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77화 (177/252)

< EP. 32 : 신의 선물. (2) >

&

편의점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입에 넣고는 마치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맛있다.”

“자정에 바람도 부는데, 아이스크림이라. 그러다 감기 걸리는 거 아냐?”

“그러게요. 하지만 요새 자꾸 달콤하고 쌉싸름한 게 당기는데 어떡해요.”

투정 부리듯 입을 삐죽 내미는 그녀를 향해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그녀 앞에 보이며 중얼 거렸다.

“그래도 농담 삼아 한 말인데, 진짜 10개나 살줄은 몰랐네.”

편의점 냉장고에 들어 있던 마지막 하나까지 알뜰히 챙겨왔으니, 혹시 더 있었다면 진짜 30개 채웠을지도...

“이거 사재기 아냐?”

“음... 너무 욕심 부렸나?”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유키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우리는 천천히 맨션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하얀 가로등 아래로 흩날리던 벚꽃 잎이 그녀의 머릿결 달라붙었지만, 그 것조차 하나의 악세사리처럼 유키와 곧 잘 어울렸다.

“맛있어?”

“응응.”

스푼을 입에 문 채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유키의 표정을 보니 한입만 달란 소리도 못하겠다.

“그런데 준혁씨. 궁금한 게 있는데, 이번 작품의 제목은 대체 어떤 의미에요?”

“신의 선물?”

나의 대답에 유키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스토리를 구상하다가 여주인공의 간절한 기도가 신의 귀에 닿았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간절한 기도라, 로맨틱하네요.”

“신의 선물의 스토리. 언 듯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이야기 같지 않아?”

“음... 사실 조금 그래요. 분명 새로운 느낌인데, 내용 전개가 그렇게 낯설지가 않다고 할까? 혹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 있어요?”

“물론 있지. 그것도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라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

“정말요? 그 작품이 뭔데요?”

나는 유키를 애간장을 태우는 재미에 말을 빙빙 돌리다가 결국 등짝 스매싱을 한 대를 더 맞고 나서야 실토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저 조그만 손바닥이 얼마나 맵게 느껴지는지.

그와중에 그래도 저 손으로 뺨은 안 맞아 봐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어 공주야.”

“인어공주요?”

“그래.”

나는 아직도 따끔거리는 등 한가운데를 긁적이며 그녀 향해 피식 웃어보였다.

“사랑하는 왕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왕자는 인어공주를 몰라주잖아. 그리고 결국엔 이웃나라의 공주와 결혼하지..”

“아... 그럼 이번 이야기에서 선택을 잘못하면...?”

“음. 전혀 엉뚱한 히로인과 이어질 수도 있겠지?”

“아, 진짜 이번에도 너무하네. 음~ 그래도 제가 생각한 시나리오 보다는 임팩트가 덜한데요?”

어느새 아이스크림 한 컵을 싹 비운 그녀는 스쳐가는 길에 놓여진 쓰레기통에게 종이컵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컵을 버리고도 그녀의 오른손엔 여전히 갈색 플라스틱 스푼이 들려있었다.

“어라? 스푼은 왜 안 버려?”

“하나만 더 먹으려구요.”

삭~!! 먹이를 노리는 맹수 마냥 비닐봉지로 뻗어오는 그녀의 손길에 나는 재빨리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는 봉지를 뒤로 빼내었다.

간발의 차로 허공을 가른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라?”

“이제 슬슬 시나리오에 대해 풀어 보시지? 약속대로 아이스크림 먹었잖아.”

“치~ 알았어요.”

그녀는 못내 아쉬운지 플라스틱 스푼을 입에 문 채로 꽤나 그럴듯하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유키로부터 새로운 시나리오에 대해 전해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춘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때요? 나쁘지 않죠?”

이래서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던가?

유키의 아이디어로 인해 자칫 느슨해질 뻔했던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설정이 훨씬 디테일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제법인데?”

“그럼요~ 제가 이래봬도 방송 작가 7년차거든요?”

나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이던 유키는 멍하니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정리 중이던 내 곁에 살금살금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는 봉투에 손을 내민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봉투를 뒤로 빼내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오늘은 그만. 진짜 감기 걸리겠다.”

“치사하다. 모든 걸 말하면 아이스크림 주기로 했잖아요.”

“영화에 나오는 악역들은 모든 정보를 실토하게 만든 뒤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윽...”

“너의 건강을 생각해 주는 나의 고마운 배려라고 생각하렴.”

“하긴, 이제 좀 춥긴 하다.”

결국 내게서 아이스크림을 빼앗는 걸 포기했는지, 그녀는 내 팔을 꼭 끌어안은 채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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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이 끝나자 ‘신의 선물’ 프로젝트는 급속도로 개발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신의 선물’은 기존의 내가 없는 거리처럼 누군가와 인연을 맺기 위해 스케줄을 짜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연애를 하는 시뮬레이션 요소 보다는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마치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듯한 비쥬얼 노블 형식을 띄고 있었다.

덕분에 간단한 분기 선택만 지정해 준다면 책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런 느긋한 시스템을 선택한 이유는 라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기에 전철 이동 간에 편안하게 즐길 만한 게임을 제작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임은 챕터를 시작하기 전에 그 시나리오의 메인이 되는 곡을 연주하며 시작했는데, 독특한 점이 있다면 피아노 연주의 클리어 등급에 따라, 교통사고 직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챕터에서 발생하는 시나리오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하야시는 작곡가 우에노씨와 함께 게임 업계 최초로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에 도전하게 되었다.

물론 기본적인 게임의 골격은 내가 알고 있던 리듬 게임의 형식을 빌려왔다.

게임 화면을 반으로 나누어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도트 블럭이 일정한 타이밍 라인 안에 들어왔을 때 버튼을 입력하면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음을 조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속으로 음을 놓치지 않으면 콤보가 발생 되었는데, 콤보를 연결 하는 스코어에 따라 화면의 오른쪽에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전 기억의 단편들이 한편의 뮤직 비디오처럼 재생되는 형식이었다.

최초의 리듬 게임인 ‘신의 선물’은 바로 이 영상과 클리어 후의 챕터 이벤트를 통해 주인공의 기억을 유추하여 진정한 스토리에 다가가는 진행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음악을 통해 게임의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는 설정에 작곡가 우에노씨는 모든 열정을 쏟아내 작업에 열중했다.

게임의 챕터는 총 6개.

하지만 엔딩 후 2회 차에 돌입하면 새로운 시나리오가 열리며 그에 맞게 새로운 곡을 연주 할 수 있게 된다. 덕분에 우에노씨는 안그래도 빡빡한 제작 기간 속에서 총 12개의 메인 곡과 더불어 기본 BGM까지 작곡해야만 했다.

BGM 같은 경우는 외부에 맡겨도 된다고 했으나, 전체적인 게임의 이미지를 해치고 싶지 않다는 그의 고집에 따라 사운드에 대해선 모두 그에게 맡기기로 했다.

사운드와 함께 시스템 적인 부분을 해결하고 나자, 이제 남은 것은 이 게임의 중요요소라 할 수 있는 캐릭터 일러스트가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언 듯 보기에 음악을 이용한 서정적인 스토리 게임이라 여긴 ‘신의 선물’이 얼마나 지독한 캐릭터 설정의 게임인지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어쩌면 유키는 나보다 더 한 스토리 작가일 수도 있겠는데? 내가 없는 거리에서도 결국엔 나나세의 판매량이 미유키를 앞질렀으니까... 아니 그것보단 유키가 결혼한 게 판매량에 영향을 끼친 건가?’

사회적 현상까지 번졌던 ‘내가 없는 거리’에서 유키가 성우를 맡았던 것은 사이킥 포스의 발표회 행사에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 일어난 프로포즈 사건으로 인해 게이머들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반사 효과는 내가 없는 거리의 판매량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갑자기 중고 시장에 내가 없는 거리의 미유키 시나리오의 카트리지가 넘쳐나기 시작했고, 덕분에 새 상품에서도 판매량이 급격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아직 이 시대의 게이머들은 착한 편이라. 내가 알던 미래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 여주인공의 ‘비처녀’ 논란에 만화책을 불태우거나, 발기발기 찢어 출판사에 보내는 비상식적인 일은 다행이도 없었다.

“일단은 부장님께서 말씀하신 설정대로 4명의 히로인을 그려봤습니다.”

나는 모리타에게서 건네받은 히로인의 설정 자료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금발의 혼혈 캐릭터인 미모의 바이올리니스트. 유키노조 카오리.

활동적이고 생기발랄한 성격인 그녀는 주인공과 어릴 때부터 친구로 주인공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절대 음감의 소유자이다.

두 번째로는 주인공의 피아노 레슨을 담당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사츠키 노리코.

차분한 성격의 그녀는 어른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성숙미로 인해 특정 연령대에선 절대적인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캐릭터 였다.

세 번째로는 주인공의 대학 후배이자, 첼리스트 오오타니 하루카.

연하 캐릭터답게 주인공 앞에선 항상 수줍어 하지만, 첼로 연주만큼은 수준급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녀 역시 사츠키 노리코와는 반대되는 성향의 연령층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공과 카오리와 함께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인 이가와 레이.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 지망인 그녀는 주인공의 빛에 가려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숨은 실력파 중에 하나이다.

주인공 보다 먼저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주인공의 타고난 실력 앞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노력파 캐릭터였다.

조금은 병약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남성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렇게 두 명의 동갑내기와 한명의 연상, 연하.

4인 4색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짜여진 캐릭터 디자인에 나는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오케이. 이대로 가도 좋겠는데?”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모리타는 나의 ok 사인에 한시름 놓았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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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아키하바라의 게임 매장 곳곳에 4명의 히로인의 뒷모습을 담은 포스터가 전시되기 시작했다.

-당신이 기억하는 거리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전작인 ‘내가 없는 거리’의 광고 전단을 기억하는 게이머들은 갑작스레 등장한 새로운 게임 포스터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설마 내가 없는 거리의 후속편인가!?”

“어억!! 이 구도와 홍보 문구에서 유추해보면 후속작 맞는 거 같은데?”

타마고 샵 앞에 나란히 붙여 놓은 네 명의 히로인들의 뒷모습에 아키하바라의 거리를 거닐던 게이머들이 하나씩 걸음을 멈추며 매장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포스터를 살피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나는 여유 있게 커피 한 모금을 삼켰다.

‘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게임을 클리어 하고 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일전에 유키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돌아오던 그 날이 떠올랐다.

그때 유키는 새로운 시나리오로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었다.

‘만약에... 주인공의 사고가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일어난 교통사고였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범인이 네 명의 히로인 중에 한명이라면 준혁씨는 기분이 어떻겠어요?’

< EP. 32 : 신의 선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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