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55화 (155/252)

< EP. 26 : 태동(胎動) (3) >

-이거 혼자서는 퀘스트 실행이 안 되는데요? 레벨 10을 달성한 4명의 유저가 필요하다고 나옵니다.-

대화방을 바라보던 나는 허브차를 한 모금 삼키며 피식 웃어 보였다.

-어? 그런데 어떻게 4명이 될 수 있죠? 동봉된 데이터 케이블은 2인용인데?-

아차차.. 나는 한 유저의 질문에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 오늘 타마고 샵 직원들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 주말에 샵에서 4인용 케이블을 따로 판매 한다고 합니다.-

-진짜요? 우와아아~!! 그럼 진짜로 4명이서 던젼을 공략할 수 있는 건가?-

-대박이다. 4명이 모여서 같이 게임 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끝내주네...-

-4인 파티라... 그러고 보니 사이킥 포스도 요새 클랜원 모집하던데?-

-8인 배틀이지만, 태그 형식으로 2:2나 4:4로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많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게임 센터에서 사이킥 포스 인기 장난 아닙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스파2나 소니크가 인기 가장 많았는데...-

-스파2도 재밌지만, 최근에 SMK에서 나온 ‘이리의 전설’ 도 재밌더군요.-

-그 빨간 모자 쓴 주인공 나오는 거 말 하시는 거죠? 테리였나?-

-스파2에 비해 캐릭터 마다 나름 스토리도 있고, 기술 쓰는 게 조금 어렵긴 하지만, 캐릭터가 커서 그런지 시원시원한 맛이 있더라구요.-

어느새 대화의 주제가 자연스레 대전 격투 쪽으로 넘어가자, 나는 잠시 의자에

기대어 굳어진 뒷목을 주물렀다.

“나도 잠깐만 플레이 해볼까?”

커뮤니티 회원들과 대화를 중단한 나는 허브차 옆에 놓아진 라온을 집어 들었다.

띠링~ 기분 좋은 효과음과 함께 RAON이라는 글자가 화면 정중앙에 떠오르고, 잠시 후 회색 화면에 현재 플래시 카트리지에 담겨 있는 게임 정보가 떠올랐다.

슬램덩크와 드래곤 엠블렘 II 체험판이라 쓰여 있는 목록 중에서 드엠 2를 선택한 나는 가볍게 손가락을 쥐었다 펴며 게임에 집중했다.

일단 내가 사용하는 캐릭터는 복사(服事)라고 하는 사제로 올라가기 전의 예비 보조사였다.

현재 내가 플레이 중인 캐릭터의 레벨은 9. 퇴근 후에 집에서 짬짬히 플레이한 결과였다.

성직자 계열의 캐릭터는 전투로 경험치를 쌓기가 너무 어려워 보통은 채집 퀘스트를 통해 경험치를 벌어들인다. 그래서 다른 직종 보다는 레벨 업이 매우 더딘 편이었다.

사실 드래곤 엠블렘의 그래픽 수준은 아직 내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과거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들 중에 비슷한 느낌의 그래픽을 찾아보라면,

글쎄... 오거 택틱스(Ogre Tactics) 정도가 되려나?

물론 조그만 화면 안에 오밀조밀 표현된 도트 그래픽은 확실히 경쟁 기종의 그래픽과는 비교를 달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월등하게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래픽 부분에서만 따져 보자면... 그래 슈퍼 패밀리의 황혼기 시절에 등장했던 게임들과 흡사한 그래픽이랄까?

드래곤 엠블렘2에서 싱글 플레이시에는 이벤트 동료나 용병을 고용하지 않을 경우 적과 1대 다수로 전투를 진행 해야 했기에 사제는 언제나 용병을 거느리고 다녀야 했다.

드래곤 엠블렘 2는 직업에 따라 플레이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플레이 중인 사제 캐릭터는 정말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직종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파티 플레이에서는 없어선 안 될 캐릭터지...’

전투 맵에서 사제는 버튼을 누르는 타이밍에 따라 스킬의 회복 량이 달라지기에 어느 정도 컨트롤을 요하는 부분도 있었다.

‘퀘스트 한 두개 정도면 나도 레벨 10 찍겠는데?’

나는 어느 정도 경험치를 보장해 주는 중급 퀘스트를 수주한 나는 재료를 찾기 위해 요정의 숲을 헤매었다. 적과의 전투 시에는 나는 내가 고용한 용병들의 뒤에 숨어 그들을 회복 시켜주기 바빴다.

직접 캐릭터를 이동시켜 곁에 다가가 Y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회복 스킬을 사용 할 수 있었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용병 하나라도 죽으면 그대로 전멸에 이를 수 있었기에 나는 아군의 HP를 계속 주시하며 체력이 절반이상 달지 않도록 꾸준히 회복 스킬을 넣어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의뢰 받은 퀘스트 아이템을 모두 채집한 나는 용병들을 이끌고 마을로 돌아가 퀘스트를 완료했다.

빠바바밤~!!

퀘스트 종료와 함께 레벨 업을 알리는 효과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화면 위에는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마커스가 회복술사로 전직하였습니다.-

나는 캐릭터 레벨 10을 찍자마자, 다시 커뮤니티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도 방금 레벨 10 찍었습니다.-

-오오!! Mr. k님. 무슨 캐릭터로 전직 하셨나요.-

-회복술사입니다. 포지션은 힐러네요.-

-대체 복사(服事) 어떻게 키우셨어요? 매번 퀘스트 마다 용병을 고용해야 해서 키우기 엄청 어렵던데...-

-그럼 이 방에만 레벨 10을 찍은 유저가 셋이나 있다는 거네요. 아씨... 나도 빨리 키워야지.-

그때 방패기사로 전직한 유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Mr. k님. 혹시 도쿄 거주자시면 이번 주말에 시간되시나요?-

-네. 뭐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만?-

-이번 주말에 데이터 케이블을 구입할 겸 타마고 샵에 가려고 하는데, 만약에 시간이 되신다면 함께 홉 고블린 던젼에 도전해 보시겠어요?-

그러자 양손검 전사가 서둘러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도 도쿄에 살고 있습니다. 저도 참가하고 싶네요.-

-엇... 벌써 3인 파티가 결성 된 건가요? 그럼 아직 한자리 남아있는 거죠?-

-우와~ 혹시 구경 가도 되나요?-

-저도요. 저도 구경하고 싶습니다.-

대화방 분위기는 즉석에서 파티를 꾸리는 우리들 덕분에 다시 드래곤 엠블렘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모모이로’라는 닉네임의 유저가 대화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색다른 혜안(慧眼)을 제시했다.

-그런데 구경이고 자시고, 저희들 이번 주말에 당연히 타마고샵 가야하는 거 아닌가요? 이러다 4인용 데이터 케이블도 다 팔리면 어떡해요? 일단은 하나라도 사서 들고 있어야 나중에라도 파티 결성해서 도전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헐... 그 생각은 못했네. 모모이로님 천재 신 듯.-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이번 주말에 타마고샵에서 정모합시다. 시간은 타마고 샵 오픈 시간. 어때요?-

-오? 그럴까요? 사실 이전부터 어떤 분들인지 궁금했었는데~-

-전 찬성입니다. 검은색 아디다스 가방에 흰색 모자 쓰고 가겠습니다.-

-전 그럼 눈에 잘 보이게 빨간 점퍼에 녹색 비니 쓰고 있겠습니다.-

하긴, 아직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 온라인 모임은 보통 이렇게 진행 했었지.

그 날 입고 갈 옷이나 악세사리를 미리 알려 준다던가, 아니면 자신의 체형을 알려준다던가...

그때 방패 기사 유저가 나에게 물었다.

-Mr. k님은 어떤 복장으로 오실 건가요?-

-저는... 타마고 샵 앞에 모여 계시면 알아서 찾아가겠습니다.-

-아, 하긴 뭐 입구에 3~4명만 모여 있어도 금방 알아 볼 수 있겠죠?-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그말에 동의를 표했다.

-재밌겠네요. 기대 됩니다!! 혹시 그 날 드래곤 엠블렘 레벨 10까지 맞추고 오신 분들은 따로 파티 만들어서 도전 하죠.-

-현재 레벨 8인데, 분발 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러다 죽으면 슬프잖아요.-

-그런데 우리 커뮤니티에 여자 분도 계신가요?-

거침없이 발랄한 그의 질문에 거짓말처럼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

그리고 며칠이 지나 운명의 날이 밝았다.

샤워를 마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나는 집을 나서기 전 준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음이 지난 뒤 잠에 취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지금 바로 타마고샵으로 나와.”

“으.. 응? 준혁이냐?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다짜고짜 타마고 샵으로 나오라니...”

“오늘 타마고 샵에 재미난 이벤트가 열리거든. 그러니 잘 촬영해서 잡지에 좀 실어줘.”

“지금...? 안 돼. 네 녀석이 만든 드래곤 엠블렘 2 때문에 연초부터 계속 야근 해서 피곤해 죽겠다.”

“아, 그렇구나. 알았어. 그럼 다른 잡지사에 연락해볼게. 푹 쉬어라.”

“······잠깐.”

“응?”

“대체 무슨 이벤트인지 들어나 보자.”

“아, 오늘부터 타마고 샵에서 라온에서 사용하는 4인용 데이터 케이블을 팔 거거든.”

“케이블? 고작 케이블 때문에 나를 부르는 거냐?”

“아니. 그걸로 드래곤 엠블렘 체험판에서 레벨 10 찍은 유저들이랑 파티 플레이 할 건데?”

“나도 어제부로 레벨 10 찍었다. 지금 당장 갈게.”

“······.”

참 다루기 쉬운 녀석이야...

잠시 후. 차를 끌고 타마고 샵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아직 오픈 전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붉은 점퍼에 녹색 비니를 쓰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가게 오픈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왔네.’

나는 곧바로 아는 척하기 보단 일단은 타마고 샵 직원용 출입구를 통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 강준혁 부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부장님~”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혹시 배틀존 세팅은 끝났나요?”

“네. 어제 저녁에 폐점하고 준비해두었습니다.”

미야자키씨 옆에 서있던 남자 직원이 자신있게 웃으며 배틀존을 가리켜 보였다.

직원의 손길을 따라 눈을 돌리니, 어제까지 배틀존으로 쓰이던 장소는 드래곤 엠블렘 전용으로 4개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훌륭하네요.”

“테이블 마다 소형 카메라를 연결해 놓아서 플레이 화면을 곧바로 스크린에 송출할 수 있게 세팅해 두었습니다.”

“좋네요. 그런데 이거 참 이런 행사 한번 할 때마다 배틀존 디스플레이를 계속 바꿀 수도 없고...”

그러자 어느 새 내 곁에 다가온 부점장 미야자키씨가 나에게 말했다.

“드래곤 엠블렘 2의 파티 시스템이 활성화되면 더 큰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될 거 같은데 어쩌죠?”

“안 그래도 방법을 모색중이예요. 이곳은 역이랑 가까워 목도 좋고, 인테리어 공사를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니, 차라리 조금 떨어진 곳에 드래곤 엠블렘 전용으로 분점을 내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드래곤 엠블렘 전용 샵이라, 왠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 두근 설레이네요.”

그런가...? 난 거기서 레이드 뛰다가 까딱 잘못해서 파티가 전멸하면 서로 멱살 잡고 싸울까봐 겁나는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박수와 함께 직원들을 독려 했다.

“자~ 그럼 이제 오픈을 시작하죠.”

“네~ 부장님.”

직원들의 힘찬 대답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셔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밝은 아침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가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손님들이 벌써 기다리고 계시네요?”

미야자키씨의 말에 나는 빙긋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 손님들이에요.”

나는 셔터가 올라가자마자, 가게 내부를 두리번거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걸어가 정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말했다.

“게임 커뮤니티 ‘크리티컬’ 회원님들이시죠?”

나의 질문에 붉은 점퍼를 입은 20대 초반의 남자가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그의 질문에 여유롭게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Mr. k입니다.”

“아~ Mr. k님이셨... 네에!?”

“반갑습니다. 크리티컬 회원님들.”

< EP. 26 : 태동(胎動)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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