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32 : 신의 선물.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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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펜타곤 소프트의 사운드를 담당하는 우에노 상을 찾았다.
파이널 프론티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까지 거치며 이미 게임 업계 사운드 부분에선 거장이라 평가받고 있는 그는 게임 안에 한편의 오케스트라와도 같은 서정적인 음악을 담아내기로 유명한 작곡가 중에 하나였다.
“어라, 준혁씨 스튜디오에는 웬일이세요?”
딱히 게임을 개발할 때가 아니면 자주 찾는 곳은 아니었기에 우에노씨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새로운 게임을 하나 기획중이긴 한데, 그에 관해 우에노씨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저에게 게임에 대해서 말입니까?”
보통 게임이 만들어질 때 사운드 부분은 게임이 모두 완성 되고 난 후. 기획자와 작곡가가 스토리의 분위기에 따라 함께 상의하여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게임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작곡가인 그를 찾아오는 경우는 매우 드문... 아니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 거리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다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우에노씨는 혹시 뉴에이지 장르의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뉴에이지라면 쿠라모토 유우키씨와 같은 음악 장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아요.”
우에노씨가 말한 쿠라모토 유우키는 뉴에이지 장르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뮤지션 중에 한사람이었다.
Like Louise라던가 Romance를 작곡한 그는 서정적인 음악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사랑받는 뮤지션 중에 한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비브리 스튜디오의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우에노씨의 음악적 취향은 쿠라모토 유우키 쪽인 모양이다.
사실 기획 중인 게임에서 가장 이상적인 뮤지션은 한국의 ‘이루’씨가 최고라 생각했지만...
1993년인 현재. 79년생인 그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뉴에이지 장르는 왜 물으시는 거죠?”
“사실 이번에 기획 중인 게임의 주인공의 직업이 피아니스트거든요.”
“피아니스트 라구요?”
피아니스트라는 주인공의 직업에 작곡가인 우에노씨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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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내가 없는 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이별을 준비하는 이야기였다면, 이번에 기획중인 게임은 그 반대편에 서있는 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은 펜타곤 내부에서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표인 카와구치씨와 작곡가인 우에노씨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진행 되었다.
그렇게 펜타곤을 대표하는 초 인기 컨텐츠이자, 사회적인 이슈란 이슈는 모두 거머쥐었던 ‘내가 없는 거리’의 후속작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개발이 진행 되었다.
나는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는 신작에 대한 중압감을 떨치기 위해 따로 집필실을 두고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펜타곤 소프트의 모든 사운드 부분을 맡고 있는 우에노씨였다.
주인공의 직업이 뮤지션인 만큼 그의 역할이 굉장히 크게 작용 했기에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우에노씨와 함께 보내곤 하였다.
새로운 신작이 제작 되는 공백 기간 동안 팬텀 소프트가 만들어낸 블러디 소울은 유저들과 잡지사의 호평 속에 엄청난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발매 초기에 카마우치 사장이 비웃었던 것과는 반대로 더 이상 라온은 펜타곤 소프트 게임만 출시되는 반쪽짜리 게임기가 아니었다.
라온 플렛폼으로 출시를 원하는 서드 파티가 있다면 언제든 회사에 방문하여 개발킷은 물론 어떠한 기술 지원도 아끼지 않았기에 매월 어마어마한 물량은 아니어도 굉장히 내용이 탄탄한 소프트가 1~2개씩은 꼭 발매가 되었다.
그 중에서 블러디 소울과 더불어 1993년 라온으로 출시된 게임 중에서 유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은 다름 아닌 삼국지 시리즈의 제작사 고에이에서 만든 ‘대해적시대2' 였다.
어린 시절 PC 게임을 즐겨본 유저라면 누구나 기억할만한 초 명작 타이틀인 이 작품은 그저 바다를 항해하며 교역을 하거나 적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해준 어마어마한 타이틀이었다.
실제 역사를 비롯해 경도와 위도를 바탕으로 장대한 스토리를 그려낸 이 게임으로 인해 당시 게임을 플레이하던 학생들은 모두 ‘사회과부도’ 라는 교과서를 꺼내 들었고, 그것을 게임 플레이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돌며, 잠시 동안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중학교 교재인 ‘사회과부도’가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파장은 일본에서도 비슷한 수준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라온 전용으로 발매된 대해적시대2는 친구와 보물 지도를 교환할 수 있는 데이터 교류 기능을 추가해 다른 플렛폼과 차별성을 두었고, 그 아이디어는 휴대기기의 이점으로 작용 되어 판매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초조함을 떨치고 편하게 작업에 열중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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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부장님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게임은 내가 없는 거리의 뒤를 잇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입니까?”
“음... 아니.”
“그러면...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탈을 쓴 피아노 건반 게임입니까?”
“······.”
아무리 그래도 피아노 건반 게임이라니...
리듬 게임이란 장르가 만들어지기 전이라 그럴까? 하야시는 내 설명을 모두 듣고도 게임에 대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지 기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모리타가 시놉시스 자료를 내려놓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감수성이 남다른 모리타의 눈가에는 어느새 촉촉하게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내가 없는 거리에 대한 연결점은 전혀 없지만, 이번에도 역시 스토리가 독특하네요.”
하야시는 모리타의 감상에 혀를 차며 자신의 생각을 보태었다.
“그리고 난 또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네, 이제 겨우 드래곤 엠블렘의 두 번째 에피소드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테이블에 고개를 파묻는 하야시를 대신해 모리타가 나에게 물었다.
“어쩐지 부장님이랑 사운드팀의 우에노씨가 작년부터 굉장히 자주 만나시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까? 솔직히 섭섭합니다. 부장님. 그래도 함께 내가 없는 거리를 만들었던 팀인데, 이렇게 저희들한테까지 비밀로 하시다니...”
“미안하다. 나도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세우기 전까진 함부로 공개하기가 굉장히 부담스러웠거든...”
‘신의 선물’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새로운 프로젝트는 천재 피아니스트라 불렸던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하며 시작하게 된다.
어지러운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 속에서 주인공의 손을 감싸 쥔 여주인공 얼굴은 구급차의 헤드라이트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그녀의 메시지만이 화면에 가득 뿌려질 뿐.
“제발.. 이 사람 좀 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 신이시여.. 제발... 제발...”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애달픈 목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잃은 주인공에게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사고가 나기 1년 전으로 시간이 되돌아 간 것이다.
여기서 ‘신의 선물’의 이야기는 바로 이 1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는 멀티 엔딩 시나리오를 사용하고 있었다.
음? 생각 보다 시나리오가 너무 간단하다고?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1년 전으로 되돌아간 주인공의 앞에 4명의 히로인이 등장하는데, 히로인과 사귀기 전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이 죽기 전 곁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 주었던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거지.
어때? 이번엔 좀 감이 오나?
하지만, 신의 선물의 이야기는 단지 그녀를 찾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리고 이 스토리의 다음 이야기는 어느 날 저녁 유키와 함께 산책 하던 길에 우연히 그녀가 내뱉은 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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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합격입니다~!!”
신의 선물에 대한 시놉시스를 전부 읽어본 유키는 흡족한 표정으로 나에게 시나리오를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긴 한숨과 함께 식탁에 늘어지듯 고개를 파묻었다.
“아~ 억울하다.”
“뭐가?”
“어느 사람보다 먼저 시나리오를 받아본 건 좋은데, 이 스토리를 알고 게임을 즐기는 거랑, 모르고 즐기는 거랑 재미가 천지 차이일거 아녜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럼 다음 이야기는 그냥 보여주지 말까?”
“으윽.. 왠지 그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
그럼 뭐 나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나는 탁자 위에 올려둔 시놉시스를 정리해 다시 가방에 넣어 두었다.
“준혁씨. 차라리 이참에 방송국에서 드라마 스토리 작가를 해보는 건 어때요? 내가 없는 거리도 그렇고 이번에 신의 선물도 스토리가 상당히 괜찮은데?”
“나는 게임 하나 제대로 만들기도 벅찬데? 신의 선물의 드라마 화는 게임이 성공하면 방송국 작가님에게 맡기는 게 낫겠지.”
“그 방송국 작가가 저 거든요?”
“혹시 후지 TV에서 컨텍이 오면 네 얼굴을 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볼게~”
“어이구~ 감사합니다. 신랑님~”
“그런데, 정말 시나리오 괜찮아?”
“그대로 게임을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단지...”
“단지?”
그러자 유키는 혀를 쏙 내밀며 대답했다.
“뒷내용이 궁금하다면 같이 산책 나가서 녹차 맛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면 알려드리죠.”
“뭐...? 이 밤에?”
“겨울도 지나 날도 풀렸고, 밤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은 언제나 봐도 질리지가 않으니까요. 내일은 비가 온다니까 어쩌면 오늘이 벚꽃을 보는 마지막일 수도 있어요.”
‘신의 선물’의 기본 시나리오를 완성한 때는 1994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유키와 함께 가벼운 스웨터를 걸치고 맨션을 나서자, 자정의 차가운 공기가 굉장히 기분 좋게 느껴졌다.
“아~ 기분 좋다.”
“바람이 많이 부는 걸보니, 정말 내일 비가 오긴 오려나보네.”
그래서 일까 맨션 앞에 하나 가득 피어난 벚꽃이 마치 춤을 추듯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었다.
유키는 그 풍경이 마음에 꼭 드는지 보조개를 깊게 패이며 나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거봐요. 나오길 잘했죠?”
“그래~ 그러니까 어서 시나리오에 대해 다음 얘기 좀 해봐.”
“에이~ 아직 아이스크림도 못 얻어먹었는데~ 맨입으로요?”
“일단 사러 나왔잖아. 그게 중요하지.”
“아뇨. 내 입에 아이스크림 들어가기 전까진 죽어도 말 못합니다.”
그리곤 보란 듯이 내 쪽으로 길게 목을 빼내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준혁씨도 바빠서 이런 산책도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잠깐 일 얘기는 접어두는 게 어때요? 편의점 갈 때까지만...”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유키를 바라보자, 그녀는 살며시 팔짱을 끼며 내 어깨에 기대었다.
“그럼 갈까요?”
“그래. 가자...”
기분 좋은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잎을 맞으며 우리는 편의점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걷던 중. 나는 혹시나 이런 사태가 또다시 벌어질지 몰라 은근슬쩍 그녀에게 물었다.
“가서 네가 좋아하는 녹차 아이스크림 한 30개 정도 사올까? 냉장고에 넣어 두고...”
“어우~ 진짜!!!”
퍽!!
그래... 내가 결국엔 등짝 스매싱 한대 맞을 줄 알았지...
< EP. 32 : 신의 선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