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25 : NEGA의 반격 (3) -추가본 수정- >
“기대 하셔도 좋으실 겁니다.”
응. 당신도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나와 스즈키씨는 양손을 맞잡은 채 서로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잠시 후. NEGA의 제작 발표회는 굉장히 호화로운 분위기 속에 시작되었다.
가정용 콘솔 업계에서는 민텐도에 많이 뒤처져 있고, 최근에는 라온에게 2인자의 타이틀까지 내줘야 할 판이지만, 아직 아케이드 산업만큼은 아무도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NEGA의 자존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와 카와구치씨는 펜타곤의 명판이 세워진 테이블에 앉아 회장의 분위기를 둘러보았다.
“호화로운 장내 분위기와는 다르게 서드 파티의 참석률이 저조한 편이네요.”
“아무래도 민텐도 쪽에 충성하는 회사가 많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저조할 수밖에요.”
“우리도 서드 파티 회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보급률이 민텐도에 한참 못 미치는 터라. 선뜻 넘어오는 회사가 드물더군요.”
런칭 이후, 2년이 지나고 슈퍼 패밀리의 기기 보급률은 차세대 콘솔 중 85%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2위인 NEGA 드라이브가 9%. 라온은 그 뒤를 이어 6%로 3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로열티가 비싸더라도 이 쪽 업계는 기기 보급률이 모든 걸 말해주는 세계이니까.
이미 일본에서만 100만대가 넘게 깔린 슈퍼 패밀리로 게임을 출시하느냐, 이제 갓 태어나 8만대를 겨우 넘긴 라온으로 게임을 출시하느냐...
이미 답은 뻔히 나와 있었다.
그때 장내 조명이 살짝 어두워지며 NEGA를 대표하는 게임 디렉터인 스즈키씨가 단상에 올라왔다. 흐음, 슬슬 시작하는 건가?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와중에 저희 NEGA의 게임 제작 발표회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장내를 둘러보던 스즈키씨는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우리 게임 업계는 큰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고객인 게이머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민텐도라는 공룡 기업의 횡포를 말이지요.”
음.. 시작부터 저런 식으로 공감대를 얻어 내려는 발상은 좀 위험한데?
게임 회사는 오직 게임으로만 승부해야한다.
재미있는 게임이 있다면 오직 그 게임 하나만 바라보고서라도 콘솔을 구매하는것이 게이머들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퍼스트 파티가 발매하는 독점 게임들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먼 미래에서도 모든 서드 파티을 잃은 민텐도의 콘솔을 오직 마리지와 카린의 전설 시리즈만 믿고 콘솔을 구매하는 팬 보이들이 있었을 정도니까.
“현재 민텐도는 서드 파티들에게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디오 게임을 사랑하는 게이머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가고 있지요. 이 악순환의 연쇄 고리를 끊기 위해선 이 자리에 계신 모두가 힘을 합쳐 민텐도에 대항해야 합니다.”
하지만 회장의 분위기는 펜타곤 때와는 달리 굉장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왜냐고? NEGA의 행사장에 참여한 서드 파티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지.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NEGA의 세컨드 파티들이다. 그것도 여차하면 그 자리마저 박차고 민텐도 쪽으로 붙고 싶어 하는 회사들도 더러 보였다.
그만큼 훌륭한 게임을 만들어 놓고도 판매량이 저조한 작품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현재 NEGA의 세컨드 파티를 유지하고 있지만, 차후 민텐도로 넘어가는 ‘성검 란그릿사’의 제작사 ‘데사이야’가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라 볼 수 있다.
펜타곤 소프트의 제작 발표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누구도 펜타곤에서 새로운 기종의 콘솔 발표를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잘나가는 게임 회사의 제작 발표회인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수많은 서 드 파티들은 아무 부담 없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만약에 펜타곤이 발표회 전에 콘솔을 만들고 있다고 대놓고 선전 했다면, 민텐도의 눈치를 보는 서드 파티들이 그 만큼 모였을 리 만무하다.
스즈키씨는 자신의 예상보다 차가운 회장의 반응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카와구치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잘 못하다간 되려 역풍 맞겠는데요?”
“오늘 이 자리는 단순한 제작 발표회가 아니니까요. 세컨드 파티들 입장에서 오늘은 주주총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NEGA 드라이브를 믿고 계속 게임을 만들어도 될지 판단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스즈키씨는 싸늘한 행사장의 반응을 환기시키기 위해 서둘러 프로젝터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와 동시에 무대 중앙의 새하얀 스크린에 현재 북미와 유럽 시장의 NEGA 드라이브의 판매 수치가 떠오르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헐... 소니크 껴주더니 많이도 팔아 재꼈네...’
“북미에서 NEGA 드라이브가 저 정도일 줄이야..”
“그러게.. 한 몇 만대 더 나간 줄 알았더니, 슈퍼 패밀리랑 거의 동급 수준이잖아.
아니, 오히려 조금 더 앞서고 있는 건가!?”
그제서야 스즈키씨의 표정은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다시 자신만만한 미소로 돌아왔다.
“보시다시피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NEGA 드라이브는 어제까지 약 250만 대가 팔렸습니다. 사실 경쟁사인 민텐도의 슈퍼 패밀리 판매량보다 조금 더 앞서고 있지요.”
“오오.. 굉장한데?”
“이런 판매 수치가 가능했던 것은 NEGA 드라이브의 정가를 낮추며 현재 아케이드 센터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소니크 더 헤지혹’을 번들 타이틀로 제공했던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이었습니다.”
NEGA 드라이브의 판매 그래프는 확실히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민텐도의 슈퍼 패밀리가 이토록 판매 경쟁에 밀려 본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카와구치씨 역시 NEGA 드라이브의 판매량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할 정도였다.
“이거.. NEGA에서 은근히 치고 나가는데요?”
“…….”
나는 묵묵히 팔짱을 낀 채 스즈키씨의 발표 내용에 집중했다. 곧이어 그는 술렁이는 장내는 진정 시킨 뒤 말을 이었다.
“NEGA 드라이브의 반격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럼 이어서 뛰어난 연산 처리 CPU의 이점을 살린 새로운 게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만나보실 게임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스즈키씨가 인사와 함께 단상에서 물러서자 본격적인 신작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먼저 화면에 등장한 게임은 NEGA 드라이브를 대표하는 게임 중에 하나였다.
샤이닝 프레셔 ?신들의 유산-
전작에서 던전 탐험 RPG로 큰 인기를 끌었던 샤이닝 프레셔의 두 번째 작품은 장르가 SRPG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전투 시 주인공 캐릭터의 뒷모습을 사선으로 비춰주며 적과 대치중인 원근감을 표현해내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라? 샤이닝 프레셔가 원래 SRPG였나?”
“그러게 장르를 바꾼 것 같은데?”
새롭게 단장한 샤이닝 프레셔의 모습에 장내의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저 전투 구도를 보니 어릴 때 PC로 즐겼던 용의 기사2 가 생각나네..
나는 천천히 턱을 쓰다듬으며 말없이 샤이닝 프레셔의 데모 영상을 감상했다.
이윽고 준비된 데모 영상이 끝나고 발매일에 대한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발매일 1992년 3월 22일.-
‘이거 드래곤 엠블렘 2와 발매일이 얼추 비슷하겠는데?’
뒤이어 내가 익히 알고 있던 NEGA 드라이브 전용 게임들의 데모 영상 몇 편 더 흘러 나왔다. 그중에 반응이 좋았던 것은 게임 센터에서도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베어 너클’ 과 NEGA의 대표게임 중에 하나인 ‘시노비’였다.
소수 정예라고 표현할 수 있는 민텐도 퍼스트 게임과는 달리 아케이드 게임의 이식을 통해 수많은 자사 게임을 거느리고 있는 NEGA는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게임이 꽤나 많았다.
특히 마지막에 NEGA 드라이브용 ‘황금 도끼2’ 가 공개 되었을 때는 행사장 안의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라 올랐다.
“NEGA가 내년에 크게 한번 터뜨려줄 모양이군.”
“이거 기대 되는데?”
스즈키씨는 회장 분위기에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대를 밝혔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내년에 출시될 게임들의 데모 영상이었습니다.”
환호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회장을 뒤덮자, 나 역시 묵묵히 스즈키씨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깜짝 발표를 하나 하려 합니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행사장은 스즈키의 발표에 또 한 번 함성이 쏟아졌다.
“최근 저희 NEGA와 협의 중인 새로운 서드 파티 게임에 대한 정보입니다. 아직 그들과 최종 협의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어떻게든 저희 NEGA로 끌어 들이기 위해 노력중인 작은 소프트 회사의 작품입니다. 지난 달 패미통신에게 간단히 소개 된 적이 있죠?”
그러자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준페이가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외쳤다.
“설마!? 트라이포스 소프트?”
그러자 스즈키씨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역시 패미통신 기자 분이시군요. 제목은 아직 미정입니다만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스즈키의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장내가 어두워지자, 옆에 있던 카와구치가 나에게 귓속말을 걸어 왔다.
“이건 좀 충격인데요? 저희도 트라이포스 소프트와 협의 중이었는데, NEGA에서 미리 손을 써두었을 줄이야..”
나는 카와구치씨의 말에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일단 지켜보죠.”
잠시 후. 화면에 밝은 햇살이 비치며 비가 내리는 마을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판타지 분위기의 RPG 게임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게임들과 별로 다른 점은 없었다. 단지 조금 더 그래픽이 화사하달까?
하지만 잠시 후. 전투 장면에서 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 몰랐다.
“뭐야, 저거?”
“설마 전투에서는 캐릭터를 직접 조작할 수 있는 건가”
방패와 검을 들고 있는 기사가 좌우로 움직이며 직접 적과 부딪혀 싸우는 모습에 사람들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렇게 전투시에 횡스크롤을 이용해 대전을 하는 게임은 전에도 여러 차례 본적이 있었지만, (예를 들어 카린의 전설2 라던가) 이토록 깔끔하게 전투씬을 구현한 게임을 본 적이 없었다.
화면 안에 등장한 전사는 손에 든 검을 연격으로 휘두르며 독특한 전투씬을 선보이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몬스터를 향해 달려든 전사가 점프와 함께 힘껏 검을 내려치자, 동료로 보이는 빗자루를 타고 있는 여마법사가 뒤에서 파이어 볼을 날리며 그의 공격 보조 해주었다.
자신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골렘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낸 전사가 데미지를 입자, 이번엔 승려복을 입은 여사제가 곧장 그의 HP를 회복 시켜주었다.
이 모든 전투 애니메이션이 횡스크롤 기법으로 하나의 전투 씬에서 모두 이루어지자, 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흔히 이시대의 RPG 게임이라면 드래곤 워리어나 파이널 프론티어와 같은 턴제 형식의 전투가 일반적이었는데, 지금 화면에 보여주는 전투 모션은 그냥 액션 게임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케이드 게임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음성 시스템의 도입은 사람들을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점프 공격과 함께 연격으로 오른쪽 구석으로 적들을 몰아세우던 전사가 왼쪽에서 다가오는 떨어진 적에게 검기를 쏘아내며 외쳤다.
“폭풍검!!”
“오오오!! 음성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RPG지만 독특한 전투씬을 선보인 작품은 천천히 화면이 페이즈 아웃 되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상으로 트라이포스 소프트에 대한 깜짝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그러자 패미통신 기자 준페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스즈키씨에게 물었다.
“트라이포스 소프트가 확실히 NEGA 드라이브 플렛폼으로 제작 발표를 한 것입니까?”
스즈키씨는 준페이의 질문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대답했다.
“아직 트라이포스 소프트에서 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여드린 영상은 확실히 NEGA 드라이브용으로 포팅 된 실기 영상임을 알려드립니다.”
NEGA 드라이브용으로 포팅 되었다는 스즈키씨의 대답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모양이었다.
카와구치씨 역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미 저 정도 배틀씬을 완성 했을 정도라면 트라이포스 소프트는 거의 NEGA 드라이브 쪽으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글쎄요. 그건 아직 모르죠.”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스즈키씨를 향해 살짝 손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스즈키씨.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질문 좀 해도 될까요?”
< EP. 25 : NEGA의 반격 (3) -추가본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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