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88화 (188/252)

< EP. 35 : 바람의 동경.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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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노 사우르스를 이용한 ‘컴플리트 라온’의 3D 성능 시연은 결과적으로 유저들에게 엄청난 인상을 각인 시켜주었다.

단순히 움직인다. 움직이지 못한다는 수동적인 사실 관계를 떠나 일단 펜타곤이 만들어낸 차세대 기종이 다른 기업의 콘솔보다 월등히 뛰어날 거라는 인식을 제대로 심어준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 역시 한 가지 꼼수를 부린 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단일 오브젝트하나에 컴플리트 라온의 모든 성능을 몰빵 시켰다는 점이다.  (내가 없는 거리의 보너스 모드에서 보여준 미유키를 표현해낸 미려한 카툰 렌더링 기술도 사실은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 졌다.)

만약 동일한 퀄리티의 공룡을 한 마리 더 출현시켰다면 기기성능의 오버로 프레임 레이트(frame rate)가 현저하게 떨어져 아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버벅 거렸을 게 분명했다.

게임이란 하나의 오브젝트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리 멋지게 표현된 검사가 검을 휘두른다 해도 그걸 맞아줄 적이 없다면 게임이라는 콘텐츠는 성립될 수 없을 테니까.

슈팅게임에서 적이 쏘는 탄막.

대전 격투에서의 상대편.

RPG 게임을 이루는 필드와 전투 시스템.

플레이어 움직임 하나에 정말 무수한 판정과 수식이 교차하는 것이 바로 프로그래밍의 세계이다. 물론 내가 한 성능 퍼포먼스를 두고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국제적인 컨퍼런스에서는 어느 정도 기기 성능을 뻥튀기 시키는 것은 어찌보면 사기에 가까울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차후에 발매될 NEGA의 ‘리얼 파이터’에 비해 굉장히 귀여운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사기란 그런 퀄리티로 발매를 승인 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사기인거지.)

나는 티라노 사우르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대한 부연 설명을 위해 롭을 무대 위로 불러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조금 껄끄러운지 상기된 표정으로 컨퍼런스 자리에 올라온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라온에 들어간 3D 가속 장치의 성능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사실 일반 관람객은 롭이 발표하는 전문적인 설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과거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오직 게이머의 관심은 단 하나.

알았어. 닥치고 사줄 테니, 쩔어 주는 게임이나 내놔라. 였으니까...

파이널 프론티어 6 와 내가 없는 거리의 리메이크 버전. 그리고 드래곤 엠블렘의 새로운 에피소드로 한껏 기세가 오른 라온의 컨퍼런스는 끝으로 조용한 뉴에이지 장르의 피아노 음악과 함께 미국에서는 내년 봄 발매 예정인 ‘신의 선물’을 홍보하며 끝을 맺었다.

이번 CES에도 신의 선물에 등장하는 4명의 희로인의 얼굴은 공개 되지 않았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뒷모습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 신의 선물의 주인공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에 흠뻑 취한 관람객들은 ‘그래픽 노블’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해 한껏 기대를 품으며 큰 박수를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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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긴 갑자기 공룡이 소리를 지르니, 다들 놀라서 뒤집어 졌지..”

“진짜요? 아~ 재밌었겠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날 밤 오후 8시.

국제 박람회의 일반인 관람 1일차가 끝나고, 행사장을 정리하던 중. 나는 일본에 있는 유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롭을 만나고, 그가 만든 3D 가속 장치에 대한 성능을 기반으로 티라노 사우르스와 미유키의 캐릭터 모델링을 재구성하느라, 일주일 동안은 모리타와 하야시.. 그리고 롭이 데려온 디자이너들을 데리고 죽을 둥 살 둥 매달린 결과. 컨퍼런스는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지만, 유키와 마음 편히 제대로 통화한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제 그만 나도 들어가 봐야겠다. 직원들 기다리겠어.”

“그래요. 저도 낮잠 한숨 잘래요. 갑자기 너무 졸립다.”

“원래 임신했을 때는 잠이 많아진다고 하더라.”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

“그냥 저냥 오다가다?”

사실은 이것도 83년도로 넘어오기 전에 들은 거지만...

그때 수화기 너머로 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펜타곤 소프트의 우에노씨에게서 소포가 왔어요.”

“소포...? 작곡가 우에노씨 한테서?”

“네. 쪽지 하나랑 CD가 들어있던데요?”

그 순간 나는 우에노씨가 우리집으로 CD를 보낸 의도를 알아 차렸다.

신의 선물에 들어갈 모든 음악 작업이 끝났다는 뜻이겠지...

파이널 프론티어 6에서 들려준 그의 음악은 비단 오페라씬 뿐만 아니라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의 OST라는 찬사를 얻었다.

“아마 그 CD는 신의 선물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일거야.”

“OST라구요? 어디 한번 들어 봐야지.”

수화기 너머로 CD를 꺼내는 듯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뒤.

잠시 후. 거실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와... 우에노씨의 음악 굉장히 좋은데요?”

첫곡부터 그의 음악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처음 들어보는 음악임에도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을 쫓았다.

나는 잠시 눈을 감은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 들으니까 보고싶다.”

“나두요.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요.”

“응. 내일이 행사 종료니까 끝나는대로 바로 넘어 갈게.”

그렇게 유키와 통화를 마치려던 순간. 행사 정리가 끝났는지 미야자키가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부장님. 대표님이 찾으시는데요?”

“네. 바로 갈게요.”

“알겠습니다. 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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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와 통화를 마치고 미야자키가 알려준 대기실로 향하니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나를 반겼다.

“토리야마씨?”

그동안 작가로서의 관록이 붙어서일까? 7~8년 전 피닉스 소프트에서 봤을 때보다 풍겨오는 위감감 자체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한눈에 나를 기억했는지 반가운 미소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준혁씨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아, 네. 선생님도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그때 토리야마씨의 옆에 있던 유우지씨 역시 나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왔다.

“어라? 유우지씨까지? CES에는 웬일이세요?”

더구나 펜타곤의 스탭실인 이곳에 피닉스 소프트의 간판 디렉터와 만화계의 거장 토리야마씨가 함께 찾아오다니, 굉장히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유우지씨 같은 경우는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로 인해 민텐도와 연이 깊은 사람이었던 터라 그의 방문은 더욱 의외로 느껴질 수밖에...

“이번 컨퍼런스에서 펜타곤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차세대 기종을 발표한다고 하여 관람차 방문하였습니다. 과연 일본을 대표하는 콘솔 기업들이라 그런지 무엇하나 놓칠게 없던 발표회더군요.”

유우지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 손을 흔들며 뒤에 말을 덧 붙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센소니와 펜타곤의 컨퍼런스가 굉장히 인상에 남더군요. 또한 가장 기대되는 차세대 기종이었습니다.”

거대한 공룡을 이용한 성능 퍼포먼스와 더불어 가장 현실적인 성능을 보여준 센소니와 펜타곤의 컨퍼런스는 이번 CES에 출시한 수많은 가전기기 중 최고의 이벤트 부스로 손 꼽히고 있었으니 유우지씨의 말도 그냥하는 인사치례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민텐도가 보여준 프로젝트 64의 풀 폴리곤 슈퍼 마리지 역시 반응이 굉장했지만, 확실히 언제쯤 차세대기기를 발매한다는 것인지 추가적인 설명이 없어. 유저들의 아쉬움을 자아내었다.

“그런데, 저희 펜타곤 스탭실에는 무슨 일로...?”

나의 직설적인 물음에 유우지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오래 전부터 펜타곤 소프트가 만들어낸 라온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드래곤 엠블렘이라던가 내가 없는 거리는 저 역시 상당히 감명깊게 플레이한 기억이 있거든요. 조금 취향을 타긴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에서 느꼈던 특유의 오싹한 느낌은 저 역시도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으니까요.”

나는 구구절절 펜타곤에 대해 좋은 말만 해주는 유우지씨를 잠시 바라보았다.

해외 수출로 만화 시장에 전례가 없던 대흥행을 일으킨 만화계의 거장 토리야마 아키라와 일본 내수에서는 이미 따라올 상대가 없는 국민 RPG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의 메인 디렉터. 호리이 유우지.

그리고 드래곤 워리어와 더불어 정통 일본식 RPG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우는 파이널 프론티어의 메인 티렉터 카와구치 노부히로...

딱 이 셋만 봐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임이 하나 있기는 한데...

잠시 세명을 둘러보며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유우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토리야마씨를 데리고 이곳을 찾은 이유는 카와구치씨와 준혁씨에게 한가지 제안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어라...? 잠깐. 나까지 포함시키려고? 이 프로젝트는 원래 당신들 셋이 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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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워리어 시리즈.

국민 RPG라고 까지 불리우는 이 작품은 일본 내에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전 연령층이 함께 즐기는 최고의 게임 중에 하나이다.

가장 최근에 발매된 다섯 번째 시리즈까지 전 시리즈가 연속으로 대히트를 거두며 누계 판매량만 해도 1000만장을 눈앞에 두고 있어, 일본 게임 업계의 자존심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수 시장과는 다르게 해외 시장에서 드래곤 워리어의 반응은 굉장히 차가웠다.

해외 유저들은 그저 한편의 동화책 같은 이 게임을 어느 포인트에서 재미를 찾아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였다.

드래곤 워리어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1인칭 전투 시스템의 이팩트는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 초라해 보였고, 마왕과 싸우기 위해 떠나는 용사의 모험은 너무나 유치하게만 느껴졌다.

또한 엎친데 덥친 격으로 피닉스 소프트는 간판 게임인 드래곤 워리어 말고는 이렇다 할 히트작이 별로 없었는데, 드래곤 워리어를 출시한 해와 그렇지 않은 해를 비교했을 경우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극과 극을 달렸다.

물론 그 안에 나온 드래곤 워리어의 파생작인 ‘토루네코의 대모험’은 어느정도 인기를 끌긴했지만,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 하나로 점점 덩치가 불어나는 회사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해외 시장에서 발매 족족히 흥행을 거두고 있는 파이널 프론티어와 드래곤 엠블렘 시리즈를 보유한 펜타곤은 유우지씨의 눈에 보기엔 참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과연 내가 만든 드래곤 워리어와 저들이 만드는 게임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대체 어떤 요소로 유저들의 마음을 휘어 잡는 것일까?

이대로 두었다간 언젠가 국민 RPG라는 타이틀 마저 펜타곤에 넘겨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온갖 불안한 감정이 그를 괴롭히고 있을게 뻔히 보였다.

아마 그는 선택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대로 우물안 개구리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전례 없는 최고의 이슈 거리를 만들어 현 게임 업계에 돌풍을 일으키던가...

그리고 지금. 피닉스 소프트의 메인 디렉터. 호리이 유우지는 주저 없이 후자를 택했다.

“카와구치씨. 그리고 준혁씨. 저는 여러분과 라온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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