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35 : 바람의 동경.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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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곤과 피닉스 소프트는 어떤 의미로는 일본의 게임 산업에서 서로 라이벌과 같은 존재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카와구치는 파이널 프론티어 1을 제작하고 한창 인기가 오르고 있을 당시 패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를 플레이 해보며 내가 만든 게임에 대해 어떤점이 부족했는지 깨달았다. 차기작에서는 드래곤 워리어를 뛰어 넘는 최고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드래곤 워리어를 바탕으로 파이널 프론티어를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피닉스 소프트를 라이벌로 선포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발언에 대해 일부 드래곤 워리어 매니아들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파이널 프론티어는 실제로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드래곤 워리어와는 다른 독특한 게임성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단지 세상을 파괴하려는 마왕을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악역을 맡고 있는 캐릭터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을 주어 주인공과 대립하는 개연성을 확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에 대한 질문을 플레이어에게 묻는 시네마틱 스토리 기법은 어른들이 즐기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매끄러운 스토리 라인을 보여주었다.
현재 드래곤 워리어와 파이널 프론티어는 시리즈의 누계 판매량은 거의 비등비등한 수준이었기에 반드시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시기에 유우지씨의 발언은 굉장히 신선한 제안이었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메인 디렉터들이 한데 뭉쳐 새로운 RPG게임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발표 만으로도 업계에 광풍을 몰고올 희대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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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CES의 마지막 날인 일반인 관람 2일 차.
이미 모든 발표를 1일차에 쏟아냈기에 민텐도와 NEGA를 비롯한 모든 기업은 어제 내용을 바탕으로 유저들에게 시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전쟁과도 같았던 어제의 컨퍼런스에서 NEGA는 뼈아픈 타격을 입은채 고전 중이었다. 콘솔 기업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차세대 모델을 발매할 NEGA였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시연해 볼만한 게임이 없으니, 유저들 역시 실망이 큰 모양이었다.
반면 센소니 같은 경우는 동시 발매 예정인 3D 격투게임 ‘투신전’으로 인해 어제에 이어 굉장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풀 폴리곤으로 제작 된 투신전의 캐릭터는 가정용 콘솔 치고는 NEGA의 ‘리얼 파이터’에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깔끔한 수준의 그래픽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 직접 플레이해보니 느낌이 또 완전 다르네.”
“그래픽 면에선 확실히 뛰어난 것 같은데, 리얼 파이터에 비해 움직임이 너무 가벼워서 나는 좀 별로...”
“나는 오히려 스피디해서 좋던데? 커맨드 입력도 쉬워서 기술도 잘 나가고, 리얼 파이터는 기술 하나 쓰기도 너무 벅차더라.”
저 말은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새턴 패드로 리얼파이터2에서 ‘붕격운신쌍호장’ 쓰려다가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박혔던 걸 생각하면 리얼 파이터의 기술 커맨드가 쉬운건 아니었지. 갑자기 떠오른 옛 기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펜타곤 부스를 바라보니, 우리 행사장에도 제법 많은 관람객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주시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유키의 3D 모델링.
2D 일러스트와 다르게 3D는 모델링을 한번 정해 놓으면 복장을 추가 하는 게 어렵지가 않았다.
내가 없는 거리의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게임의 클리어 특전으로 보너스모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코스튬’을 선물로 주었는데, 계절 별로 입고 나왔던 의상을 보너스 모드를 통해 그녀에게 입혀 볼 수 있었다.
단지 의상을 바꿀 수 있는게 뭐가 그리 특별하냐고 묻는 다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지만, 미래에는 그 캐릭터 의상을 분기마다 따로 발매하여 본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득을 챙긴 게임 회사도 있었으니까. 오히려 나는 양반이지...
이렇게 단일 컨텐츠를 상품화 하는 전략은 현재에는 잘 없지만, 미래엔 꽤나 돈이 되는 사업이긴 하다.
만약 미유키의 특전 의상으로 크리스마스 기간동안 산타 복장을 100엔에 판다고 친다면?
‘그거 안 사고 베길 사람이 있을까?’
단지 몇키로 바이트도 채 되지 않는 데이터를 구입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100엔을 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수십개로 나뉘어 진다면 어떨까?
욕을 하더라도 살 사람은 사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런 미소녀를 인질로 삼은 게임에서는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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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의 컨퍼런스의 2일차 오후.
슬슬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글로벌 행사에서 유저들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콘솔 부스에 제법 몰려 들었다.
대형 브라운관 TV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통신 기술의 집약체인 핸드폰. 각종 오디오와 냉장고, 세탁기 같은 생활 가전까지 수많은 전자 제품이 전시 되어 있지만, 단지 게임이란 컨텐츠만 바라보고 CES를 찾아오는 게이머들이 제법 많았기에 오늘도 회장은 만원 사례였다.
그리고 가장 사람들로 붐비는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 펜타곤은 유저들 앞에 또 다른 발표회를 예고했다.
“뭐지? 신작 발표는 어제로 끝난거 아니었나?”
“설마 2일차 관람객을 위해 숨겨 놓은 발표가 더 있었던 일지도...”
갑작스러운 신작 발표회에 유저들의 기대치가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멍때리고 있던 센소니와 민텐도의 행사 진영도 펜타곤의 갑작스러운 신작 발표에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펜타곤 부스의 무대 위에 설치된 스포트 라이트가 켜지고,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사람들의 기대에 찬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자니, 살짝 긴장이 되었지만 이제는 이런 자리도 익숙해져서인지 큰 떨림은 없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다시 올라온 이유는 어제 저녁 갑작스럽게 결정된 신작에 대한 소식 때문입니다.”
내 입에서 터져나온 ‘신작’이라는 단어에 사람들은 벌써부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먼저 작품에 대한 소개 하기 전에 여러분들게 한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이 작품은 일찍이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최초이자, 최고의 콜라보레이션이 될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 깊은 작품을 저희 펜타곤의 라온으로 출시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여러분들게 소개 시켜드릴 분은 새로운 RPG 게임의 시나리오를 담달하게 될 피닉스 소프트의 메인 디렉터 호리이 유우지씨입니다.”
그러자 관람객들 중 몇몇이 그의 이름을 듣고 경악했다.
“호리이 유우지가 라온 게임을 만든다고!?”
“드래곤 워리어가 라온으로 플랫폼을 옮기는 건가?”
“설마, 피닉스 소프트랑 민텐도가 어떤 관계인데...”
“신작이랬으니까 드래곤 워리어가 아닌 다른 게임 아닐까?”
라이벌 회사의 메인 디렉터가 참여했다는 소식에 펜타곤 컨퍼런스를 참관 중이던 업계인들도 당혹스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 가장 얼굴이 볼만 한 것은 민텐도 쪽 사원들이었다.
자신들에게 있어 큰 기둥이 되어주는 하나의 축이 무너지는 느낌에 서둘러 보고를 위해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들도 이었다.
이거 참... 진짜 깜짝 놀랄 인물은 아직 소개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쫄아 가지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다시 마이크를 입가에 옮겼다.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로 유명한 유우지 씨는 이번 작품에서 시나리오 부분을 맡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게임에 시스템을 담당하게 될 사람은 파이널 프론티어 시리즈의 메인 디렉터 카와구치씨가 되겠습니다.”
“뭐라고!?”
“말도 안 돼!!”
게임 업계에 있어서 물과 기름이라 여기던 두 회사의 메인 디렉터가 새로운 신작을 위해 손을 잡는다니 관객들에게 있어선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직접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관람객 앞에 보란 듯이 두사람이 손을 잡고 무대 위에 오르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허억!! 진짜네?”
“와~ 실제로 보고 있지만, 실감이 안나네...”
“그런데 메인 디렉터가 둘이면 게임이 잘 만들어지려나?”
“글쎄,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던데...”
몇몇 우려섞인 목소리도 들려왔지만, 대체로 둘의 조합이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지 관람객들은 그들에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나는 잠시 그들의 함성 소리가 멈출때까지 기다린 후에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럼 마지막으로 새로운 게임의 캐릭터 작화를 맡게 될 분을 소개하기 전에 그 분께서 직접 그린 주인공을 먼저 공개하겠습니다. 아마 주인공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누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게 됐는지 바로 감이 오실 듯 합니다만, 그럼 스크린을 봐주세요.”
손을 들어 올리며 스크린을 가리키자, 화면에 칼을 들고 있는 붉은 머릿칼의 남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화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이 쩍하고 벌어지며 비명 섞인 함성이 터져나왔다.
“드.. 드래곤 볼!?”
“토리야마다!!”
“우와아아!!!!!”
현재 일본... 아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라면 단연코 드래곤 볼이었다. 거의 전세계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절대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희대의 베스트 셀러...
마치 그의 작중에 등장하는 초사이어인을 연상케하는 주인공의 캐릭터 디자인에 부스가 흔들릴 정도로 기대 이상의 함성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함성에 응하듯 무대 뒤의 커튼이 열리며 그가 마이크를 들고 걸어나왔다.
“안녕하세요. 드래곤 볼의 원작자. 토리야마입니다.”
“오오오!!”
“토리야마씨가 캐릭터 디자인까지 이건 진짜 완벽한 조합이다.”
여기 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극찬 속에서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야?”
“시나리오, 게임 시스템, 캐릭터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끝판왕들이 모인거라 볼 수 있지.”
“아아... 그렇구나. 하긴 나도 드래곤 볼은 알아.”
단행본을 발매할 때마다 연일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드래곤 볼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으로 유명하다. 정식 유통작만 해도 2천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으니, 해적판까지 포함한다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가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일까?
게임은 몰라도 그의 그림체는 이미 전세계 적으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직 게임에 대해서 제대로 발표 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 세명이 함께 모인 것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한 페이지가 완성된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그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신작의 이름은 ‘크로노스 트리거’ 놀랍게도 유우지씨는 우리와 상담하기 전부터 토리야마씨와 함께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완성 시켜두었던 터라 카와구치씨의 승낙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카와구치씨는 평소 자신이 동경했던 유우지씨와의 합작을 흔쾌히 승낙했고, 토리야마씨 역시 파이널 프론티어에서 원화를 맡고 있는 아마노 씨와 친분이 있던터라 그와의 공동 작업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들 중에 왜 나는 포함이 안 되어있냐고?
분명 그들이 함께 만들어 낸 ‘크로노스 트리거’가 시대의 획을 그은 역사적인 작품이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작품에 굳이 내 이름까지 편승해 올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들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신의 선물과 용자의 무덤의 개발을 거의 끝내고 이제좀 한숨 돌리려는 찰나에 또다시 일에 빠져 살순 없지. 출산을 앞두고 있는 유키를 볼 면목도 안서고 말야...
더구나 최근에 신의 선물을 만들며 머릿속에 떠올린 장르가 하나가 있었으니...
차세대 성능에 맞춰 새로운 육성 시뮬레이션 하나를 계획 중이다.
이번엔 대체 무얼 육성하느냐 묻는 다면...
글쎄... 아이돌이라고 해야하나?
< EP. 35 : 바람의 동경.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