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23 : 라온 출격 (2) >
“안녕하세요. 펜타곤 소프트의 강준혁입니다. 음.. 저는 우선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드래곤 엠블렘, 사이킥 배틀, 내가 없는 거리, 발렌타인 데이 같은 게임들 처럼 말이죠.”
그게 나의 첫인사였다.
그러자, 행사장에 모인 유저들은 나의 황당한 인삿말에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야.. 하나씩 플레이 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저렇게 한꺼번에 모아 놓으니 뭔가 굉장히 열 받는데?”
“그러게, 저거 4개 다 클리어 하느라고 피 똥 싼 기억 밖에 없다.”
“아우~ 저는 내가 없는 거리하고 혼자서 질질 짜다가 어머니한테 엄청 혼났습니다.”
“나는 여친한테 등짝 맞았지. 그래서 직접 해보라고 빌려주니까 자기도 울더라.
걔도 울고 나도 울고 아주 그냥 방안이 눈물 바다였어.”
“전 라온 사는 이유가 드래곤 엠블렘 때문인데, 동시 발매가 아쉽네요. 발매 일까지 파이널 프론티어4 하나로 버텨야죠.”
“저는 펜타곤 소프트 게임은 아니지만, 사이킥 배틀이 어렵긴 했어도 진짜 재미있었는데, 대전 모드도 그 당시엔 상당히 신선해서 동생이랑 밤 새워서 했던 기억이 나네요. 후속작 안나올라나..”
“그건 힘들 걸요? 저작권이 민텐도에게 있으니.”
“하긴 그렇네요.”
준비된 인사말에 몇 문장만 읊었을 뿐인데, 유저들은 알아서 내가 만든 게임에 대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말을 이었다.
“우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라온은 휴대용 기기치고 저렴한 편이 아닙니다. 기기 가격으로만 쳐도 29,800엔. 민텐도의 슈퍼 패밀리보다 비싼 가격이죠. 대신 서 드 파티와 조율해 카트리지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었습니다. 동시 발매되는 파이널 프론티어 4와 스트리트 파이어2는 각각 5,300엔으로 타사의 소프트 가격보다 약 3~4천엔 가량 저렴한 편이지요. 앞으로 라온으로 개발되는 롬 카트리지 타이틀 들의 가격은 6,000엔이 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그건 좋은데?”
“그래 차라리 기기가 조금 비싸더라도 소프트 값이 저렴한 게 훨씬 낫지. 최근에 슈퍼 패밀리 카트리지 값이 거의 1만엔에 가까워지던데..”
“그러게요. 발매 이후로 카트리지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있으니, 이제는 게임 하나 사기도 무섭더라구요. 혹시나 샀는데, 지뢰 작이면 어떡합니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최근에 민텐도에서 발매되는 게임들은 소비자 가격이 너무나 비싸게 책정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한국 같은 경우는 아직 슈퍼 패밀리용 게임이 정식 발매가 되지 않아, 일본에서 건너온 타이틀은 약 18만원 상당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인기가 좋은 타이틀 같은 경우엔 20만원을 훌쩍 넘길 때도 많았다.
어릴 적에 친구를 따라서 파이널 프론티어 6 사보겠다고, 용산에 갔다가 무서운 형들에게 끌려가 돈도 뺏기고, 그나마 숨겨두었던 비상금으로 파이널 프론티어를 사러갔더니, 카트리지 하나에 24만원을 달라 길래 포기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이어서 새로운 카트리지 방식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차후에 드래곤 엠블렘과 함께 발매될 플래시 메모리 카트리지는 내용을 읽고, 쓸 수 있는 만큼 전국의 각 게임 샵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다운로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운로드? 그게 뭐지?”
PC 통신을 함께 즐기는 유저가 아닌 이상 다운로드라는 단어가 굉장히 생소하게 들려오는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추가적으로 다운로드 방식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을 더해 주었다.
그러자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한 유저가 외쳤다.
“어? 그럼 다른 게임을 받기 위해 안에 들어 있는 게임을 지우면 나중에 다시 사야하는 겁니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카트리지 안에 담긴 코드와 고객님의 개인 정보를 설정해 일치 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무료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오~”
하지만 탄성도 잠시, 이번엔 다른 쪽에서 질문이 들려왔다.
“만약에 플래시 카트리지에서 한 가지 이상의 게임을 하고 싶을 때는 어떡하나요? 기존의 게임을 삭제해야 하나요?”
꽤나 날카로운 질문에도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게이머들 앞에서 개발자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플래시 메모리 카트리지는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 될 예정입니다.”
“두 가지 버전?”
“네. 게임을 하나만 저장할 수 있는 저용량 버전과 게임 두 개를 저장할 수 있는 고용량 버전이죠. 물론 저용량 모델로 구입하신다면, 방금 유저님께서 질문하신 것처럼 다른 게임을 하기 위해 안에 설치 된 게임을 지워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아, 그건 좀 아쉽다.”
“그래도 뭐 나중에 다시 받을 수 있다니까. 그건 다행이네..”
데이터를 읽고 지울 수 있는 플래시 메모리의 단가는 굉장히 비싸다. 나 역시 맞춘 다고 맞춰 본 단가가 저용량은 11,800엔. 그리고 고용량은 19,800엔이었다.
이마저도 판매할 때마다 조금씩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서 차후에 다운로드가 활성화 된 다면 거기에서 수익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술은 점점 발전할 테니 내년 이 맘 때쯤이면 플래시 메모리의 카트리지 단가를 조금 낮출 수도 있고, 보다 더 큰 용량을 출시할 수도 있겠지?
콘솔은 한번 출시하면 적어도 5~6년가량 시장을 주도하기에 그 안에 기술의 발전에 따라 조금씩 기기의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하지만 플래시 메모리 카트리지를 이용한 다운로드의 소프트의 판매금액은 약 4,300엔 정도로 롬 카트리지 소프트보다 1,500엔 가량 더 저렴하게 책정 될 예정입니다.”?
그러자 회장은 어느 정도 내 말에 납득하는 형태로 분위기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게임 소프트 하나가 4,300엔이면 진짜 싼데?”
?“그렇다고 한번 지우면 못 받는 것도 아니고, 확실히?펜타곤이 유저들에게 신경을 더 쓰는 것 같아.”
?“펜타곤 소프트에서 나온 게임은?구입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으니까.
난 무조건 롬 카트리지로 소장해야지.”
?“같은 게임이지만, 어느 정도 우리에게 선택의 폭을 주는 건가?”
?나는 유저들이 술렁이는 대화 속에서 중요한 내용 몇 가지를 빠르게 캐치해 대답해 주었다.
?“기존처럼 게임을 모으시는 유저 분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롬 카트리지를 구매하셔도 됩니다. 플래시 메모리 카트리지 같은 경우는 아이에게 게임 소프트를 계속해서 구입 해주는 것에 대해 꺼려하시는 부모님이나 학생들을 위한 정책이니까요.
여러분께서 원하시는 형태로 게임을 구매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다보니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 거리던 유저들조차 점점 환호하는 분위기로 물들어갔다.
?어느 정도 행사장의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나는 프로젝터를 담당하는 직원을 향해 사인을 보냈다. 직원은 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이며 배틀존 중계에 뿌리는 프로 젝터를 가동시켰다.
?“그럼 이제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저희 펜타곤 소프트의 신작에 관련해 전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여러분께 소개시켜 드릴 게임은 바로 이 작품 입니다~!!”
?“핫!!”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등장한?미모의?여성이 낮은 자세로 미끄러지듯이 달리 자,?유저들은 갑작스럽게 재생된?애니메이션 영상에 대해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오~~!! 뭐지? 설마 펜타곤의 완전 신작인가?”
?슈슉!!
?그 순간?땅을 박차고?높이 뛰어오른 여성은 새하얀 달빛 아래 타이트한 몸매를 드러내며 공중제비를 돌더니?건물 외벽을 그대로 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영상 속의 카메라 앵글은?마치 영화처럼 360도로 경쾌하게 돌아가며 그녀의 전신을 비춰주었고, 마지막에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된?순간, 유저들의 입에서 똑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즈사 렌!?”
?“뭐야!? 말도 안 돼!!”
?“잠깐, 생김새가 비슷하긴 한데,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이 아예 다른데?”
?“설마 사이킥 배틀 2!? 라거나? 그런데 그럴 리 없는데?”
?그순간 영상이 바뀌며 이번엔 가죽 재킷을 입은?숏컷의 여성이 바이크를 타고 등장했다.
?거대한 바이크를 타고?도심을 질주하던 그녀는 높은 빌딩들이 둘러싸인 교차로를 힐끔 바라보더니 강하게 슬로틀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뒤를?쫓는 자동차에서?붉은 레이저가 쏟아져 나가고, 그녀는 좌우로 바이크를 이동하며?간신히 피해냈다.
그리곤 거대한 바이크를 지면에서 한 바퀴 회전 시키며 자동차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그때?다시 한 번?클로즈 업 된 그녀의 얼굴에 회장 안에 경악이 스쳤다.
?“컥!! 이번엔 류화영!?”
?“맞네, 사이킥 배틀이네!!”
?“우와아아앙!!!!!!?이젠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에~!!!!”
?“으어억...?내 돈 다 가져가라, 펜타곤?이놈들아~!!”
?단 두 명의 출연에 회장 안이 발칵 뒤집혔다. 그것은?그만큼 사이킥 배틀을 기다려온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류화영을 닮은 캐릭터는 집요하게 자신을 쫓아오는 자동차를 뿌리치기 위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도심을 달렸고, 영상을 보는 이마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이 계속 되었다.?
초호화 퀄리티로 제작된 ‘사이킥 포스’의 오프닝은 차후 ‘공각타격대’로 명성을 날릴 호시이 마모루 감독에게 직접 부탁한 작품이다.
?단 8분가량의 영상에 제작비가?천만엔 가까이 들어갔으니, 그 퀄리티야 현장의 분위기가 증명해주고?있었다.
?형형색색으로 표현된 도심의 야경을 화려한 색채로 담아내고, 그 안에서?어딘가 사이킥 배틀을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들이 도심을 박차며 서로 싸우고 있었다.
?4명의?여성과 4명의 남성은 서로를 적대시 하며 목숨을 노리고 있었고, 이윽고 자동차에서 쏘아진 레이져가 류화영의 오토바이에 명중하자,?가벼운 그녀의 몸이 관성에 의해 튕겨져 날아갔다.
그때였다.
?“캬아아악!!!”
?긴 혓바닥을 내밀며 파손된 자동차의 앞 유리로?뛰어오른 괴한이?등 뒤에서 창을 꺼내들었다.?그 순간 그의 이마 정중앙에 붉은 반점이 표시 되었다.
?오토바이에서 튕겨져 나간 류화영이 이를 악 문채 몸을 비틀어 권총으로 그를 겨눈 것이다.
“아이스 불렛~!!”
파아앙~!! 이마에서 얼음의 꽃이 피어오르며 목이 꺾어져 날아간 괴한은 지면에 착지 하자마자, 덜렁 거리는 자신의 목뼈를 고쳐 끼웠다.
“쩌.. 쩐다..”
유저들의 굉장히 빠른 스피드로 진행되는 배틀씬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이틱 포스의 장르명은 ‘초 스피드 하이퍼 배틀’ 마치 드래곤 볼을 연상케 하듯 거대한 건물을 때려 부수는 화끈한 배틀에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는게 당연했다.
‘확실히 돈 들인 만큼 단기간에 어마어마하게도 만들어 주셨네..’
이윽고 무너지는 건물을 한 손으로 떠 받친 거한을 향해 아즈사 렌을 닮은 여 닌자가 그의 품안에 뛰어들며 선전 문구가 떠올랐다.
-사이킥 배틀의 정신적(精神的) 후속작.- -초 스피드 하이퍼 배틀. 사이킥 포스. 올 겨울 게임센터 가동.-
“뭐야!?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으아아아!! 설마 대전 액션인가!? 대박..”
이곳에 모인 모두가 홍보영상 한방에 충격에 휩싸인 그 순간. 유저들의 한 가운데 있던 검은 천막이 위로 솟아올랐다.
“허억!!”
마치 방금 본 애니메이션의 정지 영상처럼 우치무라가 만든 거대한 디오라마는
‘사이킥 포스’의 긴장감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헐.. 겨울까지 언제 기다리냐..”
나는 피규어를 구경하느라 정신없는 유저들을 바라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린채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감사합니다. 이곳에는 저희와 함께 밤을 새느라 피곤하신 유저분들도 있기에 곧바로 두 번째 게임을 소개 할까 합니다.”
“오오~ 뭐가 또 있나 보다.”
나는 잠시 좌중을 둘러 본 후에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최근 드래곤 볼과 함께 일본에서 선풍적인 농구 붐을 일으키고 계신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슬램덩크’의 이노시타씨. 단상에 올라와 주시겠어요?”
“스.. 슬램덩크?”
슬램덩크라는 농구만화의 원작자인 이노시타씨는 단상에 올라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저 역시 오늘까지 이 타이틀의 존재를 숨기느라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펜타곤 소프트에서 제 작품을 게임화 하고 싶다고 하셨을 때.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조금 더 다양한 분들에게 제 작품을 알리고 싶어. 이렇게 게임으로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우와아아아!!”
“젠장.. 파이널 프론티어랑 스파2만 사면 될 줄 알았는데, 돈이 모자라!!!”
“오늘 대체 얼마를 쓰게 만들려는 거냐..”
< EP. 23 : 라온 출격 (2) > 끝