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63화 (163/252)

< EP. 28 : 용자의 무덤. (2) >

“우와아아아!!!”

“설마, 진짜로 클리어 할 줄이야!!”

이벤트에 모인 유저들은 광전사 길드의 최정예 파티에 환호를 내질렀지만, 나의 심정은 매우 복잡했다.

‘엉덩이라니, 위대한 영웅의 이름이 엉덩이라니..’

그때 옆에 있던 하야시 역시 나와 같은 심정인지, 비음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부.. 부장님. 이러면 2부에 등장하는 영웅 클래스 캐릭터 이름이..”

“그래. 엉덩이다.”

“히이익!! 진짜로 그렇게 하실 겁니까?”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하지만 아직 작은 희망은 남아있었다. 용사가 되느냐 마느냐의 근소한 차이일 뿐이지만...

“크워어어어!!”

용사의 마지막 일격에 블랙 드래곤 마지막으로 괴성을 내지르며 바닥에 몸을 뉘었다.

“이제.. 진 엔딩이 나오려나?”

노멀 모드를 클리어 하고 나면 무너지는 탑에서 도망치는 이벤트가 재생되고, 하드코어 모드에 도전해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다소 싱겁게 끝나버리지만, 하드코어 모드의 엔딩은 조금 다르게 진행 되었다.

블랙 드래곤을 쓰러뜨린 용사들 앞에 성왕 크로엘을 쓰러뜨린 마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마신이다!!”

“오!! 엔딩이 달라!! 역시 하드코어 모드에 진 엔딩이 숨겨져 있었구나!!”

“설마, 곧바로 이어서 최종 결전인가?”

-훌륭하구나. 나의 드래곤을 쓰러뜨린 용사들이여.-

광전사 길드의 파티원들은 갑작스레 등장한 마신의 모습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에 이대로 전투에 돌입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전투인 줄만 알았던 마성의 탑 최상층에 마신이 나타날 줄이야.

되짚어 보면 전작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마왕을 죽이고 나서 갑작스레 등장한 마신으로 인해 뼈아픈 타격을 입었던 플레이어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드래곤을 물리친 파티원들 앞에 나타난 마신은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대안에 따라 레이드 파티의 리더 ‘오시리’의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마신의 제안에 응해 ‘마왕’으로 전직하시겠습니까?-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에 이벤트 홀에 모인 유저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뭐야.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영웅이 될 수도 있고, 마왕이 될 수도 있는 건가!?”

“대박이다. 여기서 마왕을 선택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뭐긴 뭐야. ‘엉덩이’ 마왕이 되는 거지!!

아무튼 저 빌어먹을 이름 때문에 뭐가 되어도 진지함이 떨어진다. 그래도 용사 이름 보단 마왕 이름이 나으려나? 에라.. 이젠 나도 모르겠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옆을 바라보자, 나와 함께 앉아 있던 유키는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으로 웃고 있었다.

“마왕의 이름이 엉덩이라니. 킥킥킥.”

그래.. 웃어라 웃어.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피식 웃으며 무대로 고개를 돌리자, 광전사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상의 중이었다.

드래곤 엠블렘 2 최초의 영웅으로 기록 되느냐. 아니면 희대의 마왕으로 기록 되느냐. 그 어느 쪽도 그들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용사 클래스인 오시리가 마왕으로의 전직을 제안 받은 순간.

함께 파티를 이루고 있던 신궁과 현자 클래스들에게도 마찬가지 제의가 들어왔다.

그리고 광전사 파티는 이곳에서 꽤나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4명의 파티에서 용사와 현자 하나는 각각 마왕과 타락한 현자로...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심판자와 대 현자로 클래스 체인지를 마친 것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네.’

그들의 선택에 유저들 역시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동료가 두 패로 갈라졌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신은 새로운 전쟁을 예고하며 자신의 수하가 된 두 명을 데리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무너지는 탑에 남겨진 심판자와 대 현자가 탈출하는 긴박한 이벤트 영상이 흐르고, 마성의 탑이 모두 붕괴 됐음을 알리는 스토리 영상이 끝나자. 화면에 또 다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드래곤 엠블렘 ‘프롤로그’ 부러진 성검과 암흑의 시대를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롤로그라고!?”

“지금까지 플레이 한 스토리가 드래곤 엠블렘 2의 프롤로그였다니, 대체 세계관이 얼마나 큰 거야?”

당연히 엔딩인 줄만 알았던 유저들은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에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이벤트를 지켜보고만 있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드래곤 엠블렘의 개발자 강준혁입니다.”

이벤트 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로 향하며 일순 고요해졌다.

“먼저 드래곤 엠블렘 하드코어 모드를 끝까지 클리어 해주신 광전사 길드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자면 드래곤 엠블렘 2 출시 후. 하드코어 모드의 클리어까지 적어도 3개월 이상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언제나 개발자의 예상은 빗나가기 마련이군요.”

“그런 것까지 예상하고 있었다니, 사악하다...”

어딘가에서 들려온 유저의 혼잣말에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본래 디렉터란 그런 겁니다. 유저들이 느끼기에 플레이 타임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면 컨텐츠를 조금 더 늘리고, 너무 많다 싶으면 가지를 쳐내듯 불필요한 이벤트를 잘라내기도 하죠. 길고 지루한 스토리는 여러분을 지치게 할 테니까요. 그래서 드래곤 엠블렘 2의 첫 번째 이야기는 굉장히 단순 명쾌합니다. 동료와 함께 탑을 지키는 드래곤을 쓰러뜨려라. 안 그런가요? 광전사 길드 여러분?”

그러자 마지막 클래스 체인지에서 심판자로 전직한 궁사 플레이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자잘한 퀘스트를 클리어 하며 캐릭터가 성장하거나 마을이 번성 하는 건 좋은데, 전작에서 느꼈던 장대한 스토리의 흐름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정확하게 짚어 주셨네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즐겨주신 이야기는 드래곤 엠블렘 2의 극 초반인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내용이었으니까요. 일전에 보여드린 드래곤 엠블렘의 홍보영상에서 마지막에 떠오른 문구.. 혹시 기억하시는 분계신가요?”

나의 질문에 이벤트 홀에 모여 있던 유저들 중에 몇몇이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설마..?”

그렇다. 방금 전직한 유저들은 드래곤 엠블렘의 다음 에피소드인 ‘용자의 무덤’의 메인 스토리에서 영웅 클래스로 등장할 거거든.

드래곤 엠블렘의 영웅 클래스는 각 직업별로 8개. 마왕군의 진영까지 합치면 총 16종류..

광전사 길드의 클리어 정보는 곧바로 각 잡지사와 PC통신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나갔다. 그러자 유저들은 남아 있는 12종류의 영웅 클래스를 차지하기 위해 마성의 탑 공략을 서둘렀다.

자신이 키운 캐릭터가 다음 에피소드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물론 16종류의 영웅의 등록이 끝나더라도, 드래곤 엠블렘 2를 클리어한 유저라면 자신의 캐릭터를 다음 에피소드에서 승계 할 수 있었기에 카트리지가 중고 시장으로 흘러가는 범위를 최소화 시킬 수 있었다.

유저와 함께 만들어 가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은 소비자들에게 굉장히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며 발매 후 약 3개월 만에 일본 내에서만 100만장을 팔아 치우는 기염을 토해내었다.

&

“드래곤 엠블렘 밀리언셀러 달성을 축하하며 건배~!!”

카와구치 대표의 건배 제의와 함께 여기저기서 잔을 부딪치는 소리 울려 퍼졌다.

그는 연신 드래곤 엠블렘의 성과를 극찬하며 펜타곤 직원들의 박수를 유도하였다.

“그럼 이번엔 우리 펜타곤 소프트의 자랑이자, 다음 달에 결혼 예정인 강준혁 부장을 단상에 불러 볼까요?”

갑작스런 대표의 멘트에 샴페인를 삼키던 나는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자 내 곁에 앉아 있던 모리타와 하야시가 억지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입을 열었다.

“아이~ 그러지 마시고, 다음 달에 결혼도 하시면서 어서 올라가서 한 말씀 해주세요. 야~ 다들 뭐 하냐. 부장님 빨리 안 모시고~!!”

결국 제 2 개발팀원들의 손에 떠밀리듯 단상에 올라선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제 1개발팀을 비롯한 마케팅과 회계 팀 직원들까지 큰 박수를 보내 주었다.

10명 내외였던 작은 회사가 이제는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 수만 150명에 달하는 거대한 회사가 되었다.

나는 직원들의 박수 소리가 잦아 들 때까지 마이크 손에 쥔 채 파티장을 바라보았다.

“우선은 저와 함께 고생해준 제 2 개발팀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네요. 새로운 휴대용 콘솔을 런칭 하고 약 10개월 정도로 흐른 지금. 라온은 일본 내에서 NEGA를 제치고 보급률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업계 1위인 민텐도랑은 격차 크긴 하지만, 모두가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준다면 언젠가 민텐도를 뛰어 넘는 것도 꿈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아타리 쇼크로 인해 유저들에게 신뢰를 잃었던 게임 업계는 민텐도의 패밀리를 시작으로 현재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앞으로 콘솔 시장은 굉장히 큰 변화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장르가 파생 되겠지요. 드래곤 엠블렘 2의 프롤로그는 그 변화를 준비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서 내가 한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나는 마이크를 고쳐 쥐며 빙긋 웃어보였다.

&

그로부터 며칠 후.

한국의 만트라 소프트에서 몇 종류의 데모 카트리지가 펜타곤 본사로 넘어왔다.

그것은 PC 게임을 주력으로 개발하는 한국의 게임 회사에서 콘솔 기종인 라온으로 게임 출시를 희망하는 데모 게임들이었다.

90년대의 한국 PC게임 산업은 불법 복제로 인해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기에 정품을 구입하는 유저가 극히 드물었다.

그러던 중 91년에 출시한 라온이 한국에서 꽤나 큰 인기를 거두기 시작하며 보급률이 늘어나자, 콘솔 게임 사업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소프트 회사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펜타곤과 만트라는 쌍방향으로 서로에게 협조하고 있었기에 펜타곤에서 나오는 게임은 대부분 한글화를 거쳐 출시되었고, 드래곤 엠블렘 시리즈와 더불어 파이널 프론티어는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중에서 몇몇 게임은 오히려 일본어로 컨버젼 되어 출시하는 작품도 있었는데, 만트라에서는 일본시장에서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이는 몇몇 작품을 펜타곤으로 보내주곤 하였다.

“부장님. 한국에서 새로운 데모 카트리지를 보내 왔는데요?”

우편 보관소에서 갈색 종이 상자 받아온 하야시는 소포를 뜯어내며 내게 말했다.

드래곤 엠블렘의 새로운 에피소드의 포팅 작업 중이던 나는 잠시 한숨 돌릴 겸 하야시가 내민 카트리지를 받아들었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라온용 게임을 많이 개발하네요.”

“PC 보급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반해, 게임이 전혀 안 팔리니까. 콘솔기기인 라온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거지.”

“불법 복제 말이군요. 그거야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인데요. 애초에 PC는 콘솔에 비해 데이터 복제가 쉬우니 어쩔 수 없죠.”

“그러게 말야..”

나는 몇 가지 게임 카트리지를 살펴보던 중 반가운 제목이 쓰여 있는 카트리지 하나에 눈길을 멈추었다.

“음? 아시는 게임입니까?”

“얼마 전 만트라 대표가 나에게 전화해서 극찬한 게임인데, 한번 해볼래?”

하야시는 나에게서 받아든 카트리지의 제목을 읽으며 중얼 거렸다.

“어크토니시아 스토리...? 제목 멋진데요?”

“그렇지?”

하야시의 칭찬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빙긋 미소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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