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59화 (159/252)

< EP. 27 : 몬스터 레이드 (3) >

-드래곤 엠블렘 2의 하드코어 모드를 클리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여러분이 즐겨주신 체험판은 드래곤 엠블렘의 최상위 난이도인 하드코어 모드입니다. 하드코어 모드란 단 한 번의 플레이로 엔딩까지 향하는 극한의 모드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시는 동안 여러분은 수많은 죽음을 바탕으로 드래곤 엠블렘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숙지하셨을 것입니다.-

“하드코어 모드? 설마, RPG 게임에 난이도가 존재하는 건가?”

이 시대의 RPG게임이라면 보통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나 ‘파이널 프론티어 시리즈’처럼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는 일자진행형 플레이를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드래곤 엠블렘 2는 현재까지 그들이 즐겨온 RPG 들과는 그 형식을 좀 달리하는 편이었다. 몬스터 레이드 시스템에서 느껴지듯 드래곤 엠블렘의 두 번째 이야기는 미래에 온라인 게임이 가지고 있는 RPG 성향을 띠고 있었다.

‘극한의 난이도를 뚫고 올라온 자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줘야지. 영원히 드래곤 엠블렘의 세계에 머무를 수 있는 특권을 말이야...’

작년.. 그러니까 드래곤 엠블렘 2의 기획 초안을 넘겨받은 제 2개발팀 직원들은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세계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초안을 검토한 하야시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나에게 물었다.

“부장님.. 이 정도로 거대한 세계관을 대체 어떻게 만드시려는 겁니까? 드래곤 엠블렘은 이제 고작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을 뿐입니다. 이 정도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면 적어도 10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요? 더구나 유저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각자의 세력을 만들어 싸운다는 이 부분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겠지..

그들에게 넘겨준 기획서 중에 몇몇 초안 부분은 향후에 MMORPG에서나 사용될 시스템들이었으니까...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야시에게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걱정 마. 정말로 10년을 내다보고 기획한 거니까.”

“네에...?”

“지금은 드래곤 엠블렘의 세계관을 유저들의 머릿속에 각인 시키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선 우선 게임의 장르부터 바꿔야겠지?”

“어라? 그럼 전에 말씀 하신 상하단차를 이용한 택틱스 기반의 던전 맵은 안 쓰시는 건가요?”

“아, 그건 나중에 따로 쓸 일이 있을 거야. 이번에 드래곤 엠블렘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해. 그러기 위해선 아무래도 육성 시뮬레이션이란 장르가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야.”

“육성... 시뮬레이션이요?”

장대한 판타지 세계관 설정에 당연히 RPG를 떠올렸던 직원들은 뜬금없이 터져 나온 생소한 장르 명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하지만 점점 게임이 제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하자, 직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장님. 예전에 드래곤 엠블렘을 혼자 만드셨을 때 이런 기분이셨군요?”

“음...?”

“게임이 완성 되어 갈수록, 이 게임을 플레이 할 유저들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

유저들을 괴롭히는 내 변태 성향이 우리 팀 직원들에게도 점점 묻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체험판 제작이 결정된 순간. 나는 배포되는 게임의 난이도를 하드코어 모드로 초점을 맞춰 두었다. 그러자, 개발팀의 몇몇 직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체험판부터 하드코어 모드를 배포시키면 라이트 유저 같은 경우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직원의 질문에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이건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닌 무료로 게임을 즐기는 체험판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드래곤 엠블렘과 더불어 그 동안 우리가 만들어온 게임들의 아이덴티티를 생각하면 유저들 역시 어느 정도 각오를 다지고 플레이에 임하게 되겠지. 이건 펜타곤이 만든 게임이다. 결코 호락호락하진 않을 거야.”

“아, 하긴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오히려 라이트 버전을 체험판으로 배포한다면, 잔뜩 기대 했던 것과 달리 살짝 싱거운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거야. 더구나 캐릭터가 사망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질 테고 말야. 하지만 반대로 하드코어 모드를 먼저 플레이하고 나면 되려 이 정도면 해볼만하다고 느껴질 걸?”

“아아...”

그리고 그렇게 모든 과정을 거쳐 지금 이 순간. 유저들은 화면에 흘러나온 메시지에 엄청난 환호성을 보내고 있었다.

“저 메시지대로 라면 이번 시리즈에 내가 만든 캐릭터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

“대박이다..”

“이제야 드래곤 엠블렘 2의 시스템이 왜 육성 시뮬레이션인지 이해가 가네...”

“결론은 게임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면 노멀 모드로 플레이하면 되고, 만약에 차기작에 자신의 캐릭터를 등장 시키고 싶다면 하드코어 모드로 클리어 하라는 건가?”

“와... 내가 진짜 반드시 하드코어로 클리어 하고 만다.”

“뭐, 파티 멤버만 제대로 맞추면 몬스터 레이드라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다음으로 몬스터 레이드에 도전한 파티들의 모습을 보고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이벤트 참가만을 목적에 두고, 급조된 파티는 그 구색부터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첫 번째와 두 번째 파티의 레이드가 쉽게 느껴졌던 것은 ‘힐러’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는데, 다른 직종에 비해 더욱 키우기가 힘들다보니 꼭 필요하면서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이었다.

결국 전사 넷이서 닥치고 돌격한 세 번째 파티는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 소지한 회복 물약을 다 써버리고도 무리하게 두 번째 스테이지를 도전한 탓에 전멸을 맞이했다.

네 번째는 무려 궁수가 셋에 양손검사가 하나인 극딜 파티로 어느 파티보다 빠르게 스테이지를 클리어 해나갔으나, 결국 세 번째 스테이지의 보스 전에서 홉 고블린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형성했지만, 잡 몬스터이 등장한 순간부터 화망(火網)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 와중에 양손 검사는 자기 혼자 살겠다고 전투에서 이탈하여 구경 중이던 유저들에게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비겁한 놈.”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동료를 버리다니, 쓰레기다.”

“와~ 진짜 첫 번째 파티랑 비교된다. 최악의 팀웍이었어...”

양손 검사 플레이어는 유저들의 원성에 재빨리 가방을 챙겨들고 행사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총 4번의 몬스터 레이드 이벤트가 종료 되고, 나는 유저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묵묵히 단상에 올라섰다.

“오늘도 저희 타마고 샵에 방문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가 준비한 몬스터 레이드 이벤트는 즐거우셨나요?”

생각보다 다들 만족한 표정에 나는 웃으며 뒤에 말을 이었다.

“드래곤 엠블렘 2 ?부러진 성검과 암흑의 시대- 는 다음 달 2월 20일 정식 발매 예정입니다. 최대한 많은 유저분들께서 동시에 게임 즐겨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충분한 수량을 준비하고 있으니 부디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오~!!”

“마지막으로 게임 출시와 더불어 드래곤 엠블렘 전용 샵 또한 계획 중이니 차후 파티 플레이에 어려움을 느끼시거나 동료를 원하시는 분은 언제나 편하게 방문해주길 바랍니다.”

마이크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타마고 샵에 모여 있던 유저들로부터 박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한 유저가 무대에서 물러나려던 나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히로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시나리오가 있나요!?”

그러자 단숨에 박수소리가 줄어들더니 모두가 숨죽여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거 참. 질문이 좀 날카로운데?

나는 다이렉트로 날아온 질문에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미리 밝혀드리자면 이번 드래곤 엠블렘 2는 총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부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게임을 클리어 하신 분들은 한 가지 선택을 하게 되실 겁니다.”

“그, 그것도 하드코어 모드를 클리어 한 유저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가요?”

“아뇨. 라이트 유저분도 엔딩을 보고나면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단.. 하드코어를 클리어 한 플레이어와 차이가 있겠지요.”

“아... 이러면 하드코어 모드 도전을 안 해볼 수가 없잖아...”

“모든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너무 맹목적으로 하드코어만을 노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충분히 노멀 모드를 즐기신 후 나중에 하드코어 모드에 도전하셔도 늦지 않으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마지막 멘트를 마친 나는 최대한 유저들 입장에서 의미심장해 보이도록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여유 있게 웃어 보인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드래곤 엠블렘 발매를 목전에 둔 어느 날..

유키네 집의 저녁 식사에 초대된 나는 오랜만에 그녀의 집을 찾았다.

그래도 처음 인사를 드리던 날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진정된 분위기에서 즐거운 식사를 마친 나는 유키 어머님께서 후식으로 내온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즐겼다.

“그렇군. 자네도 여러모로 바빴구만~ 난 또 그 후로 우리 집에 안 와서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나 했지~”

굉장히 밝은 성격인 유키의 아버지 이시카와씨는 호탕하게 웃어 제쳤다.

“아빠도 참..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준혁씨는 그런 사람 아니래두요.”

“알았다. 알았어~ 역시 딸 2호기가 나를 닮아 사람 보는 눈이 있구만, 그에 반해 초호기는 영...”

초호기와 2호기라니 전에도 느꼈지만, 딸들을 저렇게 부르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시카와씨가 뜨거운 녹차를 삼키며 곁눈질로 유키의 언니인 유코씨를 흘겨보자, 옆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그 말은 유코가 날 닮아서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하다는 말인가요?”

“풉!! 아니 여보.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러자 유코의 어머니는 나를 향해 살포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많이 들어요~ 과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어떻게 인연이 닿아 이번에는 내 딸아이가 한국인과 사랑에 빠진 건지. 이런 것도 유전인가?”

유키는 어머니의 말에 얼굴이 빨개지며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허이구~ 이 녀석아 준혁군이 그렇게 좋아?”

유키는 어머님의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를 지켜보던 아버님이 두 눈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 시집 안가고 평생 나랑 살겠다더니, 순 뻥쟁이였구나.”

“아이~ 아빠 또 왜 그래요~”

“그냥 갑자기 네가 시집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 막 허전하고..”

“유키야, 네 아빠 또 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키의 눈에도 금세 눈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까까진 그렇게 밝고 해피하더니 순식간에 새드물로 바뀌었네...

전에도 느꼈지만, 이 가족은 상황 전개가 너무 빨라.

&

그날 밤. 전과 마찬가지로 차를 세워두었던 주차장까지 유키가 나를 배웅해 주었다.

“미안해요. 식사 초대해 놓고 아빠랑 같이 울기만 했네요..”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하아~ 그러고 보면 나중에 준혁씨네 부모님도 어서 만나 봬야 할 텐데. 한국에 언제 갈 건가요? 지금은 너무 시기가 바쁜가?”

< EP. 27 : 몬스터 레이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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