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43화 (143/252)

< EP. 24 : 동전을 집어 삼키는 귀신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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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집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불러 펜타곤 소프트의 숙소 근처에 도착한 나는 편의점 앞에 설치된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렇게나 무더웠던 여름 날씨도 한풀 꺾여 이젠 제법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밤공기가 굉장히 기분이 좋게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캔 맥주를 먼저 마실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모리타와 하야시가 함께 숙소에서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장님.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냐.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쉬는데 갑자기 불러내서.”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유지하며 모리타와 하야시에게 캔 맥주를 건네자, 눈치 빠른 하야시가 미심적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장님 또 무슨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시려고 이렇게 친절하세요?”

“아, 눈치 챘어? 역시 하야시는 눈치가 빠르네..”

“부장님이랑 저희가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내가 없는 거리’ 때도 갑자기 불러내시더니 뜬금없이 히로인 별로 시나리오 만든다고 작업량을 3배로 늘리셨잖아요.”

하야시의 일침에 나는 괜스레 가슴이 뜨끔했다.

모리타는 아까부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부장님이 이렇게 불러내실 땐 재밌는 아이디어가 있으신 게 분명하니 저는 기대가 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하야시가 모리타를 노려보았다.

“그 아이디어 때문에 매번 죽어나는 게 나거든?”

“투덜거리면서도 어차피 다 할 거면서 엄살은...”

“어쭈? 내가 요새 좀 덜 까칠하게 굴었더니, 네가 아주 기가 살았구나?”

한솥밥 먹은 지 3년이 지나니, 둘 다 성격이 조금씩 닮아간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이번엔 대체 어떤 기획을 짜신 겁니까?”

손에 들린 캔 맥주의 뚜껑을 젖히며 하야시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더 삼킨 뒤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리타와 하야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난번 회의 때 한번 이야기 했었지? 사이킥 포스의 배틀 시스템은 거의 완벽한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고 했었지?”

“그렇죠. 스피드를 더 올려보기도 하고, 반대로 낮춰보기도 하고, 탄막 궤도까지 다 수정해 봤는데, 영~각이 안 나오더라구요. 분명히 대전 요소는 확실한데, 스파2 처럼 직접 붙어서 싸우는 게 아니다보니, 멀리서 장풍만 쏘아대는 게임이 되 버린것 같기도 하고,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가 부족해요.”

“근접전 타격의 변수가 부족하지.”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한 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내 말에 하야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켜보였다.

“어.. 어떤 식으로?”

“꿈의 8인 배틀.”

“히이이익!!!”

“우와아~~”

역시 예상대로 캐릭터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와 그 꿈을 실현 시키는 프로그래머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그거 정말 멋진 생각인데요? 일대일 대전만으로도 정신없는데, 8인 배틀이라니 진짜 어마어마 할거 같습니다.”

“자.. 잠깐 만요. 부장님. 제가 보기엔 3~4명 배틀. 아니 솔직히 그것도 어려운데, 8인이라뇨? 굳이 기기를 8대나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게임 센터에서도 너무 많은 기기를 사용하면 반가워하지 않을 것 같은데..”

“흐음. 하야시. 혹시 WWF 보나?”

“헐크호건이나 워리어가 나오는 미국 프로 레슬링 말입니까?”

“맞아. 지난 88년도부터 로얄 럼블이라는 이벤트가 열렸는데, 30명의 레슬러들이 순서대로 링에 올라가 마지막에 링 위에 선 자가 승리하는 룰이지.”

“어차피 그거 짜고 치는 연출 아닙니까? 전 헐크랑 워리어가 맞을수록 더 강해지는 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러자 조용히 하야시의 말을 듣고 있던 모리타가 흥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 연출 아냐!! 실제 격투기라고!!”

“지랄. 실제 격투기 선수가 다잡은 적을 눈앞에 두고 관중석을 향해 옷을 왜 찢냐? 그리고 뭔 다 죽어가던 녀석은 카운트만 외치면 손을 번쩍번쩍 들어? 그게 말이 되냐?”

“격투가의 퍼포먼스와 투혼이지!!”

“…….”

나는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자, 그 쯤에서 그들을 제지시켰다.

“지금 로얄 럼블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냐 아니냐. 그걸 이야기 하자는 게 아니라, 사이킥 포스 역시 로얄 럼블처럼 8대의 기기에서 게이머들이 끝도 없이 도전에 올 거라는 이야기야. 한명의 승자가 오랫동안 기기를 지킬 확률이 희박하고, 누구든지 바로 대전에 참여 할 수 있으니 동전 회전률이 기가 막히겠지. 결론은 게임 센터 사장이라면 두 손 들고 반길 기판이라 이거야.”

모리타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8대의 기기에서 플레이어들이 곧바로 대전에 참가한다. 그거 진짜 엄청난데요?”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맵의 구성이 더 커져야 해.”

“자.. 잠깐 만요. 부장님. 지금 8명의 캐릭터가 싸우게 되면 카메라 앵글은요? 거기다 탄막에 대한 궤도도 수정해야하고...”

“일단 캐릭터가 늘어난 만큼 탄막 수 조정을 다시 해야겠지.”

내가 입만 열면 늘어나는 무시무시한 작업량에 하야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때 쯤. 나는 다 마신 캔 맥주를 살짝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손목시계를 바라보니 어느새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키가 자정에 방송을 보라고 했으니 이제 슬슬 들어가 봐야겠는데?

“자~ 그럼 오늘은 이만 늦었으니, 내일 출근하면 대책을 마련해 보자.”

“네. 저도 일단 들어가서 뭐부터 수정해야 할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요.”

“부장님. 택시 불러 드릴까요?”

“응, 부탁 좀 할게. 모리타.”

“네. 알겠습니다.”

모리타와 하야시가 숙소로 돌아간 뒤, 10분쯤 지났을까? 나는 편의점 앞에 멈춰선 택시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너무 즉흥적으로 생각을 한 게 아닐까 망설여졌지만, 8인 대전이라는 컨셉을 떠올린 순간. 내 머릿속에 ‘사이킥 포스’에 대한 모든 구도가 퍼즐처럼 정확히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케이드 시장은 가정용 콘솔 시장과는 달리 기기를 들여와 수익을 얻는 구조이기에 오직 단 하나의 게임을 위해 만들어지는 아케이드용 기판은 제작 단가 만해도 굉장히 가격이 비쌌다.

‘지금 시기에 대 난투 형식의 배틀 방식이 과연 통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왠지 실패할 거라는 예감은 들지 않았다.

동시에 8대를 전부 구매하는 게임센터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8인 대전의 틀을 만들어 두면 업주들이 알아서 2세트든, 4세트든 자유롭게 구매하게 두면 되는 것이다.

‘일단 아케이드 시장은 지금부터 10년 동안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테니. 제대로 안착만 한다면 큰돈이 될 것이 틀림없다.’

거기다 잘하면, 대전 액션물에 한 축을 세울 수도 있을 테고...

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뜨거운 물로 샤워 후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실에 나왔다.

“아, 벌써 자정이네..”

나름 최신식 브라운관 TV를 향해 리모콘으로 전원 버튼을 누르자, 서서히 TV 화면이 밝아졌다.

“후지 티비가 몇 번이더라..”

채널을 돌려가며 방송을 확인하던 중. 오른쪽 위에 후지 티비의 로고를 확인 한 나는 리모콘을 내려두고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맨션에 들어오기 전 건물 밑에 있는 편의점에서 캔 맥주를 몇 개 더 사온 나는 티비를 바라보며 캔 맥주를 입에 대었다.

-오늘은 어디가요? 오나카 스이타(배가 고프다) 상.-

“푸웁!! 컥!! 켈룩, 켈룩..”

슈트 차림의 중년의 남자가 허기진 표정으로 배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에 마시고 있던 맥주를 뿜어낸 나는 황급히 전화기를 들어 유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화기 너머로 곧장 유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준혁씨 TV 봤어요? 킥킥”

“아, 진짜 놀랐어. 내가 알려준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거야?”

“네. 가명 치곤 너무 웃겨서.. 그대로 밀어부쳤어요. 방송국 PD님들도 좋아하시던데요? 센스가 좋다고 칭찬 받았어요.”

“그... 그래?”

방송국에도 취향이 이상한 사람들이 있나보군.

“총 12편으로 기획한 드라마인데, 보다보면 준혁씨랑 들렀던 음식점들도 몇 군데 등장할 거예요.”

“그래? 몇 편인데?”

“그건 비밀~ 일주일에 한편씩 방송될 예정이니 매주 기대해주세요~”

약간은 졸린 듯한 유키의 달콤한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보통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그녀인데, 아무래도 본인이 기획한 심야 드라마의 첫 방송 날이라 그런지 무리하는 모양이었다.

“축하해. 그런데 언제부터 촬영이 들어갔던 거야? 미리 말 좀 해주지. 스탭분들에게 사식이라도 넣어 줬을 텐데..”

“어이구~ 제 남자친구 부자라고 공개방송 할 일 있어요?”

“뭐하면 익명으로 보내 줄 수도 있는데?”

“됐네요~ 촬영은 지난여름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는 준혁씨도 라온 출시로 바빴으니까. 일부러 말 안했어요.”

유키는 이런 면에서 참 속이 깊은 아이다.

나와 함께 기획했던 드라마가 정식으로 촬영해 들어갔을 때, 얼마나 설레었을까?

분명 나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바쁜 시기에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방송이 시작되는 오늘까지 참아준 그녀가 참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때 유키가 나에게 물었다.

“준혁씨. 혼자 잠들면 외롭지 않아요?”

“음... 글쎄, 외롭다기보다는 그냥 조금 허전하다고 해야 할까? 역시 혼자 살기엔 집이 너무 큰 것 같아.”

“그러게 제가 뭐랬어요. 준혁씨네 집은 혼자 살기엔 너무 크다니까..”

나는 잠시 동안 아무 대답 없이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들어와서 같이 살래?”

“…….”

맥주를 너무 마신 탓일까? 갑자기 얼굴이 너무 뜨겁다. 역시 프로포즈라고 하기 엔 너무 형편없었지?

유키도 어이가 없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기, 무슨 말이라도...”

“…….”

“노, 농담이야. 화났어?”

“쿠우... 쿠우...”

“응?”

자, 자는 거냐...

매일 규칙 적인 생활을 하는 유키에게 자정을 넘긴 시각은 아무래도 무리였나?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수화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마침 TV에서는 중년의 오나카 스이타 상이 배를 움켜쥐며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배가... 고파졌다. 서둘러 가게를 찾아야겠어.”

나는 소파에 기대어 맥주와 함께 오랜만에 먹방 드라마를 시청했다.

‘이거 괜히 나도 배가 고프네... 컵라면을 사다둔 게 남았나?’

&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니 사무실에는 온통 ‘오늘은 어디가요? 오나카 스이타상’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와~ 어제 야키토리(닭꼬치) 보는데 진짜 먹고 싶더라. 참다 참다가 결국 새벽에 튀어 나와서 근처 호프집에 갔더니, 세상에 맨날 남아 있던 야키토리가 다 팔렸데.

드라마 보고 손님들이 엄청 몰려 왔다나?”

“저도요. 어제 드라마 끝나자마자 달려 나갔더니, 야키토리 집에 사람이 꽉찼더라구요. 결국 포장해 와서 집에서 캔맥주랑 마셨지요~”

“아~ 진짜 재밌더라. 진짜 사람 배고픈 시간대에 악마 같은 방송이야.”

나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화에 피식 웃음을 삼키며 제 2 개발팀의 문을 열어 젖혔다.

“다들 좋..은 아침...?”

언제나 밝게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던 개발팀 식구들의 표정에 살짝 살기가 내비친 것은 기분 탓일까?

그때 화이트 보드 앞에 서있던 하야시가 나에게 말했다.

“일단 어제 부장님 들은 내용을 간단히 전달해주었습니다.”

“수고했어. 따로 설명할 일은 줄었네.”

“부장님. 어제 집에 들어가 잘 생각을 해봤는데, 사이킥 포스는 현재 개발 진행이 80%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여기서 8인 대전 룰을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요?

차라리 차기작에 8인 대전 요소를 추가하는 게 어떨지...”

하야시의 대답도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물론.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럼 8인 대전 사이킥 포스는 내 후년에 나와야 되겠지. 아케이드 게임에도 상도덕이 있는데, 2인 대전 사이킥 포스를 내고 몇 개월 뒤에 8인 대전 모드만 넣으면 게임 센터에서 좋아할까?”

“그렇긴 하지만, 이 상태에서 8인 대전 모드를 넣게 되면 추가해야할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엄청난 버그가 발생할 거예요. 그걸 수정하는 것만 해도 1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그래. 맞아.”

하야시는 내가 너무 순순히 자신의 말에 응하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출시를 연기 하자는 말씀이세요?”

“아니. 그럴수는 없지.”

“그럼 무슨 방법이라도...?”

나는 잠시 제 2 개발실에 앉아 있는 직원들을 향해 잠시 목을 가다듬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하야시 팀장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 8인 대전 모드를 넣게 되면 버그 수정으로 개발 기간이 끝도 없이 늘어나겠지. 하지만.”

나는 잠시 한 박자 쉬며 직원들의 얼굴을 살핀 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새로 만들면 3개월 안에 만들 수 있다.”

“히이익!!!”

< EP. 24 : 동전을 집어 삼키는 귀신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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