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32 : 신의 선물. (3) >
전편에 마지막 부분에서 포스터를 붙일때 유저들의 반응 부분이 약간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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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여름.
유키와 벚꽃이 흩날리던 밤거리를 함께 걸었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여름이라니...
확실히 본격적인 게임 개발에 들어가면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아키바 역 앞에 위치한 타마고 샵은 지난 주에 가게 이름을 펜타곤 프리미엄 샵으로 바꾸었다. 또한 가게 내부의 타마고 몬스터 전용 공간 역시 간소화 하여 유저들끼리 간단히 배틀을 즐기는 공간 말고는 전처럼 휴대용 겜보이를 대여해 주는 서비스가 사라졌다.
일부 유저들은 타마고 몬스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 했지만, 사실 이 이유에는 민텐도 측과 펜타곤의 작은 불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달. 타마고 몬스터 덕분에 그나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민텐도에게서 카트리지의 재생산에 대해 갑자기 턱없이 높은 로열티를 제시하였다.
이유로는 본인들이 제시했던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카와구치 대표는 민텐도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퍼스트 파티의 횡포라 분개했지만, 오히려 나는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
민텐도가 이렇게 나온 이유는 그들 나름대로 훌륭한 대비책을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겠지.
‘포켓 몬스터볼이 벌써 나오려는 건가? 생각보다 빠르네...’
민텐도라는 브랜드를 떠받치는 게임 타이틀 중에는 슈퍼 마리지 시리즈 말고도 카린의 전설이라던가 동킹콤 시리즈 같은 양질의 소프트가 준비 되어 있었다.
이 소프트 들은 거치기인 슈퍼 패밀리뿐만 아니라, 휴대용 겜보이에도 출시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세 종류의 타이틀 모두 한번 클리어 하고나면 2회 차 요소가 부족해 오랫동안 즐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펜타곤 소프트가 만들어낸 타마고 몬스터는 원 소스 멀티 유싱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준 선례가 되었다.
펜타곤은 휴대가 용이한 악세사리용 단말기를 제작하고, 그것을 민텐도가 만든 휴대용 겜보이에 연동시켜 비로소 본격적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타마고 몬스터는 얼핏 보기에 민텐도와 펜타곤가 서로 윈윈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발매 초기에는 민텐도의 겜보이나 타마고 몬스터의 게임 카트리지가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겜보이의 보급량이 늘어나면서 민텐도 보다는 작은 단말기를 위주로 판매하는 펜타곤의 수익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서야 민텐도는 아차 싶었는지 수익 분배를 다시 재조정하려 했지만,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상태였다.
카마우치 사장은 하는 수 없이 휴대용 겜보이 만을 이용해 친구와 데이터 통신을 즐기는 게임을 만들 것을 지시했지만, 시게루씨는 이미 카린의 전설과 동킹콤 시리즈의 제작 만으로 벅찬 시기였기에 민텐도는 새로운 게임의 제작을 세컨드 파티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프리크 소프트’ 라는 IT 기업이었다.
흔히 포켓 몬스터볼은 민텐도가 만들어낸 게임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포켓 몬스터볼은 프리크에서 제작한 게임이었다.
뭐 포켓 몬스터볼의 흥행 덕분에 민텐도의 1등공신이 되어 나중에는 거의 퍼스트 파티에 해당하는 위치에 올라섰지만...
그때 아직 오픈 전인 펜타곤 샵의 스탭 출입문으로 모리타와 함께 본사 직원이 들어왔다.
“부장님 히로인들 포스터랑 등신대 POP 나왔습니다.”
“오~!!”
모리타의 말에 펜타곤 샵을 청소 중이던 직원들이 우르르 카운터로 모여들었다.
펜타곤 샵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곳에 일하기 전부터 펜타곤 소프트의 열렬한 팬임을 자부해 왔기에 새로운 게임이 발매 될 때마다 펜타곤을 사랑하는 순수한 게이머로 돌아가 환호하곤 했다.
면접 때 펜타곤에서 출시하는 게임을 가장 먼저 구입하기 위해 입사했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일본 내에서 펜타곤 소프트의 인기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드래곤 엠블렘 2 에피소드 1편 이후로 이렇다 할 게임 발매가 없어 다들 조금 아쉬워 하던 찰나에 내가 없는 거리의 후속작 발매 소식은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흥겨운 발표였다.
기대에 찬 눈으로 홍보 전단을 바라보는 이들 앞에 POP 물이 담긴 상자를 내려놓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머니에서 커터 칼을 꺼내들었다.
“비켜 봐. 이건 내가 먼저 뜯어 봐야겠어.”
“줄을 서!!”
“내가 없는 거리의 후속작이라니, 슈퍼 패밀리 런칭 때 동시 발매했으니까 햇수로만 벌써 5년이 지났구나. 크으윽...”
직원들은 감격어린 탄성을 쏟아내며 서둘러 등신대 POP물을 꺼내 들었다.
“어디 보자~ 이번 히로인 과연 어떤 모습일까나~ 어라?”
두 손으로 자신의 키만 한 POP 물을 받쳐 든 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POP 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 역시 홍보 전단물을 손에 들고는 묘한 눈으로 다른 전단 물을 살펴보고 있을 뿐이었다.
“부장님.. 설마 이거?”
“응? 아, 히로인들 얼굴은 아직 비공개 사항이거든...”
그랬다. 오늘 도착한 POP들은 전부 히로인들의 뒷태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금발 머리의 포니테일을 하고 있는 아가씨를 첫 번째로, 약간 붉은 기가 감도는 웨이브진 머릿결에서 왠지 모를 성숙함이 느껴지는 여성이 두 번째 캐릭터.
그리고 갈색 단발에 누가 봐도 귀여운 인상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키가 작은 아가씨가 세 번째 였고, 마지막으로 청초한 느낌을 가진 검은 생머리의 여성이 마지막 히로인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뒷짐을 진 채로 자신을 뜻하는 악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금발의 포니테일은 바이올린을 그리고 갈색 단발머리를 한 꼬마 아가씨는 챌로의 목 부분을...
피아노를 전공으로 하는 다른 두 명의 캐릭터는 좌우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아, 뭔가 뒷모습만 보고도 반할 것만 같습니다.”
“젠장!! 본사에 소문이 돌 때부터 오늘만을 기다려 왔는데 뒷모습라니!! 미소녀의 뒷모습이라니!!!”
“신의 선물이라... 제목부터 심장이 싸늘하게 조여지는 느낌이군요.”
“설마 나중에 얼굴 공개 했는데, 울고 있는 모습은 아니겠지?”
순진한 직원들의 미소에 시나리오의 전말을 알고 있는 모리타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혹여 모리타의 표정이 직원들에게 들킬까, 박수로 분위기를 환기 시키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자~ 매장 오픈 시간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다들 청소 서둘러 주시고 홍보물 매장 쇼윈도에 전시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픈 전까지 설치할 홍보물이 제법 많았기에 나는 박스에서 포스터를 꺼내 직접 쇼윈도를 돌자, 모리타 역시 직원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전단지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추 오픈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이미 메인 쇼윈도에 설치한 등신대 포스터를 보고 가게 앞으로 몰려드는 손님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한 편의 좀비 영화가 따로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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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8월 12일.
지난 달 잡지사를 통해 깜짝 발표 후. 전 일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겨우 게임 하나에 이 정도 반응이 올까 싶었지만, 그 만큼 내가 없는 거리의 스토리가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펜타곤 본사에 방송국 기자까지 와서 취재해갈 정도였으니까. 혹시나 미사토씨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기막힌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TV 뉴스에서 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쉬웠달까?
신의 선물의 발매일은 1994년 12월 24일.
아직까지 4개월이나 남았건만, 8월의 무더위를 뚫고 저렇게 광분하는 이유는 한 가지...
바로 10월에 배포 되는 선행 체험판의 다운로드 코드를 오늘 배포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자마자 가게 앞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은 파도와 같이 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질리도록 경험해본 펜타곤 샵의 고참 직원들은 빠르게 손님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체험한 배포 코드 수량은 충분합니다. 일렬로 줄을 서주세요.”
“차례를 지켜주세요. 직원들 통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아비규환으로 배포 코드 전단지를 찾아 해매던 유저들은 수량이 충분하다는 말에 안심이 되는지 그제서야 직원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대기줄에 서 있던 일부 게이머들은 매장 가득 히로인들의 뒷모습만을 보여주는 홍보 방식에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도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 히로인 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게, 엄청 기대했는데. 허무하다.”
“난 괜찮은데? 뭔가 더욱 기대감이 든 달까? 특이 금발의 포니테일은 완전 내 취향이야...”
“포니 테일은 진리지... 분명 엄청 착하고 활동적인 성격일거야.”
“하긴 뒷모습만 봐도 이 캐릭터가 어떤 성격일지 딱하고 감이 오는 것 같아.”
“여자 캐릭터에 한에서는 현재 모리타씨와 견줄 만한 사람은 란그릿사의 요시하라 사토시 밖에 없을 걸?”
“글쎄... 나는 모리타씨가 훨씬 나은 것 같은데?”
“나도 그래. 요시하라씨 일러스트는 확실히 멋지긴 한데,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할까? 그에 반해 모리타씨의 캐릭터는 뭔가 서정적이면서 특유의 호소력이 있지. 그리고 이 사람 이제 남자도 꽤 잘 그리더라...”
“그래. 맞아. 내 말이 딱 그거거든~!!”
타이밍 좋게 내 곁에서 손님들의 말을 엿들은 모리타는 얼굴이 벌개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그런 모리타의 어깨를 툭 치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라이벌을 뛰어 넘은 소감이 어때?”
“라, 라이벌 이라뇨.”
“너 이전에 유저들이 요시하라 사토시랑 비교한다고 내 사무실에 와서 징징 거렸잖아.”
그러자 모리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나에게 말했다.
“부장님.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허... 그럼 그때 난 누구랑 대화한 거냐?”
“그, 글쎄요...”
모리타의 기어 들어가는 대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행사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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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집 근처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웠다.
-딸랑~-
“아, 지금 퇴근 하는 길이세요?”
“······.”
이제 19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알바생은 내가 가게에 들어오자 ‘어서 오세요’ 라는 인사 대신 ‘이제 퇴근하세요?’ 라고 물었다.
그 만큼 퇴근길에 이 편의점을 자주 들린다는 뜻이지...
“네. 오늘도 일하시네요?”
답인사와 함께 아이스크림이 있는 냉장고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학생이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 이미 카운터에 준비해 두었어요. 녹차 맛 아이스크림 한 박스 맞죠?”
역시 한 두 번 들리는 게 아니다보니 제법 죽이 척척 맞는군. 나는 냉장고 쪽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그녀에게로 향했다.
“사모님은 요새도 이것 만 드세요?”
알바생의 질문에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람이 입덧이 심해서요. 하하...”
< EP. 32 : 신의 선물.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