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67화 (167/252)

< EP. 29 : 하얀 악마의 한국상륙. (4) >

“저기, 소연양. 지금 무슨 엉뚱한 말을 하는 거야. 이 분이 대체 어떤 분인지 알기나 하는 거야?”

“일본의 펜타곤 소프트에서 오신 강준혁님 아니신가요? 민텐도에서 근무하며 슈퍼 패밀리 제작을 주도 하셨고, 드래곤 엠블렘 시리즈와 내가 없는 거리의 메인 디렉터이며 펜타곤에서 출시한 휴대기기 라온 역시 개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음. 아주 훌륭한 세줄 요약이군.

나는 소연씨가 가져다준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그녀의 대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에 대해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따로 제 소개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너무나 당찬 그녀의 어투에 김 대표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평소랑은 느낌이 좀 다른데, 소연씨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무례하게 느껴지셨다면 죄송합니다. 대표님. 단지 조금 답답한 마음에...”

이 소연.

그녀는 시대를 너무 앞서서 태어난 신여성(新女性) 이었다.

사내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특히나 약한 시대였기에, 회사 내부에선 프린트나 복사, 차대접등 잡일을 도맡아 하는 이 시대의 사무직 여직원들과는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오히려 그녀는 내 흥미를 굉장히 자극 시키고 있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튀어 나온 못은 정을 맞기 마련. 어영부영 넘어갔다간, 어쩌면 호된 꾸지람을 얻을 수도 있기에 나는 소연씨를 바라보며 최대한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김 대표는 혹시나 내가 기분이 상하지 않았는지, 눈치를 보다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준혁씨. 입사한지 1년도 안 된 신출내기입니다. 회사 사정을 잘 모르고 한 말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소연양. 회사 경영 문제에 대해 일반사원이 함부로 그렇게 끼어드는 게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 하시니 더욱 흥미롭네요. 대표님 말대로 입사한지 1년도 안된 신출내기 직원이 저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다니, 기분이 좋은데요?”

“아이고~ 준혁씨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

“헌데, 방금 전 라온이 한국에서 팔기에 너무 비싸다고 말씀 하셨죠? 혹시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도 될까요?”

그러자, 그녀는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며 대답을 망설였다.

“전 정말 괜찮아요. 소연씨를 통해 한국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그에 대응 하는 마케팅을 시도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소연씨는 나의 말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굳어 있던 표정에 한 순간 생기가 비쳤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입이 열렸다.

“저는 우선. 라온의 소비자 가격이 한국 국민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게임이란 문화가 아이부터 어른까지 골고루 퍼져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거든요. 한국에서 라온을 즐기는 연령층은 약 10세에서 20세까지입니다.

사실 이마저도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낮아지지요. 아직 한국에서는 게임 컨텐츠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그렇게 좋지 않으니까요.”

나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세요.”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현재 한국 사회의 직장인 평균 월급은 대략 100만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라온은 기기 본체만으로 직장인 평균 월급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프트를 한 두 개 정도 구입한다면, 거의 한달 수입의 절반가량을 게임기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님이라면 아이의 장난감 하나에 이정도 금액을 쏟아 붓지는 않지요.”

반박할 틈이 없는 완벽한 시장조사로군. 나는 그녀의 말에 감탄하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김한석 대표 역시 소연씨의 똑 부러진 대답에 멍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제가 한국으로 오면서 고민했던 부분과 정확히 일치하네요.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올해로 24살입니다. 학력은 K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거 사무보조로만 두기엔 아까운 인재인데요. 김대표님?”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본의 펜타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긴 하지만, 제가 워낙에 이쪽으로 배운 것이 없다보니...”

작년에 라온 런칭 이후. 매달 한국에서 날아오는 매출 보고서를 살펴보면, 확실히 김한석 대표는 한 회사를 대표하는 경영자의 마인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이 시대의 데이터베이스가 모두 수기로 이루어 진다하더라도 그가 나에게 보여준 서류들은 너무나 중구난방이니, 정확한 집계를 산출해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김한석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 소연씨 좀 데리고 다녀도 될까요? 반드시 대표님께 도움이 될 만 한 인재가 될 것입니다.”

“네? 아, 예. 그러시죠.”

좋아. 그럼 바로 일을 시작해볼까?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서 업무에 대한 이야기하기엔 그녀도 불편해 할 거 같고...

“대표님. 차 한 대만 준비해 주시겠어요?”

“네. 바로 준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소연씨는 오늘부터 저와 함께 이동하도록 하죠. 현장에서 바로 퇴근시켜 드릴 테니 가방 챙겨서 나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본사 건물 밑에 대기 중인 차량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자, 얇은 민소매 블라우스 차림의 소연씨가 건물을 빠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일단 타요. 이야기는 이동하면서 할 테니.”

그녀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보조석에 올라탔다.

한국으로 넘어 오기 전 국제 면허증을 미리 발급 받은 상태였기에 운전에는 무리가 없었다.

시동키를 돌린 후. 엑셀에 힘을 가하자, 우릴 태운 승용차는 미끄러지듯 강남 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

“그런데 저희 어디로 가는 건가요?”

오늘 처음 만난 낯선 남자의 옆자리가 영 어색한지. 소연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나는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호텔이요.”

“네에!?”

“먼저 짐 좀 내려놓을까 해서요. 저 한국 도착한지 2시간 밖에 안 지났거든요.”

“아아..”

소연씨는 놀란 토끼 눈으로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아까 대표실에서 저에게 한국 시장에서 라온은 너무 비싸다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교차로 앞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린 나는 속도를 줄이며 횡단보도의 정지선 앞에 차를 세웠다.

“본래 콘솔 판매는 이윤이 잘 안 남는 장사에요. 오히려 판매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랄까요? 나 역시 한국의 소득 수준을 맞추고 싶지만, 단지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무작정 기기의 가격을 낮출 수는 없습니다. 역수입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니까요.”

“저기 우선 강 준혁... 님? 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냥 편하게 부장님이라고 불러주세요. 그게 펜타곤에서 저의 직급이니까.”

“아, 네. 부장님. 부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얼 의미하는지 저도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이대로라면 라온은 한국 시장에서 빛을 보기 힘들 것입니다. 라온이 출시되고 1년 현재 기기 안에 들어가는 부품도 대량 생산으로 인해 원가 절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 아닌가요?”

이야.. 이 분 진짜 보통 내기가 아닌데?

마치 민텐도에 갓 입사했을 때의 나를 보는 것 같군.

그래서 일까? 나는 민텐도의 카마우치 사장과 처음으로 면접 보았을 때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소연씨가 잘 몰라서 그런데, 콘솔이란 만드는 부품의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원가 절감효과가 오진 않아요. 혹시 하나의 콘솔이 만들어지기까지, 생산 공장에서 유통라인까지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는지 알고 계신가요?

사실 기기에 들어가는 부품의 단가보다는 인건비에 더 많은 자본이 흘러가게 되죠. 물론 소연씨의 말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부품의 대량 생산으로 가격이 내려가지만, 반대로 직원에게 지급되는 급여 역시 함께 오르게 됩니다.

더구나 라온에서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는 전문 제작 업체에서 외주를 통해 만들어 지고 있고, 반도체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떼어 오고 있구요.”

그러자 나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부장님. 왜 제조 공장을 인건비가 비싼 일본에 두시나요? 한국이라면 그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

“한국은 90년대에 접어들며 일본과는 반대로 경제 부흥의 효과를 보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라면 차라리 한국 쪽 기업과 손을 잡는 것이 펜타곤에 더 유리한 조건... 아닌가요?”

순간 운전대를 잡고 있던 팔뚝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왜 여태까지 그 생각을 못했지?

그녀의 명쾌한 대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빵, 빵!!! 빠아앙!!!

갑자기 들려오는 경적 소리에 당황한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부장님. 신호등.”

“아, 미안해요.”

나는 재빨리 기어를 넣으며 엑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켰다.

1992년의 서울 도심은 확실히 88년에 왔을 때보다 승용차가 훨씬 늘어나 있었다.

잠시 좌우 사이드 미러를 살핀 나는 호텔이 있는 잠실 쪽으로 차를 몰며 생각에 잠겼다.

소연씨의 말을 종합해보자면, 그녀는 지금 한국을 이용해 라온의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제조방식을 제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드래곤 엠블렘과 사이킥 포스로 인해 사업 쪽으론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방금 전 그녀의 대답으로 인해 머릿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 땅에 복룡(伏龍)이 숨어 있었군. 그것도 이제 겨우 24살 밖에 되지 않은 빛나는 인재가 말이야.’

잠시 후. 잠실 로테 호텔 입구에 차를 세운 나는 발레 파킹을 위해 달려오는 호켈 직원에게 차키를 넘겨주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릴까요?”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금방 짐 정리하고 내려올 테니.”

“네. 알겠습니다.”

90년대 초반의 한국에는 잠시 들러 이야기를 나눌 만한 커피 전문점이 매우 드물었다.

적어도 이런 특급 호텔 정도는 되어야 내부에 커피를 제공하는 비지니스 룸이 준비 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나는 호텔 로비에 그녀를 남겨두고는 카운터에서 키를 받은 뒤 방으로 올랐다.

가능하면 편하게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처음 만난 남자의 호텔방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다음 주말에 유키가 한국에 왔을 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캐리어에서 옷가지를 꺼내어 옷장에 걸어둔 뒤, 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 일정 동안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은 라온의 국내 보급률을 늘리는 것과 어크 토니시아 스토리를 개발한 솜노리 소프트의 대표. 이원승씨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중에 후자인 솜노리는 내가 사무실에 방문해 어떻게 해볼 수 있지만, 전자인 보급률 문제는 비행기 안에서도 은근히 골머리를 썩고 있었기에 이 소연씨와의 만남은 나에겐 굉장한 행운으로 작용했다.

‘역시 젊은 사람이랑 대화하니 머리가 팽팽 도는구나. 이래서 역시 사람은 늙을수록 젊은 사람 옆에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민텐도에서 시게씨에게 천재 소리를 듣고, 펜타곤의 하얀 악마라 불리우던 내가 여기서 한방 먹을 줄이야.’

나는 피식 웃음을 삼키며 그녀가 기다리는 로비로 향했다.

< EP. 29 : 하얀 악마의 한국상륙.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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