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34 : 티라노 사우르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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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프론티어 6의 오페라는 스토리 도중에 등장하는 이벤트 중의 하나로 세리스라는 제국의 여기사가 배우로 분장해 무대에서 열연하는 씬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미디 음원으로 만들어졌을 이벤트였지만, 나는 라온의 성능과 그동안의 노하우를 이용해 실제 뮤지컬 배우의 목소리를 게임 속에 입히는데 성공했다.
잠시 후. 스크린 속에 펼쳐진 밤하늘 아래. 고운 드레스 차림으로 나온 그녀의 머리 위로 간단한 스토리 나레이션이 흐르고...
-적군에 침공 당해 적군의 왕자에게 결혼을 강요당하는 여주인공은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연인을 그리워하는데...-
사랑스런 당신은~
머나먼 곳에~
빛바래지 않는 영원한 사랑,
맹세한지 얼마 안됐는데~
슬플 때에도,
괴로울 때에도...
밤하늘에 빛나는 저 별을,
당신이라 여기고~
원치 않는 언약을,
해야만 하나요?
난 어떡하죠. 당신?
대답해줘요...
간주. (이 부분에서 플레이어는 실제로 캐릭터를 움직여 사랑하는 연인의 환영과 함께 춤을 추고, 남자는 꽃다발을 남긴 채 사라진다.)
고마워요.
나의 사랑하는 이여~
한번이라도 이 마음
흔들렸던 나에게...
조용하고 다정하게,
대답해주어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다릴게요.
피날레로 꽃다발을 밤하늘에 던지는 장면에서 펜타곤 부스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우... 우리가 지금 뭘 본거지?”
“뭔가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는 느낌이야..”
파이널 프론티어는 여섯 번째 시리즈를 거듭하며 현세대 2D 그래픽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대는 폴리곤을 이용한 3D 게임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라 그런지 섬세한 감정 표현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 역시 좋다. 3D 그래픽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게임은 2D지...”
“지난 5때도 상당히 그래픽이 좋았다 생각했는데, 6는 진짜 장난 아닌데?”
2D RPG에서 보여준 모든 요소의 집약체라 볼 수 있는 6는 캐릭터마다 고유의 특기를 붙인 덕에 색다른 전투를 즐길 수 있었다.
가령 현재 화면에 나오는 ‘매슈’라는 캐릭터처럼 말이지...
“헉!! 커맨드 입력 방식으로 특기를 사용한다고?”
스트리트 파이어2에 나오는 파동권 커맨드를 입력하자, 적을 향해 장풍을 쏘는 매슈는 어릴 적 나 역시 굉장히 좋아하던 캐릭터였다.
특히나 파이널 프론티어 6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하나의 사연을 안고 있었는데, 그렇게 등장하는 캐릭터만 해도 총 12명에 달하기에 유저에게 들려주는 방대한 스토리는 플레이타임만 20시간을 훌쩍 넘기는 초호화 컨텐츠로 무장해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까?
파이널 프론티어의 홀수 시리즈는 새로운 시스템에 중점을 두고 짝수 시리즈는 그 시스템을 바탕으로 스토리에 중점을 둔다고 했던 루머가 돌던 것이?
세리스의 오페라 씬은 민텐도와 센소니의 컨퍼런스로 한껏 달아오른 유저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고, 파이널 프론티어의 홍보영상이 끝나자 관람객은 차분한 박수로 응원해 주었다.
“여기서 펜타곤 소프트의 대표이자 이번 파이널 프론티어 6의 개발을 총 담당한 Mr. 카와구치를 무대에 모시겠습니다.”
“와아아아~!!”
유저의 성원에 쑥쓰러운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카와구치씨는 다행이 아까보다는 많이 안정된 표정이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카와구치 히로노부입니다.”
카와구치씨는 행사장에 모여든 유저들에게 허리 숙여 정중히 인사를 올린 뒤 마이크를 손에 들었다.
“사실은 이렇게 큰 무대에 오르는게 처음이라 그런지, 굉장히 떨리네요. 이렇게 세계적인 무대에서 제가 만든 파이널 프론티어 6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카와구치씨가 인사를 마치자, 나는 관람객들을 바라보며 현재 CES의 컨퍼런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다.
“민텐도의 프로젝트 64와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에서 보여주었듯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강렬한 임팩트를 전해주는 3D 게임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NEGA와 센소니가 연말에 새로운 신기종을 출시할 거라 발표하였고, 현재 게임 산업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민텐도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게 폴리곤 기술을 이용한 3D 게임에 초점을 두고 있지요. 하지만 조금은 생각을 달리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멘트에 회장에 모인 관람객의 고개가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이 보기엔 폴리곤으로 표현된 캐릭터들 자체가 더 이상 화려해 질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훌륭하게 인체를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술이란 것이 발전하고 발전 할수록 이 이상의 그래픽은 보기 힘들 것 같다고 확신하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게임 그래픽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해 나가기 시작할 테니까.
그 만큼 사람의 눈은 간사하기가 그지없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음 관람객들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폴리곤 기술은 이제 막 새롭게 태어난 신기술입니다. 물론 이전부터 영화 산업에서 일명 CG라 불리 우는 컴퓨터 그래픽이 활성화 되었지만, 그 기술을 게임에 적용한 것은 이번 세대가 처음이니까요. 하지만, 그에 반해 2D 그래픽 기술은 지난 10년 동안 어마 어마한 발전을 해왔습니다.”
그러자 어느 정도 내가 말하려는 의도를 눈치 챈 관람객 몇몇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파이널 프론티어 6는 여러분이 눈으로 확인 하셨다시피 어두운 세기말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세계관을 훌륭하게 완성하였습니다. 그런 파이널 프론티어의 개발 상황을 지켜보던 어느 날..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궁금해 미칠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관람객들의 표정을 즐기듯 나는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뒤에 말을 이었다.
“2D일러스트와 3D 폴리곤... 이 둘을 합치면 어떻게 될까?”
“어...?”
“음!? 저 사람이 지금 뭐라는 거지?”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폴리곤과 일러스트. 얼핏 들어도 전혀 매치가 안 되는 극과 극의 성향을 띄고 있는 이 둘을 합친다니, 이제 막 리얼 파이터를 보아온 현 시대의 게이머들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묘한 조합이었다.
“제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확 와 닿지 않으신 모양이네요. 하지만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국에선 잘 모르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동양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즉 ‘100번 듣는 것보다 차라리 한번 보는 게 낫다.’라는 뜻입니다. 어떤가요?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정확하죠?”
유저들의 반응을 살피며 대기실 쪽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어느새 우치무라 대신 롭과 모리타가 동시에 ok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메시지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나는 카와구치 씨와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뒤에 말을 이어 붙였다.
“그럼 천천히 감상해 주시길. 이것이 바로 저희 펜타곤에서 준비한 새로운 폴리곤 기술입니다...”
-You're not here with me anymore. but I always have you in my heart.-
(비록 이제는 내 곁에 없지만, 저는 아직도 당신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이 대사는...”
“oh... my... god... The street I have left...?” (말도 안 돼. 내가 없는 거리라고!?)
“저건 안 돼. 그만 둬...”
“또 내 눈에서 얼마나 눈물을 뽑아내려고!!”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를 향해 내뻗는 가녀린 손가락...
그리고 차가운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
1990년 최고의 명작이라 불리었던 ‘내가 없는 거리’ 의 오프닝 영상에 펜타곤 부스 앞에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 버렸다.
넋이 나간 그들의 표정에 미소 짓던 나는 살짝 마이크로 입가를 가린 채로 입을 열었다.
“펜타곤에서 새롭게 준비한 거치형 콘솔 프로젝트 ‘컴플리트 라온’의 사양으로 제작된 태그 데모를 소개합니다.”
내가 없는 거리의 영문 제목인 The street I have left가 화려한 필기체로 화면에 그려지고, 잠시 후. 이어서 떠오른 다음 문구에 사람들 입에서 또다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우오오오!!”
-The full voice.-
단지 이 문장 하나로 CES의 관람객들에게 폭발적인 찬사를 얻을 수 있었다.
“푸.. 풀 보이스 라니!!”
“그럼 히로인들의 대사를 전부 실제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아직도 당신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라는 한 줄의 대사에서 전해졌던 그 아련함을 내가 없는 거리를 플레이해보았던 유저들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잠시 후에 나타난 히로인 미유키의 모습이 사람들을 또 한 번 경악 시켰다.
조금은 어색해 보여도 플레이어를 향해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 3D로 만들어진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분명 3D 캐릭터인데, 뭔가 2D 일러스트를 보는 느낌이야...”
“아까 본 리얼 파이터랑 투신전 보다 이쪽이 훨씬 보기 좋은데?”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나는 무대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이것은 컴플리트 라온으로 발매되는 내가 없는 거리에서 사용하는 보너스 모드 중에 하나입니다. 새로이 리메이크된 ‘내가 없는 거리’는 모든 히로인의 대사에 음성 데이터를 집어 넣을예정입니다.”
“허억... 정말로 풀 보이스란 말인가?”
“그리고 다시 한 번 ‘내가 없는 거리’를 즐겨주신 여러분께... 게임의 클리어 이후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모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드에선 저희 펜타곤이 최초로 개발한 2D와 3D의 융합을 보여주는 카툰 렌더링 방식과 360도 카메라 앵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오... 일종의 팬서비스 모드인가?”
“풀 보이스 기능 하나 만으로도 난 이미 쌀.. 아니 살 거야..”
화면 가득 보이는 풀 폴리곤으로 표현된 미유키의 모습에 관람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어 붙였다.
“보너스 요소 말고, 기본 스토리에 들어가는 캐릭터 일러스트와 이벤트 씬 역시 원작의 모리타씨가 새로운 플렛폼에 맞게 리메이크 하고 있으니까 모쪼록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바로 이어서 다음 발표작을 소개 하겠습니다.”
슝... 슝슝슝슝~!!! 카아앙!!!
하늘에서 떨어지는 부러진 검이 바닥에 박히는 영상이 흘러나오자. 컨퍼런스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황당함이 묻어난 비음이 새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구도는 펜타곤 소프트의 게임을 즐겨본 유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장면이었으니까...
나는 홍보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와중에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붙였다.
“참으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래곤 엠블렘 2의 두 번째 에피소드.”
“어...!? 어어어!?”
“서.. 설마!?”
“용자의 무덤을 소개 합니다.”
키이이잉~!!
이제는 드래곤 엠블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검격 음이 울리고, 새하얀 스크린에 익숙한 타이틀 문구가 떠올랐다.
“우와아아아!!!!”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뭐야, 뭐야!? 진짜 드래곤 엠블렘이냐!!”
갑작스러운 드래곤 엠블렘의 후속작 발표에 오페라 이벤트와 내가 없는 거리로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회장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치솟아 올랐다.
< EP. 34 : 티라노 사우르스.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