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24 : 동전을 집어 삼키는 귀신 (6) -5권 끝- >
“우와아아악!!”
미처 몸을 풀어볼 겨를도 없이 거대 보스의 레이져 한방에 순식간에 절명한 준페이는 레버를 움켜쥔 채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잠시 화면이 새하얗게 변한 뒤. 가운데 있던 건물이 주저앉으며 보스 몬스터가 출현했다.
거의 건물하나와 맞먹는 크기의 몬스터는 불교신 천수보살(千手菩薩)의 모습을하고 있었다.
“허억!! 저게 뭐야!?”
혹시 어릴 적 오락실에서 꽤나 이름을 날린 게임 중에 ‘서유항마록’이라는 게임을 기억하는가? 일부 오락실에서는 영문판 제목인 ‘차이나 게이트’ 기판을 돌리기도 했다.
방금 등장한 천수보살(千手菩薩)은 그곳에서 모티브를 따온 몬스터였다.
물론 스케일 자체가 엄청 크긴 하지만..
녀석은 등장과 동시에 사방으로 탄막을 쏘아 대며 공중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보스의 출현과 함께 그동안 숨어 있던 폭탄마 로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급 몬스터에게는 그의 특수 스킬인 ‘은신’이 통하지 않았기에 제법 노련하게 플레이를 주도하던 폭탄마 로이는 스킬을 해체하고 스테이지 외각으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천수관음은 근처에 있던 로이를 쫓는 과정에서 그가 설치한 폭탄들을 모조리 건드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상당히 큰 타격을 입었다.
스테이지에 남겨진 우리 넷은 각자 가지고 있는 원거리 탄막을 이용해 천수보살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게임의 형태가 자연스레 대전 액션에서 슈팅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화려하게 치고 박던 캐릭터 들이 공통의 적을 향해 탄을 쏘아대자, 행사장의 모인 사람들의 수근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와아... 스케일 대박이다..”
“이런 게임 본적도 없어..”
“아~ 시연 모델에 자리 비었는데, 나도 한 판만 해볼 수 없나.”
나는 천수보살이 쏘아대는 레이저 빔을 요리조리 피해내며 위급할 때는 카운터 베리어를 이용해 녀석이 날린 탄막을 되돌려 주었다.
‘조금만 더...!!’
어느새 주변에서 수근 거리던 유저들의 소리도 차츰 잦아들고, 모두가 천장에 걸 린 스크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포텐킹은 느린 이동 속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천수보살에게 달라붙어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천수보살의 몸 여기저기에 금이 가며 파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과광!! 로이는 보스 몬스터에게서 도주하면서도 끈임 없이 폭탄을 뿌려대고 있었다.
‘지금이다!!’
나는 레버를 앞으로 두 번 튕겨 휘린에게 대쉬를 걸은 뒤 건물 끝을 박차고 힘차게 점프를 시도했다.
아슬아슬하게 천수관음상 머리 꼭대기에 올라탄 휘린은 녀석의 머리에 대고 총구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온화했던 천수관음상의 얼굴 파편이 벗겨지고, 흉측한 몰골이 드러나자 나는 보스 몬스터의 체력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했다.
쩌어엉~!! 이윽고 천수관음의 두개골이 갈아지며 스테이지 여기저기에 아이템이 쏟아져 나왔다.
‘회복!! 회복 아이템은 어디냐!?’
나는 녹색으로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보석을 향해 재빨리 캐릭터를 이동시켰다.
천수관음상이 무너짐과 동시에 게임은 다시 4명의 각축전으로 전환되었다. 회복아이템을 이용해 체력을 140%까지 채운 나는 또 다시 모습을 감추려는 로이를 향해 저격총을 꺼내들었다.
손가락에 착용된 반지를 이용해 자유롭게 화기를 소환하는 휘린의 능력은 각 커맨드에 따라 발동 시키는 무기가 달라졌다.
카아앙!! 순간 은신을 시도하던 로이는 생각지 못한 원거리 사격에 데미지를 입으며 난간 밑으로 떨어졌고, 그 밑에는 유키의 포텐킹이 대기 중이었다.
그 순간 나는 옆에 있던 그녀에게 외쳤다.
“지금이야!!”
“네!!”
보스 전에서 겨우 살아남은 유키의 체력은 21% 온몸이 붉게 물든 상태에서 떨어져 내리는 로이를 향해 초필살기를 시전 했다.
건틀렛에 장착된 폭탄의 스위치를 올리는 포텐킹의 컷인과 함께 폭탄마 로이의 최후가 결정됐다.
“헐.. 대박이다.”
가장 까다로웠던 상대가 사라지자, 남은 상대는 교체 투입된 시연자의 포텐킹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모든 SP 게이지를 쏟아 부어 초 필살기를 날린 유키의 뒤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에겐 더 이상의 체력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나는 재빨리 건물 밑으로 뛰어 내린 뒤 그녀에게도 달렸다.
유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포텐킹에게서 도망치려 했지만, 그녀가 있는 공간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스테이지의 가장 외각이었다.
유키를 향해 아이언 피스트를 준비하는 포텐킹을 향해 아이스 불렛으로 움직임을 멈추려는 찰나..
녀석의 방향이 나를 향해 돌아섰다.
‘함정이었나!? 이대로는.. 멈출 수가 없는데!!’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레버를 한 바퀴 돌리며 카운터 베리어 발동시킨 나는 포텐킹의 아이언 피스트와 정면으로 맞섰다.
콰아아앙!!! 잠시 서로간의 충돌로 인해 포텐킹이 뒤로 주욱 밀려난 반면 휘린은 빛의 속도로 나가 떨어졌다.
‘허억!! 한방에 체력이 3%남았다..’
아무래도 녀석을 향해 돌진하던 가속력 덕분에 카운터가 제대로 적용이 된 모양이었다.
‘이대론 스치기만 해도 죽을 거 같은데?’
그때 유키의 포텐킹이 움직였다.
콰아앙!! 나의 카운터 베리어에 대한 충격으로 뒤로 밀리는 포텐킹을 향해 아이 언 피스트가 작열한 것이다.
사이킥 포스에서는 적의 배후를 공격할 경우 120%의 데미지가 들어갔기에 순식간에 체력이 30% 이하로 떨어졌다.
마지막 남은 플레이어는 유키의 근접 공격과 나의 원거리 사격에 제물이 되어 쓰러졌다.
“끝났다...”
긴 전투를 끝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내가 레버를 내려놓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야~!! 멋지다. 진짜 혼자서 다 해치웠네. 나도 정식 출시되면 휘린 써봐야지.”
“시연 팀이 팀워크만 중시했으면 이겼을 텐데 아쉽네..”
그러자 플레이 시작과 동시에 목숨을 잃은 준페이 녀석이 드디어 제정신을 차렸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손에 들었다.
“아, 최고의 팀플레이를 보여준 준혁씨와 이시카와씨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
짝짝짝~ 나는 쏟아지는 유저들의 박수 속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마쳤다.
그 때였다.
어느새 휘린에게 다가온 유키의 포텐킹이 가볍게 주먹 한방을 날리자, 체력이 3% 남아 있던 그녀는 포텐킹의 주먹 한방에 두 자루의 권총을 바닥에 남기고 사라졌다.
“어!? 뭐지? 포텐킹이 휘린을 없애 버렸어?”
-WINNER IS POTENKING-
유키의 돌발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유키는 순진한 표정으로 유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음? 저도 엄연히 시연 팀 중에 한 사람인데, 모르셨어요?”
“어라? 듣고 보니 그러네?”
“헐.. 완전 어부지리(漁夫之利)네? 반전이다.”
아니 잠깐, 이건 어부지리 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아냐?
예상치 못한 상황에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유키는 혀를 반쯤 쏙 내밀며 나에게 말했다.
"혹시, 사이킥 포스 피규어 말고 다른 거 부탁해도 되요?"
유키의 밝은 미소에 웬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나는 바짝 마른 입술을 떼었다.
“뭔...데?”
“여기에서 저에게 정식으로 프로포즈 해주세요.”
“…….”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우와아아아아~~~”
유키의 대담한 부탁에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야~ 그러고 보니 저 두 사람 드래곤 엠블렘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다며? 그런데 이번엔 리메이크 행사장에서 결혼 발표하는 거야?”
“인연이네~ 인연이야.”
“캬~ 여자가 저렇게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청하다니, 뭔가 뭉클한데?”
“그러고 보면 저 분 하세가와 미유키 성우기도 하잖아? 왜... 왠지 내 여자 친구를 빼앗긴 기분이...”
그때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준페이가 나에게 말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서 보니 부럽다 자식아.
결혼식 사회는 내가 봐줄게.”
“나... 꼭 여기서 프로포즈 해야 하나?”
“응. 멍석 다 깔아 놨는데, 유키씨에게 창피 줄 셈이야? 지금 그녀는 여기 보인 사람들에겐 여신이나 마찬 가지야. 성격 착하지. 게임 좋아하지. 든든한 직장도 있지. 거기다 하세가와 미유키의 성우라고.”
마지막에 설득 포인트가 살짝 빗나간 느낌이 드는데?
하지만 행사장에 빼곡히 모인 유저들을 바라보니, 여기서 유키의 요청을 거절했다간 밟혀 죽기 딱 좋은 각이다.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나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오오~”
“좀 조용히 좀 해 봐요.”
“쉿. 쉬잇..”
그 순간 수근 거리던 소리가 차츰 잦아들더니 주변이 고요해졌다.
이 사람들. 단결력 좀 보소..
펜타곤 소속 여직원들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부러운 눈길로 유키를 바라보았다.
“유키씨 부러워..”
어디선가 미야자키씨의 목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유키 역시 막상 이 순간이 다가오니 조금은 창피한 모양인지, 두 볼에 발그레 홍조를 띄고 있었다.
“워낙 갑작스러운 청혼이라. 반지도 준비 못했는데...”
“괜찮아요. 그런 격식보다 준혁씨가 해주는 말이 더 소중하니까. 그러니 어서 말해줘요.”
그녀는 두 손을 뒤로 깍지 낀 채 나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항상 내 곁에 네가 함께 있어줬으면 좋겠어. 사랑해.. 나랑 결혼 해줄래?”
그러자 유키는 살포시 한쪽 발을 뒤로 빼내고, 손가락 끝으로 치마의 양쪽 끝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나에게 허리를 숙였다.
“기쁜 마음으로 당신의 청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야아아~~”
“축하 합니다~”
“뭔가, 방금 굉장히 가슴이 찡했어..”
“부럽다. 정말 부러워.. 어디서 저런 여자를..”
1991년 11월 21일.
드래곤 엠블렘으로 인해 맺어졌던 유키와의 인연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
-유저를 괴롭히는 악마의 게임 디렉터. 천사에게 청혼하다!!- “하하~ 준혁씨 이거 봐요~ 준페이씨가 패미통신에 우리 기사를 실어줬어요~”
“이 녀석이..”
“왜요~ 아주 정확한 표현인데? 준혁씨도 라온 발표 때 스스로 인정했잖아요. 유저들 괴롭히는 거 즐긴다고~”
데이트 장소로 나오던 중 서점에서 패미통신을 사온 유키는 빙글 벙글 웃으며 잡지를 펼쳐보았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한모금 삼켰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에 순백으로 빛나는 다이아가 영롱한 빛을 발했다. 그것은 가느다란 그녀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끼워진 반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지는 마음에 들어?”
“마음에는 들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서 부담스러워요..”
“그래도 디자인은 그게 가장 세련 됐더라.”
“그건 그렇지만..”
유키는 자신의 손가락에 걸린 반지와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이번 주말에 저희 부모님 뵈러 오실 거죠?”
“그래야지. 사이킥 포스의 시연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현재 공장에 기판 제작을 의뢰한 상태니까.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덕분에 개발팀 인력이 죽어나긴 했지만, 사이킥 포스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 덕에 탄생한 희대의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때 유키가 궁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어라? 그럼 드래곤 엠블렘 II 는요? 그것도 올 겨울 출시 아니었어요?”
“아, 그게 말이지...”
나는 유키가 사온 패미통신을 펼쳐 라온 관련 소식란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드래곤 엠블렘 II 더 나은 퀄리티를 위해 내년 봄으로 발매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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