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61화 (161/252)

< 단편 : 드래곤 엠블렘 in 우치무라 (후편) >

오사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에 올라온 나는 대학을 휴학 중이지만, 어엿한 직장인 이었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취직의 문턱이 높아진 요즘 같은 시기에도 불구하고, 내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 1위로 꼽히는 펜타곤의 정사원이라니 생각만 해도 꿈만 같은 일이다.

거기다 평번한 샐러리맨처럼 회사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닌 무려 자택 근무원.

사실 펜타곤 직원은 자신의 복지 포인트를 이용해 본사에서 발매되는 게임을 무료로 지급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직원에게 지급 되는 시기는 초기 물량이 다 빠져 나간 뒤 3~4차 수량에서 쯤에서 받을 수가 있기에 성질 급한 나 같은 인간은 그걸 참지 못하고 유저들 틈에 섞여 게임을 구입하곤 했다.

본래 진정한 게이머란 ‘소장용’과 ‘플레이용’ 카트리지를 따로 구입해두어야 하는 법.

나는 집을 나서기 전 거실 벽면 한쪽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유리 장식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만든 피규어부터 시작해 펜타곤에서 출시한 게임들이 장식장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텅 빈 거실을 향해 인사를 마치고 두꺼운 철문을 열어젖히자, 눈부신 아침 햇살이 복도에 설치된 창을 통해 내 눈에 파고들었다.

“크윽, 빌어먹을 태양권...”

펜타곤 본사가 있는 신주쿠에서 아키하바라 까지는 야마노테센이라는 JR노선을 타면 쉽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잠시 후. 아키바에 도착해 서쪽 출구로 빠져 나오자,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어~ 직장인~”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아베와 마에다 녀석. 이 녀석들도 고등학교 졸업 후에 나와 같이 도쿄로 올라와 자취 중이었다.

아베는 고등학교 때부터 제과제빵에 취미를 가져서 전문학교를 졸업 후 동네의 작은 빵집에서 견습 중이고, 마에다 녀석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여행사에 취직해 벌써 직장인 5년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야~ 작년에 동창회에서 봤을 때만 해도 마에다랑 네 걱정 많이 했었는데, 설마 네가 펜타곤에 입사할 줄은 몰랐다.”

아베는 반갑게 내 손을 마주잡으며 웃어 보였다.

“연락 좀 자주해 인마. 같이 도쿄에 살아도 얼굴보기 진짜 힘드네.”

“미안. 회사일 때문에 좀 바빴어. 앞으로는 자주 연락 할게.”

“캬~ 내가 살면서 우치무라한테 회사일 바쁘다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진짜 시간이 흐르긴 흘렀네...”

“그러게 말이다. 고등학교 때 드래곤 엠블렘 찾는다고 덴덴타운 뒤적거리던 게 어제 같은데, 이렇게 후속편이 발매 되다니.”

“맞아. 그때 너 혼자 드래곤 엠블렘 구하고 돌아와서 겁나 자랑했잖아. 치사하게 어디서 샀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말야...”

“아냐. 그 때 정말 너희를 데려갔던 그 가게에서 샀었다니까.”

“야, 벌써 6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솔직히 털어 놓지 그래?”

6년 전 그 날.

드래곤 엠블렘 카트리지를 들고 약속 장소로 돌아오자, 아베와 마에다 녀석은 깜짝 놀라 나에게 물었다.

“야, 이거 어디서 샀어?”

“덴덴타운 외각에 허름한 게임 가게에서 웬 할아버지가 팔고 있던데?”

“진짜? 거기가 어디야?”

“근데 이게 마지막 남은 드래곤 엠블렘이라고 하셔서...”

“아, 정말? 그럼 이 기회에 예약이라도 걸어둬야겠다. 안내 좀 해줘 봐.”

“뭐 그건 어렵지 않지.”

하지만 친구들과 다시 찾아간 곳은 아무것도 없는 버려진 상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방금 전 드래곤 엠블렘을 구입할 때만 해도 그렇게 깔끔한 인상의 가게는 아니었지만, 내 눈앞에 있는 상가는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래전에 폐업했는지 가게 곳곳에 거미줄이 끼어 있었다.

“어!? 이상하다. 내가 골목을 착각 했나?”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근처의 골목을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게임가게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우치무라. 너 일부러 혼자만 하려고 게임 가게 안 알려주는 거 아냐?”

“아냐. 진짜 여기 있었다니까!!”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만, 나를 따라 몇 번이나 골목을 돌라다닌 아베와 마에다 녀석은 점점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야, 알려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사람을 데리고 빙빙 돌아 다니냐.”

“그러게 진짜 실망이다.”

그 후로 녀석들은 나에게 실망했는지, 한 동안 학교에서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뭐~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화해 하긴 했지만, 그 날 일은 아직도 나에겐 미스테리 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도쿄로 올라오기 전까지 가끔 생각이 날 때면 찾아가 보았지만, 도쿄로 올라오기 며칠 전 그 자리에 비디오 가게가 새로 오픈 하면서 나는 더 이상 할아버지 가게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 후로 6년이 지나 우리 셋은 모두 사회인이 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라온 같은 경우는 휴대기기라 그런지 출 퇴근에 시간이 걸리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야, 잡담은 일단 대기 줄에 서서 하자. 저기 사람 장난 아니게 모인 거 같다.”

“저게 뭐야, 세상에... 이러면 연차까지 써서 온 보람이 없잖아.”

“그러게 무슨 디즈니랜드 입장 줄도 아니고...”

역 앞에 위치한 타마고 샵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드래곤 엠블렘 전용 매장은 정식판 출시에 맞춰 오픈을 예정하고 있었다.

“이거 무슨 게임 못 사서 죽은 귀신들이 박혔나...”

“진짜 인기 게임 한 번 살 때마다 매번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아베와 마에다는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자, 온몸에 힘이 빠지는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돌아갈 순 없기에 우리 셋은 서둘러 달려가 대기 열의 맨 끝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매장의 오픈을 알리는 축사와 더불어 드래곤 엠블렘 샵의 문이 열리고, 대기 열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샵의 점장으로 발령 받은 미야자키씨는 정문에서 드래곤 엠블렘에서 등장하는 마법사 복장을 하고 웃으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침 정문을 통과해 들어 가던중 사람들 무리 속에서 나를 본 그녀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머, 우치무라씨~!!”

“안녕하세요. 미야자키씨.”

“드래곤 엠블렘 구입하러 오신 거예요?”

“아, 네. 복지 포인트로 신청 하긴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저두 그래요.”

그녀는 드래곤 엠블렘 2의 카트리지를 들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워낙에 빠르게 대기 열이 줄어드는 탓에 몇 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미야자키씨의 미소를 볼 때마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단 말이야?

“야, 저 분 누구냐? 우리랑 나이 비슷해 보이는데?”

“펜타곤 직원 분이셔. 드래곤 엠블렘 샵의 점장이기도 하고...”

“진짜? 대박. 너랑 친하냐?”

“그... 글쎄..”

나는 아베의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 셋은 거의 동시에 드래곤 엠블렘을 구입한 뒤 점심을 먹을 겸 샵 근처의 패스트푸드 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라온을 꺼내들었다.

“체험판 캐릭터 승계한 뒤에 셋이서 레이드 한판 달려볼까?”

“레이드는 4인 파티잖아. 한사람 부족하지 않아?”

“뭐, 일단 3명이 맞춰졌는데, 설마 저들 중에서 한 사람 안 걸리겠어?”

아베 녀석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자, 가게 안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온을 즐기고 있었다. 샵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보니 게임을 구입한 사람들이 식사 겸 이곳을 찾은 모양이었다.

하긴 햄버거 하나 시켜 놓고 게임을 즐기기에 이곳만큼 마음 편한 곳도 없으니까..

&

그 후로 우리는 매주 주말 마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 레이드를 즐겼다.

한 명이 모자란 탓에 인원 보충을 위해 PC통신의 드래곤 엠블렘 커뮤니티 안에서 길드를 개설했더니, 비슷한 레벨 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마성의 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행사했지만, 드래곤 엠블렘의 레이드 시스템은 그렇게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키운 캐릭터가 한 순간에 잃을까 두려워 던전 공략이 더뎌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 나와 친구들의 캐릭터 레벨은 48.

중간에 파티 전멸로 인해 레벨 39짜리 캐릭터를 잃고 난 뒤, 멘탈 부서진 우리는 너무나 큰 상실감에 한 때 드래곤 엠블렘을 접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드래곤 엠블렘 샵에는 1위부터 100위까지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캐릭터의 레벨은 보통 70대를 유지하고 있었고, 현재 톱 랭킹에 올라 있는 플레이어는 최근에 레벨 80대에 올라섰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재 드래곤 엠블렘에서 최고 랭킹 길드라 일컬어지고 있는 ‘광전사’ 길드가 펜타곤 소프트의 초청을 받아 최초로 마성의 탑 최상층에 도전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드래곤 엠블렘의 유저들은 이 악랄한 게임의 끝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벤트 관람 신청을 내었다.

나와 친구 녀석들은 점장인 미야자키씨에게 부탁해 행사 도우미 자격으로 이벤트 홀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벤트 당일 마에다 녀석이 약속시간에 늦는 바람에 조금 늦게 회장에 도착한 우리는 미야자키씨가 열어준 스탭 출입문을 이용해 이벤트 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오오!!!”

회장에 들어서자마자 터져 나오는 함성에 고개를 돌리자...

‘히이익!! 블랙 드래곤...?’

맵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드래곤에 맞서 4명의 캐릭터가 고군분투 중이었다.

각 직업별 최종 클래스로 무장한 파티는 드래곤의 맹공 앞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용자와 신궁(神弓) 그리고 두 명의 현자로 이루어진 파티는 발군의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파티의 수장인 용자의 레벨은 83.

파티중 레벨이 가장 낮은 캐릭터가 79레벨이었기에 3명이 80대 레벨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박이다. 이러다 정말 끝판 깨는 거 아냐?”

“와.. 진짜 현자라는 클래스. 동료에게 버프 걸어주는 게 장난 아닌데?”

마성의 탑을 지키는 두 마리의 드래곤.

첫 번째 마성의 탑의 주인인 화이트 드래곤과 두 번째 마성의 탑의 주인인 블랙 드래곤.

이 들은 두 동강 나버린 성왕 크로엘의 성검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기에 이번 스테이지를 클리어 한다면 최초로 크로엘의 성검을 완성 시키는 파티가 될 것이 분명했다.

“크오오오!!!”

화면 가득 박력 넘치는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광전사 길드의 파티원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각자의 턴에서 최선의 역할을 수행해 내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할 수 있다!!!”

대체 저 궁사 어질리티를 얼마나 처박은 거야?

다른 파티에 비해 거의 1.5배 속도로 턴이 돌아오는 신궁은 광활한 맵을 누비며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관통 속성이 붙어 있는 신궁의 화살은 거대한 덩치의 드래곤의 몸을 뚫고 들어가 연속으로 타격 데미지를 입히고 있었다.

“우와 개 쩐다...”

용자는 파티의 선봉에 서서 드래곤의 타격을 모두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

“와.. 진짜 이거 두 달 만에 끝장을 보는 건가?”

역대 RPG 게임 중 플레이 시간 2달을 버텨낸 게임이 존재하기는 했을까?

보통 길어야 1~2주면 끝장을 보았지만, 드래곤 엠블렘은 역대 모든 게임의 플레이 시간을 갈아 엎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

그 순간. 블랙 드래곤은 기나긴 비명 소리와 함께 바닥에 몸을 뉘었다.

“끝... 난 건가?”

“진짜?”

광전사 길드의 파티원 역시 지쳤는지, 의자에 기대어 구슬땀을 닦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지막 스테이지를 공략한 파티원들의 게임 화면에 작은 메세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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