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83화 (183/252)

< EP. 33 :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 (4) >

“399달러입니다.”

“······.”

그와 동시에 회장안의 분위기가 굉장히 미묘해졌다.

엔화로 따지면 44800엔. 아이들이 즐기는 가정용 콘솔치고는 상당히 비싼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NEGA 새턴은 기획초기만 해도 이렇게까지 비싼 콘솔은 아니었다.

새턴의 모태라 할 수 있는 NEGA CD의 참패 원인이 비싼 가격과 로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 개발자들은 극한의 2D 기능을 표현할 수 있는 스프라이트 머신을 비교적 적당한 가격 선에 만들어 냈다.

하지만, 불행히도 폴리곤을 이용해 3D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준 ‘리얼 파이터’의 인기 덕분에 게임 산업에 판도가 바뀌어버렸다.

리얼 파이터를 즐겨본 게이머들은 정식 발표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리얼 파이터’가 새턴으로 이식 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갈수록 부풀어 오르는 유저들의 기대치에 야마나카 사장은 새턴의 출시를 1년여 남겨두고 기술 개발자들을 불러 모아 과제 하나를 내려주는데, 그것은 바로 ‘새턴에서 리얼 파이터를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라.’ 였다.

이것은 차라리 ‘기계를 다시 만들어라’ 보다 더 흉악한 명령이었다.

남은 개발 기간은 1년 남짓한 상황..

한정된 자원에서 새로운 칩을 생산해낼 시간이 부족했던 개발자들은 굉장히 단순 무식한 방법으로 새턴의 성능을 끌어 올렸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새턴의 추가된 3D 성능을 보완하기 위해 동일 CPU 두개 때려 박기.

굉장히 심플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이 방식은 새턴의 생산 단가를 뻥튀기 시키며 개발자들에겐 굉장히 난해한 개발 환경을 안겨주었다.

내가 알던 미래에야 듀얼 CPU를 넘어서 쿼드 CPU까지 생산이 되었지만, 그것은 CPU 칩 안에 이미 알고리즘이 포함되어 있으니 상관없었지만, 이 시대의 듀얼 CPU는 말 그대로 CPU가 두 개 붙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NEGA는 새턴 게임을 개발 중인 서드 파티에게 ‘처리할 연산을 각 CPU에 나눠주기만 하면 된다.’ 라고 설명했다.

이게 말이 쉽지.

각각 CPU의 싱크를 맞춰주는 건 웬만큼 개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상급 프로그래머에게도 힘든 과제였다. 한쪽 CPU가 연산을 끝 마쳤어도 다른 한쪽의 연산 작업이 아직 남아 있으면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이 딜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시 최악의 한 수는 주로 최고 경영자의 욕심에서 튀어 나오는 법이지.’

나는 피식 웃음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한편 야마나카 사장은 새턴의 가격 공개와 동시에 싸늘해진 유저들의 반응을 끌어올리기 위해 앞서 선보인 리얼 파이터와 데이토나 3D는 새턴의 런칭과 동시에 발매될 거라고 서둘러 덧붙였다.

그러자 유저들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분명 399달러는 유저들이 예상한 것보다 높은 가격이지만, 리얼 파이터를 가정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확답을 얻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참고 넘어가려는 분위기가 형성 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야마나카 사장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나를 알아본 스즈키씨의 두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그리고 곧장 사장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아마 나에 대해 야마나카 사장에게 언질을 하는 모양인데, 이렇게 많은 유저들 앞에서 나를 무시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어딘가에서 나를 알아본 한 유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나 저 사람 잡지에서 본 적 있어.”

“누군데?”

“펜타곤 소프트 소속 직원인데, 그 전에는 민텐도에서 슈퍼 패밀리를 만들고 펜타곤으로 넘어와서는 라온을 만들었다더라.”

“엄청나네. 그럼 저 사람 콘솔 개발자인거야?”

“콘솔 개발자겸 게임도 만들고 있지. 드래곤 엠블렘의 메인 디렉터에 내가 없는 거리도 저 사람이 만들었다더라.”

역시 이 정도 규모의 행사이다 보니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 두 명 정도는 있구나...

하지만 어딘가에서 들려온 한 유저의 목소리가 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엄청 하드코어한 게임만 만들어서 변태 같이 생겼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하네...?”

... 변태 같이 생긴 건 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

순간 ‘목에 노란 수건을 둘러맨 츄리닝 차림의 아저씨’가 떠올랐지만, 그건 그냥 잊어버리기로 하자..

“흠... 질문이 있으십니까?”

야마나카 사장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지금 보여주신 리얼 파이터의 플레이 화면은 아케이드용입니까? 아니면 실제로 새턴에서 구동한 영상입니까?”

그 순간 야마나카 사장과 스즈키 씨는 미간을 좁히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 보였다.

지금 저들의 시선에 내가 얼마나 얄밉게 비춰지고 있을까?

하지만 나의 질문에 주변에 있던 유저들까지 웅성이기 시작하자, 스즈키씨는 할 수 없이 질문에 응했다.

“현재 보여드린 리얼파이터의 홍보 영상은 아케이드용입니다. 현재 새턴용 리얼파이터는 아직 개발 중입니다. 하지만 완벽 이식을 위해 리얼 파이터를 만든 VM팀 전원이 열심히 작업에 임하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래. 나도 저 말을 믿고 새턴을 샀었지...

하지만, 내가 플레이 해본 새턴용 리얼 파이터는 ‘완벽 이식’ 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멀었다.

풀 폴리곤을 사용하지 못해 배경은 2D 텍스쳐 한 장을 붙여 놓았고, 캐릭터 역시 부족한 3D 성능을 끌어 쓰다 보니 조작 중에 그래픽이 깨지거나 아케이드 버전과는 달리 굉장히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그때 느꼈던 배신감이란...

안 그래도 정가가 자체가 비싼 가격에 책정 되었던 터라 새턴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보따리장수들로부터 약 6~7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형성 되었다.

어떻게든 정을 붙이고 플레이 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아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그로부터 몇 달 후 새턴을 팔고 기어 스테이션으로 교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NEGA의 신작 발표는 기존에 아케이드용으로 발표한 게임들의 대부분을 이식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것에 대해 CES에 참석한 유저들은 다소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차세대 기종이다 보니, 그에 걸 맞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만한 신작이 발표될 거라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게임은 고사하고 기기부터 다시 만들고 있는 시기에 신작 발표는 현재의 NEGA로선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하지만 CES의 컨퍼런스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현재 게임계의 제왕이라는 민텐도의 컨퍼런스가 오후 1시부터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지.

또한 센소니와 합작으로 만들어 지고 있는 소문의 프로젝트의 진상을 알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에 유저들은 식사조차 거르고 민텐도 컨퍼런스에 모여들고 있었다.

“역시 민텐도가 이름값 하나는 끝내주네요.”

행사 준비를 마쳤는지 모리타와 하야시. 그리고 카와구치 대표가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NEGA의 발표회를 놓친 그들에게 간단하게 내가 느낌 소감을 전해주었다.

“NEGA는 준비가 조금 미흡했던 것 같아요. 차세대 기종인 새턴의 실기 영상조차 없었고, 가격 역시 유저들의 예상을 넘어서는 바람에 다소 싱겁게 끝난 느낌입니다.”

내 말을 전해들은 카와구치 대표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되물었다.

“정식 발매까지 약 3개월 정도 남지 않았나요? 그 정도라면 새턴의 홍보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실기를 보여줄 만도 할 텐데, 뭔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까요?”

“글쎄요. 거기까진 저도 모르겠군요. 내부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민텐도에 대한 견제일 수도 있고...”

카와구치 대표는 팔짱을 낀 채로 민텐도 부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가오는 차세대 전쟁에 민텐도는 센소니와 함께 어떤 카드를 꺼낼지가 궁금하군요.”

“일단 간단하게 식사나 하고 올까요?”

나의 의견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

“며칠 째 행사 준비로 핫도그만 먹으니 이것도 물리네요. 밥 먹고 싶다. 밥!!”

겨자소스를 충분히 바른 핫도그를 한입 베어 물은 하야시가 투덜거리며 콜라를 삼켰다. 그러자 곁에 있던 모리타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나는 좋기만 한데?”

“너는 타고난 인스턴트 체질이잖아. 난 며칠 동안 밀가루 음식만 먹었더니, 소화가 안돼서 죽겠다.”

오늘로 미국에 온지도 10일째 슬슬 이런 불만이 나올 법도 하지.

오랫동안 인스턴트로 단련된 우치무라와 모리타를 제외하고는 다들 집에서 해먹는 밥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유키가 해준 음식이 좀 그립긴 하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펜타곤 부스에 핫도그를 사들고 돌아오니, 정장을 차려입은 롭이 나를 반겼다. 덥수룩한 수염 역시 말끔히 정리한 그는 내가 알던 롭과는 이미지가 너무나 달랐다.

“너, 롭 맞지?”

“그래. 인마. 그런데 말이야. 내가 꼭 프리젠테이션까지 해야 되겠냐?”

“네가 만들었으니, 당연히 구조 설명은 네가 해야 하지 않겠어?”

“이런 자리를 나가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무지하게 떨리네...”

“걱정할 거 없어. 그냥 너는 우리가 만든 VRAM 칩에 대해 스펙만 말해주면 돼.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퍼포먼스 영상은 준비 했지?”

롭은 나의 물음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

오후 1시.

띠링~!! 슈퍼 마리지가 코인을 먹을 때 울리는 효과음과 함께 드디어 민텐도 부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민텐도의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미국지사장인 야마시타씨와 시게씨가 함께 무대에 오르자, 부스 주변에 모여든 사람의 함성이 회장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NEGA의 컨퍼런스에 실망한 만큼 민텐도에서 그것을 보상 받으려는 심리가 더욱 크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슈퍼 마리지의 아버지인 쿠마모토 시게루는 유저들의 함성이 잦아들 때까지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야마시타씨의 모습에 나는 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박수를 보내 주었다.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에 찾아오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10년 전 미국에 패밀리를 발매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게임 시장이 커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희 민텐도는 그동안 패밀리에서 슈퍼 패밀리로 한 세대를 거쳐 오며 여러분에게 보다 즐겁고 유쾌한 게임을 전해 드리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야마시타씨는 미리 적어둔 환영 인사말을 건넨 후에 작게 숨을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려 합니다. 바로 저희 민텐도가 만들어낸 새로운 콘솔로 말이죠. 흠... 많은 분들이 16비트 게임 시장의 다음은 32비트 시장이라 예상하곤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것이 틀린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야마시타씨의 연설에 회장 안에 모인 사람들은 점점 그의 언변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그보다 한발 앞서서 생각해야 합니다. 16비트의 다음이 꼭 32비트 일 필요는 없죠.”

야마시타씨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유저들의 입에서 ‘설마.’ 하는 탄성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동안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센소니와의 협력으로 새로운 차세대 기종을 개발하던 중. 저희는 여러분이 원하는 진정한 게임의 매체는 CD가 아니라고 생각 했습니다. 게임은 항상 직관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CD는 터무니없이 느린 매체라는 것을 깨달았죠. 우리는 선택해야만했습니다. 거액의 자본을 들여 센소니와 공동 개발한 프로젝트를 포기하면서 까지 우리는 여러분이 원하는 게임. 그 이상을 만들겠다고...”

“오오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민텐도의 차기 콘솔은 64비트 체제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EP. 33 :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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