸대며 꽥꽥 거리는데, 처음에는 그런데로 참아줄만 하더니, 요새는 아주 도를 넘어서는 것 같더군요. 도쿄 타워를 범하라니 어디서 그런 남사스런 노래를 불러 제끼는지. 그런 녀석들은 저희 하라주쿠의 수치입니다.”

‘이 아저씨... 설마 자기 딸이 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걸 모르는 건가?’

살짝 고개를 돌려 칸나씨를 바라보니,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대충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나는 추가로 나온 하이볼을 한모금 삼킨 뒤 주인장에게 말했다.

“사실 전 방송국 쪽 관계자는 아닙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이곳은 유키씨가 알려 주셨나?”

“아뇨. 이곳에 온건 정말 우연이에요. 단지 ‘누구’를 조금 찾다가 배가 고파서 들어온 가게입니다.”

누구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살짝 눈길을 돌려 칸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행주를 들고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허어~ 그럼 그 분은 찾으셨습니까?”

“네. 다행히 우연에 우연을 겹쳐 찾아냈네요.”

“그거 잘 됐군요.”

주인장의 대답에 나는 빙긋 웃으며 하이볼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계산 부탁드려요. 칸나씨.”

“아, 네.”

테이블을 닦고 있던 그녀는 나의 부름에 서둘러 달려와 계산대 앞에 섰다. 다행히 계산대는 주방쪽과 거리가 좀 있던터라 나는 지갑을 열어 계산과 동시에 어제 전해주지 못한 명함을 꺼내 들었다.

“펜타곤이라는 게임 회사에 다니고 있는 강준혁입니다.”

“게..임 회사요??”

어라? 우리 회사를 모르는 건가?

그래도 게임 쪽에선 꽤나 알아주는 회사인데, 나는 혹시나 싶어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라온이라고 휴대용 게임기를 만든 회사인데, 잘 모르시나요?”

“아~ 친구들이 하는 건 본적이 있긴한데, 제가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음... 하긴 뭐 인터넷 뉴스가 발달한 시대도 아니고,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모를 수도 있지.

나는 그녀의 조그만 손에 돈과 함께 명함을 함께 쥐어 주며 말했다.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기획 중인 게임이 있는데, 그 게임에 칸나씨의 목소리가 꼭 필요합니다. 한 번 잘 생각해보시고 연락주세요.”

그리곤 슬쩍 주인장을 돌아보며 뒤에 말을 덧붙였다.

“아버님에겐 절대 비밀 보장 해드릴 수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

&

“아, 정말요!? 오늘 저녁 먹은 곳이 키시모리 라멘이었어요?”

“그렇다니까. 나도 주인 아저씨한테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

“안 그래도 하라주쿠면 거기 가보라고 알려주려고 했는데, 통했네요?”

하루를 품에 앉은채 방실방실 웃어 보이는 유키는 키시모리 라멘의 국물 맛을 떠올렸는지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잡지를 펼쳐 들었다.

“아~ 나도 키시모리 돈코츠 라멘 먹고 싶다아~”

“그러고 보니 교자도 참 맛있더라.”

“허억!! 교자!! 교자도 먹고 싶다아~”

“그리고 카라아게(닭 튀김)도...”

“아악!! 진짜 얄미워!! 안그래도 꾹 참고 있는데~!!”

“하하~ 미안.”

“그런데, 준혁씨가 찾던 사람이 키시모리 라멘의 칸나씨였다니. 재밌는 우연이네요. 그 아이 제 작년에 봤을 때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어찌나 이쁘던지.”

“그러게. 칸나도 맛있더라...”

“······방금 뭐라고요?”

“내가 방금 뭐라 그랬지?”

슈욱!! 퍼억!!

눈 깜빡 새에 날아온 쿠션 하나를 팔꿈치로 튕겨내자, 음속을 뛰어 넘는 이도류 타입. 쿠션 베게의 흉폭자 유키가 어느새 자신의 맹수를 바닥에 내려 놓은 뒤,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대화 도중에 딴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했던가?

&

1994년의 12월 23일..

칸나씨와 만나고 명함을 건네준 뒤 거의 한 달이 다되어 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녀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회사 전화 번호와 휴대폰 번호까지 적혀 있건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보면 역시 가수 쪽으로는 생각이 없는 건가?

모른척 키시모리 라멘집에 다시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왠지 그녀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았던 나는 그냥 꾹 참기로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패미통신과 인기 게임 잡지사를 통해 공개 오디션을 발표하자, 제법 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들고 있어 오디션만 치루기에도 어느정도 시간이 소요 될 것만 같았다.

‘서두르지 말자. 뜻이 있으면 그녀 스스로 다가오겠지.’

나는 초조해지는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 마시며 아키바의 거리를 둘러 보았다.

최근 일본의 게임시장은 그야말로 혼돈의 어비스라고 할 수 있다.

12월 초에 출시된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으로 콘솔 시장이 양분화 되자, 유저들은 과연 기어 스테이션과 NEGA 새턴 사이에서 어떤 기기가 나은지에 대해 갈팡질팡 망설이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에 처음 뛰어든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은 굉장히 막강한 성능으로 무장했지만, 몇가지 불안 요소가 있었다.

과연 굴지의 대기업인 센소니가 게임 시장의 재패를 위해 얼마만큼의 투자를 할 것인가?

슈퍼 패밀리와 NEGA 드라이브가 한창 잘나가던 90년대 초반에도 새로운 콘솔을 내세운 기업이 있었지만, 서드 파티의 확보가 되지 않아 바람 같이 스러져간 기업이 많았기에 센소니 역시 초기에만 반짝하고 사업을 접어 버릴 확률을 무시할 순 없었다.

이래서 호랑이가 없는 굴엔 토끼가 왕이랬던가?

민텐도의 프로젝트 64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나오지 않자, 콘솔 시장은 신흥기업 센소니와 2인자 NEGA의 경쟁 구도로 묘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물론 NEGA 입장에서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그것을 뛰어 넘을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스펙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여태까지 게임을 만들어온 노하우와 더불어 리얼 파이터의 스즈키 류와 소니크의 타카 유지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NEGA 앞에 의외의 복병이 튀어 나왔으니...

그것은 민텐도를 버리고 센소니 진영으로 붙어 버린 NANCO 였다.

민텐도의 프로젝트 64가 실현 되기 전에 NEGA의 계획은 이 기회를 틈타 민텐도에 속해 있던 서드 파티를 빼내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저들에게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NANCO가 뜬금없이 기어 스테이션 발매일에 맞춰 ‘레이지 레이서’ 와 ‘아이언 피스트’라는 3D 격투 게임을 내놓았다.

안 그래도 최근 아케이드 센터에서 자주 ‘리얼 파이터’와 비교 되었던 ‘아이언 피스트’가 기어 스테이션으로 출시되자, 유저들은 너나 할거 없이 기어 스테이션 쪽으로 몰려 들었다.

소비자가 34,800엔으로 설정된 본체 가격은 경쟁사인 새턴보다 10,000엔이 저렴했기에 유저들은 주저없이 새턴보다 성능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기어 스테이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덕분에 새턴은 발매 초기부터 잡지사들의 혹평과 센소니의 시장 선점 효과로 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지옥과도 같은 시장 구조에서 우리 펜타곤은 천천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입증하듯 펜타곤 프리미엄 샵 앞에는 초저녁부터 수많은 유저들로 붐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고객님들. 그대로 줄을 서고 계시면 순서대로 담요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미야자키씨의 외침과 함께 수많은 직원들이 ‘신의 선물’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담요를 손님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담요 500개지만...

‘이거 어째 분위기를 보아하니, 한참 모자라겠는데...?’

내일은 1994년 12월 24일..

그래픽 노블 with 클래식이란 장르명이 붙여진 ‘신의 선물’의 정식 발매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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